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7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67)
‘가만, 사막을 건너지 않고 여기에 오려면……?’
문득 투란은 자신과 다른 경로를 선택한 저들의 행적을 추측해 봤다.
드라고니아는 추측하는 대신에 더욱 분명하게 지도를 투란의 시야에 비춰 주면서 설명을 한다.
―대사막의 동쪽은 대삼림, 눈보라 산맥이 경계를 이루고 있지. 그 경계의 북쪽 끝자락이 바로 저 검은 바다야. 더 동쪽으로 가면 대삼림은 검은 산맥과 맞닿아 있고, 거기서 검은 강을 경계 삼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브로큰 킹덤의 영역이 된다. 대삼림에서 직접 내려가면 춤추는 산맥의 북방 황야에 닿게 되고…… 저들이 말한 몇 마디를 근거로 판단하면 검은 강, 검은 산맥을 따라서 대삼림과 검은 바다가 만나는 지역을 따라왔을 거야. 거리만 두고 봐도 몇 달이 걸리는 여정이었을걸?
‘그렇다면 진짜 마석을 얻으려 온 걸 텐데?’
―혹은 마석만큼이나 값진 뭔가를 얻기 위해서겠지.
‘그야 그렇지.’
투란은 조용히 몸을 뒤로 빼면서 골목 안으로 숨었다.
모래 미궁에서 봤던 앙트의 거리를 떠올리게 하지만 어딘가 어긋나 있는 유적항 마을의 건물은 그늘진 구역을 많이 드리웠고, 때로는 높지만 때로는 낮은 벽과 담장이 들쭉날쭉하게 엮여 있었다. 분위기가 마치 알드바인의 둑 아래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다만 사람이 훨씬 적을 뿐이었다.
그 골목에서 투란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이라고는 가끔 집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뭔가 거리로 내다 버리는 경우라고 확인하면서 슬쩍 몸을 숨길 수 있는 건물 위로 올라갔다. 조금 높아서 우물가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고 저쪽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자리를 찾아 앉으며 투란이 묻는다.
‘들키지 않게 저 사람들 조사 좀 할 수 있나?’
―프로브를 띄우면 바로 탐색할 수 있다만?
드라고니아는 ‘왜 직접 할 생각을 안 하냐?’라며 타박하듯 대답했다.
‘프로브를 눈치채면…….’
―마법사도 없고 몬스터 로드도 없어. 프로브를 간파할 도구도 없지. 상아탑의 본거지 안도 아닌데 걸릴 것 같냐?
만약의 경우를 말하려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그 말투에서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어느 틈엔가 투란 자신이 프로브를, 드라코눔의 마법을 얕보듯이 미덥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
대사막의 거대한 환영이라든가 모래왕이랑 엮인다든다…… 혹은 고대의 미궁 속에 갇힌 메듀시아를 찾아간다든가…… 정령의 별궁이니 뭐니 하는 이런저런 일들과 엮이다 보니 왠지 당연해진 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란이 겪은 그런 일이 아니라면 어지간한 몬스터 헌터나 마법사는 간격을 둔 프로브에게 그저 훤히 드러난 알몸이나 마찬가지일 뿐! 그러니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의 태도는 왠지 드라코눔의 마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여겨졌을 수도 있잖은가.
‘음, 아무래도 거물들한테 시달리다 보니까 내가 겁이 많아졌나 보네.’
키득거리듯이 투란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막 투란이 프로브를 몬스터 헌터들 쪽으로 가까이 붙이려 했다.
―야, 막 들이대지 마라! 마법사 온다! 아무리 얼치기인 마법사라도 너무 가까이 가면 프로브에 대해서 눈치챌 수 있어!
드라고니아가 신중하게 말하면서 투란이 제어하던 프로브를 바로 뒤로 물리고 있었다.
어쩐지 투란에게 으르렁거리던 것과 다르게 드라고니아 역시 투란처럼 은근히 프로브에 대해 미덥지 않아하며 소심해진 듯하잖나!
‘음, 조심해야지. 방심하면 안 되니까.’
대충 대꾸하면서 투란은 우물가로 다가오며 프로브와 교차할 뻔한 마법사를 바라봤다. 번듯한 건물의 옥상에서 쌓인 항아리 틈새에 숨어 내려다보는 자신이 들키지 않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가오는 마법사는 투란만큼 경계심이 높지 않은 모양이었다.
둥글둥글해 보이는 몸매로 머리 위에 햇빛을 가리는 두건을 모자처럼 얹은 채로 훅훅 하면서 우물가에 닿자마자 냉큼 연못에 손을 담가 물부터 얼굴에 끼얹는 모습은 그냥 지나가는 뚱뚱한 아저씨처럼 보일 뿐이니, 어찌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품지 않게 하는 모습이었다.
저런 아저씨가 주변을 흘깃거리며 유심히 살피려 한다면 오히려 수상쩍어 보일 듯하니, 차라리 저 엉성한 태도가 자신을 감추는 적절한 모습일 수도 있었다. 마력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감지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마법사라고 알아차릴 낌새가 전혀 없는 것은 조금 이상했지만.
그래도 몬스터 헌터들은 그 엉성한 뚱보 아저씨 몰골인 마법사를 흘려넘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거 보이시오?”
가까이 있는 한 명이 냉큼 팻말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묻고 있었다.
“시각이 멀쩡하니 잘 보이오만?”
후욱 숨을 몰아 내쉬는 듯이 나온 대답과 함께 둥글둥글 뚱뚱한 마법사는 아예 우물 연못가에 주저앉아 손으로 쉴 새 없이 물을 퍼 얼굴과 목 언저리에 뿌리고 있었다.
그 꼴을 보던 몬스터 일행 중 한 명이 흥미를 느낀다는 듯이 물었다.
“뭐야, 마법사였나?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요?”
마법사의 손이 멈칫했고 멀리서 귀를 쫑긋거리던 투란도 흠칫했다.
구경하는 중이라 더욱 객관적으로 파악한 바에 따르면, 마법사의 마력을 느끼는 경우였다면 처음부터 알아봤을 터인데 저 헌터는 짧은 문답이 오고 간 다음에 판단을 하고 있었다.
딱히 마법이 펼쳐진 것도 아닌데 대뜸 알아낸 셈이었다.
곧 마법사가 투란이 마음에 품은 의문을 그대로 토해 내고 있었다.
“흐음? 어째서 내가 마법사라 단정 지으셨나?”
피식, 마법사라 말한 헌터가 웃었다.
“보통 사람은 눈이 멀쩡해서 잘 보인다고 말하지. 그렇게 말할 때는 대부분 시비 거는 말투이기도 하고, 그런 말투를 쓸 때는 심심하니 주먹질이라도 해 보자고 할 때요. 하지만 눈을 대신해서 시각이란 말을 쓰고, 열 명이 넘는 우리를 보고 전혀 거리낌도 시비 거는 낌새도 없이 사실을 말할 뿐이라는 태도라면 마법사인 거지. 아니신가?”
의외로 상세한 설명이 나온 셈이었다.
어이없다는 듯 마법사가 부푼 볼을 실룩이다가 픽 새는 웃음과 함께 대답한다.
“통찰력이라고 해야겠군. 맞네, 난 마법사야. 주문을 써본 것이 거의 일이 년이 넘기는 했지만 마법사이기는 하네. 궁금하군, 그런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 이 외진 곳에는 대체 왜 온 것인가? 내가 여기 살고 있은 지가 대략 십 년이 넘는데 마석 같은 것은 전혀 본 적이 없네만.”
이 말은 헌터들 사이에서 가벼운 동요를 일으켰다.
하지만 마법사를 판별한 헌터가 혀를 차며 다시 입을 여는 순간, 그 동요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기서 한 이십 년 산 사람 없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우리 같은 헌터가 아주 낯설지는 않을 텐데?”
“이십 년? 으흠…… 그건 여기 토박이 중에서도 노인 몇몇이겠는데…….”
턱살을 물에 젖은 손으로 훔쳐 내면서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이 말에 헌터 중 누군가가 중얼거림으로 대꾸했다.
“토박이? 전부 뜨내기로 보이던데…….”
마법사가 ‘응?’ 하다가 푸훗 하고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하핫, 날카롭구먼? 맞아, 이 마을 로즈벨에는 토박이가 적다네. 열에 여덟은 여기서 머문 지 겨우 사오 년 정도가 고작이지. 그래도 열에 한둘은 여기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네. 뭐, 보다시피 머물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는 곳이라서 머리 좀 굵어졌다 싶으면 냉큼 바다 건너 떠나 버리니까. 그래서 굉장히 신기해하고들 있잖나. 자네들처럼 보기 드문, 몬스터 헌터가 패를 지어 장비를 완전히 갖추고 이런 곳에 덜렁 나타났으니까 말이야.”
“흐흠, 그래서 흘깃거리면서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던가.”
마을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분위기를 되짚는 듯, 헌터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욱 헌터들을 둘러보는 채로 다시 묻는다.
“정말로 팻말에 적힌 의뢰가 있어서 온 것인가?”
헌터 일행의 눈길이 마법사를 간파한 헌터에게 몰렸다.
누가 봐도 그가 일행의 우두머리인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였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별로 숨길 일도 아니란 듯이 대답한다.
“십몇 년 전만 해도 우리 같은 사람이 있었을 거요. 이십여 년 정도 전에는 꽤 흔했을 테고. 한때는 꽤 몰려들었다니까 말이오. 헌터 길드에 정식으로 의뢰된 일이었으니까. 아직까지 그게 유효하다는 것은 잊고들 있었지만…….”
“유효하다고?”
마법사가 갸웃하며 허공을 보는 시늉을 했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묘한 모습에 헌터들이 바로 입을 다물며 기다렸다.
마법사의 저런 모습이 기억을 되짚어 집중할 때란 것을 아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멀리서 보는 투란은 한 가지 더 알 수 있었다.
‘상아탑 출신?’
기억, 혹은 흘려들었던 정보를 되살리려 할 때나 뭔가 복잡한 계산을 할 때 자주 엿볼 수 있는 상아탑 마법사의 태도가 저 둥글둥글하고 뚱뚱한 마법사에게서 드러나고 있었다.
―비컨의 신호가 강해졌다. 저 마법사, 상아탑이 축적한 지식을 바로 검색해 볼 수 있는가 본데?
‘어? 야, 그건…….’
―최소한 상아탑의 중급 마도사란 얘기지. 특별한 주문의 구성 없이도 마력만으로 비컨을 이용한 중계로 저럴 수 있다는 것은…… 투란, 여기 보이는 꼴이랑 다르게 제대로 된 상아탑의 지부가 있는 모양이다.
‘헐?’
투란은 어이가 없었다.
마을의 규모로 봐서는 숨겨진 비컨이나마 멀쩡하기를 기대하게 되는데, 그걸 제대로 쓰고도 남을 듯한 제대로 된 마도사라니! 전혀 이곳의 한적한 분위기랑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아닌가.
―저런 배가 찾아와 머물고 있기도 하잖아. 무슨 일이 있나 보지.
‘아니, 저 마법사는 여기서 꽤 머물렀다고 하잖아. 헌터들도 무슨 이십 년이 어쩌고 하는 걸 보니 몇 년 사이의 일이 아닌 것 같은걸.’
―그렇지, 네가 저지른 짓이랑은 관계가 없기는 하겠군.
‘내가 무슨 흉악한 짓이라도 했냐!’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마법사와 헌터들 사이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뭔가 찾아낸 듯, 마법사가 말하고 있었다.
“십육 년 전이로구먼. 내 전임자가 남긴 기록이 있기는 하네. 여기가 바로 그 유명했던 마석 보상의 의뢰랑 관계가 있기는 한 모양이야. 음, 하지만 이곳 사람들이랑은 무관하다는데?”
중얼거림같은 말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헌터가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마법사를 다시 훑어보며 묻는다.
“당신, 상아탑 마법사요?”
“응? 그렇네만, 자네 통찰력은 참 대단하군! 경험도 풍부하고…… 아, 이쯤 되면 서로 자기소개 정도는 하는 것이 좋겠군. 나는 브린이라고 하네. 상아탑에서…… 좌천당해 이런 외진 곳에 처박힌 신세……라고 해 두지.”
낄낄거리며 말을 맺는 마법사였다.
헌터들 사이에서 조금 찌푸린 듯한 표정이 오갔고, 한숨처럼 우두머리로 보이는 헌터가 말한다.
“나는 루헬. 다른 친구들은 기분 내키면 상아탑의 마법사에게 이름을 밝힐 거요. 보다시피, 여기까지 올 지경이면 멀쩡한 처지는 아니라서…….”
“그래 보이는군. 현상금 냄새를 풍기는 친구들도 있어 보여. 하지만 여기서는 현상금 줄 사람도 없으니 걱정 말게. 푸후훗.”
브린은 장난기 가득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루헬만이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면서 마주 웃어 줄 뿐, 나머지 헌터들 사이에서는 꽤 불편한 낌새가 불평하듯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는 투란은 냉큼 프로브를 움직여 헌터들의 얼굴을 주르르 확인하고 기억하게 하고 있었다.
―너, 설마 저 녀석들 현상금을 챙기기라도 할 참이냐? 여기 현상금 줄 사람 없다는 말 못 들었어?
드라고니아가 바로 투란의 속내를 느끼고 황당해하며 물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 하지만 중급 마도사잖아. 바람의 길을 이용해서 상아탑으로 날려 보내면…… 현상금만으로 바람의 길 여비는 나올 수도 있을걸? 수십 년 전의 의뢰를 찾아 이런 곳까지 찾아올 수준의 헌터에게 걸린 현상금이 저렴할 리가 없다고!’
―여비가 없는 시늉이냐? 작작 좀 하라고!
가진 돈을 아끼겠다는 투란의 인색함에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이 살짝 한 걸음 물러서듯 대꾸한다.
‘내 금전이 무사한가 모르잖아. 가지고 있는 걸 툭툭 털어 쓰기 전에 새로 벌 수 있는 것도 잘 기억해 두는 거지. 미리미리 말이야. 아, 또 뭐라고 한다! 잘 들어 두자고!’
―아오, 진짜 넌……!
투덜거리는 드라고니아를 모르는 척하며 투란은 저편에 귀를 기울이고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마법사 브린이 일어서고 있었고, 루헬을 비롯한 헌터들은 여전히 쉬는 자세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아, 그럼…… 의뢰인을 잘 찾기를 바라네. 아, 이 마을에 여관은 겨우 둘…… 아니, 셋이라고 해야 하나? 손님 스물가량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곳은 이미 꽉 찼으니까 적당히 주민들에게 물어봐야 할 거야. 민가지만 외지인에게는 돈 받고 빈 방을 내주기도 하거든.”
브린이 호기심이 다 채워졌다는 듯이 엉덩이를 털고 훌훌 가 버릴 모습으로 이리 말했다. 어이없어하는 헌터들 틈새에서 다시 한숨을 쉬는 표정으로 루헬이 묻는 말을 꺼낸다.
“잠깐, 혹시 여기서 상아탑의 물품을 구매할 수 있소?”
브린의 인상이 살짝 구겨졌다.
몹시 귀찮은 말을 들은 듯…….
“팔기는 하네만…… 음, 품질은 보장할 수가 없군.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내가 관리를 잘 못했거든.”
웅얼웅얼 나오는 마법사의 말에 루헬을 비롯한 헌터들의 얼굴이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