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2)
검은 바다에서 밀려오는 바람은 아침 햇살 속에서 차갑게 로즈벨을 훑고 지나갔다.
해안의 도시 풍경은 그런 일에 익숙한 듯 보였다.
투란은 무너진 폐허의 한 귀퉁이 벽 위에 쪼그리고 앉아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중이었다. 바닷바람과 꽤 다른 사막에서 몰려오는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뭔 바람이 앞뒤로 불어 대냐.’
익숙하지 않은 바람에 대한 불평을 소리 없이 툴툴거리는 중이기도 했다.
한쪽은 덥고 한쪽은 서늘한 기묘한 바람결이 로즈벨을 경계 삼아 서로 부딪치는 듯한 느낌이 투란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그 느낌에 투란은 슬그머니 짜증 난다는 시늉을 하는 셈이었다.
―한두 달이 아니고 두 해가 흘렀다는 것이 이제 실감 나냐?
드라고니아가 슬쩍 놀리듯이 물었다.
‘뭐…….’
아니라고 받아치지 못하고 투란은 한숨을 쉬었다.
유니콘홀드, 그 마법의 성채를 삼켜 정리하는 동안에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예 관심 둘 여력이 없었기에 그저 좀 오래 걸리거니 여겼을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모래 미궁에 떨어져 물러설 수 없이 모래왕의 일에 휘둘렸을 때는 말로 듣기는 했지만 딱히 느끼는 바는 없었다. 그저 황당한 일을 겪고 있구나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홀시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보니 2년이란 시간이 그 이상으로 길었다는 기분이 훅 치고 들어왔고, 황당하다는 생각조차 사라질 정도로 맹하고 멍할 뿐이었다.
‘떠날 때는 몬스터 헌터였는데 돌아갈 때는 몬스터 로드여도 괜찮다니, 좀 어리둥절하잖아.’
―그런가? 딱히 너와 친분이 있는 인간의 수가 적으니 별 상관없잖아? 홀시딘의 말처럼 말이다. 오히려 그렇게 이야기를 맞춰 준 것이 너에게도 편하잖아?
‘편하긴 편하지, 편해…….’
드라고니아의 담담하면서도 갸웃하는 말에 투란은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투란이 알드바인에서 나오고 3년째, 확실히 투란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다고 할 수 없었다. 아니, 알드바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숫자를 놓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극소수라는 편이 맞았다. 그나마 희미한 소문으로 투란에 대해 퍼진 것이라면 하클의 장비로 방벽을 타고 날던 녀석이라는 정도인데…… 굳이 그런 이야기를 오래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홀시딘은 그런 점에서 착안했고, 몬스터 로드이면서 몬스터 헌터인 척하느라 투란이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는다는 점을 떠나 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얼버무리기로 했다. 하급 헌터였던 투란이 어쩌다 몬스터 로드가 되어서, 잠시 사람 사는 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몬스터의 본능을 제어할 때까지, 몇 년에 걸쳐서 인적이 드문 곳을 떠돌며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어찌 보면 아주 그럴듯한, 당연하기까지 한 설명이었다.
보통 몬스터 로드가 되고 나서 인간으로서의 본능과 몬스터의 본능을 가늠하고 다스린다는 것은 한두 해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 상식적이니까.
몇 년을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나서 몬스터 로드가 되었다고 하면 오히려 적당히 받아들이기 쉽다 할 지경.
하지만 투란은 알고 있었다.
‘대마법사가 그냥 나 편해지라고 그랬을 리가 없잖아?’
드라고니아가 픽 웃는 낌새부터 전해 왔다.
―물론 홀시딘 입장에서도 여러 가지로 편하기는 하겠지. 몬스터 로드인 너를 헌터의 일로 부르는 불편한 일은 없어지니까.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적당히 말하기도 했잖아? 오우거의 힘이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고. 딱히 숨긴 것도 아닌데 왜?
벅벅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당장 내가 필요한 일도 없으면서 그렇게 준비해 놓은 거잖아. 거의 이 년 넘기고 삼 년 만에 만났다고 해도 될 지경인데 만나자마자 그런 이야기로 날 둘러대 놨다니…… 도대체 마법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 너도 그렇게까지는 안 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
―확실히 상아탑의 마법사가 다양한 상황에 미리 준비하는 성향이 짙기는 하지. 그런 면은 우리 일족도 꽤 감탄할 때가 많지. 하지만 홀시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해서 너의 귀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잖아. 그냥 아는 처지가 아니라 시크릿 키퍼니까. 게다가 키유나의 일도 있었으니까.
‘음…… 그건 뭐…….’
후우, 가벼운 한숨이 투란의 입가에서 새어 나갔다.
홀시딘이 언제 돌아올지 모를 투란에 대해서 미리 이것저것 잔뜩 대처 방안을 만들어 둬야 했던 계기는 키유나 때문이었다고 했다.
투란이 떠나고 나서 몇 달, 길어 봐야 반년 정도 넘었을까 하는 시점에서 불쑥 키유나가 찾아왔고 시알라가 담요를 들고 와서 신분 보호를 요청했는데 알고 보니 대마녀!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홀시딘이 식겁할 일이었다고 했다.
간밤에 그 일을 이야기할 때 정말 눈에서 불을 뿜는 표정으로 투란을 한 대 치고 싶다는 듯이 이를 벅벅 가는 홀시딘의 모습은 꽤 섬뜩했다. 주먹도 아니고 헬플레임 마법으로 패고 싶다는 낌새가 역력했으니까.
투란도 누가 대마녀인 줄 알았냐고 둘러댔고 그 말이 조금 먹히기는 했지만…… 사룡좌에 홀로 대드는 마녀가 지나가던 로그메이지 따위가 아닌 정도는 짐작하지 않았느냐고 험한 소리만 잔뜩 듣고 말았다.
그리고 그 험한 말은 멜란드가 그 때문에 남매를 대표해서 투란을 찾아 나설 뻔했던 이야기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시알라는 페란드와 함께 금빛매의 쉼터를 지키고, 제란드는 멜란드가 떠날 경우 중간 연락책을 맡느나는 구체적인 계획도 있었다고…… 키유나가 여러 가지 상황을 말하면서 투란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말리지 않았다면 멜란드는 지금쯤 대사막을 헤매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니, 투란에게는 꽤 뜻밖인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어떤 풍경인가 보고자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런 투란에게 홀시딘은 아주 매몰차게 일감을 맡겼다.
‘매정한 대마법사 같으니라고.’
―응? 그 유혹에 넘어간 네가 할 말이냐?
투란의 투덜거림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투란은 좀 더 툴툴거리고 싶었지만, 반발할 말은 없었다.
“어차피 삼 년이나 사 년이나. 한 오 년 넘겨도 상관없게 되었잖아! 하지만 마석에 대한 정보는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몰라! 야, 마석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 금보다 귀해, 금보다!”
그런 홀시딘의 말에 ‘가서 마석 캐면 전부 내 거예요!’라는 대꾸부터 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홀시딘은 매우 유쾌하게 ‘그건 당연하지! 정보에 대해서도 상아탑이 적절한 보상을 할 테니까 걱정할 것 없어! 어허, 설마 공짜로 부려 먹겠냐!’라는 대답을 해 주기도 했다.
‘아으, 썩을!’
뒤늦게 미묘한 후회가 투란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엉겁결에 그딴 소리를 했기에 꼼짝없이 길잡이 할배를 따라가는 헌터 일행을 졸졸 따라가야 할 꼴이 되었으니까.
―너 은근히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는 후회보다는 호기심이 더 큰 투란의 기분을 들쑤시듯이 말했다.
‘재미까지 없는 일은 아니잖아. 궁금하기도 하고. 마석이라든가 라바 어쩌고 하는 몬스터라든가. 춤추는 산맥에서 마석 광맥은 아주 희귀하다잖아. 부스러기 모아 가공해서 겨우 마석으로 써먹는 것이 대부분이고.’
―흔했다면 홀시딘이 너에게 바로 부탁도 안 했겠지.
‘음, 뭐…….’
―투란, 여자가 온다.
‘응, 그래…… 뭐? 여자?’
한참 떠들던 것과 전혀 다른 말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투란은 어리둥절했다.
홀시딘이 맡긴 일에 대해서 박자를 맞춰 더 이야기하나 싶었는데 무슨 여자가 온다는 말이 툭 튀어나오는가? 프로브로 지켜보자고 한 쪽은 헌터 일행이었고 할배 쪽이었으니 온다는 말도 알맞지 않은 듯했다.
‘라카샤?’
두건을 쓰고 손에 든 동판으로 이리저리 가늠하듯이 불쑥 담장 한구석에 나타난 사람이 누군가 투란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분명히 그 오빠란 작자가 ‘라카샤’라 불렀던 소녀였다.
―호오? 포스 쉴더라더니, 마력 탐지 기능도 있었나?
한번 더 갑작스럽게 말하는 드라고니아였다.
‘뭐? 뭔 탐지? 어라?’
움찔하면서 투란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동판에서 흘러나오는 미묘한 힘이 주변을 가볍게 두드리며 흘러 퍼지며 묘한 메아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동그란 동판을 든 소녀 라카샤는 그 메아리를 느끼며 뭔가 찾는 듯이 보였다.
‘이거……?’
살그머니 스쳐 가는 옅은 바람 같은 마력에 투란이 간지러움을 느끼며 어이없어하니 드라고니아가 바로 말한다.
―기능이 아닌데? 재밌군. 마도구의 기능을 응용하고 있는 거라니…… 응? 아, 그래. 마도구를 통해서 촉감으로 느끼고 있는 거야. 주변에 마력에 반응하는 것을 찾는 중인 셈인데…… 음, 아무래도 홀시딘이 남긴 흔적 때문이려나? 정리했어도 어제와는 다른 마력 반향을 일으킬 테니까.
흥미짙은 그 말을 통해 투란은 라카샤를 한층 더 기묘하게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뭔가 눈이 마주치면 반짝거리는가 싶더니, 마도구를 본래 기능에서 벗어난 용도로 사용한다니.
‘쉬운 짓 아니지?’
―마도구에 따라 다르지만, 칼라드가 엄두도 못 낼 짓인 것은 확실하다.
드라고니아가 더욱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투란은 발아래를 더듬으면서 자신의 발아래로 다가오는 라카샤를 보며 입을 열어 소리 냈다.
“간지러운데…….”
“아? 아앗!”
갑작스러운 말에 라카샤가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다가 놀란 듯이 뒷걸음쳤다.
이리저리 돌아오면서 폐허의 높은 벽을 올려다보질 않았기에 투란이 앉아 있는 모습을 전혀 모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투란이 불쑥 던진 말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으니, 라카샤는 눈을 깜박이며 투란을 바라볼 뿐이었다.
투란은 잠깐 어쩔까 하다가 문득 홀시딘과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간결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내가 마력에 좀 민감한 몸이라서…… 그걸로 뭘 찾는 거예요?”
“아, 그래서 간지럽다고…… 아! 지난밤에 이 근처에서 뭔가 강한 마력이 발생한 것 같아서…… 혹시나 해서 와 본 건데…… 여기서 뭐 해요?”
엉겁결에 대답하던 라카샤가 동판을 품속에 갈무리해 넣으면서 갸웃하다가 투란에게 묻고 있었다.
그 표정을 통해 투란은 마력에 민감한 몸이니 뭔가 느끼고 왔느냐, 무엇을 찾았느냐 혹은 아무것도 없어서 그러고 있느냐 묻는 말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냥 순수하게 일없이 게으름 피우냐고 묻는 것 같다만?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느낀 바를 바로 부정했다.
‘아냐!’
살짝 으르렁거렸지만 투란은 곧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지나치게 과장되게 상대방의 의도를 짚은 것은 맞는 듯했으니까.
어쨌든 여전히 반짝이는 기묘한 광채를 눈동자부터 시작해서 온몸 깊숙한 곳까지 드러내는 라카샤를 향해 투란은 적당히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만…….
“밤을 이 근처에서…….”
막 이렇게 말문을 여는 찰나, 우렁찬 목소리가 쳐들어와 하던 말을 멈춰야 했다.
“라카샤! 어디 있는 거냐, 라카샤!”
듣기만 해도 바로 그 오빠란 작자인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맹하니 투란이 라카샤를 보니, 라카샤도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막 벽을 돌아선 그 오빠란 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응? 헛! 네놈! 내 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문제는 이렇게 엉뚱한 외침을 터뜨리면서 대뜸 칼을 확 뽑아 들었다는 점이다.
―저 인간, 망상증이라도 겪고 있나 본데?
화르르, 칼날을 타고 퍼지는 불길을 보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릴 지경이었다.
‘나도 궁금하네.’
투란이 함께 어이없어했다.
“오빠! 아무 짓도 안 했어! 먼저 여기 있었을 뿐이라고!”
라카샤가 급히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말을 라카샤의 오빠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뭣? 매복하고 있었단 말이냐?”
이쯤 되니 투란도 ‘매복이 무슨 뜻이었지?’라는 생각부터 하며 입만 벙긋거릴 지경이었다.
화르르!
불길이 칼날에 더욱 짙게 맺혔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당황한 라카샤가 동판을 다시 꺼내며 오빠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모양이군. 피해망상이라든가, 누이에 대한 과보호 성향이 아닐까?
드라고니아는 한가하게 중얼거렸다.
투란은 그 말을 ‘미친놈’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엮이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럼, 오해는 오누이끼리 풀기로 해요. 난 일이 있어서…….”
훌쩍 반대편으로 뛰어내리듯이 그 자리를 떠나는 투란이었다.
라카샤는 신기하지만, 그 오빠란 미친 자를 때려눕히고 알아볼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