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77)
‘엄청 오락가락하잖아, 저거 마법이냐?’
헷갈리는 감각을 점검하며 투란이 어이없어 물었다.
드라고니아도 조금 어이없는 듯.
―마법이지, 마법이 아닐 수는 없잖아? 조금 고장 난 마법이라고 해야 할까?
살그머니 투란만큼이나 오락가락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저 감춰진 기척과 아이들의 모습이 오락가락하고 있었으니…….
멀리서 볼 때는 분명히 이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지금도 프로브를 멀리 보내서 이쪽을 보면 그냥 투란 혼자 벽에 몸을 기대고 멀뚱거리며 텅 빈 곳을 쳐다보는, 헛것을 보는 듯한 몰골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벽에 기댄 투란은 모닥불 주변에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의 모습을 분명히 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누군가는 투명하게 어른거리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났다가 하는 꼴이 모닥불이 비춰 내는 그림자가 저 애들의 환영이라도 꾸미는가 싶기는 했지만.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시점과 각도에 따라서 오락가락한다. 음, 뭐랄까…… 원래 전방위 은폐장을 꾸미려다가 망가져서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채라고 할까? 도대체 뭔 마도구인데 저러는 거지?
추측을 하다가 짜증이 난 듯이 투덜대는 드라고니아였다.
‘불 속에 있는 거, 제대로 안 보여? 음, 옵저버는 어때?’
마찬가지로 눈을 부라리다가 눈물이 날 듯해서 손으로 비비적거리던 투란이 문득 떠오른 대로 말했다.
―응? 아…….
드라고니아가 잠깐 잊었다는 듯한 묘한 웅얼거림을 흘리고는 바로 프로브의 개량형이자 강화형인 옵저버를 형성했다.
투란의 바로 앞, 가슴 언저리에서 곧장 옵저버가 자리 잡자마자 그 형상을 감추면서 탐지 기능이 작동되었다.
‘으와앗! 깜짝이야! 갑자기 그렇게 들이대지 말라고! 소리 낼 뻔했잖아!’
휙, 변하는 시야에 투란이 입술을 깨물면서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갑작스럽게 불꽃 속으로 던져진 것처럼, 주변이 온통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풍경이 갑작스럽게 사방을 점령한 듯했기에 나온 투덜거림이었다. 하지만 그 투덜거림은 금방 의아함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었다.
‘뭐야? 대체 뭘 보여 주는 거야?’
―모닥불 속, 저 어설프고 이상한 마도구를 보여 주려 했다만…… 왜곡의 배낭 안팎을 불로 가득 채우기라도 한 모양을 하고 있었어. 과연 어떻게 된 건지 이제 좀 알겠군.
‘야, 난 모르겠거든?’
―모래 미궁의 유산, 유물이다. 환영 속에서 네가 봤던 앙트의 시절, 지금과는 다른 형태의 수납 마법이 유행했다고 들었다. 배낭 형태로 만들지 않고 거울이나 몸에 지닐 수 있는 장신구 형태로…… 아, 알드바인의 마스터 케이라가 사용하던 그 손수건처럼 말이야. 바닥에 깔거나, 불가에 놔두거나…… 이거, 잘못 사용되고 있었잖아?
‘지금 너의 복잡한 말을 해석하자면, 암호를 풀듯이 해독하자면 저 녀석들이 옛날 마도구, 물건 담는 배낭 같은 마도구를 가져다가 불가에 놔야 하는데 불 속에 던져 놔서 이 괴상한 은폐 상태라고?’
비뚤거리는 말투로 ‘이게 뭔 헛소리야?’라고 따지듯이 투란이 물었다.
드라고니아는 말투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담담하게 대답해 주고 있었다.
―환영 속에서는 볼 기회가 없었다만, 이건 수납의 고리라고 하는 마도구야. 고리를 광장처럼 열린 곳에 놔두면 안에 담긴 물품들이 수납대와 함께 빈자리를 채우며 나타나게 되어 있다. 들락거리는 창고처럼, 나타난 물품들을 집어내 오거나 다시 채워 넣는 거지. 보통은 주둔지의 불가를 이용한다고 들었다만…… 이모저모로 주변과 차단하는 기능까지는 못 들었어. 아마도 행군이나 보급 중에 사용할 목적이라 주변 환경의 영향을 차단하는 기능도 붙어 있는 모양이야. 저 녀석들은 뭔가 잘못 전승받아서 아예 불 속에 처넣은 모양이고…… 오래되어 망가진 물건이 잘못된 사용으로 인해 저런 괴상한 효과가 나오는 것이겠지.
‘그래서 요즘에는 거의 만들지도 않는 고대의 유물이라 이거지?’
투란은 흘려듣고 요점만 재 보겠다는 듯이 물었다.
―또 뺏을 거냐?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한층 더 간결했다.
‘응? 또? 아, 저 녀석…….’
잠깐 움찔하며 시침 떼려다가 투란은 문득 불가에 앉은 녀석들 중 우두머리 노릇이라도 하듯이 다른 아이들에게 뭐라 떠들고 있는 놈이 완드를 들이댔던 그놈인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 다시 저 고대의 유물, 마도구를 투란이 가로챈다면 한 놈에게 두 번씩 빼앗는 셈이 되기는 할 터!
‘뭐, 그냥 두기도 애매하잖아?’
어깨를 으쓱하면서, 당연히 뺏겠다는 마음을 드러내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는 너무 뻔뻔한 그 대답에 어이가 없는 듯했다.
―너한테 전혀 쓸모가 없고, 디스펠 완드처럼 특이한 것도 아니잖아? 대체 뭣 때문에? 저 녀석이 완드 들이대고 때리려 했으니까 만날 때마다 앙갚음이라도 하자는 거냐?
‘음, 앙갚음은 아니지. 먼저 낯선 사람에게 못되게 굴려 한 녀석이잖아. 묻지도 않고 따지지 않고 그랬으니까,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는 오래전에 해 놨을 거야! 암, 그게 바로 세상의 이치잖겠어?’
―어떤 세상에 그딴 이치가 있어!
‘게다가, 저거 좀 위험하잖아? 저대로 갖고 놀게 하다가 잘못되면 이 마을이 날아갈 수도 있잖아?’
―그건 그렇지.
마도구의 위험성에 대해서,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되뇌듯이 확인하는 투란의 말을 드라고니아는 부정하지 못했다.
마도구는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경우…… 혹은 일부러 마법의 제어를 포기함으로써 주변에 강력한 파괴를 일으킬 수가 있었다. 특히나 왜곡의 배낭처럼 사물을 압축하거나 축소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마도구의 경우에는 그런 파괴적인 성향이 한층 더 강하게 드러내기 쉬웠다.
수백 년을 버텨 낸 마도구가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자기 그렇게 파괴력을 뿜어내는 경우는 당연히 드물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앞으로 십 년이 안전한 것인가 한 시간이 안전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었다.
빼앗지는 않는다 해도 어떻게 조치를 취해 둬야 할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적어도 이 마을에서 상아탑의 마법에 볼일이 있는 한은, 최소한 그 일이 끝날 때까지는 안전을 확보해야 하잖는가.
‘딱히 이 마을에 애착은 없지만,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호의를 베푸는 거야. 암, 좋은 마음으로 위험을 제거해 주는 거라니까. 야, 너 너무 사람을 왜곡해서 보지 말라고! 내 의도는 착하고 좋은 거라니까!’
―그렇다고 해 두지.
한층 더 뻔뻔해진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는 포기했다는 듯이 대충 대꾸했다.
키득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일단 모닥불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벽의 틈새로 그늘진 곳을 지나 투란이 소리 없이 움직이는 사이에 완드를 갖고 있던 녀석은 씩씩거리면서 떠들고 있었다.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였지만 가까이 가는 중이니 녀석이 온 힘을 다해 퍽퍽 질러 대는 소리가 투란 귀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째서냐고! 내가 진정한 로젠베람의 혈통이잖아!”
펑 터뜨리듯이 질러 대는 말이었다.
“어, 그래…….”
“맞아, 다들 알고 있잖아.”
상당히 무성의한 대꾸들이 맥없이 나왔다.
그 때문에 한층 더 울화가 치민 듯,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나오는 말이 이어진다.
“그 계집애, 수작을 부렸어! 다들 제대로 봤냐? 봤지? 그렇지, 봤지?”
“음?”
“으음, 무슨 수작이었지?”
하지만 역시 흐느적거리고 맥없는 대꾸와 함께 서로 눈치를 보는 분위기만 가득할 뿐이다. 뭔가 우두머리, 두목 혹은 대장이라 인정하고 불러 주기는 하는데 이런 설득에 대해서는 심드렁하고 전혀 공감해 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년이 무슨 수작을 부렸어! 그러니까 내가 써야 하는, 나만 쓸 수 있는 포스 쉴더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거라고!”
“어, 그랬겠지?”
“아마 그랬을 거야.”
그야말로 동네 꼬맹이들이 투덕거리는 풍경이었다.
알드바인의 골목 귀퉁이에서, 페브라의 거리 구석에서 흔히 봤던 광경과 비교하면 어쩐지 규모는 작지만 모닥불과 이상한 마도구로 한층 더 사납고 어지러운 상황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리고 그 오간 말은 투란을 살짝 어리둥절하게 했다.
‘설마 저 녀석도 쓸 수 있었나?’
드라고니아도 조금 갸웃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바가 있는 듯 대답한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면 피를 계승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쓸 줄 모르는 물건을 빼앗으려던 꼴이었는데? 완드에 대해서도 공갈치고 있었고…….’
―확인하고 승인된 자에 한정해서 마도구가 사용되도록 보안 처리를 한 경우가 있지. 그러니까 혈통을 확인하고 승인도 나야 마도구를 쓸 수 있는데, 그 부분에서 막혔을 수도 있어. 투란, 네가 도와준…… 것은 아니려나? 아무튼 그 여자가 사용했던 마도구가 포스 쉴더인 모양이다만, 지금 오가는 말로는 원래 저 애들이 갖고 있었나 본데?
‘응? 아…… 거참, 웃기는 녀석들이네.’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문득 아직 어린 소년인 녀석이 씩씩거리며 보태는 말을 귀에 담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뭐야, 갖고 있다가 쓸 줄 몰라 팔았더니 바로 쓰는 것을 보고 눈 돌아갔다는 얘기잖아? 진짜 한심한 녀석이네.’
속아서 적은 돈에 넘겼네 어쩌네 하고 있었지만 투란이 정리한 결론은 그랬다.
이 폐허의 유적지, 마을 가까운 곳에서 우연히 꺼낸 것을 그냥 장신구로 알고 목에 걸고 다니다가 그 소녀…… 라카샤가 나타나 돈을 주고 샀고 그다음 날 보니 거기서 마법을 쓰고 있더라는.
투란과 마주쳤던 상황은 뒤늦게 쫓아가서, 역시 어쩌다 얻어 그 사용법을 우연히 알게 된 완드로 협박하고 빼앗으려 했던 모양이었다. 마도구를 못 쓰게 하는 완드라 하면 무시당할까 봐 불을 뿜네 어쩌니 떠들기는 했지만, 포스 쉴더를 무력화하고 뺏을 작정인 것은 분명했던 듯.
그리고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니 이렇게 한구석에 숨어서 헛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넋두리하는 중이라니…….
투란은 왠지 한층 더 심술궂은 기분이 샘솟는 것을 느꼈고 곧바로 이를 다음 행동에 반영했다.
푸스슷.
바닥에서 얕은 모래가 치솟았고 투란을 덮었다.
―응? 야, 그냥 몰래 빼내도…….
몸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모래로 이뤄진 가면과 차림새를 한 투란은 그 모습에 걸맞은 움직임으로 냅다 모닥불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말리는 소리는 이미 한 박자 늦은 셈이었다.
소년티를 겨우 벗어 내던 무리 속에서 곧바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아악!”
“새, 샌드맨이야!”
“리저드 샌드!”
“칼, 칼!”
“칼 들었어!”
억울함을 토해 내며 라카샤를 욕하던 녀석도 앞으로 굴러가면서 꽥꽥거리고 있었다.
모닥불이 단숨에 불티를 휘날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 녀석들, 샌드 리저드를 리저드 샌드맨이라고 하네?’
불을 걷어찬 발을 그대로 내리눌러 잔불을 꺼뜨리면서 투란이 갸웃했다.
―호칭이 뭐든 알고는 있는 거잖아.
투덜거리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이미 불 속에 던져져 있던 고리를 마력의 손길로 움직이고 있었다. 단번에 주변의 풍경이 이지러지면서 살짝 달라지는 듯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이 자리를 감춰 주고 있던 장막이 한 겹 벗겨지면서 더 이상 풍경 속에 감춰진 부분이 없어졌을 뿐이었다.
카르르르!
슬쩍 샌드 리저드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서 토해 내며 투란은 재빨리 사막 쪽을 향해 거칠게 뛰어 나갔다. 모래로 이뤄진 칼로는 허공을 그었고, 중간에 닿을 듯 가까워진 녀석들은 발로 차는 시늉만 하고 밀어내 굴려 보내면서.
결국 다친 정도라고 해도 살짝 살갗이 긁혔을 뿐인 녀석들을 남겨 두고 투란은 그 자리에서 재빠르게 벗어난 셈이었다.
그리고 남은 녀석들은 소년티를 벗어난 자신들의 외모를 잊은 듯, 불안함과 당황스러움에 몇이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뭔가 험한 꼴을 당하니 당장 집에 가야 한다는 듯.
그야말로 맞고 나서 징징거리며 엄마 아빠 찾아 집에 가는 꼬맹이들 아닌가!
덕분에 투란은 자신이 한 짓이 좀 심하지 않았나 하는 때늦은 생각마저 살짝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으흠? 저 녀석은 여기서 사나?
울분을 토하던 녀석, 다들 떠나고 혼자 남은 꼴이 되어서는 완드를 빼앗기며 맞은 자리에 멍 자국이 있는 꼴을 드러내는 채로 흩어진 불씨를 모으며 다시 모닥불을 피워 내려는 듯했다.
죽으나 사나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듯한,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그 표정 속에 한층 더 분하고 억울해하는 기색이 또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드라고니아의 말처럼 여기서 살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 꼴을 보고 투란은 잠시 한쪽 벽 너머에 숨은 채로 지켜봤다.
말로는 무슨 왕가의 혈통인 양 떠들던 녀석이 설마 이 집이라 할 수 없는 벽의 틈새를 보금자리로 삼는가 확인하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