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6)
Chapter 198. 굴하람의 묘지기
로즈벨과 맞닿은 검은 바다에서 굴하람으로 가는 항로는 해안을 따라 움직이는 단조로운 궤적을 그려 냈다. 그 단조로움은 검은 바다가 해안을 침투해서 내륙으로 스며들며 검은빛을 잃고 밝은 강물이 되어 가는 기묘함과 함께 사라졌다.
강이 흘러가 바다가 되는 대신에 바다가 흘러들어 강이 되는 풍경은 그 물길을 따르는 배에서는 그저 외길인 듯했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내륙을 향해 거미줄처럼 갈라지며 전혀 다른 곳으로 인도하는 갈래가 수십은 될 듯 보였다. 외길을 따르는 배가 가끔 한 번씩 만나는 갈림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 도착지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명백했다.
그런 갈림목을 몇 차례 겪고 나니 길잡이의 가치가 점점 더 귀해지고 소중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덕분에 루헬을 비롯한 헌터 일행은 처음 배에 올랐을 때의 긴장감이 많이 누그러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잡이 노인이 필요해서 덤으로 배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기사와 그 종자들이 매우 꺼림칙하게 바라봤지만, 그 길잡이 노인과 함께 주변 풍경을 관찰하고 다양한 결론을 끌어내며 한몫하는 것이 확인된 셈이었다.
물론 이는 루헬이나 쿨람, 이들이 이끄는 헌터 일행에게는 다소 곤혹스러운 상황이기는 했다.
“설마 춤추는 산맥 밖에서 이럴 줄은 몰랐는데.”
루헬이 씁쓸하게 중얼거렸고, 쿨람은 바로 동의하면서도 몇 마디 더하고 있었다.
“몬스터의 계열이나 품종이 완전히 다르고, 거의 마수 수준이긴 하잖아요.”
헌터 일행이 쉬는 사이에 둘이 소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뒤에 불쑥 길잡이 노인이 나타나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몬스터나 마수가 있기에 자네들이 불려 왔다는 정도는 이미 알고 있잖나? 이 배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들은 자네들을 부른 이유가 아니란 것도 알 테고. 뭘 그리 어리둥절해하지?”
루헬은 쓴웃음을 지었고 쿨람이 대꾸를 한다.
“춤추는 산맥의 경계를 벗어나면서부터, 몬스터가 마수 수준으로 힘이 떨어진 채로 나도는 것을 몇 번 봤습니다. 말로는 들었지만 막상 대하고 나니 어이가 없었죠. 하지만 마수가 몬스터 수준으로 강한 경우도 봤죠. 보다 보니 뭔가 묘하게 강약의 균형이 뒤틀린 것인가 했는데…… 이쪽은 또 묘하잖습니까.”
길잡이 노인이 껄껄 웃었다.
“허헛, 낯선 곳에서는 모든 일이 낯설어지기 마련이지. 그래도 슬슬 이쪽의 성향이나 경향은 대강 감이 오질 않는가? 마수만도 못한 듯한 몬스터이지만, 대강 어떤 계통인지 말이야.”
쿨람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 루헬이 그 대신이란 듯이 말한다.
“데드워커가 많더군요. 심지어…… 부숴 놔도 얼마 지나면 다시 일어나는 데드워커라니, 춤추는 산맥에서는…….”
“언데드. 이쪽에서는 데드워커란 말보다 더 많이 쓰이지. 죽여도 죽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저 시체가 움직이는 것이랑은 다르다는 점도 강조하는 말이니까. 그림자 아래에 가까워질수록 그런 경향이 심해질 거야. 그러니 기대하라고. 후후훗.”
짓궂은 웃음으로 슬그머니 말을 끝내는 길잡이 노인이었다.
루헬과 쿨람은 노인의 눈길이 훑는 광경을 흘깃하면서 동시에 입을 꼭 다물었다.
기사의 일행이 주변에서 바쁘게 일을 하면서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풍경 속에서 헌터 일행은 멀뚱멀뚱하니 뱃전의 한적한 곳에 뭉쳐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먼 곳에서는 애벌레 같은 구름이 낮게 꾸물거렸다.
“아직 멀었나?”
투란이 툴툴거렸다.
―이젠 그냥 먼저 가도 되잖아? 이미 지형도 확인했고, 지도가 친절하게 위치까지 알려 주는데 말이지.
드라고니아는 귀찮다는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투란은 한층 더 투덜거렸다.
“내가 딱히 묘지기 잡으러 가는 것도 아니잖아? 신기하긴 하지만…… 마스터 홀시딘이 알아봐 달라는 일은 저 길잡이 할배 쪽이고…… 괜히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마석과 관련된 일을 놓치면 더 귀찮아질걸.”
상공(上空)의 험한 바람결에 목소리가 입술 넘어 나오자마자 한마디마다 흩어지듯 지워져 버렸다. 그사이에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꽤 기묘했기에 투란은 아무도 없는 텅 빈 하늘을 향해 중얼거리듯이 일부러 소리를 내는 중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이 그리 신기하거나 새롭지 않은 듯.
―묘지기 보고 싶어 아주 근질근질하구나? 그럼, 먼저 가서 사냥해 버려도 되잖아? 어차피 굴하람으로 저들도 올 테고…… 딴 쪽으로 새는 것이 걱정이라면 옵저버를 붙여 놔도 되니까.
“응?”
잠깐 투란이 맹한 소리를 냈고, 거센 바람결이 다시 이를 집어삼키며 지웠다.
제대로 확인하자는 듯, 투란은 진지하게 입을 다물고 소리 없이 묻는다.
‘옵저버를 붙여 놓는다니? 프로브는 너무 멀면 마력이 소진돼서 사라지거나 멈춘 채로 간신히 유지만 되잖아? 옵저버는 그런 것 없었어?’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 더 많은 마력을 축적한 채로 독립적인 활동이 가능하도록 해 놨지. 상당한 거리에 있다 해도 상대 측정에 따라 그 위치를…… 그냥 쉽게 말해서, 상아탑의 비컨처럼 아주 멀리 떨어진 채로도 네 마력에 반응할 수 있어. 애초에 둘이 하나인 세트로 만든 까닭도 그래서였고.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하려다가 드라고니아는 맹해지는 투란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말을 줄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줄임만큼 투란은 간결하게 납득했다.
‘응, 그렇구나. 마법이네.’
―얀마!
뭔가 한참 이전의 투란으로 되돌아간 듯한 말에 드라고니아가 울컥했다.
그 한마디를 외면하듯 투란은 누웠던 해먹에서 일어나 주변을 훑어보는 시늉을 했다. 머리 위에는 이전과 다르게 애벌레 모양으로 꿈틀거리는 듯한 거대한 주머니가 이전과 다른 벌집 구조를 지닌 채로 방마다 불꽃을 머금은 채였다. 밧줄 몇 가득이 애벌레의 마디를 구분 짓듯이 그 몸통을 휘감으며 내려와 투란이 해먹을 걸고 누워 빈둥거릴 수 있는 작은 조각배…… 이제는 배라기보다는 공중에 띄워 놓은 바닥이 뚫리고 벽이 낮은 방처럼 생겨 먹은 형체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애벌레가 된 풍선 주변은 에어로와 아쿠아, 두 정령수가 협력해서 안개를 휘돌리며 구름처럼 덮고 있었다. 덕분에 멀리서 본다면, 저 기사의 배 쪽에서 본다면 가히 애벌레 모양의 구름일 터…… 흘러가는 세찬 바람결을 투란이 고스란히 들어맞는 중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안정적으로 공중을 부유하는 셈이었다.
‘좋아, 그러면 옵저버, 혹시라도 들키지 않게 거리 유지해서 붙여 놔 줘. 먼저 굴하람으로 가자! 아쿠아, 거울!’
투란이 마음을 정했다.
그 의지를 받은 아쿠아가 즉각 안개를 뭉치며 자연스럽게 주변의 파편을 반영하는 수면(水面)을 드리웠다. 수면은 거울이 되었고, 공중에서 애벌레 구름이 잔잔하게 흩어지며 사라져 가는 풍경을 비쳐 냈다.
그사이에 에어로가 연이은 투란의 의지를 받아서 애벌레 풍선을 빠르게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안정적인 구조를 지닌 풍선은 공중을 기어가는 애벌레 모양을 드러내면서 아래에 드리워진 지형을 무시하며 목적지를 향해 돌진했다.
투란은 발아래에 그물처럼 짜인 바닥 너머로 보이는 지상이 풍경을 흘깃하면서 낮은 담장 너머로 타고 오는 성난 듯한 바람을 부릅뜬 황금빛 눈알로 고스란히 받아 내면서 지상의 형태를 마음에 담았다.
검은 바다에서 흘러온 강줄기가 그물처럼 뻗어 나가면서, 지하로 잠적했다가 다시 치솟는 듯한 모양…… 지하 광물까지 꿰뚫어 보는 드레이크의 시력을 통해 이를 보면서 투란은 사막의 풍경이 노골적으로 옅어지면서 거대한 모래와 구름의 방벽이 내리찍힌 광경이 짙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굴하람은 저 방벽의 한구석, 그 가까이에 자리한 마을이며 바위 묘지기는 그런 굴하람의 북쪽에 머물고 있다 했다.
투란은 느릿하게 어깨를 돌리며 몸을 푸는 시늉을 했다.
드라고니아가 그 꼴이 짜증 난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조금 빨라졌다만, 이 속도로는 앞으로 반나절 이상…… 하루는 더 날아야 하거든? 저 배는 앞으로 이삼 일 정도 더 걸릴 테고. 따로 볼일 보겠다면 드레이크의 날개든 뭐든 펼치고 좀 빨리 가지?
‘풍선 속도를 더 올릴래.’
슬쩍 해먹에 다시 걸터앉으면서 투란은 완강하게 풍선의 비행을 고집했다.
그 속내는 드라고니아에게 훤히 엿보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 둥실거리는 것이 뭐가 재밌다는 거야!
짜증을 내기까지 했지만, 투란은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이 풍경을 조금 더 즐길 참이었다.
왜 좀 더 일찍 풍선에 관심을 갖지 않았나 아쉬워하면서!
* * *
⚫ 묘지기란 별명은 그 지역이 거대한 묘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일리가 있었네.”
황혼이 드리운 그림자가 깃든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로즈벨이 자리한 유적지의 폐허처럼 일단 폐허이기는 했다.
하지만 비어 버린 채로 사막의 바람을 맞아 으스러져 가고 파묻혔다가 드러났다가 하는 폐허와는 달랐다.
당장 누군가 죽어서 임시로 파묻고 막대를 꽂아 간단히 표시해 둔 듯한 풍경…….
춤추는 산맥에서는 가급 하지 말라 하는 형태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성벽이 튼튼한 도시 안쪽에서는 간혹 만들어져 있는 묘지의 광경이 더욱 일그러지고 뒤틀린 채로 산으로 이어져 올라가는 언덕, 그 옆을 쪼개놓은 듯한 절벽과 제멋대로 박힌 듯한 숲의 정경을 담고 펼쳐져 있었다.
저런 곳에 머물고 있으니 묘지기란 말이 딱 어울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 생김새가 바윗덩어리이니 바위란 한마디도 더해졌을 테고.
―언데드다, 투란.
‘응? 뭐가…… 엥?’
여전히 풍선을 탄 채로 풍경을 내려다보던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시야에 표시해 준 곳을 바라보며 흠칫했다.
해골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살점이 다 빠져나간 채로, 뼈만 남은 해골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뼈뿐인 손에는 흙과 녹으로 범벅이 되어 버린 칼까지 들린 채였다.
멍하니 그 해골 한 구에 초점을 맞추던 투란은 문득 그 주변에서 함께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나가…… 아니네?’
―묘지가 맞는가 보다, 오래된 유골들이 상당히 많이 퍼져 있어. 아무래도 고대의 격렬한 전장이었던 모양인데? 쳐들어온 것도 언데드였고, 싸우다 죽은 이들도…… 결국 언데드가 돼 버린 모양이군.
‘그 말은, 저 해골들이 으깨져도 다시 붙어 일어난다는 뜻이야?’
―그래, 영핵을 처리하지 않으면 물질적 훼손만으로는 잠시 동작을 멈추게 하고 지연시킬 뿐인 것들이다. 도감에 수록된 대로, 묘지기는 저것들이랑 어울릴 참인 모양이군.
‘응? 묘지기? 어디야?’
갑작스러운 말에 투란이 흠칫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탓에 시야에 광대한 영역이 포착되고는 있었지만, 그 한 점 한 점이 꿈틀거리고 꼼지락거리는 듯한 모양인 탓에 보고자 하는 것을 바로 파악하기가 오히려 힘들었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투란의 시각 속에 빛나는 화살을 드리웠다.
그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투란의 눈길이 돌아가니, 짙은 그림자가 어둠처럼 맴도는 절벽 언저리에서 뭔가 꾸물거리며 기어올라 오는 광경이 보였다. 뭔가 언덕에서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듯한데, 그 주변이 지나치게 어두웠다.
‘캄캄해!’
―거참, 귀찮게 하기는…….
투란이 바로 눈을 비비면서 어둠을 꿰뚫어 볼 눈알을 형성하려 하니,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리면서 프로브의 시각을 교정해서 비춰 줬다. 순식간에 어두웠던 풍경이 광원(光源)을 따로 얻은 것처럼 훤하게 투란에게 보였다.
‘오! 얼른 해 줄 것이지!’
―계속 드레이크의 눈이었으면 그냥 보였을 거잖아!
투란의 투덜거림에 바로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였다.
‘어허, 그렇게 막 힘을 쓰면 정작 몬스터 앞에서 힘쓸 때 모자란다니까!’
슬그머니 몬스터 로드의 약점을 띄워 보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거기에 대해 더 뭐라 할 틈을 얻지 못했다.
밝혀진 시야 속에서, 확대된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바윗덩어리가 주변의 해골들을 짓밟고 으깨 부수는 광경이…… 매우 과격하면서도 왠지 호쾌하고 박력이 넘쳐나는 중이었으니까.
갑작스러운 그 공격에 해골들은 흐느적거리던 자세를 바로잡아 제대로 반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래 봐야 녹슨 돌덩이 같은 칼이 으깨지고 뼈마디가 으스러져 사라지는 결과였지만.
‘사이가 엄청 나쁘다고 봐야 하나?’
투란이 갸웃했다.
―몬스터끼리 어울리는 쪽이 신기하겠다만, 언데드와 멈추지 않은 골렘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저러고 있었던 거지?
드라고니아는 어이없어했다.
어째서 이런 상황에 대해 드라코눔의 아칸인 자신이 몰랐을까 의아함도 곁들인 채였다.
‘언데드, 저런 경우에는 날 밝으면 일단 멈춘다고 했던가?’
불쑥 투란이 물었다.
황혼의 그림자 속에서 일어서는 해골들이었다.
그렇다면 햇살이 뜰 무렵에는 멈출 듯도 한데…….
콰직! 끼이익! 콰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