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79)
‘얘, 정령 다루는 데 소질 있지?’
―뭐?
투란이 불쑥 묻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살짝 당황했다.
가만히 칼라드의 몰골을 살피면서 투란이 조금 더 자세히 말한다.
‘완드도 그렇고 그 포스 쉴더란 동판도 그랬어. 마도구에 대해서 아는 듯하지만 본격적으로 마법에 대해서 떠들라면 완벽하게 무식하지. 응, 너랑 알기 전의 나…… 심지어 몬스터랑 엮인 마법에 대한 이야기도 잘 모르는 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야. 하지만 이 고리, 정령이 힘을 발휘할 때는 몸이 반응하고 있잖아. 말로 뭐라 못 해도 몸으로 정령을 느낀다, 이거 드라코눔의 비전이 아닌 정령술에서 중요하게 여긴다며?’
―그래, 그렇지. 과연…… 이번에는 제법 눈썰미가 좋았다. 확실히 이 꼬마, 다른 것은 몰라도 정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소질이 있다고 봐야겠군.
이렇게 투란이 자신의 관찰에 대해 드라고니아의 동의를 얻어 낸 것은 그야말로 순간적이었다. 투란 앞의 칼라드가 ‘아주 잘’이란 말에 한층 더 발끈해서 볼이 더욱 붉게 달아오르는 표정을 겨우 완성하려는 순간, 투란의 입에서 먼저 묻는 말이 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정령을 다루고 싶냐?”
“이 망할…… 뭐요?”
참을 수 없어 욕을 하려던 칼라드가 움찔하면서 나오던 욕을 삼키고 되묻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니 기분은 지독한 욕을 하면서 배째라고 대들고 싶은 듯한데, 투란이 슬쩍 던지면서 이모저모로 살펴보는 눈길 속에 담긴 묘한 호기심을 깨닫고 억지로 눌러 참는 중이었다.
―호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품는 거냐? 과연 어려도 인간이로군.
‘욕하는 거냐?’
―절망 속에서 희망을 상상하며 냉정한 상황 판단을 재빨리 포기하고 맹렬하게 그 희망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인간이 추구하는 미덕이라 들었다만?
‘처음 듣는 헛소리야! 잠깐 닥쳐줘! 내가 헷갈린다!’
뇌리에서 번개처럼 오가는 대화를 끊기 위해 투란은 잠시 숨을 고르면서 중요한 생각을 하는 시늉을 했다.
칼라드는 그런 투란을 바라보며 긴장했다.
로즈벨 마을에서 줄곧 살아오며 벗어날 생각도 한 적이 없는 소년의 그런 모습이 무슨 의미인가 투란은 금방 알아차렸다. 어린 시절, 샤오콴 마을에서 로잭이 저런 모습을 보였었던 것이 기억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랐으니까.
“난 팀에 들어갈 거야, 투란. 팀의 멤버가 되어서…… 웃지 마! 이 마을에서 열다섯이 되었다고! 제대로 된 몬스터 헌터라면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가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아주 잘 안단 말이야! 그러니까 팀에 들어가서…….”
로잭의 희망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마을에서 자란 아이가 몬스터 사냥에 대단한 소질을 발휘한다는 것을 안다 해도, 마을까지 찾아온 몬스터 헌터나 그 파티, 팀의 능력은 그런 소질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래서 로잭은 홀로 마을을 벗어나 경계 도시까지 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고, 혹시나 해서 여러 팀과 파티에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자신이 뭔가에 소질이 있다고 끊임없이 드러내야 했다…….
칼라드의 모습에서 투란은 그런 로잭의 일면을 확실히 엿볼 수 있었다.
무엇이든 인정받고 싶어 하고, 그것을 바탕 삼아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희망.
왠지 장난기를 치우고 진지해지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투란이었다.
“정령, 이런 녀석들을…….”
말과 함께 투란이 손짓했다.
반지에 번져 가던 옅은 불길이 선명한 불꽃이 되어 칼라드의 눈앞에서 맴돌았다.
갑작스럽게 허공에 둥실거리며 빙빙 도는 불꽃에 칼라드는 흠칫했지만 눈길을 돌리거나 피하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꼿꼿하게 버티며 더욱 강렬하게 바라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의지를 발휘한 칼라드라도 등골을 타고 사각거리며 꿈틀꿈틀 덮어 오는 감각에는 화들짝 놀라 껑충 옆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모래 먼지가 칼라드가 서 있던 자리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뭐, 뭐……?”
놀란 소리가 칼라드 입에서 나올 때, 다시 불꽃이 그 눈앞을 어른거렸고 투란의 담담한 목소리가 칼라드의 귓가에 꽂혀 들었다.
“이렇게 정령을 다루고 싶냐고. 테라트, 앉을 자리.”
모래 먼지의 소용돌이가 적당한 나무 밑동처럼 뭉치며 단단해졌다.
칼라드가 그 광경에 눈을 크게 뜨며 부라릴 때, 투란은 허공에 앉는 것처럼 몸을 낮췄다. 또 한 줄기의 모래 소용돌이가 투란의 발 사이에서 치솟아 바로 굳어진 돌 같은 모래 의자를 만들어 냈다.
보기에는 볼품없고 그냥 낮게 잘라 놓은 통나무 밑동 같은 꼴이었지만, 칼라드에게는 그 의미가 분명하게 닿은 듯했다.
“모래 정령……! 불꽃 정령이랑 두 가지를 모두…….”
“다루고 싶어? 이상한 마법 같은 것이라 싫어?”
투란이 더듬거리는 말을 자르면서 다시 물었다.
압박하는 그 말투에 드라고니아가 핀잔했다.
―그만 보채라, 생각할 시간은 줘야…….
“시, 싫다니! 절대로 싫지 않아! 다루고 싶어!”
격한 칼라드의 목소리가 울렸다.
투란은 어이없어 침묵하는 드라고니아를 느꼈고, 먼지와 함께 흩어지며 사라지려는 가는 거미줄이라도 붙잡으려 하는 칼라드를 똑바로 바라봤다.
“쉬운 일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지?”
“어? 어…… 젠장, 목숨 걸겠어!”
움찔하고 미묘하게 당황한 듯했지만, 곧 소년의 치기 어리면서도 뒤돌아보지 않는 야망이 가득한 대답이 나왔다.
그 모습에 투란은 피식 웃었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
“정말로 걸어야 할 거야. 그럴 각오가 되었다면, 소개해 주지.”
“소, 소개?”
―소개?
칼라드처럼 드라고니아도 잠깐 어리둥절했다.
투란은 원형의 널따란 지하실,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했다가 귀퉁이가 조금씩 불길에 쓸려 나가는 풍경을 둘러보며 중얼거린다.
“홀시딘, 브린에게 나타났던 것처럼 여기 좀 와 봐요. 진짜처럼, 금칠하지 말고요.”
얼굴을 돌리기도 했고, 살짝 에어로를 시켜 바람의 방벽까지 쳐 둔 탓에 칼라드는 투란이 무슨 말을 하는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이어 허공에서 질풍이 거세게 맴돌고 사방의 거미줄과 먼지가 쓸려 가는 기괴한 현상과 함께 희끄무레하게 나타나는 사람의 형상까지 모를 수는 없었다.
“우어어! 으아! 유, 유령?”
“응? 어, 그러고 보니…….”
투란은 둥실거리며 실체인 듯이 나타난 홀시딘의 모습을 보며 칼라드의 외침을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홀시딘이야 평소처럼 둥실거리고 있는 것이지만, 알드바인 밖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런 모습은 역시 유령이라 착각하기 쉬울 것이다.
“마법사 처음 보냐?”
노골적으로 시비 걸고 있기는 해도.
“마, 마법사? 그, 그럼 그렇게 둥둥 떠 있는…… 마법?”
칼라드가 나름대로는 대담하게 대꾸했다.
“이 멍청이 누구냐? 왜 부른 거야? 맡긴 일은 어떻게 되었고?”
그러나 홀시딘은 칼라드를 그냥 무시한 채로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한적한 세상 귀퉁이의 애송이에게 주절주절 상아탑의 대마법사니 어쩌니 떠들며 시간 낭비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듯했다.
쓴웃음과 함께 투란이 가만히 손등에서 손가락 사이로 옅은 불길을 머금고 흘려 내는 반지를 움직이며 말한다.
“여기가 어딘지부터 따지셔야죠.”
반지가 된 고리의 정체를 간파하듯 날카롭게 바라보며 의아해하던 홀시딘이 ‘여기?’라고 되뇌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투란이 어디 있던 별 관심 없다가 겨우 확인하는 듯한 태도가 살짝 묘해 보였다.
“뭐야, 유적지 마을이라더니 유적 안에…… 으흠? 마법이 아직 조금 살아 있…… 얼레? 투란, 이거 설마……?”
연이어 나온 말은 맹렬하게 호기심이 움직이기 시작한 마법사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익숙해진 그 모습을 보며 투란이 칼라드를 눈짓하는 채로, 불길이 맴도는 손을 허공에 저으며 칼라드를 가리키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얘가 사는 곳이에요. 이 마을 사람들이 아는가는 모르겠지만…… 칼라드, 여기 다들 알고 있는 곳이니?”
조금 부드러워진 말투에 칼라드가 흠칫하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끄덕였다.
“아는 애들은 알고…… 어른들도 몇 사람 알기는 해요. 어, 저기 갈라진 틈새 때문에 여기서 뭘 꺼내려고도 해 봤을 거예요. 혈통이 맞질 않으면 그냥 벽에 들러붙은 조각이나 다름없어서 아무것도 못 얻었지만…….”
슬그머니 말투를 고치면서 나오는 대답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혈통이란 한마디에는 은근히 자부심이 담겨 있다는 것이 듣는 투란에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홀시딘 또한 그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 꼬마가…… 칼라드? 그래, 너는 혈통이 맞아서 완드를 떼어 낼 수 있었던 거냐?”
마법사답게 냉큼 완드부터 짚어 묻고 있었다.
칼라드는 새삼 흠칫했지만 조심스럽게 투란의 눈치를 보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완드에 관련해서 투란과 어찌 얽혔나 이야기를 시작하면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아예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영리하네.’
칭찬을 마음속에 담아 두면서 투란이 말한다.
“마스터 홀시딘, 완드 얘기는 나중에 하시고…… 우선 잘 보세요.”
“뭘 잘 봐?”
뚱한 소리로 홀시딘이 대꾸했다.
하지만 투란이 연이어 빠르게 손짓했고 불길이 칼라드의 주변을 오락가락하며 맴도는 광경을 홀시딘의 눈길은 정확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이 뭐라 하기 전에 알아차린 듯.
“음? 이 녀석…….”
곧바로 재미있다는 듯이 홀시딘이 손을 내밀었다.
둥실거리며 떠 있는 홀시딘이 그러니 칼라드는 움찔 놀라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지만, 홀시딘이 내민 손에서 흩날리는 불티의 반짝임에 한층 더 놀라 멈춰서고 있었다.
투란도 그 불티에 함께 놀랐다.
‘어라? 이거 시알라가 쓰는…….’
시알라의 불꽃 정령, 휠파이어가 토해 내는 불꽃 벌의 움직임과 아주 닮아 있었다. 거의 흉내 내서 그대로 따라 하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불티는 마력을 근간으로 삼았지만 분명히 정령이었다.
마치 드라코눔의 비전을 홀시딘이 쓰는 듯한데…….
―아니, 달라. 정령과의 계약 술식이 엿보여. 저건 우리 일족의 비전도 아니고, 이제까지 인간 사이에서 전승된 정령의 비술과도 맥락이 전혀 다르다. 저건 마치…… 그래, 홀시딘의 독자적인 마법 술식이 맞을 거야.
흥미로운 듯이 드라고니아가 냉철하게 분석하며 말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홀시딘의 불티는 못된 요정처럼 칼라드의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콕콕 찌르며 휘젓고 맴돌았다.
“으앗! 와악! 왜, 왜 이러는……!”
비명을 지르는 소년을 향해 홀시딘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로젠베람의 혈족이었나?”
“소질 있죠?”
투란이 재빨리 물었다.
잠깐 ‘뭐?’ 하던 홀시딘도 묻는 말의 맥락을 금방 알아차리고 대답한다.
“응? 아, 그 얘기였냐. 그렇지, 그 혈족이면 소질이 있을 수밖에. 한때나마 에아본 왕족의 혈통도 자기 일족에서 갈려 나간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였으니까. 옅게라도 그 피를 이었다면 정령에 대해 몸이 저렇게 반응하겠지. 음, 그래. 그래서?”
“가르칠 수 있겠어요? 정령을 다루는 방법, 애가 배울 수 있겠어요?”
투란이 곧바로 찔러 묻는 말은 살짝 홀시딘을 당혹시킨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저 신기한 꼬마랑 신기한 유적을 발견해서 불렀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야기가 갑자기 훌쩍 다른 영역으로 옮겨 갔다는 듯이 놀란 표정이었다.
“얘를? 왜?”
무슨 사이냐고 넌지시 캐묻는 듯한 표정이 곧이어 홀시딘의 얼굴에 드러났다.
투란은 불붙은 반지를 손바닥으로 옮겨 꽉 쥐었고, 반지는 다시 확장되면서 손바닥을 채우는 고리가 되었다.
“이걸 찾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 완드도 도움이 되었잖아요? 음, 게다가…… 재밌는 소질이잖아요? 필요하지 않아요?”
홀시딘은 칼라드보다 떠드는 투란 쪽이 더 재미있다는 듯이 보다가 갸웃하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조금 필요하기는 하다만. 아, 그 일은 어떻게 된 거냐? 이 녀석이 재미있어서 그냥 내팽개친 것은 아닐 테지?”
“길잡이라는 할배가 나타났어요. 그리고 전부 여관에 머물고 있죠. 아침까지는 꼼짝 않을 거고, 돌이 진짜였다는 것 말고는 별로 더 알아낸 것 없어요. 일단 나중에 얘기하고, 얘부터…… 어때요?”
“쓸 만해. 다만 강요할 수는 없다. 본인이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해도 힘들어. 적당히 소질 있다고 데려다 가르칠 수는 없어.”
홀시딘이 칼라드를 흘깃하면서 냉정하게 말했다.
뒤죽박죽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칼라드였지만, 지금 오간 말에 대해서는 확실히 포착한 모양이었다.
“모, 목숨 걸고 배울 거예요!”
“헝?”
말한 소년보다 홀시딘의 눈길은 투란을 향해 가늘게 꽂혔다.
―순진한 애한테 무슨 사기를 쳤느냐고 대마법사가 궁금해하는 것 같군.
드라고니아가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