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7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68)
루헬은 헌터 일행을 두 패로 나눴다.
한 패는 루헬 자신과 함께 연못가를 지키며 의뢰인을 기다리고, 다른 한 패는 쿨람이라는 헌터와 함께 마법사 브린을 따라가 보급품을 채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갈라지는 일행을 보다가 투란은 브린 쪽을 따라가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기다려 봐야 언제 올지 모르는 의뢰인을 구경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고, 굳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도 프로브를 남겨 구경할 수 있으니까.
옥상에서 옥상으로, 한적하고 눈길이 적은 건물 위를 조심스럽게 건너며 투란은 루헬 일행에 대해 생각했다.
‘배 타고 온 일행은 아니었지?’
―글쎄다, 대삼림에서 저 거선을 이용했을 수도 있기는 하지. 하지만 지금까지 본인들이 보인 언행으로 판단하자면, 그럴 가능성은 적어.
이모저모로 검토해 본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억측을 피해 생각을 멈추고 투란은 주변을 둘러보면서 가만히 추적 아닌 추적을 계속했다. 그렇게 해서 잠시 후, 투란은 우물을 중심으로 한 연못가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로즈벨, 유적항의 마을 중심지를 볼 수 있었다.
깊이 파고든 것처럼 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둥글게 층을 이루고, 다시 한 계단 더 내려가는 풍경…… 어딘가 스타폴을 떠올리게 했지만 그 층을 채우는 건물들이 크기가 제멋대로인 네모난 궤짝을 줄줄이 쌓아 놓고 있는 형태인 것은 모래 미궁에서 본 광경을 바로 떠올리게 했다.
‘이거, 옛날 폐허를 파헤치고 거기에 덧댄 꼴 아냐?’
문득 투란은 건물을 이루는 벽이 낡았고, 덧대 붙인 판자라든가 빛바랜 흙칠이 보이는 곳곳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바닥부터 쌓아 올린 건물이라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 위에 덧대듯이 꾸며 놓은 것이라고.
―그렇기도 하고, 아닌 것도 있고…… 어째서 우물을 중심으로 이러지 않았는가 하는 부분이 조금 신기하군.
드라고니아는 다른 관점에서 이 풍경을 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투란도 금방 건물 귀퉁이라든가, 구석 언저리에 사람 셋이 어깨동무하고 들어가도 될 듯한 커다란 항아리가 여럿 놓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떤 것은 물이 꽉 차 있고 어떤 것은 반쯤 차 있는 듯이 보이는데, 항아리 옆구리 아래로 꼭지를 달아 놓은 꼴이 물을 채우고 받기 위한 형태가 분명했다.
하지만 굳이 우물 가까이 거처를 정하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다음에 물을 깃는 듯한 상황은 투란에게 살짝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물가에서 험한 꼴 본 모양이네. 우물 아래에서 뭐가 툭 튀어나올 때가 있으면 저럴 수 있어.’
―음? 흐흠…… 그런가.
샤오콴 마을에서도 통나무로 꾸민 물통을 늘 준비해 둔다는 점, 그렇게 하는 까닭을 투란이 되새기는 것을 알아차린 드라고니아도 납득한 듯했다.
―일단 경계도를 높여서 지켜보도록 해야겠군.
바로 루헬 일행을 지켜보는 프로브를 재조정하며 하는 말이었다.
투란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주변의 눈길을 확인하고 피하며 브린과 쿨람 일행을 계속 쫓았다. 그러다가 조금 뒤늦게 투란은 몬스터 헌터인 쿨람 일행과 로즈벨의 주민 사이에 묘한 차이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두건…….’
―음? 두건이 왜?
‘여기 사람들, 옛날 앙트 사람들처럼 모두 두건이 있는 옷차림이야. 옷에 달리지 않았으면 목도리로 걸어 놓기라도 했잖아. 저 헌터 일행은…… 모자나 두건이 있더라도 이런 마을에서는 필요 없으니까 배낭 안이나 허리에 걸어 둔 꼴이고.’
―인간 여행자라면 여러모로 쓰는 필수품 아니었나? 어쨌든 다들 갖고는 있잖아?
‘그래, 갖고는 있는데…… 좀 사소한 부분에서 차이가 나네.’
중얼거리면서 투란은 자신의 차림새를 다시 짚어 봤다.
앙트의 모래 미궁에서 고대의 풍경을 구경했으면서도 투란의 차림새 역시 굳이 마을 안에서 두건을 꼭꼭 둘러쓰는 쪽은 아니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이 주변에 사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외지에서 왔다는 티가 팍팍 날 듯한 모양새가 분명했다.
‘여기 주변에 다른 도시나 마을이 있나?’
―비슷한 규모로 몇 곳 있기는 하겠지. 수십 년 사이에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경우가 잦다고 들었다만…… 전통적으로 오래 자리 잡은 마을이라면 언더섀도우와 맞닿은 지역에 굴하람이란 경계촌이 있고, 검은 바다와 대삼림으로 이어지는 해안에 작은 규모의 도시 켈바스가 있을 거야. 해안을 따라서 켈바스의 경비 요새가 크고 작게 여럿 있다는 말도 듣기는 했다만, 캠프 형태이고 이동이 잦다고도 했어.
‘생각보다 번화하네?’
―그게 번화(繁華)하냐? 말뜻을 알고 쓴 거냐?
‘덩그러니 유적을 파먹는 도시 하나만 있는 것처럼 말했잖아, 네가! 그보다 훨씬 사람 사는 곳이 많다니까, 나름 북적거린다고 봐야지.’
―북적거리니까 번화하다니…….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릴 때, 투란이 재빨리 말머리를 돌리듯 묻는다.
‘비컨은?’
―저쪽 계단 위, 우물의 정반대편의 한적한 곳에 저 마법사의 거처로 보이는 곳에 숨겨져 있군. 일단 상아탑의 표식은 있다만, 아무리 봐도 그냥 혼자 사는 곳 같은데?
간단한 물음에 드라고니아가 아주 빠르게 탐색하고 결과를 말하고 있었다.
마침 브린과 쿨람 일행이 거의 당도하는 중이었다.
투란은 잠시 그들 뒤를 바로 따라가서 뒤늦게 찾아온 사람처럼 꾸미고 구경을 할 것인가, 이대로 멀리서 살펴보다가 따로 브린을 만날 것인가 생각했다. 굳이 이 먼 곳에서 춤추는 산맥의 몬스터 헌터들과 엮일 필요가 있는가 없는가…….
―뭔 일인지 엮이면 알드바인으로 귀환이 며칠이든 늦어질 텐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궁리를 엿본 듯이 말했다.
‘역시 그렇지?’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브린의 거처, 그 근처의 한적한 곳의 건물 지붕에 자리 잡고 앉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이런저런 건물 중에 단층이었고, 아래는 그저 지나치는 골목이라서 대충 두건을 눌러 머리를 덮고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얼굴이 낯선 이웃처럼 보일 모습을 꾸민 셈이었다.
그렇게 앉고 나니 문득 스며 오는 바다의 바람결이 투란에게 묘한 느낌을 전해 왔다.
낯선 곳이었지만 낯익은 듯한 느낌, 로즈벨이라는 마을의 풍경과 어긋난 듯한 상아탑 마법사와 몬스터 헌터 일행의 실랑이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 실랑이가 드라고니아를 조금 황당하게 하기는 했지만…….
―저 마법사, 진짜 이상하군!
저편의 쿨람은 마법사의 거처 안에 들어가서 잠깐 사이에 격분한 듯, 드라고니아와 다르게 아주 적나라하게 브린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아니, 상아탑의 마법사잖아! 뭐 이런 날라리 로그메이지같은 짓을!”
“뭐? 누가 날라리고 누가 로그메이지야! 정직하게 알려 줬는데 왜 욕을 해!”
브린도 억울하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다만 그다음에 이어진 쿨람의 말이 더욱 적나라할 뿐이었다.
“손질을 안 해 놔서 망가졌을지도 모르는 마도구라며! 그딴 소리를 상아탑의 마법사가 해도 되냐고! 상아탑의 하급 마법사가 몰래 내다 파는 물품에도 그딴 소리는 붙이지 않잖아!”
“그건 돈이 궁해 열심히 팔려는 애들이고! 난 이 외딴 곳에서 찾을 사람 없는 줄 알고 손질을 좀 게을리했을 뿐이지!‘
브린이 살짝 캥기는 말로 대꾸했는데, 이는 쿨람 일행을 한층 더 황당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쿨람이 뭐라 하기 전, 그 일행 속에서 바로 작은 웅성거림이 들쑥날쑥하고 있었다.
“뭐야, 저 아저씨 진짜 마법사 맞아?”
“마법사가 마도구 손질을 게을리해?”
“야, 로그메이지도 그딴 짓은 안 하잖아?”
이런 일행의 말을 모아 쿨람이 으르렁거리듯 외친다.
“마법사 브린, 정말 상아탑 마법사 맞아요? 사칭인가 아닌가 확인 좀 해 보고 싶은데? 우리가 이런 일에 민감한 헌터 길드 소속이라서 말이죠!”
말과 함께 쿨람은 바로 품속에서 작은 패를 꺼내 들기까지 했다.
곧바로 브린이 화들짝 놀란 시늉을 했다.
“어이, 어이! 그건 아니지! 이 먼 곳에 와서 굳이 내 신분 확인하려고 길드 통신을 신청하나?”
“길드 계정을 통해 장비를 받으려면 어쩔 수가 없잖아요? 자, 상아탑의 마법사라면 길드와 협약에 따라서…….”
“아, 진짜! 그럼, 길드에 내 얘기는 좀 빼 주겠나? 그냥 계정 상황 파악하려고 연락 넣었다고 해 줘!”
조금 비굴한 말투로 브린이 애걸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쿨람 일행 뿐 아니라 멀리서 보던 투란도 어이없었다.
‘와아, 홀시딘이 알면 몽둥이 들고 쫓아오겠는데?’
―그걸 아니까 저러는 것 아니냐? 성격 참 희한한 마법사로군.
드라고니아도 쓴웃음 짓듯이 중얼거렸다.
결국 쿨람 일행과 브린은 묘한 협상을 지속했다.
쿨람 일행은 원하는 도구를 브린이 열심히 수선해서 값을 낮춰 넘기기로 한 다음에야 길드로의 통신 요청을 관뒀다. 갑자기 바빠진 브린이 수선을 맞추고 도구 숫자까지 확보할 때까지 쿨람 일행이 할 일이 없기에 다시 루헬 쪽으로 합류하겠다고 떠났고, 거처에 홀로 남은 브린은 툴툴거리는 듯하다가 거처 구석의 안락의자에 털썩 앉아 버렸다.
그런 브린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갑자기 약점 잡혀서 부지런해졌다고 볼 수는 없는 것!
투란은 갸웃하다가 피식 웃었다.
‘게으른 마법사가 아니라 심심한 마법사였군.’
―굳이 저럴 필요가 있는가 싶다만.
‘음? 드라코눔에는 저런 마법사 없나 보네? 뭐, 몬스터 로드라면 가끔 만난다고 했어. 뭐 맡기려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고 빼려는 마법사 말이야. 여러 가지 상황이 있기는 한데, 가끔 심심해서 남들 일에 엮여 보려는 경우도 있다나 봐.’
―저 브린이란 마법사가 몬스터 헌터 일행 일에 끼려 한다고?
‘아마도…… 마석이라면, 진짜 마석이 나오는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잖아?’
―아? 그럴 수도 있기는 하군. 그래서 너도 볼일이 있잖아?
‘그래, 나도 볼일이…….’
슬슬 홀로 있는 브린을 향해, 그 거처를 향해 적당히 갈 길을 찾던 투란은 움찔하며 자신이 앉은 벽과 이어진 골목으로 눈길을 돌렸다.
딱히 관심 둘 필요가 없었던 저편의 소란이 다가오고 있었다.
로즈벨 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이 뭐라고 떠드는 듯했지만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그중 한 명이 골목을 달리며 투란이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다투는 듯했던 몇몇이 그 뒤를 쫓아오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투란으로서는 적당히 몸을 숨기고 지나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골목을 돌아서 모습을 드러낸 도망자가 두건이 젖혀지며 그 얼굴을, 눈동자를 드러냈을 때 투란은 몸을 숨기는 일을 잊고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늘이 내려앉았어도 반짝거리는 듯한 기묘한 녹색의 눈동자, 그 깊은 곳에서 선명하게 엿보이는 황당한 별빛…… 눈동자 속의 별빛이 그 얼굴과 몸, 팔다리 곳곳에서 반짝이는 모습은 대체 뭐란 말인가?
―왜 그러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불쑥 물었고, 투란은 흠칫하다가 바로 되물어야 했다.
‘너, 안 보여? 저 사람…… 이상한 빛이 반짝거리잖아?’
―빛? 저 인간 여성의 지닌 마도구는 아무런 빛도 내지 않는다만?
‘에? 마도구?’
―어라? 너한테 쓸 모양인데?
‘뭐? 아니, 왜?’
투란이 눈을 끔벅이면서 도망자, 드라고니가 짚은 대로 여성인 인간…… 아직 십 대를 벗어나지 못한 소녀가 고개를 치켜들고 자신을 보다가 놀라서 내미는 손에 쥐어진 작고 둥근 표식을 봐야 했다.
원판에 새겨진 표식은 낯선 마법의 각인이었고, 투란을 향해 곧바로 부드러운 바람처럼 밀려오지만 아주 단호하게 뒤로 날려 보내겠다는 압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뒤로 밀려날 상황에서 투란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맞섰다.
그냥 뒤로 벌러둥 몇 바퀴 뒹굴다가 지붕 반대편으로 떨어지면 될 일이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다칠 일도 없기는 했지만 갑작스럽게 마법에 휘둘려 튕겨 나간다는 상황에 반사적으로 대항한 셈이었다.
이런 투란의 손짓은 곧바로 소녀가 내민 원판 표식의 마법을 흩어 버렸다.
그리고 소녀가 놀라 투란을 보며 외친다.
“몬스터 로드?”
“어?”
투란이 움찔했다.
―고유 마력을 쓰기는 했다만…… 눈치가 빠른데?
드라고니아도 살짝 어리둥절한 듯이 말했다.
투란은 자신이 몬스터 로드란 것보다 소녀가 왜 자신에게 마법을 휘둘렀나부터 따져 보려고 했다. 하지만 투란이 입술을 달싹이기도 전에 소녀를 따라온 이들이 골목을 돌아 모습을 드러내면서 외치고 있었다.
“마도구를 꺼냈어!”
“완드, 완드를!”
소녀가 쥔 원판을 보자마자, 지붕 위에서 벽으로 다리를 늘어뜨린 투란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바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한마디를 보탠다.
―저거, 디스펠 완드인데?
‘응? 야, 그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