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1)
Chapter 197. 그림자 곁, 굴하람
“사기잔하요옷!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이런 사기를 치다니이잇!”
투란이 억울하다는 듯이 열심히 외쳤다.
하지만 이 외침은 살짝 공허했다.
투란의 눈알이 변해 버린 주변 풍경을 향해 열심히 구르는 탓이었다.
누가 봐도 아담하게 꾸며진 실내, 여관방의 풍경이었다.
홀시딘이 이뤄 낸 마법의 결과…… 쉘터.
침대가 있고 벽난로가 꾸며져 있으며 그 앞에는 소파와 탁자까지 있었다.
탁자 위에는 간단히 먹고 마실 수 있는 음식 바구니와 물주머니까지 덩그러니 놓인 채였다.
긴 여행을 하던 여행자라면 바로 쉴 수 있는 풍경, 심지어 한구석에는 장막이 드리워진 욕실도 엿보였다. 살짝 데워진 물로 채워진 욕조가 장막이 살랑거리는 틈새로 보이기도 했다.
이 마법의 결과를 살피며 드라고니아는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과연…… 겨우 발 디딘 어설픈 대마법사가 아니라 능숙한 대마법사의 수준에 올라와 있군. 그냥 두 해를 보내지 않았군. 대단하네.
그 의미를 투란도 공감하고 있었다.
옛 마법사의 강력한 유물을 얻었기에 상급 마도사이며 마스터였지만 아직 발 딛지는 못한 대마법사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 홀시딘, 그게 벌써 삼 년 차에 접어든 셈이었고 그에 따른 숙련된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전과 마찬가지인 한 가지는 금괴를 대량 소모한다는 점이었다.
‘대단해진 만큼 내 금덩이는 쓰지 말았어야지이이!’
그것이 금괴 주인인 투란의 공허할 뻔했던 울화를 알차게 채워 주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이 부분을 피식 하는 웃음과 몇 마디로 놀려 댈 뿐이었다.
―네 허락 받고 쓴 거잖아. 아까웠으면 아무 생각 없이 마법사를 향해 네, 네 하고 고개를 끄덕대는 짓은 하질 말았야지.
‘사기야아아!’
투란은 다시 한번 발끈했고, 아예 홀시딘을 항해 한번 더 소리까지 냈다.
“사기꾼!”
“블랙레온 좀 이리 내 봐.”
홀시딘은 듣는 시늉도 않고 까닥까닥 손가락질을 하면서 투란이 물통처럼 옆구리에 차고 있는 마법 배낭을 가리킬 뿐이었다.
“에? 왜, 왜요? 뭔 짓을 하려고…….”
대꾸하면서 투란은 눈에 안 띄게 팔뚝 속에 잘 숨겨 놨어야 했나 하는 생각과 함께 경계심이 가득함을 과시하듯 눈을 부라렸다. 적당한 헌터의 차림새를 하면서 그럴듯하게 물통처럼 매달아 놓고 편히 쓰려 했더니 마법사가 탐을 내다니!
―이 바보야, 누가 만든 마법 배낭인가를 생각 좀 해라!
드라고니아의 핀잔은 날카로웠다.
그래도 슬그머니 제작자를 향해 마법 배낭을 내려놓는 투란의 표정은 의심과 불안으로 물든 채인데, 홀시딘이 푸훗 새는 웃음과 함께 말한다.
“기능 추가를 하려고. 이전에 손을 댈 수 없었던 부분을 교정할 수가 있어. 그러면 마법 배낭을 좀 더 편히 쓸 수 있을 거야.”
“대마법사가 손봐 주는 거네요?”
살짝 쓴웃음을 머금고 이모저모로 어이없어하며 투란이 중얼거렸다.
홀시딘은 새로 낄낄거리는 웃음을 띤 채로 대꾸하면서 손짓으로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 워낙 좋은 소재로 만들었으니까. 그 원천이 되는 힘에 대해 연구도 두 해, 이제 세 번째 해에 접어들고 있으니까. 이럴 때 시험…… 커흠! 정비해 두는 것이 좋잖아? 아, 집중해야 하니 말 걸지 마라.”
시험이란 한마디에 투란의 눈이 부릅떴다가 가늘어졌고, 헛기침과 함께 슬그머니 말을 돌린 상아탑의 대마법사는 정말로 집중하고 있었다.
블랙레온,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사자 머리가 으르렁거리듯이 입을 열었고 배낭이 참았던 숨을 쉬듯이 볼록볼록했다. 느릿하고 선명하게 금색의 선이 사자 머리의 윤곽을 새로 그리듯이 반짝이며 그어졌다. 선은 허공으로도 그 가지를 내밀었다. 한쪽은 홀시딘의 손끝으로 한쪽은 투란을 향해 뻗어 나왔다.
―손 내밀어. 시크릿 키퍼의 마법이야.
드라고니아가 재빨리 알려 줬고 투란은 멍하니 마법을 구경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기묘한 정령의 냄새가 느껴지는 듯했는데, 거기에 로열클래스의 징표까지 반응하고 있다니…… 뭔지 몰라도 홀시딘이 굉장히 복잡하고 심오한 마법을 쓰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결과, 조금 더 반짝이며 정교한 마법의 광휘가 아련하고 은은하게 배낭과 투란, 홀시딘을 오가는 듯하더니 집결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홀시딘이 손바닥을 내밀며 미는 시늉을 했다.
금빛을 가득 머금어 더 이상 검다고 말할 수 없는 블랙레온이 투란의 손에 닿자마자 금빛 안개의 허상처럼 흩어졌다. 그 광경에 투란은 흠칫했지만 금방 손바닥을 타고 손등으로, 손목으로 번지며 자리 잡는 블랙레온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사자의 머리가 손등에서 손목으로 번지며 팔찌처럼 금색 줄기를 뻗어 내며 손바닥 쪽으로도 가지를 뻗었다.
―아케인 그라피티, 과연 카티야의 비전을 완전히 습득했군. 그걸 정령과 연계하다니…….
이모저모로 감탄한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에게는 뭔 이야기인가 납득할 구석이 없는 내용이었다.
그저 엄청나게 좋은 마법을 터득한 홀시딘이 투란의 마법 배낭을 더욱 좋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배낭이 문신이 되었다?
“어? 에? 음? 어으…….”
뭐라 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 하는 투란이었다.
홀시딘이 마법을 마무리한 듯, 가만히 손을 거두면서 킬킬거리는 얼굴로 말한다.
“본래 기능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강화하고 추가했다. 소소한 것 빼고 중요한 것만 골라 보자면 투란 너에게 귀속, 조금 더 직관적이고 편리한 수납과 보다시피 형체 변화를 통한 문신화지. 뭣보다 알아 둬야 할 것은 추가 기능이라 할 수 있는 문신화, 그건 몬스터 엠블럼과 호응해서 사용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능이야. 그래, 몬스터의 본능을 다루는 것처럼 사용할 수 있어. 소소한 제어는 느껴서 알 수 있지? 금이 좀 소모되기는 했지만 그 이상의 효용성이 있어! 음하핫!”
투란은 입을 벙긋거렸지만 아무 소리도 못 냈다.
멀쩡한 마법 배낭에 뭔 수작을 부렸기에 또 금괴를 소모했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블랙레온의 금빛 문신은 마치 몸의 일부처럼 투란의 의식 속에 자신의 기능을 투영해 ‘알려’ 주고 있었다.
그 지식을 공유받는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감탄하는 중이었다.
―깔끔하군, 정교하기도 하고. 아무리 허락받았으니 너에게 통하게 된 마법이라도, 이렇게까지 정교할 수 있나 싶군. 몬스터 엠블럼에 대해서 언제 이렇게 깊이 연구를 했지? 아케인 그라피티가 이렇게 적절하게 문장의 마력에 적응하다니…….
무슨 이야기인가를 생각하지 않아도 투란은 몸으로 한층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손등에서 손목으로 번진 사자의 갈기, 그 금빛 가지가 손목을 감고 손바닥으로 흘러 나간 부분으로부터 배낭 안의 물품을 바로 꺼내 쥘 수 있는 것부터 손에 닿는 것을 바로 배낭 안으로 집어 담을 수 있는 것까지.
‘도둑질하기 딱 좋잖아? 더듬고 만지는 것만으로 쓱싹 집어 담을 수 있다니! 이 무늬, 평소에는 감출 수도 있고 반짝이지 않고도 쓸 수 있어! 우와! 완전 도둑놈을 위한 마법 배낭이 돼 버렸어!’
―도적의 수납 장비로 반지가 자주 선택되는 까닭이 그렇다고 들었다만, 홀시딘이 너한테 도둑질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떨떠름하니 웅얼거리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은 주먹을 꽉 쥐었고 금빛의 무늬가 사라지도록 했다.
그 주먹을 펴니 곧바로 시커먼 가죽 물통처럼 빵빵하게 부푼 블랙레온이 본래의 형상으로 손바닥 위에 올려졌다. 다시 주먹을 쥐는 순간, 거리의 요술처럼 블랙레온이 다시 금빛 무늬로 변하며 손아귀 속으로 녹아드는 듯했다. 그다음에는 배낭 안에 담아 뒀던 단검이 불쑥 투란의 손에 쥐어지듯 나타났다가 푹 꺼지듯 사라졌다.
그렇게 몇 번 자유롭게 시험해 보는 시늉을 하고 나서 투란은 진지하게 물었다.
“왜요?”
홀시딘은 무엇을 묻느냐고 되묻지 않았다.
“마석을 담은 편지 의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 줬으면 한다.”
울컥한 외침이 느닷없이 투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놔아앗! 역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어! 왜 말도 안 했는데 대뜸 마도구 강화 수선을 해 주나 했어! 심지어 내 금덩이 써 가면서 그래 놓고! 뭘 시키겠다는 거냐고요오! 나 돌아가서 쉬고 싶은데엣!”
침을 팍팍 튀기는 투란의 낯짝이 홀시딘의 얼굴 가까이 들러붙으면서 터져 나오는 소리이기도 했다.
홀시딘은 느릿하니 소매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으면서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씩씩거리는 투란이 말을 멈춘 사이에 다시 입을 열고 있었다.
“상아탑의 서로게이트 설치 비용은 일단 빌린 것이니까, 나중에 상아탑의 금괴로 다시 채워 넣을 거야. 당장 로열클래스 마법을 중계 삼아 쓰느라 너의 금괴가 필요했던 것뿐이지. 블랙레온은…… 네 전용이잖아! 그 정도 소모는 네가 감수해! 아깝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그 이상을 벌어들일 기회를 지금 알려 주고 있잖냐.”
능숙하면서도 능글맞은 마법사의 말이었다.
다시 채워 준다는 말은 투란의 기분을 반쯤 행복하게 채워 줬고, 마도구의 강화는 살짝 움찔하면서도 그냥 감수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으며 마지막에 붙은 금괴를 벌어들일 기회란 말은 슬그머니 입을 다물고 귀를 쫑긋하게 했으니까.
그럼에도 투란은 마음의 절반쯤은 행복하지 않게 날카로운 경계를 유지하도록 애쓰고 있었다.
“무슨 기회요? 마석? 어쩌라고? 그 길잡이 할배한테서 뺏으라고요?”
“얀마! 내가 무슨 로그메이지냐? 강도 청부를 내가 왜 해! 너 설마 그동안 강도 짓이라도 하고 다닌 거야? 설마 그랬어?”
“누가 강도 짓을 해요! 그럼 뭔 기회인데요? 금괴를 벌긴 버는 거예요? 자세히 좀 말해 보라고요!”
몇 마디 오가면서 툭탁거리는 사이, 투란의 뇌리에는 헛기침하는 드라고니아의 말이 살짝 스며들기도 했다.
―야, 너 완드 빼앗았잖아. 그거 강도 짓 맞아. 심지어 여기서는 열쇠인 마법의 고리도…….
‘닥쳐! 내 편 들 거 아니면 닥치고 있어!’
재빨리 표정 관리를 하면서 투란은 홀시딘을 당당하게 노려봤다.
홀시딘은 후우 한숨을 쉬면서 둥실거리던 몸을 소파에 털썩 떨구면서 그 한구석을 손짓했다. 투란이 소파 한구석에 가서 앉으니, 그제서야 조금 진지하고 신중한 표정으로 홀시딘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침 떼지 말고, 애초에 내가 지켜보라 할 때부터 어림짐작은 하고 있었잖아. 마석은 품질에 따라서는 금보다 훨씬 귀한 가치를 갖는 보석이니까. 보통 보석보다 훨씬 귀하기도 하고…… 아, 지켜보면서 편지의 의뢰에 대해 좀 엿들은 것은 없었냐? 어떻게 여기까지 의뢰받고 왔다든가, 그런 사연 말이야.”
“살짝 듣기는 했어요. 마법사 브린도 몇 마디 떠들기도 했는데…… 아, 여기 거의 이십 년 만에 의뢰받고 나타난 헌터 파티라고 하던 것 같던데? 어, 이 얘기는 이미 했잖아요? 음, 여관에서 따로 들었던 얘기라면…… 라바 드레이크니 아케인 라바 비스트니…… 들은 적 있어요?”
“듣지는 못했고 읽은 적은 있지. 몬스터 도감 속에 구체적인 것 없이 소문이라고 언급된 정도일 거야. 그게 언더섀도우 지역의 이야기였다면, 상아탑의 정보에서는 누락될 수밖에 없겠지. 음, 투란 언더섀도우에 대해서 읽었니?”
“아뇨, 아직.”
갸웃하다가 고개를 젓는 투란을 보며 홀시딘은 조금 더 신중하게 말을 골라 이야기를 잇고 있었다. 너무 신중해 보여서 투란도 비딱한 태도를 치우고 진지하게 귀를 기울어야 했다.
“언더섀도우는 춤추는 산맥에 여섯 왕국이 성립되기 이전, 고대 육왕국보다 앞서 생겨난 이적(異蹟)의 자취야. 쉽게 말하자면 현재로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고대의 대마법이 남긴 흔적이라고 하지. 그 때문에 상아탑은 물론이고 현존하는 마법의 체계로는 제대로 해석하고 납득하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수십 년 전에 갑작스럽게 그쪽에서 날아든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거기 담긴 마석은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어. 그래, 당연히 상아탑에서도 얼마 동안은 격하게 그 의뢰에 응해 봤다. 하지만 그 이전에 왜 그곳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는가에 대해서 더욱 확실하게 깨달은 것으로 끝났지.”
“거기 몬스터가 그렇게 강한 거예요?”
호기심이 새록새록 솟아나서 투란이 얼른 물었다.
홀시딘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답한다.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어. 투란, 언더섀도우에서는 상아탑의 마법사가 심각하게 약해진다. 그 그림자 아래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마법사는 자신의 본신 마력……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깥에서의 어떤 도움도 없이 순수하게 자신이 지닌 도구와 기량에 의지해서 버텨 내야 한다.”
“그건 원래 당연한 거잖아요?”
투란이 납득할 수 없어 되물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납득한 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파워 소스…… 투란, 상아탑의 지원을 못 받는다는 이야기야.
홀시딘도 거의 동시에 말하고 있었다.
“상아탑의 마법사에게는 당연하지 않아. 우리는 춤추는 산맥에서조차도 탑을 세우고 마력의 지원을 받는 마법사이니까. 순수하게 자신의 마력만으로 상황에 대처한다는 것은 아주 낯설고 이상한 일이 돼 버린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탐사 금지 구역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걸 잊고 있었던 거지. 아니, 마석 때문에 모르는 척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이어지는 이야기에 투란은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