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7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69)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 마을 애송이…… 아니, 그냥 애들이잖아? 그런 애들이 무슨 디스펠 완드를…… 디스펠이 저장된 마법 완드 맞기는 하냐?’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디스펠에 대해서 들었던 장황하고 복잡했던 이야기, 그 결말은 늘 한결같았다. 마법을 해제하는 마법 디스펠은 쉽게 구현될 수 없고, 아무리 저급한 수준이라 하더라도 디스펠을 담고 있는 마도구라면 무척이나 희귀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투란의 심정을 공감하듯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그러게, 나도 착각인가 싶었다만 착각이 아냐. 보라고.
투란이 그대로 골목에 새로 등장한 녀석들을 보니 살짝 허둥지둥하고 있기는 하지만 소녀를 향해서, 정확하게 소녀가 쥔 원판 형태의 마도구를 향해서 뒤틀린 작은 막대를 내밀고 있었다.
소녀가 그 완드를 보고 움찔하니, 곧바로 으스대는 목소리가 완드를 든 녀석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다.
“으하핫! 봐라, 봐!”
“그래, 저 마법 동판은 이 완드 앞에서 꼼짝도 못 해!”
“잡았다, 잡았어!”
그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소녀의 눈길이 투란 쪽을 흘깃했다.
그 의미를 투란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한숨과 함께 투란이 소녀에게 손사래 치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저기, 나 쟤네랑 아는 사이 아닌데?”
소녀의 눈이 살짝 깜박였고, 그 눈길 속에 담긴 의혹을 투란은 금방 또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투란이 앉은 곳이 소녀가 지나는 길목이니 저 녀석들과 함께 골목으로 몰아넣고 앞뒤로 막아선 것 아니냐는 말 없는 물음!
―표식의 마법을 무효화했으니 널 오해할 만하지.
‘야, 내가 먼저 뭘 했냐? 아니잖아!’
드라고니아가 놀리듯 하는 말에 투란은 살짝 발끈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소녀의 의심이 매우 타당한 상황이란 것 또한 투란도 알고는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라면…….
“얼른 붙잡아!”
“동판 뺏어!”
라고 외치면서 달려드는 녀석들 앞으로 투란이 뛰어내렸다.
그러나 투란의 얼굴은 그 달려드는 녀석들 쪽이 아니라 소녀를 바라보는 채였고, 입에서 나오는 말 또한 소녀를 향한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난 여기 그냥 있었을 뿐이고…… 이 녀석들이랑은 모르는 사이라고.”
퍼억, 퍽!
말과 함께 투란의 두 손이 가볍게 좌우로 휘저어졌고 내달려 오던 소녀의 추격자 둘을 뒤로 나뒹굴게 했다.
“뭐, 뭐야!”
“저건 뭐야!”
“호위?”
“그냥 후려쳐!”
연이어 나오는 외침에 투란은 소녀의 눈가에 의아함과 경계심이 함께 맴도는 꼴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조금 전에 앞뒤 가리지 못하고 소녀에게 달려들다가 가로막는 투란을 제대로 보고 확인도 못 한 채 나뒹군 둘을 껑충거리면서 피해 달려드는 둘은 응원하는 소리를 따르듯이 작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응? 뭐야, 저거 앙트 경비병 몽둥이를 흉내 냈나?’
문득 모래 미궁에서 봤던 환영, 앙트의 고대 경비병들이 옆구리에 한 자루씩 적당히 끼고 있던 몽둥이의 축소형 같은 꼴을 보며 투란은 갸웃했다. 고작해야 2, 30센티 길이지만 단단한 가죽으로 돌돌 말아 놓은 꼴이 맞으면 제법 아플 듯하잖는가.
그래서 투란은 냉큼 몽둥이를 빼앗고, 원래 쥐었던 녀석들을 때려 봤다.
뻐억! 빠악!
맞은 둘은 비명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 뒤에 우르르 몰려 나타나던 패거리가 일제히 멈췄다.
‘도대체 몇 명이야?’
처음 둘, 그리도 다음 둘인 것은 이 골목이 셋이 달리기에는 조금 좁은 탓이었다.
한데 그 뒤로 우글거리며 보이는 꼴을 보니, 소녀를 쫓아 몰려오는 녀석들의 수가 거의…….
―열하나. 넷 쓰러뜨렸으니 일곱 남았다만, 너무 심하게 하지 마라. 네 말대로 애송이라 부르기도 애매한 어린 인간들인 모양이니까.
냉큼 수를 확인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투란의 입가에 살짝 뒤틀린 웃음을 짓게 했다.
그 웃음이 골목에 몰려나오려던 녀석들을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서게까지 했고, 거기에 투란의 목소리가 사납게 얹혀졌다.
“그 완드, 어디서 났지?”
순간, 저편에서 뭐라 입술도 꿈적이기 전에 드라고니아가 불쑥 한 소리 한다.
―응? 뭐야, 강도짓 하려고?
‘야! 출처를 묻는 거잖아, 너도 궁금해하는 출처!’
살짝 표정이 구겨진 채로, 뇌리에 울리는 소리 때문이 아니라 소녀를 쫓다가 완드를 겨누고 있는 너네 탓이다라는 시늉을 하며 투란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물론 완드를 겨눈 녀석들에게서 나온 소리는 대답이 아니었다.
“너, 넌 뭐야!”
“한패냐? 한패인가 봐!”
“저런 놈은 없었는데!”
“복장을 봐!”
“멀리서 온 놈 맞아!”
그리고 완드를 든 녀석이 용기를 낸 것처럼 한 걸음 나서면서 그 웅성거림에 보태듯이 말했다.
“꼬, 꼼짝 마! 이 막대기는 보통 막대기가 아냐! 마법의 완드라고! 꼼짝하…….”
스르릉.
말이 끝나기도 전에 투란은 몬스터 헌터 차림새였기에 배낭과 교차해 등에 멘 검부터 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말문이 막힌 녀석들을 향해서, 완드를 든 채로 바싹 굳어 버린 녀석의 눈동자를 똑바로 노려보면서 말한다.
“그게 뭔지는 알고 있지? 칼부림도 막을 수 있는가 한번 시험해 볼래?”
―호오? 정말 알고 있었군. 괜히 저걸 들고 마법 표식을 든 여자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니었어.
해쓱해지는 표정, 발발 떨기 시작하며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투란은 녀석이 완드를 치우거나 도망치는 대신에 오히려 고개를 치켜들고 가슴을 펴는 꼴을 보고 있었다. 디스펠 완드에 무슨 공격적이고 무서운 마법이라도 담겼다는 듯한 태도를 꾸몄고 그다음에 나오는 말도 그 속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는데…….
“부, 불에 타, 타 주, 죽고 싶지 않으면 카, 칼 내려놔!”
더듬는 말투가 그 노력을 배신하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그 모습이 대견하고 가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림을 보탠다.
―볼트라도 함께 새겨진 완드라면 그럴듯했을 텐데…….
투란은 너무 한심해서 더 두고볼 수 없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말로 이러쿵저러쿵하면 오히려 더 버티면서 헛소리가 나올 듯한 분위기였다.
사삭, 사각.
곧바로 투란의 칼끝이 처음에 달려 나왔다가 투란에게 맞고 쓰러진 둘을 훑었다.
웃옷이 갈라졌고 가슴과 배의 맨살이 훤히 드러났지만, 제대로 맞은 탓인가 둘은 드러누운 채로 꿈쩍할 낌새가 없었다. 차분히 깨울 생각 따위는 아예 없었기에 투란은 발길로 둘을 대충 걷어찼다.
깩깩거리는 비명과 함께 둘이 깨어나서 허우적거리는 틈새로 바로 투란이 다시 칼끝을 들이밀고 휘저었다.
순식간에 넘어진 둘의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반쯤 사라졌다.
둘이 꽥꽥거렸고 완드를 든 녀석은 하얗게 질린 채로 투란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닥을 허우적거리며 기어 칼을 피해 저리로 가는 녀석들이 완드 든 녀석을 지나쳤을 때 투란이 다시 담담하게 말한다.
“마도구로 협박했으니 칼 맞아도 억울하지 않겠지?”
완드를 든 녀석이 창백해진 채로 뭐라 대꾸할 틈도 없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투란이 냉큼 걸음을 내디뎠고 칼은 골목의 희미한 채광 속에서도 번쩍거리면서 허공을 찢는 듯한 소리를 울려 냈다.
찰싹.
완드가 허공에 둥실거리며 튀어 올랐다.
“끼아아악! 소온! 내 소오오온!”
비명이 길쭉하게 퍼졌다.
칼날이 손을 핥고 손목까지 더듬는 감각과 함께 꽉 쥐고 있던 완드가 허공에 뜬 광경이 손목째로 절단당했다는 착각을 일으킨 꼴이었다.
그 비명과 함께 완드 든 녀석을 앞세웠던 패거리가 한꺼번에 돌아섰고 꽥꽥거리는 괴성을 울리면서 우르르 몰려 사라졌다.
“내, 손, 내에에 소오오……?”
눈물 콧물을 자아내면서 잘려 나간 손목을 더듬으려던 녀석이 풀썩 주저앉다가 눈을 끔벅이면서 꺽꺽대며 말을 멈췄다. 피가 철철 날 줄 알았던 손목은 멀쩡했고 그 손목에 달린 손에서 손가락이 꿈지럭거리며 참 잘 움직이고 있잖은가.
철컥.
칼집이 칼날을 삼키는 소리가 명쾌하게 울렸다.
어느새 투란이 완드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면서, 주저앉은 녀석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관리도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어디 파묻혀 있다가 나온 건가? 그냥 겨누고 있기만 해도 마법에는 반응하는 모양이네? 상급이나 중급 마법에도 통하려나? 거참, 희한한 완드네.”
마도구를 감정하는 마법사의 중얼거림이었다.
그리고 잠깐 그리 떠들던 투란이 흘깃 다시 주저앉은 녀석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진짜로 손목 하나 잘라 줄까? 얼른 꺼져 줄래?”
후다닥거리면서 반쯤 기고 달리는 꼴로 손목이 멀쩡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 듯이 달아나 버렸다.
―으흠, 훌륭한 강도짓이로군. 마무리는 협박이고.
드라고니아가 헛웃음을 섞어 말했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투란은 쓰윽 몸을 돌리고 소녀 쪽을 바라봤다.
쫓기던 소녀는 갸웃하면서 투란을 마주 보며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덕분에 투란은 다시 소녀의 눈동자를 확인했다.
‘역시!’
어두운 녹색 바탕에서 별빛이 반짝이며 소녀의 몸 전체에 퍼져 무리 짓는 듯한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마치 소녀가 허공이라도 된 것처럼, 별빛이 그 안에서 하늘의 성운(星雲)이나 성좌(星座)를 이루듯이 새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하나…….
―투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냐?
드라고니아는 전혀 감지할 수 없는 듯 묻고 있었다.
‘뭐? 야, 내가 그대로 전하는데도…….’
감추지 않고 함께 생각 좀 해 보자고 감각을 공유했음에도 알 수 없어 하니 투란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더 이야기할 틈은 없었다.
무엇보다 소녀가 투란의 기묘한 눈길에 살짝 경계심을 품은 듯했고, 소녀를 쫓던 애송이 패거리가 달아난 방향에서 새로운 소란이 일어나며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소란 속에서는 선명한 외침도 끼어 있었다.
“이놈들! 라카샤를 어디로 납치했느냐! 라카샤! 라카샤! 어디 있느냐!”
거기에 소녀가 흠칫하는 미묘한 몸짓을 보였다.
투란이 가만히 소녀에게 묻는다.
“라카샤?”
멈칫하다가 소녀가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소녀의 이름을 확인한 투란은 살피던 완드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다시 한번 소녀를 살펴봤다. 눈동자만 보면 기괴한 별빛이 자꾸 보이는데, 머리카락이나 다른 곳을 보면 그런 현상이 전혀 없었다.
‘왜지?’
드라고니아가 공유조차 못 하는 현상이기에 투란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카락 색이 복합적이라서 헷갈리는 것은 아니냐?
투란이 느낀다는 착시에 대해서 그냥 생각을 잘못한 착각이 아니냐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어?’
그제서야 투란은 문득 소녀의 머리카락이 단색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다.
금색과 갈색, 붉은색…… 다채로운 색상이 얹힌 채로 그늘 속에서도 묘한 반사광을 머금는 머리카락이라니!
무엇보다 이 소녀 라카샤를 보게 되면 가장 먼저 특이하게 여길 부분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그 눈동자 속의 별빛이 온몸으로 성운, 성좌를 이루며 퍼져 나가는 괴기한 광경에 마음을 뺏긴 탓에 뒤늦게 알아차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 소녀는 누구…… 무엇인가?
갸웃하다가 투란은 묻는 말을 꺼내려 입을 열었다.
“여기 사람이 아닌…….”
“그 완드! 네 놈이구나!”
우렁찬 호통과 함께 나타난 이가 투란의 말을 싹둑 잘라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투란의 뇌리에 드라고니아의 말이 푹푹 박혀든다.
―투란, 마법 검이다. 장갑이랑 한 세트야. 마법은…… 파이어 엣지려나? 스택으로 봐서는 한두 가지 더 있을 것 같다만.
‘불칼날이라고?’
맨 몸으로 받기에는 위험한 것이 칼날인데, 거기에 불길이 더해져 있다는 말에 투란은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연 칼날에 불꽃이 일렁이며 물결치듯이 번져 나가는 곡도(曲刀)가 험상궂은 표정과 함께 아주 사납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투란은 손에 든 완드로 대충 막으려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완드 들고 라카샤를 쫓던 놈…….
그 추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투란이 딱 그런 놈이라 여길 만하잖나!
화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