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
‘아, 이거 단숨에는 안 되겠네? 시간 좀 걸리겠다. 그동안 네 이야기나 좀 해 줘, 드라고니아.’
투란의 웅얼거리는 듯한 생각에 드라고니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 어이가 없는 듯도 하고, 기가 막힌 듯도 한 낌새였다.
‘왜?’
투란은 의아하다는 생각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이상한 것이 없다는 듯이.
금빛 회오리의 한 귀퉁이에 작고 검은 나선의 가닥을 걸고, 천천히 감아서 아래편으로 금빛의 흐름을 끌어당기면서 천칭의 축에 가지를 치고, 검은 줄기 같은 가지를 따라 금빛 회오리의 가닥을 쉬지 않고 당겨서 다시 저울접시를 만들어 그 위로 오러 몽거의 형상을 옮기는 것…….
투란은 이 풍경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매우 좋은 생각이라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 도대체 왜 드라고니아가 갑자기 기막히다는 느낌으로 침묵하는가를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넌 도대체가……!
울컥하는 그르렁거림이 별빛을 흔들면서 강렬하게 전해졌다.
그 울컥거림 속에서 문득 투란은 느낄 수가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그가 단숨에 이 금빛 회오리를 분쇄하고 흩어 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자잘하게 한쪽에 고리를 걸고 당기며 금빛 회오리를 야금야금 갉아 내는 듯한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고!
‘에이, 뭘 그리 무리해? 원래 일이란 차근차근, 실타래를 감는 것처럼 끈기 있어야 한다고.’
뭔가 뿌듯한 느낌을 가득 담은 당당함이 투란의 생각 속에서 짙은 파문이 되어 퍼졌다. 그리고 이는 보다 강한 드라고니아의 반발, 거의 격분에 가까운 으르렁거림을 불러왔다.
—뭐가 끈기가 있어! 이렇게 하면 네 몸이 서서히 변형되면서 오러 몽거의 살갗이 주는 방호력을 잃어버린다고! 그런 꼬락서니로 꼼짝도 못하고 있을 만한 곳이 아니라니까! 너 스스로도 그렇게 말한 걸 잊었냐! 정신 차려!
‘어? 아…… 그거야, 뭐…….’
* * *
흙도마뱀이 살며시 주변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무리에서 벗어난 놈이라기보다는 무리에서 뽑힌 놈인 것처럼, 다른 흙도마뱀 패거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관측하는 듯했다.
그리고 좀 더 떨어진 숲 속에서는 푸르스름한 눈빛을 일렁거리는 잔나비 떼의 흐릿한 모습이 느껴졌다.
눈으로 보는 시각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저 주변의 일정 범위를 지각하는 능력으로, 이를 파악하며 투란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네, 정말 저 녀석들 날 노리고 있네.’
드라고니아의 경고처럼, 흙도마뱀이나 마수 잔나비 패거리는 투란이 약화되었다 싶으면 일단 달려들어 물고 뜯고 찢어 놓을 낌새였다. 거기에 숨결을 따라 들락거리는 주변의 바람결은 여전히 독한 성질을 띠고 투란을 갈아 버릴 듯한 느낌이었다.
투란은 새삼 이곳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런 투란의 마음가짐, 자세에 호응하듯 우두커니 앉은 오러 몽거의 가슴의 잿빛 반점 속에서 꿈틀거리며 굵은 줄기가 넝쿨을 흘려 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가늘게 흘러나오던 덩굴줄기는 곧 굵게 엮이면서 오러 몽거를 통으로 휘감으며 둘둘 말아 가는 형세를 꾸민다.
가까이에서 간을 보던 흙도마뱀이 흠칫하면서 슬그머니 바닥에 흘러내리는 덩굴줄기를 앞발톱으로 쿡쿡 쑤시는 시늉을 보였다. 닿을 듯 말 듯 한 간격인 채로, 자신의 발톱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어찌 행동할까를 결정하겠다는 듯이.
‘힝, 이게 어디서!’
투란은 금세 마음을 정했다.
파앙!
콰지직!
덩굴줄기 한 가닥이 허공을 후려치는 소리를 냈고, 한순간에 몇 가닥으로 줄기가 갈라지며 흙도마뱀을 날카롭게 내리찍었다. 특별하게 가속된 듯한 그 움직임에 흙도마뱀은 꼼짝도 못하고 몸통과 사지를 뚫리며 땅바닥에 못 박힌 꼴이 되고 말았다.
순간적인 상황에 다른 흙도마뱀 패거리가 일제히 투란 주변에서 멀찍이 떨어졌다.
‘헤에, 어쨌든 써먹었네.’
투란은 좀 전의 폭발적인 덩굴줄기의 움직임을 되새기면서 미묘한 기쁨을 느꼈고, 그 느낌에 따라 자신의 마음속을 향해 큰소리쳤다.
—무슨 짓을……? 임모그 웜?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면서 확인하듯이 물었다.
‘응. 한번 터지면 그냥 녹아내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한번으로 덩굴줄기는 방향 잡고 찍을 수 있으니까. 거의 창이나 화살 같잖아?’
투란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해 줬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있다기보다는 멍청한 녀석들이 어디에 쓸 줄 모를 뿐이다, 하는 말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그를 기쁘게 했다.
드라고니아는 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어? 왜? 이게 나빠?’
조금 불안한 느낌으로 투란이 되묻고 말았다.
임모그 웜을 삼켰고 이 순간에 써먹었다, 몬스터 로드로서 이만하면 꽤 한 것 아닌가?
—난 몬스터 로드의 사정에 대해 잘 몰라.
‘쳇.’
뚝 부러지는 듯한, 시치미 떼는 낌새에 투란은 살짝 입술을 삐죽거렸다.
꽤에…… 과곽!
괴상한 소리를 내며 숲에서 잔나비 패거리가 아옹다옹하는 분위기를 풍겨 내는 것이 새로 느껴졌다. 심술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투란에게 그 분위기는 마치 저 녀석들이 자신들에게는 덩굴줄기가 뻗어 올 리 없다고 좋아라 날뛰면서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그럴 리가 있냐!’
강하게 그 분위기에 반박하는 생각을 한 투란은 즉각 바닥을 기는 덩굴줄기 한 가닥에 집중하며, 염원했다.
줄기가 바로 땅을 헤집듯이 파고 돌멩이 하나를 휘감았다.
돌멩이가 꽃봉오리라는 것처럼 덩굴줄기가 꼿꼿하게 섰고, 바로 휘청거렸다.
파앙!
한순간에 줄기에 감겨 휘청이던 돌멩이가 격한 소리를 내며 날았다.
퍼억!
‘우어! 맞았어?’
—맞히려고 한 거 아니냐?
잔나비의 얼굴에 반쯤 파고든 돌멩이를 놓고 투란이 놀라는 꼴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투란은 멋쩍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래도…… 설마 맞을 줄은 몰랐지!’
돌멩이를 던진다고 다 맞고, 화살을 쏜다고 다 적중할 리가 없잖은가?
게다가 두 눈 퍼릇하니 뜨고 있는 마수 주제에!
잔나비 무리가 괴상한 울음을 마구 흘리면서 멀어져 갔다.
아무래도 훤히 보이는 곳에 있다가 또 돌에 맞기 싫다는 분위기였다.
더불어 방금처럼 환호하는 듯이 투란을 향해 으스대던 분위기도 없어졌다.
‘음, 이제 좀 조용해진 거지?’
생각을 하면서 투란은 천천히 주변에 넉넉히 뿌려진 덩굴줄기를 움직였다.
오러 몽거의 형상을 덩굴줄기가 휘감으며 커다란 알처럼 둥글게 뭉쳐 들었다.
뭔가 다가온다면 이 덩굴줄기의 감각, 악마의 심장이 지닌 지각 능력에 의해 바로 알 수 있는 형태를 이룬 것이다.
* * *
‘키린은 대체 널 어떻게 하려고 했던 거야?’
투란은 곧바로 물었다.
빙 둘러 가거나 이렇게 저렇게 캐내는 따위가 아닌, 궁금함이 느껴진 대목을 바로 찍은 물음이었다.
별빛 무리가 조금 동요하듯이 일렁였다.
그 모습은 망설이는 듯하고,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듯도 보였다.
하지만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금방 흘러나온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사절이었다. 왕국 입장에서는 손님이었지
‘손님이 왕궁 말아먹자고 날뛴 거였어?’
어이없어하는 그러나 역시 말 돌리는 구석 없이 바로 묻는 투란이었다.
빠득, 돌연 별빛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강렬하게 맞물리고 엇갈려 도는 듯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투란에게는 거의 이를 가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미쳐 날뛰더라도, 나는 인간의 왕국에 오랜 세월을 넘어 찾아온 드라코눔의 사절이었다. 왕자인 키린은…… 어떻게든 나를 진정시켜서 드라코눔으로 돌려보내려 했지. 사절로 찾아와 잠시 말썽을 피웠다고 해도, 왕국과 드라코눔의 관계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말이다. 매우 인간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품고 있는 광기를 진정시켜야 했지. 키린은…… 그러기 위해 이곳에 와서 자신이 품은 몬스터인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뭐야, 그게? 이미 몬스터 된 마수 같은…… 아니, 널 욕하자는 게 아니고……. 어쨌든 너도 마수처럼 몬스터가 될 수 있는 거였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이미 몬스터가 된 마수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고 쳐도…… 넌 이미 키린에게 삼켜졌잖아, 진정시켜서 어쩌자고?’
매우 조리 있게, 기묘하게 정돈된 생각으로 투란이 반문했다.
별빛이 조금 영롱하게, 조금 희한하게 투란을 향해 반짝였다.
느닷없이 이 조리 있는 반박이 뭐냐는 듯이.
그러나 그런 느낌과 다르게 드라고니아의 이야기는 차분하게 이어져 나온다.
—맞다. 나 역시…… 키린의 문장 안에서 아주 잠깐 이성을 되찾았을 때, 지금 네가 한 그 이야기처럼 생각했고 반응했다. 몬스터 엠블럼 속에서 광기의 껍질을 벗고 자신의 존재를 되찾아 봐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그저 수치스러운 자신을 키린이 세상에 내놓지 않게 반항이나 하자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지.
‘흠…… 다루기 힘든 몬스터였구나, 너.’
투란의 짧은 평가였다.
드라고니아로부터 조금 쓴웃음을 짓는 듯한 기색이 풍겨 나오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래, 그렇게 받아들여진다면 키린이 적당히 포기할 거라고…… 아주 얄팍하게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미쳐 버린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이성적인 선택이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키린은 왕자로서, 거의 수백 년이나 끊겨 있던 왕국과 드라코눔을 이어 주기 위해 찾아온 사절을 그렇게 할 마음이 없었다. 괴물인 나 따위보다는 사절인 나를 더 필요로 한 셈이지. 그리고 키린에게는 사절인 나를 되돌릴 방법에 대한 지식도 있었다.
‘되돌려?’
—맹약, 고대의 계약. 내가 완전하게 이성을 회복하고 혼돈의 존재로서 키린과 계약하게 된다면, 계약된 존재로서 다시 이 세상에 나설 수가 있다고 여긴 거야. 옛날 이 세계에 찾아와 혼돈으로 뒤엉긴 이들이 몬스터 로드와의 계약을 통해 정명한 존재로서 이 세상에 선 것처럼. 이제는 몬스터 로드란 중계자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지만, 다시금 광기에 물들고 혼돈의 존재로 전락한 나 같은 자라면…… 한 번 더 몬스터 로드가 중계함으로써 이 세상에 설 수 있잖겠냐는 것이 키린의 생각이었다.
‘과연, 왕자님이시네.’
투란은 감탄했다.
순간, 드라고니아로부터 아주 미심쩍어하는 물음이 튀어나온다.
—내 말이 뭔 소리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
‘응? 널 데스 나이트처럼 소환할 거란 거 아냐?’
—데, 데스 나이트!
‘응. 깜박했는데…… 무슨 계약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자꾸 듣다 보니 생각났어. 아주 유명한 몬스터 로드, 카엘 이야기가 있었어.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마가 소환한 죽음의 기사를 후려잡은 다음에 삼키고, 계약을 해서 문장을 열고 불러냈다는 몬스터 로드 말이야. 몸이 변해서 데스 나이트가 되는 게 아니고, 옆에다가 데스 나이트를 불러낸다는 이야기거든. 키린 왕자님은 널 그렇게 불러내서, 드라코눔인가로 다시 사절로 보내려던 것 아니야?’
의외로 정연하게 흘러나오는 투란의 말이었다.
이는 잠깐 별빛을 고요하게 침묵으로 물들였다.
하지만 또 조급한 투란의 물음이 툭 하니 이어진다.
‘아니야?’
우르르르르.
거대한 울림이 별빛을 흔들며 ‘천칭’을 향해 몰려나왔다.
투란의 정신이 놀란 기색을 띠었지만, 그 색다른 느낌에 투란은 짧게 묻는다.
‘너…… 웃는 거야? 우는 거야?’
—아하하핫! 웃는 중이다. 아하하하핫!
‘내가 웃긴 이야기 했어?’
갸웃하며 투란은 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기억난 이야기에 드라고니아와 키린의 상황을 열심히 끼워 맞춰 본 것인데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소리를 울려 내더니, 웃는다고 하면서 쉬지 않고 그 거대한 울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드라고니아의 기분이 파악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투란의 생각을 이해한 듯, 드라고니아의 웃음기 어린 말이 나온다.
—과연 같은 인간이고, 몬스터 로드인 점도 같은 것이구나. 그렇게 쉽게 알아차리다니……. 한데 너 지금 기억하고 생각을 정리한 그거, 섀도 하트의 의식을 이용한 거냐?
‘쳇, 어쨌든 나라니까!’
투란은 부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