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7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66)
Chapter 194. 유적항(遺蹟港) 로즈벨
‘밋밋하다고 해야 하나?’
고즈넉한 분위기의 작은 항구, 도시라기에는 좀 작지만 어쨌든 제법 그럴듯하게 마을이라고는 부를만한 곳을 바라보며 투란은 갸웃했다.
모래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저녁의 항구, 폐허를 덮은 모래가 언덕을 이루며 언제 쓸어 내 버릴지 모르는 듯한 묘한 풍경 속에 항구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 닿기 위해 지나치는 폐허…… 모래에 파묻힌 유적 쪽이 오히려 더 도시처럼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모래 방벽으로 보호되고 있군. 여기까지 오지 않으면 사막 쪽에서는 그저 검은 바다와 맞닿은 모래 언덕만 볼 뿐이야. 얼핏 듣던 것보다 훨씬 다듬어진 모양이다. 알드바인보다 작지만 그래도 도시라 불릴 만해.
‘음……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 것 같은데 도시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수천은 살고 있다. 유적을 가택으로 개조하고 대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견디는 방벽을 세우고, 저런 배가 들어올 정도로 항구까지 유지하고 있잖아. 그러면 작아 보여도 도시인 거지.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저 배는 대체 뭐야? 다른 배보다 그냥저냥 큰 정도가 아닌데? 무슨 대저택을 물 위에 띄운 것 같잖아.’
밋밋한 풍경에서 툭 튀어 보이는 한 척의 거선(巨船)을 흘깃하며 투란은 미간을 좁혔다.
작은 마을에 어울리는 작은 배들이 주욱 늘어선 와중에 거리를 둔 채로 우두커니 떠 있는 큰 배는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작은 배들처럼 접안(接岸)하지도 않고 항구에 거리를 둔 채로 홀로 떠 있는 부분부터, 이 사막의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배 위의 저택 안뜰 같은 분위기까지.
―검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겠지. 유적항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정박하고 있는 거잖아. 이쪽 부두가 워낙 작고 얕다 보니 저 배를 직접 댈 수 없으니까, 저쪽에 세워 두고 편선(便船)을 이용해서 오가고 말이야.
‘흐음…… 알드바인이랑은 또 다르군.’
―화이트 레이크를 오가는 배의 규모랑 비교하면 곤란하지. 뭐, 저 정도 배라면 알드바인의 부두에는 억지로라도 들이댈 수는 있어 보인다만…….
‘뭐, 저 배보다 더 이상한 것도 있으니까. 어째 저럴 수가 있지?’
―언더섀도우가 있다고 말했잖아. 검은 바다와 대사막의 서쪽이라고.
슬쩍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면서 투란이 갸웃거리며 하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면서 대꾸했다.
검은 바다와 사막이 주욱 이어진 서쪽, 조금 더 북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풍경은 사막의 지평선이 끝나면서 자욱하게 모래로 벽을 치고 하늘에서는 구름이 내려앉아 만나 뒤엉킨 듯한 기괴한 광경을 꾸미고 있었다.
워낙 흐리고 짙어 맑은 하늘을 온통 가릴 듯한 모래와 구름의 폭풍이 장막이라도 드리운 듯한 모양으로 경계를 그려 내는 것처럼 보였다.
‘말이야 들었지만…… 사막에서는 그냥 지평선이겠거니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보니 뭔 구름이랑 모래로 벽을 쳐올린 꼴이잖아. 그냥 봐도 엄청난데, 정말 춤추는 산맥 같은 마경이 아니라고?’
―마경이라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불러도 된다니까. 춤추는 산맥이나 다른 마경만 한 규모는 아니고, 특징도 꽤 뚜렷하고 편향되어 있기는 해도 저기도 역시 다양한 마물과 괴물이 가득한 곳이니까.
‘흐흠…… 신기하네. 사막 경계에 닿아서야 보이다니…… 아, 여기가 북쪽 끝이고 서쪽으로 치우친 곳이라고 했지? 그럼, 여기라서 저렇게 또렷하게 보이는 건가?’
―당연히 그렇지. 이쪽으로 높이 날아오거나 하지 않는 먼 곳에서는 자욱한 구름이 가득한 하늘로만 보일 거야. 때문에 언더섀도우는 하늘에 구름의 대륙이 떠 있다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 구름 그림자 아래란 뜻으로 언더섀도우라고도 하고.
‘구름이 걷히기는 하는 거냐?’
―전혀. 그러니까 그림자 아래가 마경이라 불리는 거지. 왜 가 보고 싶어?
‘아니. 알드바인에 연락하고, 얼른 돌아가 봐야 하잖아. 아직도 실감이 안 나지만, 이 년이라니…… 시알라가 쉼터 때려치우고 원래 고향으로 가 버렸으면 어쩌지?’
―홀시딘이 멀쩡하니 네가 다시 거처를 잡는 거야 문제없겠다만, 시알라 남매가 알드바인을 떠날 계획은 아예 없었잖아?
‘뭐……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기잖아. 그보다 비컨은?’
등 뒤의 사막보다 아직 멀찍이 있는 검은 바다의 바람결이 더 강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잡담을 멈추고 해야 할 일을 점검하며 물었다. 사막의 거대하지만 소소한 몬스터, 짐승들을 지나치며 오는 사이에 저 유적항의 어딘가에 상아탑의 마법사가 설치한 비컨의 신호를 확인했다.
어쩌면 작은 마을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상아탑의 제대로 된 지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인 비컨의 신호였다. 그렇게 제대로 된 비컨이라면 상아탑의 마법사들이 먼 길을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법 ‘바람의 길’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바람의 길’이라면 힘들게 사막을 건너와 마법으로 단숨에, 중간에 두어 곳 상아탑을 거칠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길어 봐야 사나흘 안에 알드바인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터였다.
―조금 묘하다만, 신호는 확실해. 은폐 조치까지 해 놓은 모양인데, 찾아오는 사람에게 길잡이 노릇은 넉넉히 해 준다. 그래도 직접 문턱에 닿기 전까지는 교란을 걸어서 헷갈리게 해 놓기까지는 한 모양이다만…… 로열클래스의 특혜를 부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야 뭐…… 들어간 금전이 얼만데!’
―야, 금전이 문제가 아니잖아. 상아탑을 적대시하는 경우에 대한 대책이니까 로열클래스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아무튼 당장 위험한 뭔가는 없는 거지?’
―오가는 인간, 짐승은 잔뜩 있다만 몬스터라든가 마수의 흔적은 없다. 뭐, 저 큰 배에 제법 마법이 걸려 있기는 한 모양이다만 딱히 항구나 마을에 경향을 끼치는 부분은 없는 것 같고.
‘가자!’
투란은 등 뒤에서 푸스스 하는 모래를 돌아보지 않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다.
멀리서 볼 만큼 봤으니 이제 직접 부딪쳐야 할 때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모래에 파묻힌 폐허의 흔적을 스쳐 지나가다 보니 예상하지 못한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무너진 폐허, 살짝 드러난 벽의 잔해를 깔개 삼아 움직이는 작은 뱀을 모래 빛깔의 털을 지녔다고 모래 속에 반쯤 몸을 파묻고 다가온 고양이가 덮치는 광경이 그런 경우였다.
‘살쾡이도 아니고, 그냥 고양이잖아?’
―마수도 아니고 몬스터도 아니지. 흠, 들고양이가 야성을 발휘하는 경우기는 한데, 그중에서도 상당한 사냥꾼인 모양이군.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뱀 잡아먹는 고양이에 대해 놀랄 때, 고양이의 사냥 솜씨를 칭찬하고 있었다.
살짝 생각해 보니 확실히 야생의 짐승이라면 먹고 죽는 것 아니란 것만 깨달으면 뭐든 사냥해서 먹어치우기는 했다. 배 부르고 여유 있으면 나름 골라 먹는 사냥을 하겠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사냥감이라도 가차 없이 잡아먹을 수밖에 없기도 할 터이고.
―투란, 네가 저런 작은 일에 너무 놀라면 오히려 이상해 보여.
드라고니아는 겨우 납득하는 시늉을 하는 투란에게 핀잔했다.
‘나한테 덤빌 경우도 생각해야지. 지금은 고양이지만, 사막 개미 떼가 와악 하고 덤빌 수도 있고 쥐 떼가 우악하고 달려들지도 모르잖아. 이상한 것이라면 뭘 해도 그냥 이상하니까.’
스스로 잘 모를 대꾸를 하면서 투란은 페허를 건넛마을의 담장에 이르렀다.
담장은 흘러내린 모래를 바닥에 밀어 넣고 버티는 것처럼, 묘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뭔가 조치가 취해졌다고 보이기는 하는데 파헤치거나 꿰뚫어 보기 전에는 쉽게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옛 도시의 지하수로가 모래를 끌어당겨 순환시키는 거야. 앙트 시절의 유산인 셈이고, 초기에 이 마을을 형성한 이들이 이용한 거지. 뭐 지금은 아는가 모르겠다만…….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흘려넘기려는 부분을 짚었다.
투란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인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슬쩍 담장을 넘었다.
외곽의 담이라 그런가, 딱히 지켜보는 이들이 없기도 했고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투란은 주의하고 있었다.
‘차림새는 모래 미궁에서 본 것처럼 할까? 그냥 몬스터 헌터? 어느 쪽이 나아 보여?’
―당연히 앙트의 고대 복식이 더 이상해 보이지! 저 배의 양식으로 봐서는 적당히 춤추는 산맥의 몬스터 헌터 차림새면 괜찮을 거야.
‘그래, 그러면…….’
금방 마법이 발휘되었고 투란은 그럭저럭 평이한 몬스터 헌터의 옷차림과 배낭을 걸친 모습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가급 자연스럽게 마을을 걷는 모습을 꾸미면서, 되도록 인적을 피하면서 마을 안으로 들어서며 투란이 다시 묻는다.
‘비컨은?’
―마을 중심에 우물이 있어. 거기서부터 신호의 반향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도달할 것 같다만…… 으흠, 이거 교란이 아니라 그냥 방치해 둔 건지도 모르겠다.
‘신호를 흘리는 마법 비컨을 방치해?’
―일단 가 보라고.
‘그래…… 가 보면 알겠지.’
그렇게 투란은 마을의 중심에 있다는 우물을 향했고…….
“여기가 로즈벨인가!”
“이야, 힘들었어!”
“젠장할, 우리도 배 타고 왔으면 쉬웠을걸!”
“뱃삯이 없었으니 어쩌겠냐.”
한 무리의 몬스터 헌터가 큰 연못처럼 꾸며진 우물가에 앉아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멀리서 온 이방인의 투덜거림을 잔뜩 쏟아 내면서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깃거렸다. 누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바로 달려들어 물어뜯기라도 할 듯 눈초리가 사납고 날카로웠다. 그 때문에 유적항 로즈벨의 주민들은 가능한 한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냥 우물을 길어 가며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괜히 외지인과 다투고 싶지 않은 것처럼도, 그냥 정체 모를 이들에 대해 경계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덕분에 그들의 대화는 다시 그들만의 일로 몰입해 들어갔다.
“정말 마석을 구할 수 있는 거겠지?”
“여기까지 와서 묻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 안 하나?”
“대삼림의 샛길을 이용하면서 사냥한 것이 있잖아. 적어도 손해는 안 난다.”
“이봐, 손익 따져서 여기 오지 않았다고!”
“그렇지, 한 번에 떼돈 좀 만져 보자고 왔지.”
“그래서 안내인은 어떻게 만나나?”
“여기서 팻말 걸고 기다리면 온다고 했어.”
“언제?”
“알 게 뭐냐! 쉬면서 기다려!”
서로 따지고 으르렁거리다가 결국 지친 듯이 고요해졌다.
멀찍이 골목 한편에서 바라보고 있던 투란은 조금 당황스러워서 우물가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옹기종기 앉아서 떠들고 있는 작자들은 어떻게 봐도 분명한 몬스터 헌터.
차림새나 장비가 투란에게 너무 익숙한 꼴이 춤추는 산맥에서 온 자들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냥 갈 곳 없어서 흘러 다니다가 여기에 도달한 경우는 아닌 것이 투란에게 분명히 엿보이는 바로는…….
‘베테랑 냄새가 풀풀 나는데?’
상당히 경험이 많은 몬스터 헌터들이란 점이었다.
―딱히 장비가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다만?
‘어?’
―알드바인의 베테랑 헌터란 작자들이 지녔던 것보다 격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수준의 장비는 없어 보인다고. 룬디아크 공방제가 아니더라도 말이지.
‘야, 알드바인 대공방의 장비는 원래 수준이 높다고 자랑질 하는 소리 기억 안 나? 원래 저 정도면 애송이가 막 손댈 수준은 훨씬 넘었다고. 그런데 몬스터도 드문드문…… 에인션트 웜이나 툭툭 튀어나오는 여기 왜 왔지? 샌드 리저드랑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저들 말에 따르면, 마석을 노리고 왔다는 것 같다만.
‘마석……? 이 근처에 그런 게 있어?’
―아니, 전혀 없지.
‘얀마!’
―뭘 내놓고 있는데?
‘팻말?’
한창 의아해하는 와중에 서로 미루는 듯 보였던 무리 중 한 명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배낭 안에서 꺼낸 조그만 나무판에 뭔가 끄적여서 일행 앞에 내놓는 모습이 보였다.
―흐음? 마석 의뢰받고 옴? 뭐라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나무판에 간략히 적힌 몇 글자를 읽고 어리둥절했다.
투란은 잠깐 ‘엥?’ 했다가 ‘아.’ 하고 납득하는 시늉을 했다.
―뭔데 그래?
한층 더 궁금해진 듯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원거리 의뢰를 받고 온 모양이야. 가끔…… 몬스터에 현상금 걸린 경우처럼 어디까지 오면 의뢰를 하겠다고 헌터 길드에 걸리잖아. 여기에 오면 받을 수 있는 의뢰가 있었던 모양인데…….’
대답을 하면서 투란도 어리둥절해지고 있었다.
마석이 주변에 없다는데 대체 무슨 의뢰길래 저런 암호를 걸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