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75)
“흐흠, 역시 제대로 된 정보를 모르는 채로 왔군. 그렇다면…… 길잡이로서 내가 여러분에게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 줘야겠지? 어디 보자…… 무엇부터 이야기를 할까? 아, 혹시 관심 있는 부분이라도 있나? 낯선 곳에서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것이라든가? 오, 역시 몬스터인가? 하긴 몬스터 헌터라면 몬스터가 아니라면 마수, 그도 아니라면 어떤 짐승이 위협적인가부터 파악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그러면…… 여러분 중에서 데드워커와 언데드를 구분하는 분 있으신가?”
길잡이 노인은 차분하게, 귀를 기울이는 루헬 일행의 눈길까지 자신에게 한껏 끌어오는 채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들려오는 숨소리조차 귀를 기울여 주는 듯한 노인의 태도는 노련한 몬스터 헌터들조차 경계심보다는 세월을 통해 얻은 지혜를 엿듣는 분위기로 빠뜨리는 듯했다.
심지어 투란조차도…… 그들이 머무는 여관, 주점가와 꽤 먼 곳에 있었지만 길잡이 노인의 말에 저절로 귀를 쫑긋할 지경이었다. 더불어…….
‘저 할배, 너처럼 생각하나 보네?’
드라고니아가 정성껏 이야기했던 것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다는 점에서 한층 더 묘한 기분이 들어 더욱 귀를 기울이고 그 현장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잖은가.
이런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조금 갸웃하는 말을 꺼낸다.
―그런데…… 큰 보상을 미끼로 몬스터 헌터를 꼬드길 때 말이다…… 보통 조심하면 가볍게 보상을 받아 갈 거라고 꼬드기지 않냐? 저 노인은 어쩐지…….
‘어라?’
맹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투란은 흠칫했다.
과연 길잡이 노인의 이야기는 그 앞에서 듣고 있는 루헬 일행마저 흠칫하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흡혈종(吸血種), 연금술사가 표현한 문자 그대로 피를 마시는 괴물이지, 언데드이기도 하고. 역시 낯선 몬스터인가? 그렇다면 각오를 다시 하도록 하게나. 언더섀도우는 흡혈종이 거대한 세력을 이루고 있고, 인간은 그들의 먹이로서 재배당하는 존재라네. 오? 거기 자네 방금 뱀파이어라고 했지? 맞아, 흡혈종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 뱀파이어! 바로 그 이름으로 불리는 괴물이라네. 아, 대세란 것이 무슨 뜻이냐? 뱀파이어에 대해서 말이 나왔으니 좀 더 짚어 보도록 하지. 혹시 뱀파이어에게 물리면 어떻게 되는가 알고 있는가? 몬스터 중에서 전염성을 지닌 독을 뿌리는 경우는 물론 알고 있겠지? 뱀파이어에게 물리면 그 피에 물들어 버린다네. 응? 말이 이상한가? 그럴 수도 있겠군, 낯설게 들릴 수도 있어. 대체 독이라면 중독이지 왜 피에 물든다고 할까, 간단하네. 뱀파이어에게 물리면 그들의 종, 좋게 말해서 시종이고 실제로는 노예가 돼 버리니까 그렇다네. 뱀파이어의 노예가 되면, 그들이 내미는 손끝에 살짝 맺힌 피 한 방울을 갈망하는 처지가 돼 버린다네. 그게 바로 피로 물든 상태인 거지. 그래, 거기 자네가 방금 꺼낸 말대로야! 중독성 환각약, 뱀파이어는 자신이 물어 버린 상대에게 자신의 피를 감염시켜서 그 사고방식, 본능적인 생태 자체를 변화시켜 버린다네. 흡혈종이라 불리는 몬스터의 대표격이 바로 뱀파이어인 까닭이지. 그냥 피를 쪽쪽 빨아 삼키고 말려 죽이는 흡혈목(吸血木)과는 달라. 그리고 다른 몬스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인격과 지능도 갖췄다는 것?”
조용히 듣던 몬스터 헌터 중 누군가가 꽤 불쾌하고 언잖은 듯이 속삭이는 대신에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길잡이 노인의 눈길이 바로 그를 향해 꽂히듯이 옮겨졌고 가벼운 끄덕임과 함께 몇 마디가 이어졌다.
“인간을 사육(飼育)할 줄 안다는 것이지.”
이 말은 루헬부터 시작해서 몬스터 헌터들을 강렬하게 자극한 듯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말에 대해 곧바로 웅성거림이 이어졌다.
“사육?”
“키워 잡아먹는다는 말이잖아?”
“먹이를 가두고 키우는 몬스터가 있기는 하잖아?”
“인간을…… 물들이고 사육한다?”
“노예…… 그리고 먹이?”
길잡이 노인은 잠시 침묵하면서 그 웅성거림이 어떤 결론으로 이어지는가를 지켜보겠다는 듯이 기다렸다.
그 풍경을 먼 곳에서 관찰하는 투란은 한층 더 어이없어 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 할배 뭔 생각이래?’
―역시 이상한 노인이었지?
‘미리 경고를 좀 세게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 그래도 저건 좀 심한데?’
―의뢰를 포기하고 돌아가게 할 생각은 아닐까?
‘응? 포기하게 하려고? 그건 좀 힘들걸?’
―힘들……?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는 사이, 투란은 저편에서 루헬이 몸을 일으키며 팔짱을 끼고 곤란한 표정으로 길잡이 노인에게 묻는 광경에 집중했다. 드라고니아 역시 자신이 떠올리는 의문에 대해 바로 말을 하는 상황이었기에 하던 말을 멈췄다.
“영감님.”
루헬은 이렇게 말문을 열고 있었다.
길잡이 노인이 루헬을 똑바로 바라봤고, 우두머리인 루헬의 말에 웅성거리던 일행이 곧바로 조용해져서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전혀 짐작도 못 한 낯선 것이 가득한 곳의 정보를 주는 것은 당연히 고맙습니다만, 정말로 정보를 주려는 겁니까 아니면 우리를 겁먹고 물러나게 하려는 겁니까? 참고로 한 말씀 드리자면, 우리는 여기 오기 위해서 단순히 시간과 장비만 소모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이 막연히 의뢰가 있다고 해서 그 먼 길을 온 것도 당연히 아니지요. 영감님, 우리는 헌터 길드를 통해 의뢰를 접수했고 그에 따라 선금까지 이미 받았어요. 그 선금을 갚기 위해서는 죽든 살든 이 의뢰를 완수해야 하는 입장이란 말이지요. 그런 우리에게 인간을 사육하는 흡혈 괴물 이야기는…… 사실 신기하기는 하지만, 별 의미가 없습니다. 특히나 칠왕국, 섀터드 세븐에서 출발한 우리에게는 그냥 요즘의 흔한 상황일 뿐입니다. 아, 브로큰 킹덤이라고 하는 편이 더 알기 쉬운가요? 아무튼 그쪽에서 몇 년 전부터 범람의 전조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요. 무슨 일인가 일 년 정도 전에 겨우 밝혀냈는데, 사육자란 산맥 안쪽에 거대한 영역을 구축한 몬스터, 티탄 클래스 몬스터가 괴멸당한 탓이었다더군요. 밝혀내는 데만 베테랑 헌터 파티 여럿이 동원되어서 해를 넘겨야 했던 일이었지요. 영감님, 우리는 그런 곳에서 몬스터를 잡겠다고 나섰던 녀석들입니다. 그리고 그 벌이로 만족할 수가 없어서, 그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해서 여기까지 왔지요. 그러니 그 흡혈종,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로 겁주려는 시늉은 그만해 주세요.”
길잡이 노인은 웃었다.
루헬이 차분하고 길게 늘어놓은 이야기는 노인보다 자신의 일행들을 향해 다독이는 말이란 것을 알기에 웃는 듯했지만, 여기까지 오게 된 자신들의 처지를 되새기면서 물러설 곳이 없다는 부분을 확실하게 다시 깨닫게 해 주려는 웅변이라고 훤히 꿰뚫어 보는 웃음인 듯했지만…… 막상 길잡이 노인이 다시 말문을 열었을 때, 루헬은 자신의 예상과 다른 이야기에 낯빛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겁을 주려 했다고 느꼈다니, 이것 참…… 자네들이 좀 불편하게 여길 이야기는 꽤 피했는데 말이지. 음, 어쩌면 내 말솜씨가 없는 탓이겠군. 조금 더 확실히 말해 주는 편이 좋겠군. 내가 자네들을, 여러분을 겁주려 했다면 언더섀도우 최악의 몬스터라든가, 최강의 몬스터…… 혹은 난도 최고인 몬스터에 대헤 말했을 거네. 그래, 뱀파이어에 대해 말한 것은 그 종류가 가장 많고, 그 활동 영역이 인간과 딱 겹쳐지기 때문이었지. 인간을 먹이로 삼고, 노예로 삼고, 시종으로 부리는 녀석들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자네들에게 의뢰한 일은 어쩔 수 없이 그 녀석들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으니까…… 싫든 좋든 가장 먼저 알아 둬야 할 일이었을 뿐이네.”
“그럼, 최악이나 최강인 몬스터는 대체 뭡니까?”
가만히 듣다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묻는 이는 쿨람이었다.
루헬이 자리에 앉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는 사이, 쿨람이 잠시 그를 대신해서 말하는 듯했다. 길잡이 노인은 그 물음 아래 감춰진 의미를 느꼈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다.
“혹시 의뢰가 그쪽으로 관계된 것인가 궁금하다면, 그건 아닐세. 언더섀도우 최강이나 최악인 몬스터는 뱀파이어 녀석들도, 그중에서 존귀하다며 왕 노릇하는 놈들조차도 피해 다니는 무시무시한 것들이지. 만약 뱀파이어와 만나서 한참 싸우는 와중에 그 최강이나 최악의 낌새가 보인다면, 도망갈 틈이 없다면 싸우던 뱀파이어랑 협력을 해야 할 지경이 될 거네. 말했잖나, 뱀파이어에게는 인격과 지능이 있다고. 흡혈종 괴물인 녀석들조차도 평소 멸시하던 인간과 기꺼이 손을 잡게 하는 몬스터가 있는 곳이 바로 언더섀도우라네.”
“대체 그게 뭡니까?”
헌터 중 누군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길잡이 노인이 말한 이를 보며 빙긋 웃었다.
“라바 드레이크. 들어 본 적 있나?”
어리둥절한 분위기 속에 작은 속삭임이 분주하게 오갔다.
“드레이크?”
“그런 품종도 있어?”
“라바면…… 용암?”
“조금 식은 용암이려나?”
“펄펄 끓는 용암은 딴거냐?”
“그건 마그마라고 할걸?”
“무슨 대지의 드레이크 종자인가?”
“날개 없는?”
언제 끝날지 모를 듯한 그 작은 웅성거림을 향해 쿨람이 세게 헛기침을 해서 멈춰 세웠다. 하지만 쿨람은 연이어 무슨 말을 하기보다는 루헬을 바라보며 눈짓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우두머리가 나설 차례라는 듯.
루헬이 가만히 숨을 들이쉬며 고요해진 분위기를 확인하는 듯하더니 묻는다.
“그게…… 최악입니까, 최강입니까?”
“최악이라네. 파나틱(Fanatic)이란 특수한 상태에 빠지는 몬스터라고 하면 알기 쉽겠나?”
왠지 유쾌한, 덕분에 상당히 비뚤어진 듯한 성격을 드러내는 모습으로 길잡이 노인이 되묻고 있었다.
헌터 일행이 웅성거리는 사이, 멀리 떨어진 투란은 갸웃하고 있었다.
‘홀시딘 별명이잖아?’
―아니, 몬스터의 광화(狂化)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광란 폭주하는 몬스터?’
―품종을 가리지 않고 가끔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잖아.
‘그걸 콕 집어 하는 말도 있었나?’
―자주 쓰는 말은 아니다만, 제국 쪽에서는 공식적인 용어로 지정되어 있을 거야. 아무래도 저 노인, 춤추는 산맥 출신이 아닌 모양이다.
‘어? 평원 출신 할배라고? 그쪽 사람들, 춤추는 산맥도 안 오려고 한다는데 언더섀도우를 헤집고 다니는 할배? 뭐야, 그게…….’
―그보다 라바 드레이크가 내가 아는 몬스터가 아닌 모양인 쪽이 더 의아하다만.
‘응? 드레이크가 용암 묻히고 다니는 정도 아닐까? 뜨거워서 팔딱거리면 미쳐 보일 테니 말이야.’
―그런 멍청한 말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만? 아, 들어 봐.
핀잔과 함께 드라고니아가 프로브의 청각을 길잡이 노인에게 한층 더 집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길잡이 노인의 숨소리 가닥마저 또렷해진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잠들어 있다네. 땅거죽처럼 바닥에 찰싹 붙어서 말이야. 딱히 뜨겁지도 않고 그저 완전히 식어 버린 용암석처럼 착각하기 쉽지.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면, 그 순간부터 주변에 용암의 숨결을 토해 내면서 날뛰기 시작하지. 누가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이야. 그냥 자기 주변을 뜨겁게 달아오른 용암으로 채워 버리겠다고 날뛰지. 아, 자네들에게 익숙한 말로 하자면 변덕스러운 날씨? 그런 것처럼 가까이 있으면 피할 수가 없는 재앙일세.”
“그건…… 드레이크란 이름이 전혀 상관없는 듯하군요?”
침착하게 루헬이 짚고 있었다.
길잡이 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다네, 딱 드레이크의 모습으로 말이지. 진짜 드레이크 품종인가 아닌가, 말은 많았지만 생긴 것이 그 모양이라 그냥 드레이크라고 부르게 된 거지. 아무튼 그놈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사람 몸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든다네.”
“예? 피를……?”
루헬이 살짝 당황했다.
쿨람과 다른 일행은 아예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조금 느긋하게, 이제 본격적으로 겁을 주겠다는 듯이 길잡이 노인이 말을 잇는다.
“피를 제어하는 능력을 자랑하는 뱀파이어에게 그야말로 최악의 재앙인 셈이지. 문제는 인간의 몸에도 피가 가득 흐른다는 점이랄까? 아, 가까이라고 했는데 그게 몇 미터 거리가 아니야. 드레이크라 불릴 만하게 놈의 몸통은 대강 삼십에서 사십여 미터 사이이고, 그놈의 기준에서 가까이…… 그러니까 대강 놈과 이십여 미터 사이를 뒀다면 바로 그 피가 끓기 시작하는 거지. 예열(豫熱) 따위는 필요 없어. 그냥 바로 끓어올라. 기괴한 현상이지? 어떤가, 이 정도면 겁주기 좋은 이야기려나? 하하핫. 아, 그런 놈들 상대하자고 넣는 의뢰가 아니야. 멀리서 온 헌터들을 무슨 불쏘시개로 그런 놈에게 던져 줄 궁리 따위는 아무도 하지 않아. 조금 안심이 되는가?”
루헬은 짓궂은 노인의 말에 조금 발끈한 표정부터 지으면서 바로 묻는 말로 대꾸하고 있었다.
“최강은 뭡니까?”
“아케인 라바 비스트.”
길잡이 노인은 거침없이 대답하면서 자기 가슴을 더듬어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다들 어리둥절해하는 분위기 속에서 주머니를 열고, 사람 눈알만 한 검은 돌을 꺼내 보이면서 노인의 몇 마디가 이어진다.
“이런 파편을 흘리고 다니는 괴물이지. 짐승의 형상을 뒤집어쓰고, 라바 드레이크조차 잡아먹는…….”
살며시 정적이 맴돌았다.
검은 돌이 농도 짙은 마력을 흘려 내는 탓이 아니었다.
불현듯 모두 알아차린 탓이었다.
라바 드레이크도, 그걸 잡아먹는다는 괴물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품종을 일컫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