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8)
뼈가 재가 되어 소용돌이치며 밀려 나갔다.
회오리는 거센 불길을 머금은 채로 투란을 중심으로 도도하게 맴도는 장막이 되었다. 멀쩡한 짐승이거나 인간이었다면, 뼈를 재로 만들고 조각내는 불꽃 회오리 앞에 두려움을 품은 채로 멈추거나 달아나기 위해 뒤돌아설 광경이었다.
―고인돌?
불길의 여력을 흩날리는 회오리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중얼거림이었다.
투란은 그런 드라고니아의 의아함에 공감할 수 있었다.
기울어진 바위, 그 한쪽이 치솟는 중이었고 기대고 있던 기둥과 균형을 맞추려는 듯한 또 다른 기둥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모양은 드라고니아가 말한 그대로 두 기둥 돌 사이에 놓인 돌, 고인돌이었다.
‘항아리인가?’
거기에 더해진 바닥의 새로운 모양은 투란을 갸웃거리게 했다.
뚜껑이 덮어진 항아리, 그 위에 기둥 둘이 꽂혀 있고 기둥이 받쳐 주는 길쭉한 돌판 위에 투란이 서 있는 꼴이 되고 있었다.
불을 머금은 회오리는 이제 그 항아리를 휘감고 춤을 추는 듯, 혹은 처음부터 항아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제는 저편의 바위 묘지기, 해골 무리의 격전보다 갑작스럽게 딛고 선 자리에서 벌어진 이 변화에 더 관심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투란, 저거 정령기사인가 뭔가 하는 몰골 아니냐? 완전히 뭉개져 있다만 대충 멀쩡한 모습을 상상하면 그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고인돌 아래에 기둥 사이에 항아리 뚜껑의 꼭지처럼 볼록하니 들러붙은 형체를 놓고 말했다.
도감에서 보여 준 환영과 다르게 누렇게 변해 버린 것이 바위가 누더기가 되어 뭉쳐 있기라도 한 듯했다. 어딜 봐도 반짝거리는 멋진 갑주 형태로 무장한 모습은 떠오르지를 않았다.
게다가 그 누렇게 구겨진 것으로부터 뭔가 끈적이는 기묘한 액상(液狀)이 번져 나오는 광경은 간단히 보아 넘길 수가 없기도 했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생겨나는 것인가?
‘정령에 반응하는 것 아냐?’
투란은 자신의 감각과 프로브의 탐지, 정령수들이 호응하는 상태를 살피면서 짐작을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여기서 변화가 일어난 기점은 정령수들이 힘을 발휘한 다음부터이지. 어찌 된 것인가 애매하다만, 다른 원인을 떠올리기도 힘들군. 어쩔 거냐?
드라고니아의 물음에 투란이 뭘 어쩐다 대답할 틈은 없었다.
걸쭉하게 흘러나온 끈적이는 것이 불꽃 회오리 속으로 흘러들면서 자연스럽게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중이었고, 그에 따라 상황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먼저 기괴하게 호응한 쪽은 해골 무리였다.
검과 방패를 휘두르던 뼈뿐인 손을 활짝 펼치며, 들고 있던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동작으로 허우적거리면서 흘러 나간 누렇고 걸쭉한 액상…… 녹은 쇠인가, 돌인가 알 수 없는 것을 긁고 잡으며 턱뼈를 따닥 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누가 허공에 죽을 뿌려서 그걸 받아먹으려고 난동을 부린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를 광경이었다. 뼈뿐인 해골들이 그러고 있으니 괴기스럽고 섬뜩한 분위기가 풀풀 휘날리기는 했지만…….
그런 해골 무리를 짓밟고 돌격해 오는 바위 묘지기는 몸을 던져 구르고 있었다.
그냥 뜀박질이 성이 차지 않는다는 것처럼 바위로 된 듯이 보이는 몸을 바닥에 내던져 공처럼 구르고 있었다. 그 무게와 단단함으로 인해 그 앞에서 덜그럭거리는 해골들은 그대로 찧고 빻아지는 상황이었으니, 딱히 주먹질 발길질하는 자세가 필요 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묘지기와 해골들이 허겁지겁 달려드는 광경을 보며 살짝 오싹해진 투란이 중얼거린다.
‘나도 받아야 하나?’
―뭔 헛소리야? 넌 이 고인돌 아래 항아리처럼 생긴 바위덩이를 살펴야지! 저 망가진 정령기사의 잔해가 반쯤은 그 안에 파묻혀 있다고! 크기부터, 재질까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파악해야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답을 얻을 수 있잖아!
드라고니아는 엄격하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말해도…….’
살짝 한숨을 쉬다가 투란은 문득 느낄 수 있었다.
바위 묘지기가 액상을 섭취하며 굵직하게 부풀고 있다는 것.
해골들이 액상을 뼈다귀에 휘감으면서 새로운 검과 창, 도끼, 방패와 철갑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
불길이 항아리 겉을 긁으면서 그 뜨거움을 갈취당하는 중이란 것!
회오리로부터 열을 흡수할수록 항아리가 꼭지를 통해 흘려 내는 액상이 한층 더 걸쭉하고 끈적이면서 많아지는 중이란 것까지…….
‘테트라!’
곧바로 투란이 소리 없이 또 다른 속성의 정령수를 불렀다.
회오리와 닿아 갈려 나가던 지면, 그로부터 치솟다가 불길에 잡아먹히던 흙먼지가 견고한 흐름을 만들어 내면서 뭉치며 새로운 장막을 한 겹 더 꾸리기 시작했다. 불꽃 회오리 안쪽을 감싸며, 고인돌을 얹고 형체를 드러낸 항아리를 휘감아 덮는 거대한 흙으로 된 알이 금방 생성되었다.
투란은 그 알껍데기가 자신이 선 고인돌의 위편까지 모조리 덮은 것을 확인하면서 고인돌을 얹은 항아리가 집 몇 채를 쌓은 듯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걸 잠깐 사이에 홀랑 덮는 외각(外殼)을 꾸려 낸 테라트.
―뭘 우쭐거려?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지만 아직 무슨 일인가 모르잖아!
드라고니아가 바로 핀잔하며 잔소리하고 있었다.
‘어? 아…… 짐작 가는 부분이 있어.’
투란이 조금 맹하니 꺼낸 대꾸였다.
이는 드라고니아에게 확실하게 뜻밖의 말이었다.
―뭐? 짐작? 정말로?
‘언데드가 뭔가 얻고 있잖아. 그 정도 눈치도 없는 줄 알았냐?’
뚱하니 투란이 툴툴거렸다.
드라고니아도 이제는 무슨 짐작인가 눈치챈 듯했다.
―영핵이 담겨 있을 거라고?
‘골렘을 뒤틀어 버린 뭔가도 담겨 있겠지. 그리고 요정족이 남긴 문양이 더 또렷해지는 꼴로 봐서는……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어. 이 묘지를 이런 형태로 유지하려고 말이야.’
―그건…… 상당히 많이 나간 추측인데? 근거는?
드라고니아는 침착하게 다시 묻고 있었다.
투란이 흘깃 어두운 밤의 풍경 속에서 한층 더 시커멓게 보이는 구름과 모래의 방벽, 굴하람에 가까운 지금 거의 하늘까지 닿는 검은 그림자처럼 보이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짧게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역병의 수해 같잖아.’
―과연.
자세한 설명을 내다 버린 말이었지만 드라고니아는 납득하고 있었다.
굴하람의 북방, 길게 늘어진 그림자 방벽은 그 너머를 채우듯이 치솟고 있었다.
그 방벽 안에서, 그림자 아래에서 뭔가 튀어나온다면 이 묘지를 거쳐야 굴하람에 당도할 듯한 지형이었다. 이를 되짚어 본다면 바위 묘지기와 해골들이 싸우는 옛날 전장의 유적지 같은 이 묘지 영역이 출입구처럼 놓인 상황.
뭐가 튀어나온다 해도 묘지기와 해골의 전쟁 속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밝히는 또 한 가지.
―낮에 나오는 것은 괜찮다는 뜻이려나?
드라고니아가 밤이 되어서야 활동을 시작한 해골들, 밤이 되어서야 기어올라 온 묘지기의 상황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투란은 그에 대해 함께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두 손으로 서 있는 바위를 짚으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투란의 목 언저리에서 작은 목걸이가 보랏빛을 머금으며 허공으로 흘러 나가려는 것처럼 흔들거렸다. 투란의 손발에는 벽돌을 쌓아 올린 듯한 무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무늬는 허공으로 번져 나가기까지 했다.
테라트가 흙을 머금은 바람결처럼 투란의 주변을 누렇게 채워 넣었다.
무늬는 곧바로 테라트가 형성한 알의 안쪽을 가득 채우면서 항아리와 고인돌까지 물들이듯이 번지고 있었다.
―야, 이건 뭐야?
드라고니아가 놀라 외쳤다.
알의 외형까지 무늬가 번져 가는 순간, 투란은 위로 뛰었다.
고인돌을 얹은 거대한 항아리는 더 이상 묘지로 보이는 터 위에 놓여 있지 않았다.
완벽하게 꾸며진 거대한 성채, 그 지하에 철저하게 건축된 광장 속에 덩그러니 놓인 꼴이었다.
‘유니콘홀드, 못 알아보겠어?’
투란은 알의 상부를 열어젖히고 위로 오르면서 히죽 웃는 채로 대답했다.
그리고 투란이 올라선 알은 성벽이었고, 묘지의 풍경을 향해 도도하게 으스대듯이 우뚝 솟은 채였다.
알껍데기 안팎이 완연이 다른 공간, 풍경을 꾸미는 상황을 드라고니아는 잠시 뒤에 납득한 듯했다.
―뭐 이런…… 이런 짓이 가능했다니…….
납득한 만큼 경외(敬畏)하는 속삭임도 흘리는 드라고니아였다.
‘에이, 이제 시작이라고.’
뭘 놀라냐고 놀리듯이 속삭이면서 투란은 손으로 가슴 위편을 쓸어내렸다.
목걸이의 조각이 투란의 손아귀에 새로운 형상을 남겼고, 투란이 손을 펼치는 순간에 유니콘의 깃발이 묘비처럼 내리꽂혔다.
쿠르릉.
―허…….
이어지는 변화는 드라고니아를 한층 더 놀라게 했다.
외형적으로는 간신히 거대한 항아리를 감싼 듯했던 알껍데기, 그 아래편이 갈라지면서 사방으로 성문이 열린 듯한 모양을 드러냈다. 그 열린 문 안쪽은 문턱 너머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광대한 지하 건축의 풍경이었고 그 중심에 놓인 것이 원래 묘지의 풍경 속에 파묻혀 있어야 했던 고인돌을 얹은 거대한 항아리 바위였다.
이 변화를 해골들은 아주 열렬하고 격렬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와르르 성문을 향해 몰려들었고 서로 구겨지고 구르면서 문턱을 넘어 알 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일단 들어서면 지하 건축의 중심지까지 다시 수십 미터의 간격이 있는데, 이 또한 상관없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 가로지르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다.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투란은 바위 묘지기 쪽을 흘깃했다.
바위 묘지기는 덩치를 부풀린 채로 쿵쿵 발을 찍어 걷다가 멈추고 있었다.
해골들과 다르게 이질적인 성채 같은 알의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 모습에 투란이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저 녀석은 언데드는 아니었네.’
―응? 그야 당연히…… 투란, 영핵이 이 고인돌 항아리였냐?
‘아마 그럴걸. 유니콘홀드 안으로 들여놓으니까 확실하게 느껴져. 음, 대강 해골 삼천? 그 정도를 유지하는 모양인데. 부서지면 지맥의 힘을 타고 움직여서 다시 해골의 형체를 복원하나 봐. 뭐랄까, 영핵과 함께 강력한 마법이 함께 작용하는 상태? 대강 그렇게 느껴져.’
―느껴지는 거냐? 탐구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몬스터 로드에게는 느낌이 먼저야! 내가 무슨 마법사도 아니고…….’
투란은 툴툴거렸다.
드라고니아는 그에 대해 더 캐묻지 않았다.
유니콘홀드를 통째로 삼켰고 그 안에 담긴 것을 다듬느라 내리 2년이란 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사정을 굳이 말로 이러쿵저러쿵 떠들 수가 없다 해도 ‘느낌’을 통해 제어하고 다룰 수 있다면…….
―여기서 바위 묘지기만 남겨 놓고 해골을 치워도 되는 걸까? 삼천 구의 해골이 사라져도 이곳이 유지될까? 그 부분은 어쩔 셈이냐?
다른 부분을 짚어 묻는 드라고니아였다.
투란은 슬쩍 어둠이 내려앉은 풍경을 둘러보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냥 내버려 둘까 싶기도 했는데…… 여기를 누군가 애써 꾸며 놓았다면, 조금 관리해 둘 필요는 있겠지.’
당당하게 방법이 있다는 말이었다.
호기심이 부푼 드라고니아가 재빨리 물음을 더한다.
―관리? 유니콘홀드의 힘으로? 어떻게? 뭘 할 수 있는 거야?
‘유니콘홀드만은 아니고, 좀 섞어야 해.’
투란은 자신이 어떤 마법적인 수단을 동원할까 잔뜩 궁금해하는 드라고니아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 투란의 발아래에서 기묘한 늪이 생성되고 있었다.
살짝 발등을 덮는 늪, 하지만 묘한 광채를 머금은 채로 단숨에 팽창될 듯한 긴장감을 잔뜩 드러낸 늪이었고 이는 드라고니아를 한번 더 놀라게 했다.
―야, 그건! 메듀시아 미궁의……!
‘유니콘홀드가 특별하게 지정된 곳으로 바로 군단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 알고 있었지?’
흥분한 드라고니아를 향해 투란은 전혀 다른 부분을 묻고 있었다.
―이동하는 마법 성채니까! 그런 말을 듣기는 했다만, 어떤 방법인가는 몰라. 어렴풋이 바람의 길이라든가, 지맥의 흐름을 탄다는 말도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그래서 그 늪을 어쩌려고?
드라고니아는 대답을 하면서도 하던 물음을 잇고 있었다.
그 집요함에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은 간략하게 대답한다.
‘여길 기억시키려고. 영핵을 지닌 언데드라는 거, 생각보다 편리한 점이 있잖아. 영핵의 파동이 닿는 영역 안에서는 지맥을 뒤틀고 바로 몸을 형성하는 이 해골 패거리처럼 말이지.’
말과 함께 투란은 쿠릉 하는 바위 묘지기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바위 묘지기는 해골들이 알껍데기 속으로 뛰어들며 더 이상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상황에 불만이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