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72)
브린도 그냥 당할 수는 없다는 듯,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짓는 노력을 티 나게 드러내면서 다시 한번 강력하게 항변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 스쳐 지나가는 분들이 남긴 기록을 선입견 삼아 판단하시면 왜곡된 편견에 의해 상황 파악을 잘못하시는 겁니다! 게다가! 저에 대한 기록만 보지 말고 이곳에 대한 기록도 함께 보셔야죠! 말이 좋아 옛 왕국의 유적인 거지, 그냥 폐허 위에 자리 잡은 마을, 마을이라고 하는 것도 과장이라 욕먹을 정도로 빈약한 곳이란 말입니다! 향상심을 지닌 상아탑의 마법사라면 이런 곳에 오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곳이고, 저처럼 그런 향상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남는 곳이 바로 여기! 로즈벨입니다, 로젠베람이란 이름도 여기 사는 사람들은 낯설어하고 말이죠!”
투란은 감탄했다.
‘우와, 만만치 않아!’
드라고니아도 동감했다.
―허, 기다렸다는 듯이 나오는 꼴이 아예 연습까지 한 티가 나는데?
홀시딘 역시 브린의 반발에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짓기는 했다.
“존중과 배려를 마음에 품은 녀석의 거처가 이 꼴이냐? 이 구석지고 한적한 곳에서 상아탑을 평가하게 만들 유일한 기준이 될 곳을 이따위로 해 놨어?”
신랄하게 찌르는 말이 브린을 난도질하는 듯했다.
과연 브린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얼버무리지 못하는 듯.
“그, 그건…… 마을 분위기에 녹아들다 보니…… 이곳 사람들이 정결한 상아탑의 분위기를 너무 낯설어해서 거기 맞추다 보니…… 어, 크흠! 저도 좀 물들어서 버릇이 돼 버린 것 같군요.”
살살 물러서면서 적당히 반성하는 시늉이었다.
그리고 상아탑의 두 마법사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광경은 투란에게 매우 긴장감 넘치는 상황으로 보였다. 마치 저러다가 칼이라도 꺼내 푹푹 서로를 향해 찔러 갈 듯한 묘한 분위기가 진짜인 듯한!
그대로 싸우게 둘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은 투란의 뇌리를 아주 살짝 스쳐만 갔다. 투란에게는 당장 원하는 일이 있었으니, 최소한 그 일이 정리된 다음에 상아탑의 대마법사랑 중급 마도사가 서로 찔러 죽이든 말든 해야 하잖겠는가!
“음, 저기…… 그 완드, 망가졌나요? 몰라요? 바람의 길은 쓸 수 있는 거예요?”
먼저 브린을 향해서, 그다음에는 홀시딘을 향해서 눈길을 한 번씩 보내 주면서 투란이 던지는 말이었다.
홀시딘이 흘깃하니 브린이 움찔하다가 서랍 주변에서 완드를 집어 올리면서 어정쩡하니 먼저 대답한다.
“각인이 일그러져서 시험해 봐야 알겠지만, 이 주변 폐허에서 발견된 유물이라면 구겨지거나 일그러진 정도로는 끄덕 없을 거라고 짐작하네. 이런 목재(木材)를 기반으로 한 마도구, 이 근방에서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 그렇거든.”
홀시딘은 갸웃하면서 그 완드를 바라봤고, 투란은 시침 떼고 ‘우와!’ 하는 감탄을 무성의하게 흘리고 나서 무지몽매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그러면 그걸로 마법을 모두 싹 없앨 수 있는 거예요? 불붙은 칼날은 싹 지우던데, 번개나 서리의 마법도 그 완드를 대면 바로 지워져요?”
브린은 뭐라 대답해야 이 무지몽매한 녀석에게 납득이 가는 설명이 될 것인가 잠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투란을 곁에서 바라보는 홀시딘의 표정을 보고 브린의 생각이 바로 고쳐졌다.
홀시딘은 그야말로 ‘이놈이 어디서 갑자기 순진무구한 척 사기를 치려 해?’란 말을 눈빛만으로 외치고 있는 듯했으니까!
해서 브린은 간략하게 자신이 완드에 대해 파악한 바를 말하기로 했다.
“아니란 것은 자네가 더 잘 알 것 같군. 이 완드가 디스펠 도구란 것까지 안다니 간단하게 말하도록 하지. 이 완드는 특정한 계열의 마법, 이 근처 유적에서 나온 유물에 깃든 마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마법 해제의 효과를 볼 거야. 하지만 다른 계열의 마법에는 직접 들이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어. 아주 저급한 구성의 마법이라면 그 마력을 바로 훼방 놓겠지만, 어느 수준 이상의 마법은 그런 간섭을 주문 구성 단계에서 아예 배제할 테니까. 물론 이 완드가 내 수준으로 가늠하지 못할 엄청난 아티팩트라면, 전설적인 마도구라면 그 범위나 효과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겠지.”
투란은 가만히 설명을 듣다가 홀시딘을 바라봤다.
홀시딘이 그 눈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브린의 이야기에 보태 말한다.
“마법에는 온갖 형태와 종류가 넘쳐난다. 모든 것을 일괄적으로 전부 없애 버리는 해제 방법 따위는 없어.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쓸 수 있는 방법을 못 쓰는 일도 허다하지. 저 완드는 아마 특정한 계열의 마법을 목표 삼아 특별하게 제작된 것일 거야. 그 범주는 시험해 보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겠지.”
“그렇군요. 그러면…… 바람의 길은?”
대강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만 하고 투란은 바로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홀시딘은 바로 브린을 바라봤다.
브린이 그 눈길에 흠칫하다가 당황스러워하며 대답한다.
“어…… 이곳에 마법사는 저 혼자입니다만? 바람의 길이라면 최소한 중급 마법사 한 명에 하급 마법사 셋이 모여야 운영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완전히 비컨과 기본적인 도구가 없을 때의 이야기잖아!”
홀시딘의 으르렁거림은 꽤 사나웠다.
투란이 보고 느끼기에는 홀시딘이 마치 가르친 것을 제대로 못 하고 잔꾀를 부리려는 도제(徒弟)를 벌주려는 공방 장인이라도 된 듯했다.
―뭐, 그 생각이 맞는 것 같군. 알드바인에서 바람의 길을 열 때는 중급 수준의 마법사가 마도구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여기서 그 마도구를 관리해야 할 마법사가 마도구 얘기는 쏙 빼놓고 순전히 머릿수로 때우겠다는 대답을 하니, 성질낼 만해 보이는군.
드라고니아가 이 기묘한 상황이 어이없으면서도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사이에 브린은 홀시딘을 향해 미묘한 반격이라도 하듯 떠들고 있었다.
“아니, 그건 제대로 운영이 가능한 지부에서 따져야요! 이 마을에서 그렇게 상아탑의 상식을 말씀하시면…… 물론 상급 마도사라면 혼자서도 어떻게 대충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마침 오셨으니 바람의 길을 열어 주실 수 있겠군요?”
어떻게 흘려들어도 홀시딘에게 떠넘기는 이야기였다.
이쯤 되니 투란은 브린이 참으로 뻔뻔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드바인에 알려진 홀시딘의 성격을 떠올리자면, 이건 그야말로 기름칠하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 아닌가!
투란의 생각과 기분에 동의하듯 홀시딘이 바로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내가 와 있다고? 여기에? 멋대로 판단하지 마라. 설혹 내가 여기 와 있다 해도, 너의 일을 대신해 줄 까닭이 있나? 없지! 자신의 나태함을 반성하고 벌받을 준비나 해!”
“아니, 그런……!”
브린이 다시 뭐라 항변하려 했다.
하지만 홀시딘은 아주 냉혹하게 그 말을 자르면서 한 손을 들고 있었다.
“기억을 봉인하겠지만,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측면에서는 결코 잊히지 않게 해 주마. 근면 성실한 상아탑의 마법사로서 상급에 이르면 오늘 나를 본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될 거야.”
“에? 네에에? 도대체 왜 그런 보안 조치를!”
“징벌받을 놈이 뭘 따져! 당장 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면 안 될 중대한 일이라도 있나? 없지? 그러면……!”
“이, 있습니다! 이십 년 동안 없었던 일이 마을에 일어나고 있단 말입니다!”
브린의 입에서 번개처럼 대꾸가 쏘아져 나왔다.
홀시딘이 들었던 손을 멈칫하며 가늘게 뜬 눈으로 짧게 되묻는다.
“진짜로?”
“마석이요! 마석을 보상으로 내주는 의뢰 말입니다! 여기서 거의 이십 년 가까이 살면서 그 의뢰를 좇아온 헌터 파티는 처음 봤단 말입니다! 아, 여기 이런 손님이 찾아오고 완드를 들이대고 고위 마법사가 강림하는 일도 처음이고요.”
브린의 대답은 다시 한번 격렬하고 빠르게 흘러나왔다.
투란은 새삼스럽게 한번 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 뭔 준비라도 한 것처럼 말하네? 근데 저게 핑곗거리가 될까?’
―으흠, 저 표정 보니 될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홀시딘의 표정을 투란에게 짚어 주며 말했다.
‘응? 설마…… 마석이란 말에 혹한 건가?’
투란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홀시딘의 입술이 달싹이고 있었다.
마석, 그리고 십 년 전 혹은 이십 년 전을 더듬는 사고과정을 고스란히 입술의 움직임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어, 홀시딘? 괜찮아요?”
투란이 이렇게 묻는 사이, 브린은 살짝 안도한 듯이 후욱 숨을 몰아 내쉬면서 재빠르게 홀시딘의 생각에 동참하듯 말을 더하고 있었다.
“아마 오십 년? 육십 년은 분명히 아니겠지요? 어, 아무튼…… 이곳이 그곳입니다. 마석으로 의뢰를 하고 마석으로 보상을 한다는 의뢰의 교섭 지역으로 지정된 곳…… 아 물론 여기만이 아니라고는 들었습니다. 이쪽으로는 오히려 찾는 사람이 좀 적었고 제국 쪽이나 바로크 쪽으로 지정된 교섭 지역에 많이 몰렸다고…… 어설프게 기억하는 바로는 그렇더군요. 하지만 그런 곳과 이곳의 차이점만큼은 분명히 기억합니다. 오기 전에 주의 사항으로 들었거든요. 그게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되는군요. 세월 참…… 아니, 그게 아니고! 아무튼 그 의뢰에 얽힌 이곳의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아, 이미 아시겠군요?”
“생환율.”
눈치 보며 묻는 브린의 말에 홀시딘은 짧게 답하고 있었다.
투란은 어리둥절했고 드라고니아는 대강 사정을 간파한 듯이 중얼거린다.
―과연…… 다른 곳보다 이쪽에서 의뢰받은 자들이 살아서 돌아온 경우가 더 많다는 말일 거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채로 몬스터에 대한 의뢰가 수행되었을 때, 그 결과나 과정을 알 수 없는 경우라면 상아탑에서는 생환율을 기반으로 몬스터의 위험도를 계측하곤 했다니까.
‘아, 그런 얘기라면…… 잠깐, 뭔 의뢰이길래 의뢰받는 곳에 따라서 살고 죽는 수가 차이가 난다는 거야? 그건 무슨…….’
투란이 겨우 단서를 잡아 생각하려 할 때, 홀시딘의 목소리가 조금 낮고 날카롭게 울려 나오고 있었다.
“희한하군, 기괴하기도 하고. 거의 이십오 년 정도 그 마석이 담긴 편지의 의뢰는 없었다고 들었지. 요즘에 와서 새로 의뢰가 도달했다는 말도 없었어. 상아탑에도, 헌터 길드에도. 그런데 이곳을 찾아온 녀석들이 있다고?”
브린도 동감한다는 듯, 투란이 보기에는 홀시딘의 눈치를 보는 태도일 뿐인 듯했지만 재빠르고 고분고분하게 말을 더한다.
“저도 그게 묘해서 말은 붙여 봤습니다만, 오면서 소모한 물품을 보급하고 장비를 수선해 달라는 말만 들었지요. 어, 기한을 한 사흘 이내로 해 달라고 악착같이 우겼어요. 아마 사흘 이내에 그 의뢰에 대해 확정적인 결과가 나올 듯합니다.”
투란은 눈매를 조금 일그러뜨리고 브린을 흘깃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하는 말은 굉장히 멀쩡한 마법사답잖은가!
날라리 로그메이지니 뭐니 하는 소리까지 나게 하며 싸우더니…….
―게으르지만 심심했나 보지. 그보다 홀시딘이 마석에 대해 저리 관심을 갖는 상황인데 여기 거주하는 브린의 대답이 저 모양이라면…….
드라고니아가 조금 심드렁하니 시작한 말을 살짝 불길한 낌새를 더해 흐리고 있었다. 왜 그런가에 대해 투란은 되물을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음, 그러고 보니 투란 너 지금 딱 몬스터 헌터 차림새구나?”
홀시딘이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면서 이리 말하고 있잖은가.
그 속셈이 바로 느껴졌기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투란은 바로 싹둑 자르듯이 대꾸하고 말았다.
“굉장히 먼 길을 온 파티에 혼자 가서 불쑥 끼워 달라고 하면서 마석도 많이 분배해 줄 거지, 묻기도 하라고요? 누구냐고 묻기 전에 솔직한 대답을 원한다면서 칼부림부터 시범 보일걸요? 거짓말하면 사람 몸이 어떻게 토막 나나 친절하고 상세한 이야기까지 덧붙여서 말이죠!”
“역시 안 되려냐?”
“헌터들 하는 짓 잘 알면서 그러십니까? 느닷없이 파티에 끼려는 놈은 속이 시커먼 난입자라고 해서 일단 뒤통수에 칼부터 꽂고 생각하자는 얘기, 알드바인 퍼브 어딜 가도 당연하다는 듯 떠드는구먼!”
“쳇.”
차마 부정하지는 못하고 홀시딘이 혀를 찼다.
투란은 눈매를 사납게 하며 그런 홀시딘을 노려보는데, 브린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떠서 둥근 몸매처럼 꾸미더니 묻는다.
“알드바인? 거기는…… 여기랑 완전히 다른 세상이나 다름없는 곳이잖습니까? 설마 자네 거기서 여기까지 왔다고? 도대체 왜?”
짧은 몇 마디 말을 통해 투란의 행적을 더듬어 낸 듯한 물음이었다.
투란이 ‘뭐라 해야 하나?’ 하며 적당히 웃어넘기려 하는데 홀시딘이 손을 저으면서 말한다.
“길을 잃었지. 그뿐이야.”
브린은 ‘어?’ 하다가 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풀썩 주저앉고 있었다.
손의 힘도 풀린 듯, 쥐었던 완드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홀시딘이 곧바로 낚아채고 있었다.
환영이 아닌 실체처럼 완드를 손에 쥐고 이리저리 보는 채로 홀시딘은 투란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