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76)
Chapter 196. ‘그림자 아래’로
‘뭔지 알아?’
―……모르겠다.
‘드라코눔에서 언더섀도우는 안 뒤졌어?’
―매우 좋지 못한 환경이라서 바깥쪽과 닿은 부분만 조사해 왔다.
‘관심 없는 곳이었구나?’
―가끔 뱀파이어가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는 들었다만.
‘진짜 알 바 아닌 곳이었냐?’
―우리 일족에게는 별 위협을 못 주는 녀석들이니까.
‘우와, 뻔뻔해!’
―인간들도 별 관심 없는 곳이잖아!
‘어, 뭐 그건 그런 모양이네.’
투란은 새로 알게 된 몬스터의 품종을 되뇌면서 드라고니아를 놀리는 짓을 그만뒀다. 그보다는 저편에서 조금 진지하게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더 흥미로우니까.
어째서 드라코눔조차 언더섀도우에 무관심했는가는 나중에 한가할 때 따질 일이었고, 지금은 그 안의 정보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는 저 이야기가 더 중요했다.
이런 투란의 흥미와 기대에 부응하듯, 헌터 중 누군가 묻고 있었다.
“몬스터가 마석을 낳는 겁니까?”
길잡이 노인이 손바닥 위에서 마석을 이리저리 굴리는 손짓과 함께 갸웃하고 느릿한 말투로 대답한다.
“낳는다? 흘린다고 하는 편이 조금 더 정확한 말이겠지. 아, 마석이 모두 몬스터에게서만 흘러나오는 것은 물론 아니네. 언더섀도우는…… 그 환경은 마석이 가득하고 그 속에서 나타난 몬스터가 그 영향을 받는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런 몬스터가 쓰러지면서 마석을 더 뿌리니, 결국 지속적으로 마석을 쌓고, 마석에서 태어나고를 반복하는 중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뭐, 정확한 설명이라고 하기는 굉장히 이상해진 것 같지만, 직접 언더섀도우에 들어가서 지켜보면 다른 말로 뭐라 하기도 애매하다고 느낄 걸세.”
“알이 있었기에 다 자란 어미가 있는 것인가, 어미가 있기에 알이 비로소 생겨난 것인가…… 그런 이야기 같군요?”
쿨람이 갑작스럽게 중얼거렸다.
길잡이 노인이 빙긋 웃음과 함께 대꾸한다.
“그래, 마법사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일 걸세. 몬스터가 환경을 꾸몄는가, 그런 환경이라 그런 몬스터가 생겨난 것인가. 하지만 진실을 누가 알겠나? 싸우는 자에게 무슨 쓸모가 있겠나?”
“잡는 방법만 확실하다면, 필요 없는 이야기겠지요.”
다시 쿨람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길잡이 노인이 재미있다는 듯이 쿨람을 바라봤고, 루헬이 가벼운 기침 소리를 내면서 살짝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듯한 쿨람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제서야 쿨람은 조금 멋쩍은 표정과 함께 슬그머니 묻는 말을 꺼낸다.
“그 최강과 최악, 잡을 수 없는 겁니까? 멀리서 보고 무조건 피해야 하는 건가요?”
헌터 일행의 눈과 귀가 일제히 길잡이 노인에게 집중되는 듯했다.
길잡이 노인이 그 눈길을 주욱 둘러보면서 살짝 가다듬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대답하며 말을 이었다.
“언더섀도우에서 최강과 최악을 쫓아 잡으려 드는 부류는…… 뱀파이어의 일족뿐이지. 그 흡혈종 괴물들의 노예만이 미친 듯이 잡으려고 하거든. 무슨 얘기인가 잘 모르겠지? 그럴 거야. 하지만 언더섀도우에 발을 딛고 나면 싫어도 지겹게 듣게 되고 알게 될 이야기라네. 그러니까…… 자, 여러분에게는 이제 마지막 선택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순간이라네.”
이어 노인의 가벼운 손짓이 루헬을 향해 쥐고 있던 마석이 날아갔다.
흠칫하면서도 루헬이 주머니째 날아든 마석을 받아 쥐는 순간, 길잡이 노인이 가만히 몸을 돌리며 말한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빈손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 그 정도면 그동안의 여정에 대한 보답으로는 충분할 걸세. 몬스터 헌터이니 언제나 그랬겠지만, 이다음부터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이고 목숨을 걸어도 모자란 곳이 될 거야. 그러니 다시 한번 잘 생각해서 결정하게나. 내가 호의를 베풀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 내일 아침부터는 의뢰인으로서 자네들에게 한없이 의무만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물러서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지. 그러면…… 깊이 생각해 보게나.”
뚜벅뚜벅.
말을 마치자마자 길잡이 노인은 자신의 방으로 가 버렸다.
루헬 일행은 잠시 멍하니 노인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투란은 멀리서 그 광경에 대해 판정을 내리고 있었다.
‘쫓아 보내려는 수작이었잖아!’
드라고니아도 어이없어하면서 공감했다.
―그렇군…… 돌아갈 명분을 확실히 제공하고 있어, 왜지?
‘정말 왜지? 저 할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글쎄다…… 저 헌터들의 수준이 어디 가서 망신이나 당할 걸로는 보이지 않는다만…… 심리적으로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강조해서 각오를 다지게 할 생각이었을까?
‘그런 각오를 끝냈기에 여기 온 사람들이라고. 그런 사람들을 겁줘서 쫓아 보낼 궁리를 한 게 분명해. 그런데 대체 왜?’
다시 의문을 되뇌었지만 투란도 드라고니아처럼 막연한 추측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단서 없는 추측을 멈추겠다는 듯이 화제를 바꿔 말한다.
―저들은 어떻게 대응할 셈이지?
‘응? 글쎄? 그러고 보니 마석 주머니를 넘겼잖아? 저게 얼마나 하려나?’
투란도 금방 길잡이 노인이 루헬 일행에게 넘긴 주머니 쪽으로 관심을 옮겼다.
마침 루헬이 쿨람에게 마석 주머니를 내밀면서 묻는 중이었다.
“품질, 감정할 수 있나?”
“확정은 못 하겠지만 해 봐야죠.”
쿨람은 주머니째로 조심스럽게 받아 들면서 신중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루헬을 비롯한 일행이 조용히 쿨람을 둘러싸듯 자리를 옮겨 앉았다.
멀리서 보던 투란은 그 움직임과 쿨람이 두 손 사이에서 피어나는 미묘한 아지랑이를 확인하고 금방 알 수 있었다.
‘마법사?’
―약간의 소질이 있는 정도로군. 제대로 된 주문을 완성하기에는 모자라지만 마석의 마력을 감지할 수준은 되는군.
드라고니아는 냉정하게 쿨람의 수준을 가늠하고 있었다.
쓴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맴돌았다.
‘뭐……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많지는 않지.’
마력을 감지해 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마법에 대한 소질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겨우 마력만 감지해 내고 제대로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 소질은 매우 미약해서 의미 없다고 여겨지고 그 길은 아닌 것으로 결론 날 수밖에 없다. 소질이 발견되었다고 좋아하다가 미약해서 의미 없다고 포기하란 말을 들으면 보통 사람에게는 꽤 큰 상처로 기억될 터였다.
그런 사람이 몬스터 헌터로서 숙련된 다음에 그 미약한 소질을 저런 식으로나마 쓸 수 있다면…….
‘마석이 마법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조금 소질이 모자란 사람에게도 말이야.’
문득 추억의 한 자락을 떠올리며 투란이 묻듯이 중얼거렸다.
―당연히 도움이 되지, 그냥 도움도 아니고 큰 도움이 된다. 마석을 이용해서 보조용 장신구를 만들어 낸다면, 그 마력을 느끼고 유도하는 것만으로도 주문을 쉽게 완성해 낼 수 있으니까.
‘저 아저씨, 그것 때문에 왔다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네.’
투란은 쿨람을 다시 살피면서 느낄 수 있었다.
길잡이 노인이 남긴 마석을 가늠하면서 쿨람의 햇살에 그을린 얼굴에 강렬한 의지가, 단호한 결의가 새록새록 피어나는 모습이었다. 최강이니 최악이니 하는 위협 따위는 기꺼이 목숨을 걸고 감수할 준비가 완전히 끝난…….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것 아니냐? 소질이 모자란다고 그걸 무조건 채우고 싶어 할 리가 없잖아? 조금 더 좋은 상황을 기다릴 수도 있잖아.
드라고니아는 갸웃하면서 투란이 느낀 바에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저쪽에서 쿨람이 내지르는 탄성이 드라고니아의 의견을 바로 부정하고 있었다.
“굉장하군! 이건 그냥 쥐고 있는 것만으로 몸속에 마력이 넘실거려! 이 정도면 누구라도 어지간한 마법을 그대로 발현시킬 수 있겠어!”
그 목소리는 어떻게든 그 마석을 자기 것으로 하겠다는 맹렬한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저 인간은 네 의견에 부합하는 성격이었군.
살짝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투덜거리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은 입가를 뒤틀면서 키득거릴 수밖에 없었다.
샤오콴 마을에 왔던 이들 중에서 흔히 보는 부류였으니까.
모자란 재능, 소질, 의욕…… 어딘가 뒤틀린 성격으로 어찌어찌하다가 굴러온 듯한 이들이 그나마 마음 한구석에 사납게 뿌리내린 절박함을 바탕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려 드는 광경.
샤오덴, 샤오 할배도 그랬지만 오러클 아저씨도 굉장히 짜증 내고 싫어하는 부류이기도 했다.
굳이 거기까지 와서 죽으려고 노력하느냐고.
절박한 만큼 막 나가려는 그 태도를 아주 싫어했지만, 어떤 경우에는 싫어하는 만큼 이것저것 돕고 챙겨 주기도 했다.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아주 은근히 죽지 않을 방법을 알려 주거나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거나…… 그런 경우가 바로 저 쿨람과 비슷한 처지에서 몸부림치는 이들이었다.
어린 투란으로서도 그냥 죽으려고 미쳐 날뛰는 경우와 어쩔 수 없는 궁지에 몰려서, 갈망하는 바를 손에 넣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경우는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었다. 희망 따위는 없다고 남들까지 비웃는 태도와 어떻게든 썩은 줄이라도 잡으려 하는 모습 사이에 너무 큰 차이가 나니까.
‘저 일행은 대부분 비슷할 거야.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투란은 저쪽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토론은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생각했다.
마석에 대한 이야기는 꽤 들은 참이었다.
과연 이 이야기를 홀시딘에게 고스란히 전하면 뭐라 할 것인가?
그냥 그러려니 할까, 아니면…….
―여기서 딱히 네가 뭘 할 수도 없잖아? 상아탑에서 전혀 모르던 일도 아니고, 그저 조금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었다는 점만 확인할 뿐인데?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뭔가 마음에 걸린다는 듯, 살짝 불안해하는 기분을 띠기 시작하자 의아해하고 있었다.
‘뭐, 상식적으로는 그렇지, 상식적으로는…… 근데 파나틱 플레임이라고 불리며 자기 고집대로 살아온 마법사 할배시잖냐. 상식 밖의 괴상한 일을 대뜸 떠넘기는 것은 일단 기본 바탕으로 깔고 가는 대마법사이기도 하지.’
―……그건 부정할 수가 없군.
쓴웃음 띤 듯한 낌새로 드라고니아가 인정했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하려는 찰나, 투란은 손끝에 미묘하게 걸려 오는 강한 마법의 신호를 느꼈다.
‘음? 이건?’
―비컨 정비가 끝난 모양이군. 꽤 빠른데? 역시 일부러 팽개쳐 놓고 망가진 척해 놓은 것뿐이었나?
‘역시? 뭐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상아탑의 중급 마도사가 게으른 시늉을 한다고 그 능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니까. 상아탑의 비컨은 오히려 정비가 쉽고 망가뜨리기 어려운 편이기도 하고…… 뭐랄까, 이 한적한 마을의 풍경을 즐긴다는 인상이 깊었다.
‘흐흠…… 어쨌든 이 정도면 바로 홀시딘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거지? 굳이 가지 않고 여기서 바로 말이야.’
―가능하지. 그래도 조금 인적이 드물고 시야가 가려진 곳을 이용하는 편이 나을 거다. 괜히 마법에 휩싸였다 나타났다 하는 광경이 눈에 띌 수도 있으니까. 헛것을 봤다고 정리되기는 하겠다만, 그 분위기를 이상하게 여기고 조사하려는 자도 있을 수 있잖아.
‘그래, 방심하지 말고 그러는 편이 좋기는 하겠지. 그러면…….’
투란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봤다.
물 항아리가 곳곳에서 찰랑이고 사람이 모여 거처하는 풍경…… 그 한쪽 귀퉁이로 폐허로 이어지면서 인적이 끊긴 듯이 보였다. 사막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분위기가 풀풀 휘날리는 쪽이었다.
‘그럼, 굴 좀 파고 쉬어 볼까.’
가볍게 벽의 틈새, 눈길이 닿지 않는 지붕과 옥상을 소리 없이 넘으며 투란은 금방 찾아낸 곳으로 옮겨 갔다.
특별한 것이 없는, 그저 조금 낯선 차림새인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호기심을 드러내기는 해도 딱히 들러붙어 캐묻지는 않는 분위기만 가득했지만 방심하지 않는다면서 꽤 조심한 셈이었다.
―흠? 저거 여자 인간을 쫓던 애들 아닌가?
드라고니아가 막 한 귀퉁이 땅에 손을 대며 마법의 움막을 굴처럼 만들어 내려는 투란에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응? 누가 있다고?’
손을 멈추고 살짝 반쯤 허물어진 벽에 기대면서 투란은 애들이 모여 있다는 곳을 엿봤다.
슬슬 해가 저무는 시간이 된 것을 드러내듯, 혹은 겹쳐진 벽 사이가 지나치게 서늘해서인 탓인 듯이 모닥불을 꾸며 놓고 모여 있는 녀석들이 있었다.
‘왜 이리 희미하게 느껴지지? 뭐냐, 저거?’
―확실히, 불 속에 뭔가 있기는 하군.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파악하기는 했다만, 여러 가지 감지를 회피하는 영역이 형성되어 있어. 인지 범위를 간섭해서 흐려 놓는 것인가 싶다만.
‘완드도 그렇고, 저 녀석들 대체 뭐야?’
가만히 그 기척을 느껴 보려 하면서 투란은 어이없었다.
드라고니아가 말하지 않았다면 벽과 벽 너머에 아무도 없다고, 그냥 모래를 들락거리는 쥐나 뱀일 거라고 여겼을 낌새인데 그조차도 흐릿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