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8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0)
‘야! 사기는 무슨!’
투란은 억울했다, 살짝.
칼라드가 순진하다니!
로잭을 닮은 만큼 순진한 것이랑 거리가 먼 녀석이잖은가!
―응?
투란의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갸웃하고 어리둥절했다.
뭔가 추억 속에서 꽤 순수한 소년이라고 회상하는가 싶었는데, 순진하지 않다는 이 강렬한 감정은 뭔가?
‘어른한테 사기를 치고 사기를 당하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러웠다고! 완드 들고 공갈치면서 강도질하려는 녀석이랑 다른 점은, 실패할 일은 미리 잘 피했다는 거야. 얘도 나 아니었으면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 이게 아니고! 후우욱!’
투란은 뒤죽박죽인 생각을 정리하며 한숨을 쉬었다.
홀시딘은 그런 투란을 물끄러미 바라봤고, 칼라드는 홀시딘을 보다가 투란을 보다가 하며 어느 쪽에 매달릴까를 고민하는 태도였다.
“마스터 홀시딘, 칼라드. 요점만 간단히, 용건만 간단히 하자고요. 간절히 배우겠다는 녀석이 소질까지 있어요, 마스터 홀시딘. 게다가 이곳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녀석이기도 하죠. 아, 여기에 대해서 잠깐 보여 드리죠.”
투란은 말을 하면서 고리를 올렸다.
고리가 불을 머금으며 다시 마법을 흘려 냈다.
천장의 중심에 거꾸로 매달린 듯한 모닥불이 피어났고, 주변을 감싸는 마력의 흐름이 생겨났다.
홀시딘은 재빨리 그 마력의 범위에서 벗어났기에 투란과 칼라드만 다시 천장 너머로 솟구쳐 올랐다.
벽과 벽 사이, 로즈벨 마을의 한 귀퉁이이며 사막과 맞닿은 폐허의 구석에 투란과 칼라드만 모닥불을 끼고 선 꼴이 되었다.
“어? 으?”
칼라드가 홀시딘이 함께 없는 것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마법사가 갑자기 사라졌다면, 이제 어찌할 것인가?
“괜찮아.”
한미다와 함께 투란은 다시 고리의 마법을 발동시켰다.
둘은 다시 모닥불 아래로, 가볍게 하강했다.
유적의 풍경 속에서 이를 모두 지켜본 홀시딘이 흥미롭다는 듯이 말한다.
“승강문(昇降門)이라, 이것 참…… 너무 고풍(古風)스러운데. 그야말로 고대의 유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구먼. 술식(術式)도 우리가 아는 거랑 차이가 좀 나고…….”
“연구는 나중에 하시고! 얘가 이쪽 일은 어쨌든 나보다…… 마스터 홀시딘보다도 잘 알잖아요. 이 유적도 그렇고, 마을 밖의 폐허도 그렇고. 부모도 없는…… 아, 칼라드 엄마 아빠 없는 거 맞지?”
투란이 주먹을 쥐면서 고리를 다시 반지로 바꾸고 불길을 거두면서 말했다.
어딘가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분위기가 말투에 가득 담겨 있는 채였다.
“죽었어요.”
칼라드의 낯에 울컥한 낌새가 살짝 떠올랐지만, 금방 체념으로 바뀌면서 대답이 나왔다. 동시에 눈치를 살피는 것이 부모가 있는 편과 없는 편, 어느 쪽이 좋은가 스스로 헷갈려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듯했다.
보고 듣던 홀시딘이 헛웃음을 흘리면서 칼라드에게 묻는다.
“고향을 떠나도 상관없는 게냐? 이곳과는 아주 다른, 낯선 곳으로 가게 될 선택이다. 그냥 낯선 곳도 아니고 춤추는 산맥이야. 몬스터가 나오고 온갖…….”
“갈게요! 춤추는 산맥, 갈게요!”
돌연 눈을 번쩍 뜨면서 활활 타오르는 눈빛과 함께 칼라드가 외치고 있었다.
투란이 맹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홀시딘은 입가를 살짝 뒤틀면서 한숨을 쉬었다.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중얼거린다.
―이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몰라.’
투란이 눈만 깜박이며 짐작도 못 하겠다고 포기하는 사이, 홀시딘은 짐작한 바가 있는 듯이 묻고 있었다.
“춤추는 산맥, 얘기를 들은 적은 있느냐?”
“몬스터를 사냥하고 모험을 하는 곳!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그렇……죠?”
칼라드의 입에서 냉큼 튀어나오던 대답은 투란이 입을 가리고 키득거리는 모습과 홀시딘이 삐딱하니 흘겨보며 조금 더 둥실 떠오르는 모습에 뭉개지고 있었다. 덕분에 더듬거리며 이어져 나오는 말은 꽤 조심스러웠다.
“아닌……가요?”
마법사의 신중한 대답이 나오기 전에 투란이 냉큼 말한다.
“아니긴! 절대로 틀린 말 아냐! 사냥하고 모험을 하지! 그럼!”
―본인이 원하든 말든 목숨 걸린 채로 말이지.
드라고니아가 질렸다는 듯, 가증스럽다는 듯이 투란이 생략한 듯한 말을 되뇌었다.
이미 말투에서 장난기 가득한 탓에 칼로드가 주춤했고, 홀시딘이 혀를 차는 소리부터 내고 말한다.
“뭐든지 해서는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어쨌든…… 솔직하다는 점은 좋다. 그 또한 정령을 다루는 자에게 중요한 소질이니까. 하지만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라. 앞으로 네 인생을 결정할…….”
“갈게요! 가게 해 줘요! 배울게요! 열심히 배울게요! 목숨 걸고 배울게요!”
진중한 마법사의 말에 칼라드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열망을 담아 눈을 번쩍이며 외치고 있었다. 킬킬거리는 표정으로 투란이 바로 여기에 보태 말한다.
“좋은 태도야! 그럼, 목숨 걸고 열심히 배워야지! 좋잖아요, 마스터 홀시딘도 이렇게 열정적인…….”
“넌 좀 닥쳐!”
파앙!
홀시딘이 못 참겠다는 듯이 한 손을 휘저었고, 공중에 나타난 금빛 덩어리가 투란의 머리를 후려치며 터져 버렸다.
“우어? 안 아프네? 깜짝 놀랐잖아요! 뭐예요, 이건?”
투란이 맞은 자리를 손으로 문지르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홀시딘은 한숨을 쉬었고 투란을 무시하는 시늉을 하면서 칼라드에게 말한다.
“네 선택에 대해 넌 앞으로 계속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떤 각오를 한다 해도 쉽지 않을 거야.”
칼라드의 머리는 계속 끄덕여지고 있었다.
뭔 말을 해도 별 의미 없을 것이 분명한 그 태도에 홀시딘은 쓴웃음을 짓고 투란을 이제 봤다는 듯이 눈길을 돌려 말한다.
“그러면 네 추천이니까 이 녀석에게 들어가는 돈은 너에게서 받겠다.”
“에? 잠깐! 추천 안 합니다!”
투란이 재빠르게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칼라드가 눈을 껌벅이면서 ‘추천?’이라 되뇌며 무슨 뜻인가 생각할 때, 홀시딘은 히죽 웃으면서 유쾌하게 투란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이미 해 놓고 뭘 안 해! 이 녀석을 데려가는데 들어가는 비용부터 기초적인 주거 식비까지 모두 네게 부담한다! 결정된 일이야! 뭐, 나중에 다시 받아 내든 말든 그건 투란 네가 직접 칼라드랑 상의하고.”
칼라드의 눈이 휘둥그렇게 뜨였다.
겨우 ‘추천’이란 말과 투란의 관계성을 깨달았다는 듯.
투란은 그런 칼라드의 어깨를 한 손으로 덥석 잡으며 묻고 있었다.
“갚을 거지? 마스터 홀시딘이 꼬박꼬박 정산해서 들어가는 내 돈, 나중에 다 갚을 거지? 그렇지? 응, 갚아야지! 암, 갚아야지! 죽을 각오도 했잖아? 목숨 걸었잖아? 빚 정도는 거뜬히 갚을 수 있어야지! 그렇지?”
“가, 갚아요! 갚아!”
꼭꼭 누르는 투란의 손길에 칼라드가 낯을 찌푸리고 꿈틀거리다가 숨을 몰아 내쉬면서 겨우 대답했다.
“그렇지! 그래야 한 사람 몫의 사나이지! 음하핫!”
툭툭, 손을 떼면서 먼지라도 털어 주려 했다는 듯한 손짓을 꾸미면서 투란이 상쾌하게 웃었다.
곁에서 보고 있던 홀시딘이 어처구니없어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칼라드는 살짝 끙끙거리다가 투란과 홀시딘을 연이어 바라봤다.
결정이 되었는데 이제부터는 어찌할 것인가, 어찌해야 되는가 묻는 소년의 표정이었다.
홀시딘이 그 생각하는 표정이 마음에 든 듯 뭐라 하기 전에 투란이 재빨리 말한다.
“이제 바람의 길 쓸 수 있는 거죠? 비컨도 꽤 정비된 것 같은데…….”
“음? 비컨? 아, 그거…… 이제 필요 없어.”
홀시딘의 대답은 예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투란이 ‘네?’ 하는 사이에 홀시딘의 손이 까닥거리면서 고리가 변한 반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명백하게 반지를 달라는 손짓에 어리둥절하면서 투란이 넘겼다.
“이 유적은 조금만 손을 보면 상아탑의 작은 거점,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는 상아탑의 대용(代用)으로도 쓸 수 있어. 게다가 지금 상황과 조건만으로도, 바람의 길을 거뜬히 구현할 도구가 되어 주기도 하지.”
홀시딘의 말과 함께 반지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반지는 고리가 되었고, 손바닥 크기를 가볍게 벗어나며 원형의 공간을 이루는 벽에 닿을 정도까지 커졌다.
벽과 고리가 만나며 여린 마찰음이 날 정도까지 되었을 때.
“칼라드, 넌 잠시 내 곁에 머물러야겠다, 괜찮지?”
홀시딘이 불쑥 물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어리둥절하던 칼라드였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대답이 나오는 순간, 홀시딘을 중심으로 세찬 바람이 흘러나왔다.
먼지와 거미줄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씻겨 나가듯이 사라졌다.
벽감의 진열장과 바닥에 널브러진 유적의 오래된 파편도 함께 사라졌다.
그 순간, 투란은 자신이 허공을 딛고 있다는 것을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우어엇! 말을 하고……!”
아래로 길게 열린 원형의 구멍, 정교하게 짜인 거대한 기둥의 안쪽 같은 풍경의 정상 부분에 홀시딘과 투란, 칼라드가 둥실 떠 있는 상황이었다. 어디서 왔는가 알 수 없는 희미한 빛이 까마득한 아래에 닿을 듯이 흘러내리고도 있어서 편안하게 본다면 굉장히 신기한 풍경이었다. 당장 떨어질까 말까를 걱정하는 입장에서는 일단 비명부터 지를 광경이기도 했고…….
구우우응, 위이잉.
빛이 미처 밝히지 못한 깊은 아래에서 무거운 음향이 울렸다.
무엇인가 살피려 눈을 두어 번 깜박하는 사이, 돌풍이 솟구쳐 올라왔다.
돌풍은 정확하게 칼라드를 휘감았고, 빛의 파편도 몇 가닥 끌어당겨 장막처럼 칼라드를 덮었다.
그리고 위로 쏘아지는가 싶더니, 훅 사라져 버렸다.
투란은 아련한 환청(幻聽)처럼 칼라드의 비명을 엿들을 수 있었다.
―끼아악!
“아…….”
어떻게 된 것인가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왜 칼라드만 저리 쏘아져 날아갔는가는 물어야 했다.
“홀시딘? 나는요?”
어째서 칼라드만 바람의 길로 날름 데려가고 투란은 남겨 놨는가?
홀시딘은 명쾌하게 말하고 있었다.
“상의할 일이 있잖아. 맡긴 일도 아직 안 끝났고!”
“어? 아, 맡긴 일…… 그거야 뭐…… 상의는 뭐예요?”
투란이 뚱하니 대꾸하다가 갸웃해서 되물었다.
그사이에 홀시딘과 투란은 훤히 뚫린 아래로 하강하고 있었다.
둥근 원형의 기둥 속, 벽은 다채로운 무늬와 함께 곳곳에 벽감이 자리 잡은 채로 뭔가 담고 있는 채였다. 칼라드라든가 이 마을 사람들이 도달했던 꼭대기는 그야말로 깊이 파묻힌 유적의 위쪽 조각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까 말했잖아, 여기 적당히 손보면 상아탑을 대신할 수 있다고. 그렇게 되면 투란, 너의 로열클래스로서 권한을 온전히 이 주변에서 발휘할 수 있어. 그리고…… 그래, 그 도감. 도감의 갱신도 가능하지. 이 마을에서 머물 곳을 고를 필요도 없이 바로 은신할 수 있는 쉘터 형성도 가능해. 나 역시 아주 쉽게 널 지원할 수 있고.”
“와아…… 근데 나랑 뭘 상의해요? 상아탑의 대마법사이시잖아요? 그냥 하면 될 일을…….”
듣다가 감탄하다가 갸웃하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야, 이 멍텅구리야!
황급히 드라고니아가 외쳤다.
‘응? 갑자기 왜?’
난데없이 비꼬는 말도 아니고 욕을 먹어서 투란이 움찔했다.
“역시 넌 대담하고 통이 커서 마음에 들어!”
껄껄 웃음을 섞어 홀시딘이 두 손을 번쩍 들며 마력을 아낌없이 흘려 내는 채로 외치고 있잖은가.
그 손 사이에서, 활짝 들어 올린 팔 사이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찬란한 금빛…… 단순히 허공에 맺힌 빛이 아니라 금괴의 광채가 번뜩이고 있었다. 척 봐도 순도 백이십 퍼센트라고 투란이 외칠 수 있는 금괴 더미!
“어? 아아아앗! 아, 안 돼애애애애!”
뒤늦게 투란은 깨닫고 외쳤다.
드라고니아가 뭘 말하려고 했는가, 굳이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홀시딘이 왜 저리 열심히 온갖 이점을 이야기했겠는가!
황금의 광채가 녹아내리며 마법의 촉매로 활용되며, 모른다면 알려 주겠다는 듯이 강대한 마법에 섞여 들며 투란에게 뼛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잘 깨닫게 해 주고 있었다.
오래된 유적, 그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정령의 마도구들이 상아탑의 마법을 만나서 새 단장을 했으니…….
쿠쿵, 쿠르릉.
로즈벨 마을이 살짝 울렸다.
외지인들은 ‘헉? 지진?’이라고 놀랐지만, 로즈벨 주민들은 조금 심드렁하니 ‘또 사막의 괴수가 근처를 지나가나.’라며 그냥 넘길 뿐이었다.
그리고 여관 창문 너머로 슬쩍 고개를 내민 길잡이 노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근처에 괴수는 없을 텐데? 유적 지하가 무너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