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5)
‘알아? 몰라? 어이!’
투란은 거침없이 재촉했다.
―탑승용 풍선(風船)이라면, 한두 사람 타는 정도라면 간단히 꾸밀 수는 있다.
멍한 듯했던 드라고니아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투란의 눈이 번뜩했다.
‘알드바인의 조그만 배처럼 띄워 놓고 누워 있을 수 있단 말이지?’
―그 정도는…… 대체 왜 갑자기 그런 관심인 거냐? 하늘을 난다는 일이라면 이제 지겹다고 할 지경 아니었어? 날개만 해도 몇 가지나 되고…….
‘날개로 파닥대는 거 말고! 배처럼 띄워 놓고 누울 수 있냐고!’
―그러니까 그렇게 누울 만한 작은 풍선이라면 가능하다만. 너, 예전에 시알라 남매가 아겔페스의 풍선을 탔다는 말을 들을 때도 그냥 넘겼잖아! 역병의 수해를 건너면서도 전혀 관심 없더니만, 왜 그러는 건데?
‘응? 아…… 흐흐흣.’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리며 하는 말에 잠깐 움찔하다가 느슨하게 웃음부터 흘렸다. 그 웃음은 오히려 드라고니아를 움찔하게 했다.
‘저 배, 침실도 있고 부엌도 있고 거실도 있고…… 거의 여관이나 주점이 배 속에 담긴 거라도 해도 될 지경이잖아. 심지어 무기고도 있고 말이지. 아겔페스가 간신히 사람 얹고 역병을 건넜다는 얘기랑, 저런 배가 하늘을 둥실 떠다니는 거랑 수준이 다르잖아, 수준이!’
투란이 이어 하는 말이었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어이없어하며 되받아치듯 말한다.
―내가 아까 한 말 잊었냐? 한두 사람 태울 정도라고 했잖아! 저딴 배를 띄우려면 상당히 많은 마법과 도구가 필요하다고! 그런 것은…… 내가 멀쩡하게 몸을 갖추고 있던 시절이라도 안 하던…… 못 하던 짓이다. 난 도구 만드는 일에 능숙했던 적이 없어!
‘됐고! 얼른 말해 줘! 어떻게 하는 거야? 어떻게 하면 둥둥 떠서 힘들게 물길 찾아 떠가는 배를 내려다보면서 여유롭게 따라갈 수 있어?’
투란은 단호했다.
그 속내는 호기심과 흥미로 가득했지만, 결국 홀시딘이 맡긴 일을 꽤 진지하게 수행하려는 의도 또한 분명히 담겨 있기는 했다.
어이없어하던 드라고니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강 설명을 시작했다. 어딘가 한숨이 가득 배어 있는 말투였지만 투란은 귀를 기울이면서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우선…… 타고 갈 조각배를 만든다고 생각해라. 원하는 대로 눕거나 앉을 자리가 넉넉한 배, 알드바인에서 봤던 것 기억하지? 그런 배를 구성하는 것부터 시작이야. 적당히 눕고 앉고 설 자리를 구상한 다음, 그렇게 구성된 것의 중량과 재질을 감안해서 띄울 준비를 하면 돼. 음, 어찌 보면 네 경우에는 상당히 쉬운 일이겠군. 그러니까…….
주섬주섬하는 말을 듣던 투란은 일단 로즈벨에서 떨어지기로 했다.
하늘로 뭐가 치솟든 마을 가까운 곳이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고, 지금 누군가에게 눈에 띌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더욱 사막 쪽에 가까운 폐허, 역시 오래전에 무너져 겨우 벽의 자취만 남은 모래 더미의 틈새 그늘을 찾아낸 투란은 먼저 간단한 셸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너무 단순해서 조악하다 할 지경인 반구형(半球形)의 쉘터는 헛(Hut)이란 간단한 한마디와 함께 거친 모래가 들러붙은 듯한 몰골로 나타났다. 모래 속에서 치솟는 듯한 간단한 쉼터, 겨우 그늘을 제공하고 바람을 막아 주는 반구(半球)의 형체를 투란은 바로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 여덟 귀퉁이에 바로 고리를 형성했다.
잠시 모래를 기반으로 형성된 단단한 몰골을 보다가 투란이 갸웃했다.
‘음, 테라트로 뭉치는 쪽이 더 빨랐으려나?’
―아무래도 좋아. 나중에 강화해도 되니까. 그러면…… 다음은 가죽이다. 바람 새지 않는 가죽, 바람 주머니라고 할 만한 것으로…… 크고 넓어야 해.
일단 시작하고 나서는 나름대로 열의가 생긴 듯, 드라고니아가 계속 말했다.
투란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시커먼 잉크가 물컹거리면서 투란의 두 손에서 흘러내렸고 엷은 뱀 비늘을 머금은 갈색과 흑색이 뒤섞인 가죽을 얄팍한 두께로 뿜어냈다. 가죽은 뭉쳐진 형태로 나와서 물거품처럼 부풀며 곧바로 고리 여덟 개에 뻗어 낸 끝자락을 감고 펄럭이기 시작했다.
―주머니 모양! 위로 부풀게!
드라고니아가 잔소리했고, 투란은 그 말과 함께 뇌리에 스며드는 형상을 알아차리며 가죽의 형태를 맞춰 나갔다.
정령수 에어로가 가볍게 투란의 주변을 흩날리면서 그 가죽을 위로 밀어 올렸다.
바람 주머니랑 말에 걸맞게 금방 위로 적당히 부푼 가죽이 여덟 가닥의 줄기를 내밀어 반구형에 걸고 있는 모양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작아. 더 넓고, 더 크게.
드라고니아가 다시 말하며 투란에게 보여 준 형상은 투란이 어이없어할 정도로 균형이 무너진 몰골이었다.
‘이 쉘터가 송아지 꼬리였냐? 몸통은 이 가죽이고?’
뒤집힌 반구형의 쉘터가 거대한 가죽 주머니 한구석에 작게 꽂아 놓을 장식 같은 돌멩이 한 조각이나 다름없는 모양이었으니까.
―연금술로 제련된 소재가 아니면 어쩔 수 없어. 이만한 작은 배를 띄우기 위해서는 아주 크게 바람, 뜨거운 바람을 담을 수 있는 주머니가 필요하니까. 그 안에 집이 몇 채 들어간다고 생각해라.
‘흐히…… 어째 엄청나게 바보스럽잖아?’
―그래, 바보스럽게 생겼지. 그만할래?
‘누가 그만한데! 하고 있잖아!’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가죽을 더 많이 형성했고 더 크게 부풀렸다.
점점 더 바보스러운 모양이었지만, 결국 얇고 질기게 부푼 가죽은 에어로가 불어넣는 바람결을 한껏 받아들이며 잔뜩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가죽의 잔가지처럼 돼 버린 채로 반구형의 여덟 고리에 매달려 있던 가죽끈이 팽팽해졌다.
“어, 뜬다? 에어로?”
투란은 정령수의 힘인가 아닌가 하면서 중얼거렸다.
에어로가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다면 돌개바람이 되어 바위도 들어 내던질 지경이었으니 이렇게 들썩이는 반응이 느리게 온 것은 순수하게 주머니 안에 바람만 넣은 결과인가 조금 더 힘을 쓴 탓인가 애매할 수밖에 없었다.
―에어로는 빼고, 이제 파이로를 넣어서 데워라.
‘응? 뭔 소리야?’
―바람 주머니 안에 불의 뜨거움을 몰아넣으라고.
‘헐?’
투란이 맹할 때, 드라고니아가 바로 마력을 흘리면서 파이로를 제어했다.
순식간에 에어로가 물러섰고, 그 덕분에 살짝 오그라들려는 가죽 안쪽에 불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바람이 금세 가죽을 팽팽하게 밀어붙이면서 더욱 사납게 가죽끈이 당겨졌다.
재빨리 투란은 반구의 그릇 안쪽으로 올라탔다.
몸무게가 더해졌지만 점차 가열되는 주머니 속의 뜨거움은 가차 없이 가죽을 팽창하며 뒤집힌 반구형의 조각배를 느릿느릿 둥실거리게 하고 있었다.
그 부유감을 느끼던 투란이 금방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너무 느리잖아? 높이 뜨는데도 시간 너무 걸리는 거 아냐? 움직이는 거는 또 어떻게 해야 하지? 으아, 이거 문제가 많구먼?’
―원래 만들지도 못했어야 정상이지. 하지만 뭐, 대강 형태는 잡았고 가죽은 뱉어 낸 거니까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지? 좋아, 그렇다면 이제 제대로 틀을 좀 잡아 보자. 정령수는 맡기고, 넌 앉아서 구경이나 해.
드라고니아가 슬슬 재미가 들린 듯이 말했고, 투란은 얌전히 한 귀퉁이에 앉아서 두리번거렸다.
폭발적인 상승은 아주 잠깐 사이에 일어났다.
모래 먼지를 길게 꼬리처럼 이끌면서 거대한 가죽 주머니가 이글거리는 불길을 담은 채로 하늘 높이 치솟았고, 바람이 그 주둥이를 조이듯이 휘감았다.
주머니 주둥이에서 살짝 떨어진 듯한 마개, 그것이 투란이 타고 있는 반구형 조각배였다. 그 모양은 모래 먼지를 잔뜩 끌어당기면서 깃들기 시작한 테라트에 의해서 우지끈거리고 우걱거리면서 금세 변하기도 했다. 더욱 배의 형태에 가까운, 투란이 알드바인의 호반에서 지켜봤던 그 작은 배들의 모양에 가까운 길쭉하게 정돈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위로 이어진 끈 주변으로 단단한 고리가 맺히면서 주머니의 주둥이를 팍팍하게 조이며 안의 불길이 결코 바깥 구경을 못 하게 하겠다는 듯이 오그라들었다.
간신히 터놓은 숨구멍 같은 모양만 남긴 채로 커다란 가죽 주머니는 조각배를 매단 채로 거침없이 위로 빠르게 상승했다.
순식간에 조금 떨어진 로즈벨의 풍경이 조그맣게 한구석에 보였고, 기사의 배가 떠 있는 검은 바다의 풍경과 함께 멀리 땅을 파고들듯이 자리 잡은 검은 강줄기의 풍경도 여러 가닥으로 보였다.
‘이게 풍선이구나.’
느긋하게 몸을 맡긴 채로 주변 구경을 하면서, 테라트가 정돈한 모양 속에 한층 더 견고해진 조각배의 형체를 더듬으며 투란이 히죽 웃었다.
―부운선(浮雲船)이라고 한다만, 됐다. 나중에 실물을 볼 기회가 되면 그때 알겠지. 아무튼 이게 아겔페스가 띄운 것이랑 기본 원리는 같은 형태야. 역병의 수해를 고려해서 이모저모로 더 다듬고, 연금술의 결과물을 이용해서 구현했으니 훨씬 깔끔했을 테지만.
‘음, 나도 깔끔하게 꾸미면 되잖아.’
투란은 조금 더 짙게 웃었고, 바로 테라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방 투란이 앉은 자리 주변이 푹신하게 부풀면서 부드러운 흙덩이처럼 뭉클거렸다. 산뜻한 흙 거죽이 소파나 침대 못지않게 투란의 몸을 받쳐 주니, 느릿하니 몸을 기대면서 주변을 보는 것이 한층 더 한가해진 분위기였다.
―게으름 피울 준비냐?
푹 몸을 기대며 비스듬히 누워 주변으로 훑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괜한 심술처럼 투덜거렸다.
투란은 피식 웃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파닥거리면서 발로 걸어야 하는 신세에서 벗어났는데, 침착하게 계획을 세우고 예상을 해 봐야잖아. 그러려면 우선 주변 정보도 모아야 하고…….’
―재미 좇아서 하늘로 둥실 떠올랐는데, 정보를 어떻…….
핀잔하던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손바닥을 가르며 튀어나오는 도감을 보며 말을 멈추고 말았다.
가만히 감상에 젖은 듯, 도감을 쥐고 잠시 바라보던 투란의 입술이 열렸다.
“언더섀도우로 가는 길목, 굴하람. 거기 있다는 바위 묘지기에 대해서 알고 싶어.”
도감이 투둑투둑 열렸고, 펄럭였다.
화사한 색채가 번져 갔고, 굴하람의 풍경이 투란 앞에 환영이 되어 펼쳐졌다.
문자가 환영 사이를 이리저리 맴돌며 투란이 원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바위 묘지기는 별칭, 최초의 명명(命名)은 록버스터 골렘.
로젠베람 북부의 성채를 지키던 수문장의 잔해로부터 유도해 낸 골렘이 원형.
정령의 힘을 이용한 골렘, 때문에 뒤틀린 힘의 영향을 받아 일그러져 버림.
원형 골렘을 제작한 이는 바위 요정의 일족.
원형의 성격이 남아 있기에 일정 영역을 벗어나지 않음.
굴하람 북쪽, 묘지라 불리는 고대의 잔해에 머물고 있기에 묘지기란 별명이 붙었고, 바위 요정족이 자신들의 이명(異名)을 담아 구현해 낸 외형 탓에 통칭이 이뤄짐. 실체는 바위가 아니라 요정족이 제련해 낸 황동(黃銅) 기반의 합금(合金).
록 버스터(Rock Burster)란 호칭 그대로 주변 바위를 으깨 부수고 이를 도구로 적극 활용함. 정령의 기력을 지녔기에 어지간한 마법 술식은 그대로 튕겨 내고 무효화할 수 있음.
몬스터인가, 아닌가를 놓고 처음에 논쟁이 있었으나 그 파편 조각을 얻었던 몬스터 로드가 정수를 섭취하는 데 성공해서 논쟁이 끝났다. 조각만으로도 골렘의 외형을 거의 전부 갖출 수 있었다고 하나, 실상은 외피만 두른 것이라 함.
“헐? 몬스터 로드에게 삼켜지는 몬스터 골렘이라고? 정령의 힘을 머금은?”
투란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수문장의 잔해를 이용했다니……. 여기까지 와서 별 미친 짓거리를 다 했구나, 바위 일족…….
드라고니아는 역시 투란과 조금 다른 부분을 짚으면서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그 말에 퍼뜩 도감의 한 구절을 누르며 물었다.
“이 수문장이 대체 뭐야?”
―응? 아, 그건 고대에…….
드라고니아가 뭐라 대답하려 하는 찰나, 투란 앞에 굴강한 갑주를 두른 거대해 보이는 기사의 모습이 먼저 펼쳐졌다.
원더 그리모어라 명명된 켈 데릭 형제 상회의 도감은 거침없이 시각적으로 고대의 수문장을 드러낸 셈이었다. 드라고니아도 직접 본 것은 처음인 듯, 하던 말을 멈추면서 투란이 빙글빙글 돌려보는 환영의 형상을 함께 바라봤다.
투구부터 시작해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은색 강철로 된 갑주를 촘촘하게 걸치고 사슬로 짜인 망토까지 두른 기사, 두 손에 든 검과 방패 없이도 은색 강철 건틀릿만으로도 위압적이라 할 만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 위에 새겨지는 글귀가 있었다.
⚫ 대마갑(大魔鉀)의 기술과 정령술을 접합시켜 만들어 낸 마도구.
⚫ 기사가 탑승할 수도 있었고, 탑승하지 않은 채로 의지만으로 조종할 수도 있었다.
⚫ 자율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된 까닭에 ‘자아를 지닌 마도구’로 판정된다. 하지만 그 자율 의지의 범위는 매우 좁아서 단독으로 판단하거나 행동하지는 못한다.
⚫ 로젠베람의 멸망과 함께 제작법이 사라짐.
“전설적인데?”
투란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