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4)
‘몬스터…… 냄새가 나는데?’
투란은 코를 킁킁거리는 시늉까지 하며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바위…… 요정 일족의 유산일까 싶다만?
드라고니아는 다른 쪽으로 짐작해 보겠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뭡니까? 무슨 몬스터입니까?”
루헬이 슬쩍 머리를 돌리면서 길잡이 노인에게 낮고 빠르게 묻고 있었다.
기사에게 예의를 갖추는 척, 아예 한 손으로 입까지 가리고 묻는 말이었다.
길잡이 노인은 루헬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기사를…… 그 일행을 둘러보는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하듯이 바라봤다.
기사는 단정하면서도 담담하게, 하지만 자신감이 가득한 태도로 대답을 느릿하게 꺼내고 있었다.
“사냥까지는 계획하고 있지 않소. 다만 바위 묘지기의 영역 안을 둘러봐야 할 일은 있소. 그러기 위해서…… 본선도 함께 가야 할 필요가 있을 뿐이오. 하지만 로즈벨에서 굴하람으로 이어지는 검은 강줄기는 사막으로 빠져나가거나 북쪽 경계로 틀어져서 전혀 엉뚱한 쪽으로 흐른다더군요. 제대로 가려면 육로를 아는 이가 수로를 인도해 줘야 한다고 들었소. 그렇기에 청탁하려 하는 것이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굴하람까지의 인도, 가는 길의 안전은…… 노인과 함께 갈 일행 모두 안전하리라 보장하겠소.”
“흐흠, 길 안내를 해 주면 배를 태워 주겠다라…….”
길잡이 노인은 조금 뚱하니 말을 흐리면서 루헬을 바라봤다.
루헬은 재빠르게 고개를 젓는 시늉을 했다. 노골적이지 않게 미미하지만 분명하게 ‘안 된다’라는 몸짓을 한 셈이었다.
기사가 그런 길잡이 노인과 루헬을 향해 다시 말을 했다.
“손님으로 본선에 오르게 되실 거요. 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다 해서 헌터 여러분에게 일을 시키거나 떠넘기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소. 기사의 명예를 걸고 확실하게 밝혀 말하겠소이다.”
대강 상황을 짚었다는 듯한, 헌터 일행과 함께 가는 경우에 기사란 작자들이 어찌하는가에 대해서 나름대로 알고 있으며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공언해 주는 이야기였다.
길잡이 노인은 그런 이야기 따위는 알 바 아니란 듯, 계속해서 루헬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든 말든 그건 순전히 루헬의 판단에 달렸다는 듯한 태도였다.
루헬은 그런 길잡이 노인의 눈길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기사를 향해 찡그린 표정을 감추지도 않은 채로 말한다.
“고마운 배려시군요. 하지만 우리 일행은 의뢰를 받은 파티입니다. 의뢰주의 요청에 따라 움직일 뿐이지요. 영감님, 어쩌시겠습니까?”
은근히 거절하는 듯한 말 끝에 슬그머니 길잡이 노인을 향해 떠넘기는 물음이 붙은 채였다.
기사는 그런 루헬의 태도를 보고 상황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다시 말문을 열고 있었다.
“의뢰주가 노인이었소? 그렇다면 내가 별도의 사례를 해 드리겠소. 헌터 팀에서는 의뢰주의 결정을 따르겠다 하고 있잖소? 물론 가는 동안 일행의 전력에 손해를 끼치는 일은 없을 거요. 내게 필요한 것은 단지 굴하람까지의 길잡이일 뿐이오. 본선에는 여러분 모두가 쾌적하게 머물 방도 충분하오.”
말하는 동안 기사가 보여 주는 여전히 당당하면서도 담담한 태도는 처음 보는 이에게도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루헬이나 쿨람 등의 헌터들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잔뜩 찌푸린 표정인 채로 헌터 일행은 길잡이 노인을 흘깃거리면서 ‘싫다!’라는 의견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중이었으니까.
―왜 저러냐? 따로 사례까지 한다는데? 좋은 조건 아니야?
드라고니아가 의아해하며 중얼거렸다.
투란이 쓴웃음을 짓고 짓궂게 되묻는다.
‘알면서 뭘 물어?’
―거짓말인가 의심한다고? 기사잖아? 알드바인에서도 기사라면 제법 신뢰받는 것처럼 들었다만?
‘뭐, 보통은 그렇지. 보통은…….’
―저 기사가 신뢰가 없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이다만?
‘뭐, 굳이 말하자면…… 보통 춤추는 산맥의 기사랑 다르게 여기까지 와서 몬스터 사냥을 하겠다는 것 때문이지. 몬스터 헌터도 드문 이곳에 말이야. 게다가…… 저런 배를 지닌 기사라니, 전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기사가 아니라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이 말했다.
춤추는 산맥에서 대부분 오러 윌더인 기사는 강력했고, 그 대부분이 몬스터와의 전장에서 활약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오러 윌더임에도 몬스터 앞에는 서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흔하지는 않지만, 그런 기사들은 여행자로서 여기저기에 나타나기 때문에 소문은 보통의 기사보다 더 멀리, 심하게 퍼져 있기 쉬웠다.
그리고 그 소문은 대부분 좋지 못한 이야기였다.
루헬 일행이 춤추는 산맥에서 돌아다니다가 기사를 만났다면, 그 기사가 넉살 좋게 동행을 청한다면 ‘이놈이 우리를 어떤 몬스터 앞에 끌고 가서 던져 넣으려고 이러지?’라고 의심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저쪽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의심은 ‘이놈이 우리를 어디에 부려 먹으려고 저러지?’라며 감이 좋지 않아 아예 멀어지려는 태도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투란이 이런 짐작을 흘려 내니,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말한다.
―그게 그거잖아?
‘어? 에, 다른 얘긴데…….’
투란은 살짝 당황했다.
몬스터에게 끌고 가는 기사의 경우에는 엄청나게 고생하기는 해도 몬스터 헌터답게 몬스터와 싸우는 일을 하는지라 나름대로 괜찮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뭔가 거들먹거리는 경우에는 몬스터 헌터를 자기 부하 병사처럼 마구 부려 먹으며 하찮은 일에 나대는 짓이 대부분이라 했다.
그러니 두 경우가 꽤 다를 수밖에 없다.
―뭔 얘기인가 모르겠다만, 지금 저쪽은 바위 묘지기라는 몬스터와 엮이고 싶지 않아서 거절하는 거잖아? 투란, 뭔가 네가 아는 얘기랑 어긋난다고.
‘끄응…… 아, 몰라! 나중에 따져. 저쪽 일이나 열심히 엿듣자고!’
설명하기 곤란함을 느끼면서 투란은 외면해 버렸다.
“몇 가지 약속만 하면 꽤 나쁘지 않은 제안이겠군.”
길잡이 노인이 느릿하게 상황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고, 이 말은 금방 기사와 헌터 일행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루헬은 무슨 말인가 의아해했고, 기사는 그 약속에 대해 바로 묻고 있었다.
“어떤 약속을 원하오?”
“배에서는, 당시의 본선에서는 내 일행, 우리 모두가 손님이오. 배를 몰거나 청소를 하거나, 배를 습격한 무리와 싸우거나 하는 일에는 전혀 나서지 않겠소. 그런 상황이 된다면 우리는 그냥 배를 떠나도록 하지. 그래도 된다 하는 것이 첫 번째 약속이오.”
넉살 좋은 웃음을 드러내 놓고 하는 길잡이 노인의 말은 기사 일행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당장 그중 몇몇이 으르렁거리려는 낌새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고 있었다.
“그건 이미 내가 보장한 부분이오, 당연히 약속하지. 두 번째는?”
“굴하람까지 길잡이 노릇이야 해 주겠지만, 바위 묘지기에 대해서는 내게 묻지 마시오. 나도 굴하람을 오가며 들은 이야기가 전부이고, 매번 묘하게 달라지는 이야기니까 전혀 도움이 될 리가 없거든. 억지로 내게 바위 묘지기에 대해 묻지 않는 것, 이게 두 번째요.”
길잡이 노인은 표정을 바꾸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 두 번째 조건은 기사나 그 일행보다 루헬을 비롯한 몬스터 헌터 일행 쪽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곧바로 작은 소곤거림이 헌터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었다.
“아니, 왜?”
“배 타고 할 일 없으면…….”
“이야기도 하지 말란 소린가?”
“뭔 몬스터이길래 말도 꺼내지 말래?”
멀리서 그 소곤거림을 듣는 투란 역시 비슷한 기분이었다.
‘대체 왜?’
―특별한 사연이 있겠지.
드라고니아는 너무 자연스럽게 그러려니 하겠다는 듯했다.
‘엉? 넌 납득이 돼?’
―드라코눔의 일족과 만난 인간들이 흔히 저러던데? 인간의 풍속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더 할 이야기가 없으니 묻지 말라고. 딱 그런 태도로 보인다만?
‘대체 뭘 물었던 거냐! 암튼, 함께 여행하면서 서로 가는 곳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 하겠다는 일은 정상이 아냐! 이상한 거야! 음흉하고 수상한 짓이라고!’
투란은 단호하게 떠들고 나서 다시 엿듣고 엿보는 일에 집중했다.
점차 바위 묘지기란 몬스터에 대해 관심이 커지는 중이었다.
“묘하기는 하오만, 어렵지 않은 일이군. 불편한 일이라면 그렇게 약속하겠소. 세 번째도 있소?”
기사는 길잡이 노인의 수상한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길잡이 노인은 싱긋 웃었고, 정말 별것 아니란 듯이 세 번째 조건을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일행의 목적지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것. 이것까지 기사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다면, 나로서도 딱히 굴하람까지의 길잡이 노릇을 마다할 이유는 없군. 약속하시겠소?”
기사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노인과 헌터 일행을 살짝 둘러봤다.
노인은 당당한데, 헌터 일행은 ‘어?’ 하며 미묘하게 어리둥절해하는 분위기였다.
그 분위기가 묘하게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곧 기사는 입을 열었고 약속했다.
“서로의 용무를 간섭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 그럽시다. 내 일에 대해서도 가급 알아보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럼, 이제 동행이 성립된 것이오? 그렇다면…… 본선으로 어서 합류했으면 좋겠소. 로즈벨에서 시간을 지나치게 보내서 내 일정이 꽤 바쁘니 말이오. 양해 부탁드리고 싶소.”
길잡이 노인도 기사처럼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우리도 이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모두 떠날 준비는 되었나?”
루헬이 길잡이 노인을 보며 쓴웃음을 지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쿨람은 곧바로 일행을 돌아보면서 손짓하고 있었다.
금방 헌터 일행이 가시 일행을 따라 해변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프로브로 내려다보는 투란은 투덜거림을 뱉는 중이었다.
“난 어쩌라고!”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었다.
―밀항은 안 할 셈인가 보구나?
‘밀항?’
―배에 몰래 타는 것 말이다, 뭘 시침 떼고 모르는 척해. 전혀 할 생각 없어?
‘저런 배에 몰라 타서 뭘 어쩌라고? 숨어 있을 곳도 없어 보이는구먼.’
투란은 한숨을 쉬었다.
―음, 숨는 것도 꽤 어렵기는 하겠군. 이래저래 마법으로 많은 부분이 처리된 배이기도 하니까.
드라고니아가 다시 기사의 커다란 배를 프로브를 통해 살피면서 중얼거렸다.
투란이 그 관찰을 공유하면서 툴툴거린다.
‘크고 무거워 보이는구먼, 잘도 떠 있네. 저러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까지 하는 거 아냐?’
―비행 기능은 없어 보인다만, 안쪽에 그런 마법이 새겨져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을 듯하군. 상당히 오래된 마법이 감지되는데? 얼핏 봤을 때는 몰랐다만, 출항 준비 중이라 그런가…… 꽤나 고풍스럽군.
드라고니아의 신중한 말은 투란을 어이없게 했다.
‘야, 비행 기능이라니? 하늘을 나는 배도 있다는 거야? 너 그런 배 본 적 있는 거야? 드라코눔에 그런 배가 있어?’
―건축물도 허공에 띄운다고 얘기했을 텐데? 너, 또 기억을 날려 먹은 거냐? 메듀시아의 본능에 아직도 휘둘리는 중이야? 그런 거야?
‘아니거든! 그건 정말 아니고…… 정말로 하늘을 훨훨 난다는 거야? 저런 배가? 그런 배가 있으면 길잡이도 필요 없는 거잖아?’
움찔하면서도 자신을 재빨리 점검하며 투란은 지난 일을 더듬는 채로 바쁘게 묻고 있었다. 확실히 허공에 뜬 건축물, 기묘한 풍경에 대해서는 시알라 남매와 첫 만남에서 파워 서클을 그려 낼 때 얼핏 스쳐 들은 바가 있었다.
드라고니아의 그 추억 때문에 파워 서클 주변이 대강 그런 모양으로 꾸며지기까지 했으니까 잊기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 하늘까지 둥둥 떠다닌다는 이야기는 투란에게 낯설었다.
귀 기울여 들은 적도 없고, 상상한 적도 없으니까.
때문에 호기심을 불태우는 투란이다.
―길잡이는 필요하지. 날개가 달렸어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사막에서 헤맸던 녀석이 필요 없다 할 얘기는 아니잖아?
드라고니아가 살짝 질렸다는 듯한 말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그리고 투란은 곧바로 되묻고 있었다.
‘아, 그런가? 그러면…… 마법으로 그런 배, 저렇게 크지 않더라도 조그맣게라도 못 만들어? 드라코눔의 아칸이잖아, 할 줄 몰라?’
―응?
드라고니아도 예상 못 한 듯 움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