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3)
상큼한 걸음으로 재빨리 멀어지고는 있었지만, 투란은 귓가에 들려오는 오누이의 작은 다툼을 엿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벽이 걸러 내고 흐려 버리고 있기는 했지만 투란의 귀가 너무 밝은 탓이었다.
“아니라고! 먼저 여기 와 있었다고!”
“어떻게 너보다 먼저 와 있을 수가 있단 말이냐, 정말 저놈을 따라온 것이 아니겠지? 라카샤?”
“마력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그 기사도 말했잖아!”
“고귀한 기사와 이런 변변찮은 마을의 애송이를 비교하지 마라! 라카샤, 너는 그런 얼뜨기 애송이와 어울리지 않아!”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오빠, 그만해. 그런 기사와 내가 어울릴 일도 없잖아.”
“무슨 소리냐! 유물이 우리 혈통을, 라카샤 너에게 짙게 나타나는 혈통을 증명하고 있잖니! 우린 고대 귀족의 핏줄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더 못 참겠다는 듯이 아예 돌아서서 움직이는 라카샤, 그 뒤를 쫓으면서 계속 잔소리해 대는 듯한 그 오빠의 낌새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잠시 발을 멈추고 갸웃했다.
“기사?”
게으름뱅이 마법사 브린이야 확실히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기사라니, 그런 작자가 있던가?
투란이 아는 한, 기사란 보통 오러 윌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오러 윌더가 아닌 채로 기사라면 반드시 명예 기사라고 따로 부르면서 ‘약함!’이라고 한구석으로 치워 놓는다고 하잖던가.
설마 머나먼 곳에 와서 오러 윌더가 아니더라도 기사일 수 있는 풍속이 떡하니 자리 잡은 탓인가.
―오러 윌더 맞는데?
드라고니아가 뭔가 가늠하다가 불쑥 말했다.
‘찾았어?’
투란이 짧게 물었다.
로즈벨은 그리 큰 마을이 아니었고 그 기사가 누구든 간에 마을 원주민과는 티 나게 다를 테니까, 프로브를 몇 기 움직이면 꽤 빠르게 찾을 수 있을 듯했다. 찾는다고 의아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배에 걸린 문장이 의복에 새겨진 것이랑 같다. 흐흠, 여기 뭐 하러 왔을까?
‘그런 호기심은 어제 말했어야잖아!’
한가한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투란이 툴툴거렸다.
―딱히 너랑 마주친 것도 아니고, 심각하게 뭘 하는 것도 아니니 찾기 전에는 시야 밖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 이제 보니 이 마을에서 유물을 구매하려는 모양이다만…… 시장 쪽에 일행이랑 같이 움직이고 있어. 음, 아까 그 오누이도 그쪽으로 가는군.
심드렁한 말은 투란의 호기심을 치워 버릴 지경이었다.
로즈벨에 대해서 홀시딘이 간밤에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려준 바가 있는 탓이었다.
“로젠베람의 고대 유물은 나름대로 귀하니까. 오래된 혈통을 조금이나마 잇고 있다면 가끔은 꽤 쓸 만한 아티팩트로서 기능하기도 하지. 야누크나 노벡스 왕국 쪽의 귀족 중에 그런 가계가 제법 있어서 몇 년에 한 번씩 검은 강을 이용해서 찾아오기도 해. 지금 누가 와 있어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지.”
‘그러고 보니…… 칼라드에게서도 샀다고 했잖아?’
문득 투란은 이러쿵저러쿵하다가 홀시딘에게 팔아 치우듯이 떠넘긴 로즈벨의 소년을 떠올렸다. 라카샤 오누이도 여기서 뭔가 사들이고 있었잖던가. 그 유물이 제대로 마법의 효과를 드러내서 칼라드가 눈이 뒤집어졌고.
―함께 왔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목적이 거의 비슷하기는 한 모양이군. 흐흠, 로즈벨에서 적당히 살피다 돌아갈 예정은 아닌가 본데? 가까이 있는 다른 마을의 상황에 대해서도 묻고 있어.
‘가까이……? 마을이 또 있었나?’
―언더섀도우에 더 가까운 마을, 굴하람이 있다고 했잖아.
‘아…… 그랬지. 먼가?’
벅벅,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은 잠깐 저 먼 하늘을 바라봤다.
모래와 바람이 장벽처럼 채워져서 하늘에 닿은 듯한 풍경은 이쪽의 날이 흐리거나 맑거나 상관없다는 듯이 웅장하고 견고해 보였다.
‘그 할배, 정말로 저 너머에서 왔을까?’
―마석이 그 너머에서 온 것만은 확실하겠지. 흐흠, 일찍 일어난 모양인데? 헌터 일행은 놔두고 마을 나들이라도 할 참인가?
‘어? 어라?’
드라고니아가 말과 함께 비춰 준 길잡이 노인의 모습, 그 풍경에 투란은 갸웃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 듯싶은데, 길잡이 노인은 여관을 나서고 있었다.
말끔하게 씻고 정돈된, 가벼운 나들이를 위한 복장으로 보이면서도 로즈벨의 풍속과 잘 어울리는 차림새인 채로 길잡이 노인이 마을 중심의 시장 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의아해하던 투란은 곧바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봤다.
높이 올라갈 곳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주변에서 몸을 감추고 앉아 있을 만한 적당한 곳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가시 몽둥이처럼 돋아난 식물, 가시가 가득하고 몽둥이가 굵직하게 기둥이 되겠다는 듯이 자란 모양을 한 식물이 햇살 가득한 담장에 붙어서 모래 더미에 푹 박힌 곳이었다. 폐허에 기울어진 듯한 담장이기에 쉽게 다가오는 사람도 없는 듯한…… 한편으로는 칼라드가 웅크렸던 모닥불 주변의 풍경과도 닮아 있었다.
―칵투스 변종이야. 나름대로 독이 있다. 변종이 아니더라도 찔리면 인간에게는 꽤나 아프게 가시가 박힐 테지만…….
투란이 그 담장 곁으로 가서 자리 잡고 앉으니, 바로 드라고니아가 말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가시 몽둥이 나무에 손끝을 댈까 말까 고민하는 투란을 향해 어린애 같다고 혀를 차는 듯한 말투였다.
‘대사막에서 가끔 보였던 거잖아? 잘라서 물을 짜내 먹는다고 키유나가 그랬는데, 독이라고?’
―변종이라고 했잖아. 아무래도 이 폐허의 토양에 은근히 배어 있는 마력이라든가 정령의 자취랑 엮이면서 그리된 모양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걸 잘라서 짜내 물을 마실 필요도 없으니까, 더욱 건드리지 않겠지.
투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높이 치솟아 내려다보는 프로브의 감각에 집중했다.
‘할배 뭐 하는 거지?’
―글쎄다, 시장을 살피는 건지 뭔가 가늠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군.
드라고니아도 길잡이 노인의 일에 대해서는 갸웃했다.
로즈벨의 작은 시장을 돌면서 길잡이 노인은 이것저것 가격을 묻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날씨에 대해서 묻는가 하면 외지인이 꽤 많아졌다고도 했고 오랜만에 왔지만 로즈벨이 그대로인 것 같다는 등…… 소소하고 자잘한 일에 대해서 한없이 떠들고 있는 듯했다.
얼핏 듣자면 그저 그런 일상의 이야기를 짚어 내면서 로즈벨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을 확인하는 듯도 했고 자신 또한 로즈벨 쪽 사람인 양 껄껄 웃기도 하는 모습은 투란에게 왠지 노인이 사기꾼 같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
‘거참, 할배들은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연륜을 파악하는 일은 어디서든 어렵지. 한데 왜 사기꾼을 떠올린 거냐?
드라고니아는 길잡이 노인의 연륜은 그렇다 치고 투란이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노인을 놓고 왜 사기꾼을 생각하는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음? 어…… 뭐, 옛날 경험이지.’
투란은 쓴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그 태도에 드라고니아도 금방 알아차린 듯했다.
저렇게 잘 어울리는 모습을 한 사기꾼이 과거 샤오콴 마을에도 나타난 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리 좋은 결말은 보이지 못했다는 것.
―흠, 하지만 저 정도는 알드바인에서 꽤 많이 보던 것 아니야?
‘응, 봤지. 대부분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이익을 보려던…… 반쯤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장사치 아저씨들이었지! 아, 아줌마도 있었고.’
투란은 냉정하게 볼을 부풀리면서 대꾸했다.
이번에는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흘리면서 말을 멈췄다.
어느덧 나들이를 끝낸 듯, 길잡이 노인이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투란은 문득 이대로 늘어져서 지켜만 봐도 로즈벨에서의 일은 별 이변 없이 모두 알 수 있잖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굳이 졸졸 따라다니지 않아도 이렇게 내려다보고 엿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걸 이제 알았냐?
드라고니아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투란의 생각에 핀잔했다.
‘쳇.’
한마디로 뚱한 대꾸를 하면서 투란은 담장에 벽을 기대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슬쩍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칵투스가 돋아난 햇살 가득한 곳의 반대편, 그늘 아래 어둑한 곳에서 바라보는 폐허의 광경은 딱히 특별하게 보이지 않았다. 홀시딘이 그 지하를 관통하는 상아탑의 서로게이트를 만들어 냈지만, 폐허는 과거의 잔해뿐인 그대로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모래바람에 시달리며 광대한 유적을 감춘 그대로.
―흐흠? 기사가 헌터 일행에게 무슨 볼일이지?
멍하니 나른하게 쉬는 투란에게 불쑥 드라고니아의 말이 스며들었다.
‘응? 어라?’
시간이 좀 흘러서 헌터 일행은 길잡이 노인과 함께하기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마치는 중이었다. 거의 점심 무렵이었기에 끼니까지 마치고 나서 여관 앞에 모이는 그들 앞에 기사 일행이 다가가 뭔가를 묻고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고, 어디까지 가느냐고 하는…… 여행자에게는 꽤 흔한 질문이었지만 헌터 일행은 기사 일행을 보며 긴장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엿보고 엿들으면서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길잡이 할배에게 볼일이 있나 본데?’
―노인에게? 기사가? 왜?
‘여기서 찾던 것을 못 찾았나 보지. 어, 라카샤랑 그 오빠도 끼어 있네?’
―그렇군, 기사 일행에게 합류했나 보군.
여린 모래바람의 냄새를 맡으면서 투란은 프로브의 감각에 집중했다.
“무슨 일인가?”
길잡이 노인이 여관을 나서면서 미리 나와 있는 헌터 일행을 향해 조금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웅성거리던 헌터 일행 중 가까이 있던 이가 바로 노인을 향해 대답을 해 준다.
“어, 노벡스? 아니, 야누크 쪽인가? 암튼 그 언저리에서 온 기사 팀인 모양인데…… 음, 우리 말고 할배한테 용무가 있나 본데요?”
“나에게? 난 야누크든 노벡스든 가 본 적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길잡이 노인은 두 왕국이 바로 들러붙은 이웃집 한구석인 것처럼 말하며 갸웃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노인은 자신의 일을 떠넘길 생각이 없다는 태도로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먼저 본 듯, 헌터 일행을 대표해 이야기하는 루헬 곁의 쿨람이 손짓해서 노인의 길을 열어 주면서 외친다.
“영감님, 여기 기사분이 길잡이와 할 말이 있으시다는군요!”
“본 적이 없는 분인데, 이 늙은이에게 뭔 볼일이 있으시다는 건가?”
비켜서 주는 헌터들 틈새를 지나가면서 길잡이 노인이 큰소리로 묻고 있었다.
딱히 기사에 대해 존중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저 길 가다 조금 힘센 작자가 왜 나를 귀찮게 하느냐는 듯한 묘한 태도가 또렷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기사 일행 중에 그런 노인을 보면서 어이없어하는 이도 있었고 살짝 분개하는 이도 있었다.
그 풍경을 지켜보던 투란은 라카샤의 오빠란 작자가 ‘감히! 고귀한 분에게 무슨!’이라고 함께 분개하는 꼴을 보면서 새삼 어이가 없었다. 처음 보자마자 투란을 향해 칼을 휘둘러 대면서 거침없이 깔보더니, 기사를 향해서는 너무 지나치게 칭송과 공경을 다하는 태도가 아닌가.
‘확 찍어 버릴까?’
거대한 주먹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콱 눌러서 짜부라뜨리면 어쩌려나 하는 묘한 충동이 투란의 가슴에 스멀거리며 기어오르는 기분이었다.
―투란.
드라고니아가 냉철하게, 하지만 투란의 뇌리에 쩌렁쩌렁 울리게 불렀다.
‘어? 아냐. 그냥 순수한 내 기분이야.’
냉큼 몬스터의 본능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투란은 다시 저쪽의 대화에 집중했다.
“굴하람까지 배를 태워 주겠다고? 왜?”
길잡이 노인이 루헬과 쿨람, 헌터 일행을 쓰윽 돌아보고 다시 기사를 보면서 묻고 있었다.
헌터 일행을 이끌어 가는 길목에 굴하람이란 마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기사가 제안한 말을 되새기는 물음이었다. 굴하람에 간다면, 자신들의 배를 이용해서 함께 가자는 제안을 왜 하고 있느냐고.
기사는 예의와 품위를 잃지 않는 담담한 태도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들었소. 노인이 길잡이로 로즈벨과 굴하람을 여러 차례 오갔던 사람이라고 말이오. 그러니 뱃길이라도 굴하람까지 거침없이 인도할 수 있는 길잡이라 하더이다.”
길잡이 노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기는 하지, 그렇다 해도 기사 일행의 길잡이 노릇은 한 적이 없는데? 여기까지 찾아온 기사들은…… 어, 잠깐만. 혹시 귀하도 바위 묘지기를 사냥하려고 굴하람에 가겠다는 거요?”
갸웃거리며 말을 흘리던 길잡이 노인의 태도가 위엄과 신중함을 담으면서 되물음이 나오고 있었다.
바위 묘지기란 묘한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