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
스륵.
투란은 손아귀 속에서 톱니 고리를 느꼈고, 바로 이를 옮겨 꿈틀거리는 벌레가 본격적으로 가득히 보이기 시작하는 잔나비의 심장을 향해 떨궜다.
핏빛의 톱니를 지닌 고리가 잔나비의 심장 위에 자리 잡고 돌기 시작했고, 작고 가는 새로운 톱니가 새로운 고리를 만들면서 심장을 물들이듯이 번져 갔다.
벌레가 꿈틀거리면서 느닷없는 침입자를 만났다는 기척을 보이다가, 굳어졌다.
투명한 색채가 곧장 거대한 심장을 덮어 가기 시작했다. 잔나비의 거대한 몸 곳곳에서 꿈틀대던 힘줄, 핏줄이 굳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핏빛의 톱니 고리는 보다 맹렬하게 돌며 속도를 올렸다.
잠시 후, 투란은 잔나비 몸의 반 이상이 투명하게 변해 으스러지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없이 생성되며 번져 갔던 톱니 고리는 이제 핏빛의 맥동을 보이면서, 하나로 뭉쳐 들었다.
조용히 바라보다가 핏빛 고리가 오직 하나만 남아 잔나비의 반쯤 투명한 심장 위에서 맴도는 것을 보고, 투란은 다시 손을 내밀어 움켜쥐었다.
그런 다음, 숨을 고르고 손바닥 위의 핏빛 고리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으로 되뇌었다.
‘삼킨다, 꺼내는 게 아니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꿀꺽 삼키기만 하는 거야. 지금은 꺼내지 않고 삼키기만 한다. 삼키기! 집중!’
곧 핏빛 고리가 투란의 가슴에 닿으며, 검은 톱니바퀴에 겹쳐졌다.
* * *
—투란, 대체 왜!
드라고니아가 별빛의 무리를 흔들 정도로 광폭한 외침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오, 너무 시끄럽잖아!’
투란의 마음이 까마득하니 멀리 보이는 별 무리를 향해 웅얼거리듯이 대꾸했다.
그사이에 천칭의 정상, 그 위에 겹쳐진 채로 잠시 열렸던 톱니바퀴의 겹쳐진 뚜껑이 단단하게 조여들었다. 이미 그 중심을 관통해 내려온 새로운 몬스터, 임모그 웜의 형상은 천칭의 정상 받침대에서 꿈틀거리는 중이었다.
‘흠…… 심장은 없는 건가?’
투란은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잔나비의 강화된 심장이 함께 삼켜졌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어긋났다.
임모그 웜에 오염되기는 했어도, 그 심장은 그저 마수의 심장일 뿐이지 괴물의 심장은 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런 투란의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들은 것처럼, 드라고니아가 한탄하듯 쏟아 내는 소리가 쉬지 않으려는 물결처럼 몰려왔다.
—뭔 생각을 하나 했더니…… 임모그 웜으로 네 심장을 강화하려던 거냐? 대체 왜? 강화해 봐야 샤머닉 트롤이나 지금 운영하는 악마의 심장 정도 수준에 겨우 미칠 듯 말 듯 할 거라고. 왜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엥?’
투란의 흠칫 놀라는 낌새가 풍경 속으로 무럭무럭 배어 나왔다.
드라고니아가 그 낌새에 다시 더 깊은 한탄을 머금은 말을 토해 낸다.
—마수가 된 잔나비의 심장을 보고 네 심장이 그 정도로 강화될 거라 여긴 거냐? 강력해진 잔나비의 심장도 지금 두 개의 심장을 지닌 너의 상태에는 미치지 못할 텐데? 그랑츄의 괴력도 감당 못해서 아주 쉽게 쓰러진 놈을 왜 삼킨 건데?”
‘음…… 뭐, 시험 좀 해 봐야지.’
돌연 투란이 뭔가 자신을 얻은 듯한 반응을 했다.
드라고니아의 의문이 별 무리 속에서 일렁이듯, 별빛의 색채가 변하기 시작했다.
* * *
투란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내려다봤다.
붉은 늑대 웨어울프의 팔, ‘이상한 심장’이라 부르던 샤머닉 트롤의 팔이 각각의 뚜렷한 형태를 지닌 채로 손톱까지 선명하게 형성되어 있다.
그 생김새를 바라보며 투란은 자신의 가슴속으로 관심을 옮겼다.
악마의 심장이 지닌 감각이 살갗 안쪽, 뼈와 살, 핏줄과 힘줄로 이뤄진 몸속의 풍경을 투란에게 ‘보는’ 것처럼 알려 줬다. 가슴과 배, 허리를 타고 내려가는 다리 쪽은 명백하게 그랑츄의 형상이었고, 노련한 느낌이 물씬 배어 있었다.
한 몸에 어우러진 제각각의 몬스터는 모두 투란의 의지에 호응하며 적절하게 각자의 역할에 몰입하고 충실하게 움직였다.
그래서 투란은 바로 다음으로 넘어갔다.
‘자, 간다!’
먼저 발가락이 시커멓게 변했고, 잿빛 바위의 살갗이 짙은 검은색으로 물들며 일렁이는 시커먼 광채를 뿜어내듯이 변해 갔다. 곧 그랑츄의 발, 종아리, 허리 위까지 순식간에 오러 몽거의 형상으로 변하며, 투란은 엉덩방아를 찧듯이 주저앉고 말았다.
더 커진 몸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아 갓난아기가 아장거리려다가 한 걸음도 못 뗀 것처럼 철퍼덕 주저앉은 꼴이었다. 그리고 어깨와 가슴, 팔뚝으로 오러 몽거의 검은 색조가 번져 가니, 곧 투란은 키린을 만날 때까지 꼼짝도 못하고 흘러왔던 꼴과 비슷하게 되어 버렸다.
그 모습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심장이 자리 잡고 있을 가슴 언저리가 잿빛바위 그랑츄의 오래된 살갗이 꿈틀거리면서 오롯하게 반점처럼 몸의 앞뒤를 채운 점이었다.
그 살갗 깊은 곳에서는 악마의 심장이 또다시 힘든 짓을 해야 하느냐고 항의하듯이 느릿하게 샤머닉 트롤의 심장과 연계하며 맥동하기는 했지만, 오러 몽거의 몸은 꿈쩍도 않았다.
그저 악마의 심장이 억지로 자리 잡은 온몸에서 넝쿨의 가닥이 핏줄을 따라 열심히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도대체 뭘 하려고!
드라고니아의 호통 같은 외침이 전해졌다.
하지만 투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좋아, 여기서…….’
순간, 심장 근처의 핏줄 한 가닥에 움직였다.
임모그 웜, 방금 삼킨 녀석의 지렁이 같은 형상이 곧 핏줄 위로 드리워지며 선명하게 형상을 갖췄다.
뚜득.
뭔가 격하게 작은 핏줄이 꼬이는 느낌이 피어났고, 투란은 임모그 웜의 형상을 향해 염원했다.
‘강하게! 내 심장 속으로 흘러와, 강하게!’
핏줄에 드리워진 형상이 곧장 분화되며 작은 지렁이 가닥이 되어 핏줄 속으로 기어들어 피의 흐름을 타고 몸을 돌면서 그 세력을 늘렸고, 핏줄 속을 꽉꽉 채우듯이 꿈틀거리면서 우글우글 몰려들어 두 개의 심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악마의 심장이 맥동하며 기묘하다는 듯이 임모그 웜을 끼워 넣었고, 샤머닉 트롤의 심장의 핏줄 속으로는 임모그 웜이 기세 좋게 치고 들었다.
쿠웅…….
투란의 목이 살짝 꺾이며 몸이 움찔했다.
아주 잠깐 온몸을 관통한 힘이 악마의 심장과 그 옆에 뒤엉킨 채로 자리한 샤머닉 트롤의 심장에서 뿜어진 듯했다.
실로 아주 잠깐…….
‘에? 아니, 얘들 어디 갔어!’
기운차게 흐르던 임모그 웜이 사라졌다.
두 개의 심장은 독하게, 점차 맹렬하게 예전의 기세를 되찾으며 폭발적인 맥동을 시작했다. 마치 좀 전의 강한 한 번의 맥동이 시작 신호라도 되었다는 듯했다.
한데 그 속에 임모그 웜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히 와글거리며 몰려들었는데!
투란은 그 감각을 북돋웠고, 악마의 심장을 통해 기억해 냈고…… 이해했다.
‘노, 녹아 없어져?’
임모그 웜은 악마의 심장 속에서 진짜로 폭발하며 아주 잠깐 강한 맥동을 일으키고는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 잔해가 악마의 심장에는 작은 양분이 되기는 했지만, 그걸로 끝이다!
샤머닉 트롤, ‘이상한 심장’ 속에서 보인 상태는 더 어이가 없었다.
폭발하려 하는 순간, ‘이상한 심장’—아직 투란에게는 조금 애매한 느낌의 이름인 샤머닉 트롤의 심장—이 임모그 웜을 들이켜 버렸다. 무슨, 대롱으로 물을 마시듯이 쭈욱 빨아 삼키고서는 ‘나 원래 빠르고 강해!’라는 듯이 쿵쾅거리며 맥동한 것이다.
그때, 드라고니아의 끔찍해하는 기분과 호통, 외침이 투란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야, 이 멍텅구리야! 말을 들어! 임모그 웜은 너의 두 심장에는 아무 소용 없다고! 그 두 심장은 임모그 웜의 강화 능력 따위는 이미 초월해 있으니까!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냐!
‘어머나?’
투란은…… 민망했다.
* * *
‘헐! 이게 뭐래?’
다시 드라고니아의 형상을 엿보려고, 한편으로는 하다 만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문장 속 풍경을 보려던 투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괴상하고 굉장한 광경을 먼저 봐야 했다.
금빛의 회오리, 거대한 알을 그려 내는 듯한 찬란한 햇빛의 회오리가 ‘천칭’의 정상에 떡하니 버티고 있잖은가!
—이게 뭐냐니! 뭘 처음 보는 시늉을 하는 거냐!
버럭, 또다시 투란의 정신을 어떻게든 두들겨 패겠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외침이 터져 울렸다.
‘아니,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어쩐지 언젠가 봤어야 했을 듯한 느낌이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외침에 딱히 반발하지 못한 채로 갸우뚱거리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오러 몽거를 형성했잖아! 문장의 심상 속에 그 징조가 나타난 거고! 이전엔 왜 못 봤는데?
‘어? 징조? 이전? 아, 그때는…….’
투란은 오러 몽거를 삼키기 전후로 얼마 동안 붉은 늑대—웨어울프—라든가 그랑츄와 엮이면서 자신이 문장 속의 풍경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손발의 변화라든가, 거기에 개입되는 자신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보냐! 애써 성취한 심상을 왜 안 써먹는데?
드라고니아가 버럭거리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순간, 투란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써먹어? 이 풍경을?’
—아, 정말 이 멍청이가……!
이제는 기운도 없다는 듯, 한탄하는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투란은 본격적으로 의문을 던진다.
‘어떻게 써먹어?’
—키린이 이야기했잖아! 상급 몬스터 로드라면 이런 문장의 심상을 품게 된다고! 각자 다르지만 나름대로의 심상을 형성하고, 그걸 통해서 자신이 삼킨 몬스터를 보다 섬세하게 다룰 수 있다고!
‘어? 그, 그랬나?’
투란은 아리송하고 애매하기만 했다.
키린이 그렇게 말했던가?
뭔가 비슷한 소리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에잇! 닥쳐! 어서 봐! 그 꼴을 하고 바위 노릇 할 거 아니라면 오러 몽거에 집중해! 생각이 없다면 몸으로 때우면서 깨닫기라도 하라고!
으르렁거리는 외침은 투란을 꾸짖는 말이었다.
‘쳇…… 좀 좋게 말하면 될걸.’
투덜거림을 흩뿌리면서도, 투란은 금빛 찬란한 회오리 쪽으로 관심을 쏟아붓고 있었다. 어딘가 황홀한 듯하면서도 전율스럽고, 강해 보이는 느낌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가만히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서, 투란의 의문이 조금 더 깊어졌다.
겹쳐진 톱니바퀴의 마개, 저 뚜껑까지 휘감는 거대한 회오리, 그 깊은 곳에 원래 천칭의 정상 받침대 아래 놓인 화려한 알도 그대로 있었다. 그 알 속에는 분명히 악마의 심장과 ‘이상한 심장’, 붉은 늑대의 팔, 그랑츄의 몸통과 발이 담겨 있기도 했다. 거대한 회오리가 그려 내는 금빛의 알 형상과 무관하다는 듯했다.
‘아니, 관계가 없을 리가!’
투란은 정신을 바싹 긴장시켰다.
금빛을 관통하고,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
그리하여 보이기 시작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오러 몽거의 형상, 그가 삼켰던 오러 몽거는 가지를 쳐 나간 저울접시 위에 없었다. 그 가지와 저울접시가 정상으로 옮겨져, 오러 몽거가 뿜어내는 이상한 힘의 흐름에 따라 금빛이 일렁이며 치솟고 있었다.
작고 화려한 형상의 알마저 휘감은 금빛은 그 안팎으로 회오리의 흐름을 따라 들락이고 있기도 했다. 그 흐름을 타고 악마의 심장이 덩굴줄기를 줄줄 흘리고, 샤머닉 트롤의 핏줄도 덩달아 꿈틀거리며 흘러넘치는 듯한 광경!
하지만 팔다리의 형상은 금빛에 휘감긴 채로 그저 두꺼운 껍질이 너무 무거워서 꼼짝도 못하는 듯한 모습, 그것이 원래의 화려한 알 속 풍경이었다.
이 풍경이 마음에 선명하게 느껴지면서, 투란은 퍼뜩 깨닫고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저렇게 휘말린 채였구나!’
작은 알, 저 화려한 ‘천칭’의 알 속에 담긴 몬스터의 형상은 그의 마음대로였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기지 못한 몬스터는 형성할 수는 있어도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오러 몽거가 담기지 않은 까닭은…….
‘심장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니까?’
답이 나왔다.
몬스터 엠블럼, ‘천칭의 문장’은 가늠하고 있었다.
오러 몽거의 형상을 끌어낸다 하더라도, 투란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고!
저 금빛의 회오리를 알 속에 담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알의 형상을 그려 내고는 있지만, 그래서 일단 형성은 하고 있지만 움직일 수는 없는 상태를 제대로 보여 준 셈이었다.
—이제 좀 알겠냐? 그래, 어쩔 거야? 키린도 없는데 이 사고를 쳐 놓았잖아. 어쩔 거냐고!
드라고니아가 길게 한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태연하기 이를 데 없다.
‘어쩌긴, 이 풍경을 이용하라며?’
히죽 웃는 듯한 낌새가 배어 나오는 생각이 ‘천칭’을 울리며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