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71)
Chapter 195. ‘그림자 아래’에서 온 의뢰
살짝 쥔 투란의 손가락 사이에서 여린 금빛이 고리를 이루고 맴돌았다.
로열클래스의 마법이 즉각 비컨의 신호를 포착했고, 투란은 금세 아득하게 펼쳐져 가는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브린의 뚱뚱한 몸매도, 너무 허름해서 과연 상아탑의 중급 마도사가 머무는 곳인가 의심스러웠던 브린의 거처도 투란의 눈앞에서 아득하게 밀려나며 빛과 안개, 기묘한 나무가 영롱한 잎사귀와 가지, 열매를 반짝이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와?’
―이건……!
투란만큼 드라고니아도 놀란 듯했다.
그리고 그 풍경을 울리며 터져 나온 외침은 더 놀란 감정을 듬뿍 담고 있었다.
“투란? 투란! 투란이지? 이 썩을 놈!”
그 목소리의 주인을 투란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데 어째 격하게 이어질 듯한 말이 저절로 예상이 되는 사나운 말투라니?
“어, 홀시딘. 오랜만인데 욕부터 하는 거는 좀…….”
“욕 처먹을 짓을 해 놓고 삼 년째 연락 없던 놈이 뭐가 억울해!”
금색의 형상이 이뤄지다가 자연스럽게 본연의 색채를 머금은 형상으로 나타나는 홀시딘에게서 으르렁거리며 돌아오는 말은 투란이 어색한 표정과 함께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살짝 반성하는 시늉을 해도 홀시딘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으르렁거림을 포효로 이어가며 외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 대뜸 대마녀를 보내 놓고 왜 연락도 못 하게 숨어 버렸냐고! 도대체 왜! 날 괴롭히고 싶었어? 내가 너무 편안해서 골치 아픈 일이라도 필요할 것 같았냐? 엉, 도대체 왜애애애!”
“자, 잠깐! 홀시딘, 잠깐만요! 대마녀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무슨 대마녀를 보내요? 내가 알드바인에 가라고 한 사람은…… 키유나가 대마녀였다고요?”
허둥지둥 손을 휘저으면서 억울하다 말하려던 투란은 문득 뇌리에 드라고니아가 속삭인 말, ‘아, 대마녀라고 할 만한데?’라는 것을 듣고 퍼뜩 홀시딘의 외침에 담긴 의미를 되짚어 묻고 말았다.
“이 자식이! 모르는 척하는 것 봐라? 담요에 꿰인 금전을 담요째로 들고 와서 로열클래스 신청하게 만들어 놓고 뭘 시치미를 떼고 있어!”
홀시딘이 한층 더 울화가 터진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러 허공에 둥실둥실 떠다니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으로 으르렁거렸다.
오랜만……이기는 하지만 너무 익숙한 그 모습에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띤 채로 달래는 말투를 써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치미가 아니라, 그냥 이상한 마법을 좀 쓴다 싶었고 굉장히 어려운 일을 겪어서 갈 곳도 없었을 뿐이라고요! 그리고…… 시알라한테 보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나도 겨우 연락이 될 수 있자마자 연락한 건데, 그렇게 성질내지 말고 좀 침착하게 말해 줘요, 상아탑의 대마법사님이잖아요!”
손짓발짓하는 투란의 모습, 그 말에 홀시딘이 잠깐 눈을 가늘게 떴다가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손을 저어 보더니 묻는다.
“여긴 어디야?”
투란은 자신의 주변 풍경이 다시 브린의 거처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득한 풍경 속에 브린의 거처를 뚝 잘라 붙인 듯한 묘한 꼴이라 괴상하기는 했지만 지금 투란이 있는 곳을 확실하게 풍경 속에 비쳐 내는 광경이었다.
후우, 살짝 진정된 분위기에 한숨을 내쉬면서 투란이 짧게 대답한다.
“로즈벨, 검은 바다 앞의…… 조그만 마을인데, 주변에 옛날 폐허가…….”
“로젠베람의 유적지?”
“아마 그럴걸요?”
“그렇군, 여기가 대사막의 북쪽 지역이었지. 그럼, 너 설마 다시 사막에 빠졌다가 이제서야 겨우 기어 나온 거냐?”
몇 마디 오가자마자 투란의 상태를 짐작해 내는 홀시딘이었다.
한결 어색한 웃음을 띤 채로 투란은 움찔움찔하다가 말머리를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이 풍경은 뭐예요? 왜 나무가 가득한 거죠? 전보다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정령의 궁전에 와 있으니까.”
홀시딘은 가늘게 뜬 눈으로 투란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대꾸했다.
투란이 어리둥절해하니, 홀시딘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보탠다.
“케이라에게 정령의 궁전을 보여 주는 중이었어. 이젠 어느 정도 자기방어 능력을 갖추고 분별력도 생기는 중이니까.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궁전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잖아. 게다가…… 네가 보낸 대마녀, 키유나 덕분에 케이라도 이젠 시크릿 키퍼야. 그냥 시크릿 키퍼도 아니고, 나랑 연계해서 너에 대해 말은 못 해도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능한 보조 역할도 할 수 있는 시크릿 키퍼지. 그러니까 정령의 궁전에 대해서도 알아 둘 필요가 생겨 버린 거지.”
투란은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홀시딘이 하는 이야기는 단번에 결정된 일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이 년을 넘어 삼 년째에 이르러서야 도달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런 멍한 표정을 본 홀시딘은 바로 낯을 구겼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는 표정인데?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이 물음이 문득 투란에게 깨닫게 해 줬다.
투란 자신이 지금 마법사와 대화하는 중이라는 것.
늘 자신과 함께해 온 드라고니아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투란을 바라보고 추측하며, 순식간에 해야 할 질문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꽤 알뜰하게 요점을 짚는 중!
“어, 몬스터를, 음, 삼킨 몬스터를 진정시키느라 다른 일에 마음 돌릴 수가 없었어요. 꽤 힘들었거든요.”
“그러냐……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캐묻지 않고 홀시딘은 간단하게 되묻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다시 한번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여야 했다.
당장 뭘 하려고 상아탑의 비컨을 찾아왔는가, 왜 로열클래스의 마법을 이용해서 홀시딘을 불러내는가는 명확했다. 알드바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근거가 될 거처를 향해 돌아가려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홀시딘이 묻는 말은 투란에게 그 이상을 생각하게 했다.
사납고 강력한 몬스터를 잡았고, 그 본능을 길들여 안정화된 다음에 홀시딘을 불러낸 몬스터 로드인 투란에게 알드바인으로 되돌아온 다음에는 뭘 할 것이냐고…… 그다음에 대해서 묻는 것처럼 느껴진 셈이었다.
―계획을 잔뜩 세워 뒀잖아? 뭘 꺼리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말투로 말했다.
‘어? 아, 꺼리는 거는 아니고…….’
숨을 고른 다음에 투란은 가만히 브린의 거처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홀시딘에게 대답을 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돌아가야죠. 음, 그리고 또 여행을 해야겠죠. 가자마자 당장 떠나는 거는 아니고…… 이것저것 정리 좀 하고 말이에요. 알아볼 것도 많이 있고…… 그러려고 하다 보니 여기서 돌아가는 길이 좀 멀더라고요. 단숨에 돌아갈 수 없다 하다 보니, 상아탑의 마법 신호가 느껴졌고…… 이렇게 이상하고 허름한 곳이라 연락이 되려나 어쩌려나 일단 연락해 본 거예요.”
구체적인 부분은 살짝살짝 건너뛴 이야기였다.
근거가 될 거처를 몇 달씩 비웠다가 돌아갔다 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투란 자신이 자리를 비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시켜 둔다는 것, 키린이 알려 준 방법은 그랬다. 홀시딘이 조금 전에 으르렁거린 바를 돌이켜 보면 그럭저럭 그 방법이 통하는 듯했지만 역시 투란 자신이 직접 알드바인을 돌아다니면서 오랜만에 얼굴 비칠 필요는 있어 보였다.
한편으로는 하클 영감에게 맡긴 일이라든가, 켈 데렉과 거래하던 일도 정리해 둘 부분이 있잖은가.
그리고 확실하게 근거로서의 거처가 확보된 다음이라면, 투란은 진정한 귀환을 해 봐야 할 때였다. 자라온 마을로, 자신이 내동댕이쳐진 상황을 되짚고 그 빚을 갚기 위해.
막연하지만 투란은 가슴 깊이, 마음에 그 다짐과 각오를 새기면서 브린의 거처를 둘러보던 눈길을 거둬 다시 홀시딘을 보며 맺는 말을 한다.
“바람의 길, 그 마법으로 여기서 바로 알드바인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요?”
“잠깐…….”
홀시딘이 갸웃하면서 브린의 거처를, 그 거처 곳곳을 조금 더 둥실둥실 떠다니며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란에게 토해 냈던 으르렁거림과는 조금 색채가 다른 으르렁거림을 토해 낸다.
“이 자식, 뭐 하는 놈이야?”
그 말이 바로 브린을 향한 것이라 알면서도 왠지 살짝 뜨끔한 기분이 되는 투란이었다. 그래서 냉큼 나름대로의 대꾸를 하게 되었다.
“마법사……잖아요? 디스펠 완드도 이제 검사해 줄 건데…….”
“뭐? 뭔 완드?”
엉겁결에 한 말에 홀시딘이 멈칫하다가 홱 돌아보면서 짧게 되묻고 있었다.
투란은 잠시 브린이 검사 도구를 찾는다면서 한편에 놔둔 완드를 가리키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마을에 와서 만난 이상한 애들이랑 다투다가 뺏…… 어흠! 얻은 건데, 마도구의 마법을 무효화하더라고요. 폐허 속에서 나온 것 같은데 좀 쪼개져서 더 쓸 수 있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기다려.”
홀시딘은 다시 간결하게 말했다.
더 늘어지려는 투란의 설명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홀시딘은 여전히 뭔가 뒤지려는 자세로 푹 늘어진 꼴인 브린을 향해 빠른 속삭임과 함께 손짓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투란은 ‘어라?’ 하고 살짝 갸웃했다.
‘뭐야, 저 아저씨 언제부터 늘어져 있었지?’
―네가 로열클래스의 마법으로 비컨과 접속한 순간부터. 비밀을 지키는 홀시딘의 마법이 영향을 발휘하면서 바로 저 꼴이었다만?
뭘 모르는 척하느냐는 듯, 드라고니아가 핀잔했다.
약간 민망했지만 투란은 소리 없이 바로 대꾸할 수 있었다.
‘야, 풍경이 이 꼴이 된 다음부터 브린의 모습이 제대로 안 보였잖아. 그러니 보고 알 리가 없었지!’
―시각만 갖춘 것처럼 말하는군? 풀썩 엎어지는 소리까지 들렸고, 서랍에 얼굴 박는 소란도 분명히 듣고 느낄 수 있었잖아?
‘어? 나무 잎사귀가 반짝반짝하는데 그런 일에 신경 쓰겠냐?’
쀼루퉁하니 대꾸하면서 투란은 홀시딘을 집중해서 주의 깊게 보는 시늉을 했다.
홀시딘은 브린에게 뭔가 마법을 거는 듯하더니, 정작 자신의 모습을 한층 더 또렷해진 채로 브린의 거처에 자리 잡는 형태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마치 환영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피와 살을 지닌 몸으로 여기 온 듯한…….
“브린 카윌, 일어나!”
팡팡, 뚱보 마법사의 등짝을 두드리며 깨우는 태도가 정말 여기 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와 동시에 투란은 브린의 거처에서 아늑한 풍경이 물러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흡사 벽과 벽 사이로 풍경이 숨어 버린 것처럼, 온전하게 브린의 거처만 시야에 남겨 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고 나니 어느새 투란은 홀시딘과 함께 나란히 서서 엎어져 자는 브린을 깨우는 꼴을 보는 셈이었다. 자기 거처에서 손님을 맞다가 갑자기 처박고 자는 몰골로 등짝 맞고 일어나는 마법사라니…… 꽤 희한한 구경을 하는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부스럭거리면서 일어난 브린은 자신의 그런 상황을 아주 냉정하게 되돌아보고 이상을 알아차린 듯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어째서 상급 마도사가 여기에 계신 거죠? 왜 내가 엎어져서, 코피까지 나잖아! 아, 젠장!”
침착하게 말을 하다가 콧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리는 코피를 손으로 문질러 그 붉은 색채를 확인하면서 브린이 황당해하며 화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말의 앞부분은 제법 마법사다웠지만 뒷부분은 왠지 성난 뚱보 아저씨일 뿐인지라 투란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홀시딘은 그런 브린을 향해 거침없이 노여움을 담은 말을 토해 낼 뿐이었다.
“코피 나는 것이 중요하냐? 상아탑의 마법사가 상아탑의 지부를 이따위로 해 놓고 코피 나서 억울해? 좀 더 억울하게 해 주랴?”
“그…… 억울하다고는 안 했습니다만? 그냥 어떻게 된 일인가 제대로 파악을 못 해서 당황한 것뿐이잖습니까!”
움찔하면서도 브린은 항변하고 있었다.
홀시딘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 항변을 바로 짓이기듯 말한다.
“이 꼴을 해 놨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비컨을 제대로 운영만 했어도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결코 당황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무엇보다, 브린 카윌! 대체 오 년이면 교체되어야 할 곳에서 세 번이나 교체 연기를 하며 처박혀 있는 까닭이 뭐냐? 처음 한 번은 마음 편한 곳을 찾는 너에 대한 배려로 네 선임이 연기 신청을 한 모양이다만, 나머지 두 번은 마음 편해서 중급이 된 다음에 권리로서 신청했더군? 그래 놓고 비컨을 구석에 처박아 놓고 제대로 관리도 안 해? 게다가 마도구 감정을 하러 찾아온 사람에게 등 돌리고 감정 도구를 찾아? 그래 놓고 코피 났다고 투덜거려? 대체 억울할 구석이 어디 있는 거냐!”
콸콸 터져 나오는 잔소리와 꾸짖음은 브린의 둥글고 큰 몸을 위축시키면서 주춤주춤 물러서게 할 지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는 투란은 새삼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상아탑의 상급…… 아니, 대마법사니까 최상급 마도사인 거지? 아래 등급을 팍팍 찍어 누르시는 위엄이 있으셔!’
―브린이 좀 지나치게 독특한 성격인 탓 같다만.
드라고니아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