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89)
쿠륵, 그르륵.
기괴한 소리를 온몸으로 울려 대면서 바위 묘지기가 느릿느릿하게 뒷걸음치듯이 간격을 잡으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해골들이 와르르 몰려 문턱을 넘어 성벽을 지나치는 광경과는 너무나도 다른 태도였다.
―저건 또 왜 저래?
드라고니아가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투란이 하는 짓도 희한하지만 맹목적으로 움직였던 몬스터가 저러는 것 또한 어이없다는 듯…….
‘바위 항아리 영핵을 여기서 치우려던 모양인데? 일단 치워졌으니까 망설이는 것 같기도 하고.’
살짝 키득거리는 듯이 투란이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혼란스러운 듯이 되묻는다.
―무슨……? 치워졌다고? 마법의 고성(古城)이 이곳에서 치워진 영역으로 저 녀석에게 보인다고? 정말로 그렇게 된 거냐?
‘보이고 들리고 들락거릴 수 있지만 여기 없다, 여기 있지만 여기 없는 것. 그런 상태라고 하던데?’
―뭐? 누가…… 설마 유니콘홀드의 망령들이랑 대화를 하고 있는 거냐?
‘대화는 아니고, 그냥 알아. 몬스터의 본능처럼, 망령들이 아는 일을 내가 느끼고 알게 된다고 할까? 멀쩡한 생각은 거의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상태인가 하는 정도는 저절로 아는 정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군. 잘못하면 정신이 오염될 수가 있어, 투란.
‘아, 맞아. 그래서 메듀시아의 뱀을 아주 많이 길러 내야 했지. 후우, 그러니까 이제는 전혀 오염될 일 없을 거야. 그렇다고 했으니까, 수정이.’
―수정? 허? 설마 유니콘홀드가 품은 망령에게 메타모픽 서펜트를 이용해서 머리를 부여했다는 거냐? 그래서 이 년씩이나…….
‘그 얘긴 나중에 한가할 때 하고, 저 묘지기. 이젠 때려잡아야 할 것 같은데?’
소리 없는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도 바위 묘지기의 상태를 살피던 투란이 살짝 어깨를 돌리고 목을 까닥거리면서 주먹을 쥐고 뛸 준비를 했다.
바위 묘지기는 슬슬 주변을 맴돌면서 거대한 알의 형태를 한 성벽 안쪽을 살피는 중이었는데, 분위기가 묘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처럼 뒷걸음치는 폭이 더 넓고 더 빨라지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해골들처럼 안으로 뛰어들 낌새는 전혀 없는 태도였다. 열린 성벽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 매우 좋지 못한 것을 느꼈다는 듯.
그런 바위 묘지기를 향해 투란이 높이 도약할 때, 드라고니아가 깜박 잊었다는 듯이 바쁘게 묻는다.
―야, 이 성벽은 어쩌려고? 이대로 두는 거냐? 그래도 되는…….
‘괜찮아!’
간단한 대꾸와 함께 투란은 바위 묘지기의 머리통에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두텁게 부푼 주먹이 바위 묘지기를 내리찍었고, 거칠고 사나운 발톱이 돋아난 두 발이 장대한 형상이 되어 바위 묘지기의 어깨를 딛고 움켜쥐어 갔다. 동시에 투란의 투덜거림이 소리 없이 울려 나온다.
‘이거 왜 이렇게 커?’
―원래 3미터 이상이었고, 조금 아까 흘러들어 간 액상 때문에 칠 미터 가까이 부풀었잖아! 뭘 이제 와서 그딴 소리를 해!
드라고니아가 바로 타박했다.
그사이에 시퍼렇게 물든 비늘이 덮인 투란의 손톱이 바위 묘지기의 목덜미, 어깨를 긁고 후벼 내며 허공에 파편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파편은 다시 휘둘러지는 투란의 손아귀, 순식간에 손바닥에 나타나는 금색 사자 머리의 문양과 만나면서 사라지거나 손이 닿지 않는 저편으로 튕겨 떨어졌다.
그 광경을 드라고니아는 놓치지 않았고 타박하던 말에 바로 이어 묻는다.
―뭐 하는 거야? 파편부터 챙기는 거냐? 그냥 놔주려고?
‘아니! 이놈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이래저래 수상한 놈이잖아!’
발톱으로 바위 묘지기의 가슴팍을 긁어내면서, 흡사 네발짐승처럼 바위 묘지기를 할퀴고 갉아 내면서 투란이 대답했다. 그사이에 바위 묘지기가 두 팔을 바쁘게 움직여 투란을 잡으려 했지만 거친 소리로 자신의 몸만 긁어 대고 말 뿐이었다. 제법 체구를 키우기는 했지만 투란은 굵은 나무둥치에 들러붙은 다람쥐처럼 바위 묘지기의 등과 허리, 목덜미를 오가면서 사파이어 광채로 물든 손발을 휘두르고 그 손톱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을 듯이 긁어 대며 더 많은 파편을 만들어 냈고…….
카륵, 카캉. 쿵, 쾅, 쾅.
거친 굉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며 묘지의 잠을 방해하듯이 울려 퍼졌다.
해골들은 알 모양의 성벽이 열어 둔 문턱을 넘어 몰려들어 간 채로 다시 나올 생각 없이 엉거주춤하니 허우적거렸다.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바위 묘지기와 싸우던 일을 모조리 잊은 듯했다.
그사이에 바위 묘지기는 들러붙은 투란에게 갉혀 나가면서 상처를 더해 가는데, 어느새 그 바위 몸뚱이가 부들부들 떨리며 우득 하기 시작했다.
―충격파를 쓸 참인데? 투란, 파편이 날카롭게 뿜어질 수도 있어. 덩치를 키운 채로 금이 간 채로 충격파를 쓰는 거니까!
드라고니아가 재빨리 상황을 짚으며 경고했다.
‘그래? 그렇다면…….’
투란의 움직임은 한층 더 날렵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투란의 몸을 중심으로 기묘한 파동이 형성되고도 있었다.
그 파동은 부들거리는 바위 묘지기의 떨림과 어우러졌다.
―응? 상쇄하는…… 야!
그 현상을 지켜보고 해석하려던 드라고니아가 화들짝 놀라 버럭 외쳤다.
콰드드드, 콰득!
바위 묘지기의 떨림이 증폭되면서 몸통이 으그러졌다.
안으로 응축되는 강렬한 힘이 그 몸을 일그러뜨리는 광경.
밖으로 격출하려는 충격파가 거꾸로 바위 묘지기 몸통 안으로 흘러들어 가는 듯한 상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압축되면서 푹 쓰러지기라도 할 듯한 상태였다.
―그냥 둬도 세게 터진다고! 그걸 왜 더 세게 터뜨려고 해!
드라고니아는 드러나지 않는 상황을 간파했기에 으르렁거렸다.
투란이 사룡의 격동을 이용해서 바위 묘지기가 일으키려는 충격파에 간섭했고 그것을 더 빠르고 강력하게 응축하기 때문이었다. 너무 빠르고 강력해서 바위 묘지기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탓에 몸뚱이가 오그라드는 셈이었고, 이대로라면 바위 묘지기의 형체를 산산조각 낼 정도의 강렬한 충격파를 뿜어낼 듯했다. 이미 높은 허공까지 전해지면서 주변의 뼈다귀를 으스러뜨릴 수 있는 충격파를 이렇게 강화한다면, 주변의 지형이 완전히 갈려 나가면서 묘지 한복판에 커다란 분지를 만들기라도 할 듯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재촉하듯 투란은 더욱 빠르게, 고속 이동하는 다람쥐처럼 들러붙어 바위 묘지기를 두드리며 맴돌았다. 이제는 두드리는 자리마다 푹푹 꺼지는 중이었는데 그때마다 바위가 으스러지는 듯한 맹렬한 굉음이 흘러나와 주변의 음향을 모조리 잡아먹는 듯했다.
그럼에도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은 투란의 뇌리에 쏙쏙 꽂혀 들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냐고! 이대로 구경이나 해? 테라트나 에어로로 방벽이라도 세워? 저 성채는 어쩌려고! 저대로 둬도 되는 거냐? 젠장! 아, 몰라! 네 멋대로 해라! 난 구경이나 하겠어!
결국 잔뜩 비뚤어진 듯한 투덜거림으로 맺어지고 있었다.
투란은 거의 포기했다는 듯한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소리 없이 외치면서 주먹의 형상을 변화시켜 바위 묘지기의 등을 꿰뚫듯이 내질렀다.
‘지금! 프로브로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자세히 지켜봐! 모든 방향에서! 중요해!’
―뭐……?
의아한 듯한 한마디 대꾸를 흘렸지만 드라고니아의 반응은 신속했다.
투란의 마음, 곧바로 흘러나온 의지를 바탕으로 이뤄진 윌 라이트의 마력이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충격파의 범위 안팎 곳곳에 배치되는 프로브 십여 기를 순식간에 생성해서 전방위로 배치하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지만 확실하게 자신에게 호응해 주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이 짧게 한마디를 덧붙인다.
‘고마워!’
우드득!
바위 묘지기의 등에 꽂힌 투란의 주먹, 시커먼 송곳이 회전하면서 닿은 자리를 으스러뜨리듯이 파고들었다. 그 파괴를 기점으로 바위 묘지기의 떨림이 한순간 멈추는 듯하다가 섬뜩한 파열이 일어났다.
음향을 지우는 음향이 퍼졌다.
괴이한 고요 속에서 바위 묘지기의 몸이 산산이 흩어져 나가며 섬광마저 뿜어내는 듯했다.
그 몸에 바싹 붙은 투란은 시커멓게 물든 채로 시뻘건 금이 죽죽 그어진 채로 암석의 파편을 몸으로 받아 내는데, 파편은 가차 없이 잔혹하다 싶을 정도로 푹푹 꽂혀 들고 있었다.
다만 그렇게 꽂힌 파편은 그대로 벌겋게 달아오르다가 순식간에 걸쭉하게 변하며 용암의 일부가 되어 투란의 몸속으로 삼켜질 뿐이었다.
쿠웅.
투란이 압력에 저항하지 않은 탓에 몇 미터 밖에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뒤늦게 주변에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시커멓게 변한 채로 뜨거운 열을 흘려 내는 몸이 체구와 상관없이 꽤 무겁다는 증명인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산산이 흩어진 바위 묘지기가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형상이 빚어지고 있었다. 덤불에 얽힌 바위, 혹은 넝쿨이 굵은 흙덩이를 감싼 듯한 몰골에 가까운 둥글둥글한 것이 잔뜩 웅크린 손발, 머리를 지닌 것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중이었다.
드라고니아가 그 상하좌우전후를 모조리 훑어 기록하면서 신음하듯 중얼거린다.
―요정족의 정령 문자…… 저게 골렘의 원형이었나…….
바위 묘지기의 험악하고 거친 모습과 다르게, 둥글둥글한 머리, 몸통, 팔다리와 손발은 아이들이 장난처럼 진흙 덩이를 동그랗게 뭉쳐 만든 인형처럼 보였다. 그 인형을 감싼 굵은 나무줄기 같은 넝쿨에서 시작된 기묘한 문양이 동그란 몸 곳곳에 스며드는 것이 누군가 정성을 기울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했다.
목을 기울이면서 마그마 로드의 결정 사이에서 퍼걱퍼걱 소리를 내는 채로 투란이 말한다.
‘깃든 악령도 있지 않아?’
―있다. 건너편에서 훤히 보이는군. 정령 문자를 뒤틀어서 악령을 포박해 골렘의 구성에 더해 놨어. 저건 애초에 몬스터로 만들어진 골렘이야. 바위 요정족 중에서도 쫓겨난 미친놈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들었다만, 처음 본다.
드라고니아가 살짝 새침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조금 질린 듯하면서도 투란이 이 상황을 어찌 예측했는가에 대해 꽤 궁금해하는 듯했지만, 드라고니아는 이를 묻지 않았다. 말없이 투란이 이다음을 어찌할 것인가를 기다리는 태도이며 기대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투란은 그런 기대에 응하듯이 성큼 내디디면서 왼손을 펼쳤다.
금색의 사자 머리 무늬가 커다랗게 부푼 손바닥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커다란 손이 휘둘리면서 곳곳을 휩쓰는 맹렬한 바람결이 피어올랐다.
이제는 블랙레온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색채를 띤 마법 배낭이 곧바로 주변에서 거센 바람에 이끌려 오는 바위 묘지기의 파편을 삼켰다.
하지만 거센 바람결에도 본체, 골렘의 원형은 보이지 않는 장막을 두른 것처럼 꿈쩍도 않고 있었다.
어찌 봐도 아예 바람결이 닿지 않는 듯했다.
다가가면서 투란이 슬쩍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더듬는 손짓을 하며 묻는다.
‘저건?’
―정령 장벽이야. 악령의 힘이 강하니 악령 장벽이라 부르는 게 더 낫다 싶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림으로 대답했다.
피식, 시커먼 투란의 입가에 붉은 금이 입술처럼 꿈틀거리면서 새는 웃음을 지어냈다. 곧바로 투란의 오른손이 뭉툭하게, 거대하게 부풀면서 길쭉한 형상으로 변해 갔다. 동시에 투란이 드라고니아에게 히죽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용암의 배 속에서도 버텨 주나 한번 보자고. 영력이란 것이 과연 얼마나 센가 구경해 볼 기회잖아.’
―배 속?
드라고니아는 용암 호수에 빠뜨린다는 말을 잘못했냐는 듯이 짧게 되묻고 있었다.
이에 대해 뭉툭하고 길어진 투란의 오른팔이 바닥을 딛고 꾸물거리며 기어 나가는 채로 만든 형상이 대답을 대신했다.
시커먼 바탕에 붉은 금이 그어진 거대한 뱀, 용암을 품은 시커먼 암석 결정의 뱀이 장막이고 뭐고 상관없다는 듯이 커다란 입을 열어 그 주변까지 단숨에 집어삼키고 있었다.
산산이 흩어졌지만 그래도 일이 미터 사이의 크기였던 골렘의 원형이 장막이 드리운 영역과 함께 곧장 뱀의 아가리 속에 담긴 채로 사라져 버렸다.
쿠우웅.
투란이 어깨를 꿈틀하니 십여 미터의 길이, 몸통 직경이 삼사 미터를 가뿐히 넘어서는 시커먼 뱀이 가볍게 몸부림치면서 머리를 들어 올렸다. 뭔가 흔들거리는 기둥에 투란이 어깨를 파묻고 들러붙은 듯한 어긋난 광경이 꾸며졌다.
―투란, 보기 흉하다.
드라고니아가 마무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다시 어깨를 들썩했고, 뱀의 머리에서 손가락이 불룩불룩 솟아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손목과 팔꿈치의 형태도 드러나는가 싶으면서 근육의 섬세한 형상이 빗어지는 듯했다.
쿠릉.
뱀의 형체와 사람 팔의 형체가 어중간하게 섞인 기둥 속에서 은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치익 하는 묘한 소리와 함께 기둥 곳곳의 붉은 금을 넘어 묘한 연기가 허옇게 새어 나오는 듯했다.
‘저게 악령?’
투란이 뜨거운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걸고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