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99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990)
허연 연기가 꿈틀거렸다.
바람 방향을 무시하듯, 이쪽저쪽으로…….
뭔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으니 결국 어쩔 수 없이 바람 따라 퍼져 나가는 듯하는데, 끊임없이 뭉클거리면서 바닥을 헤집고 허공을 짚는 듯한 꿈틀거림을 보니 연기가 계속해서 사방을 더듬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 보자…….’
투란은 발끝으로 가볍게 바닥을 두드렸다.
검은 포석이 지면에 깔렸다.
길게 이어지면서 작은 복도의 바닥을 드러내듯, 검은 포석은 알의 성채 속으로 이어졌다. 포석은 검게 물들며 문턱을 덮었고, 성채 깊은 곳에 놓인 채로 해골들에게 둘러싸인 고인돌 항아리까지 이어졌다.
포석이 흘러간 방향에서 꿈틀거리던 허연 연기가 움찔움찔하다가 내려앉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흘러가는 그 방향은 잘못 볼 것도 없이 고인돌 아래, 항아리의 꼭지처럼 볼록 돋아 있는 덩어리였다.
―악령의 근원이 저것이었나.
드라고니아도 나름대로 추측한 듯이 중얼거렸다.
투란은 가만히 동의했다.
‘그래, 그 악령을 빌어 몬스터 골렘을 만들어 낸 거야. 악령이 있는 한, 골렘은 계속해서 그 힘으로 복구되는 식으로 말이지. 저 해골들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겠지. 아리송한 것은…….’
―누가 저런 구조물에 악령을 가뒀는가? 여기도 역병의 수해랑 같은 경우인가? 뭐, 그런 일?
‘대충 그렇지.’
쿠드득, 투란은 거대해진 팔…… 뱀의 머리와 손이 섞인 형상을 응축하며 조금 난감한 듯이 낯을 찌푸렸다.
몬스터가 있고, 그 힘의 근원이 되는 것이 있다.
몬스터 로드이든 몬스터 헌터이든 결정은 복잡할 리가 없었다.
몬스터가 이로운 짓을 해 봐야 결국 그 이상의 참혹한 피해를 낳을 뿐, 그러니 일단 사냥할 뿐이었다.
몬스터 로드는 그렇게 사냥해서 없앤 몬스터의 재앙을 대신 저지르기 때문에 경계의 대상인 것이고…… 때로는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몬스터 헌터는 몬스터 로드를 보면 ‘이놈도 잡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드리울 수밖에 없고…… 몬스터는 잡을 방법만 있다면 일단 잡아 없애고 보는 것!
하지만 지금 투란은 이 묘지에서 바위 묘지기와 해골들을 치워 버릴 수 있음에도 치워야 하나 마나를 놓고 살짝 고민하고 있었다.
주변에 끼칠 영향이 뇌리 한구석에서 간질거리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치워 없앨 수가 없었다.
‘끙…… 이게 알면 병 된다는 얘기였나.’
툴툴거림이 저절로 투란의 마음에서 스며 나왔다.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었다.
―제법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됐네? 잘된 일이야. 성장했다고 해 주마. 하지만 이 주변 상황을 더 파악하려면 여기서 일이 년 정도 머물러야 한다는 것 알지?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제대로 지켜보려면 아예 살고 있어야 하고 말이야. 더불어 도감에도 누락된 정보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알아낼 일이 아니란 것도 추측할 수 있지.
‘쳇, 그래서 어쩌라고? 괜찮은 생각이라도 있어?’
―홀시딘을 불러. 상아탑의 대마법사라면 이곳을 감시할 비컨을 설치할 수 있을 테니까. 또 너의 금괴를 소모하겠지만…… 이대로 그냥 둘 수도 없잖아? 일단 치우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지켜보면서 대책을 마련해야지.
‘안 돼! 안 불러! 그냥 내가 해결하겠어!’
금괴란 말에 움찔한 투란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 몇 마디가 오가는 사이에도 투란의 걸음은 느릿하니 내디뎌지는 중이었다.
어깨를 파묻었던 기둥이 이제는 발과 함께 땅을 짚는 굵고 긴 팔 정도로 축소된 상태였고, 두어 걸음째를 내디딜 때는 적당히 몸에 어울리는 크기로 변모해 있었다. 다만 뱀과 손이 섞인 모양은 그대로였다.
이 상태를 보면서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린다.
―생각이고 뭐고, 벌써 없애 버리고 있었잖아!
‘뭔 소리야, 절반 남겼는데.’
투란이 대꾸하면서 시커먼 손, 뱀의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손가락과 뱀의 머리가 어우러진 손바닥이 입을 열듯이 펼쳐지면서 퉁 하는 미미한 소리와 함께 바위 묘지기가 튀어나왔다. 투란이 소리 없이 말한 대로, 절반은 사라졌지만 절반은 남아 있는 몰골이었다.
―뭐 하자는 거냐?
드라고니아는 의아해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후욱, 숨을 고르고 시커먼 눈꺼풀 아래에서 붉게 달아오른 눈을 번뜩이는 채로 투란이 대답한다.
‘해결, 너 말한 대로…… 홀시딘은 안 부르겠지만.’
드라고니아는 무슨 뜻인가 한층 더 궁금해하면서도 지켜봤다.
“테라트, 아래부터 치워. 내게 맡겨.”
갑작스러운 중얼거림이 시작이었다.
목소리가 입술을 넘는 순간, 알의 성채가 아랫부분부터 이지러지면서 먼지가 되어 흩어져 나갔다. 시커먼 포석은 여전히 성벽 안쪽, 성채의 형태를 유지하는 채로 공중에 매달린 듯한 알 모양의 성벽만이 으스러지며 흩어지는 광경은 어딘가 기묘했다.
투란은 앞으로 나아갔고 뱀 머리의 손가락을 움직이며 위를 받쳐 올리는 시늉을 했다. 동시에 새로운 한마디를 내뱉었다.
“간수장(看守長), 나와 줘.”
허물어져 가던 알의 성채 위쪽에서 뭔가 으깨지는 소리가 나며 고인돌 위로 사람 모양의 형상이 툭 떨궈졌다. 그 얼굴은 절반쯤 해골이 드러난 채였고, 손가락이나 팔뚝 언저리도 뼈가 조금씩 드러나 있었지만 문드러진 살가죽에 싸인 부분이 더 많았다. 그런 채로 녹슨 방패와 검, 낡은 가죽으로 된 갑옷과 투구까지 쓴 몰골이 여기 묘지에서 발생한 해골들과는 완연히 달랐다.
크르륵.
가볍게 목젖을 울리는 듯한 소리를 흘려 내며 투란이 간수장이라 부른 언데드가 고개를 들며 눈을 부라렸다. 눈동자에서 시작된 선명한 보랏빛이 눈알을 휘감았고, 갈라지고 문드러진 살갗의 틈새에서도 붉은 색조가 짙은 보랏빛이 일렁이며 새어 나왔다.
스스스…….
기묘한 음향을 내며 피어오른 것은 시커먼 포석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검은 안개였다. 아지랑이처럼, 세게 땅을 두드려 피어오른 먼지처럼 풀썩이는 듯했던 안개는 더욱 검게 물들며 연기처럼 맴돌며 짙고 높게 퍼져 나갔다.
그 광경을 가늠하듯 잠시 바라보던 투란이 두 손을 높이 치켜올리며 속삭였다.
“소울 웹.”
언데드 간수장이 곧바로 녹슨 검으로 딛고 선 고인돌을 내리찍었다.
녹슨 검은 고인돌에 부딪히지 않고 환영처럼 통과했고, 검과 함께 간수장 역시 고인돌 아래로 툭 떨어지고 있었다. 보랏빛의 실 가닥이 그런 간수장의 몸에서 흘러나와 사방으로 퍼졌고, 해골들과 고인돌 아래 항아리 바위를 모조리 휘감듯이 출렁거렸다.
그 보랏빛 실 가닥이 포석이 맞물린 곳까지 물들인 것은 순식간이었고 투란이 반만 남은 바위 묘지기를 그쪽으로 걷어찬 것도 거의 그 순간이었다.
소리라 하기 어려운 굉음이 청각의 한계를 넘은 곳에서 울려 퍼지며 고요를 강제로 퍼뜨렸다.
허공에 꼭지만 남은 듯한 알의 성채, 그 꼭지조차 구멍이 뚫린 아래로 압축되어 있던 포석의 영역이 한순간에 묘지 전체를 뒤틀기라도 할 것처럼 확장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오그라들 때에는 수천의 해골들도, 바위 묘지기도 없었다.
덜렁 하나뿐인 포석만이 남은 채로 간수장이 거기에 녹슨 검을 꽂고 서 있었고, 투란이 그 포석에 막 발을 딛고 있을 뿐이었다.
우우우웅…….
느릿하게 여운처럼 길고 무거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요를 일으킨 굉음이 멀리 닿아 되돌아온 듯한 메아리처럼…….
그르륵.
간수장이 목젖을 울렸다.
드러난 반쪽 해골 위의 눈구멍에서, 그 옆에 썩어 문드러지는 살갗 속에 박힌 눈알로부터 보라색 눈빛이 일렁이며 투란을 향했다.
“그래, 잘했…….”
―투란!
막 투란이 뭐라 하려 할 때, 드라고니아가 급히 외쳤다.
그리고 눈가에 비치는 묘지의 풍경, 죽은 자를 묻어 뒀다는 표식처럼 꽂혀 있던 막대 근처이거나 혹은 아무 표식도 없지만 해골이 기어 나왔던 자리 언저리로부터 빛이 맺히고 있었다.
등잔 없이 등불만 허공에 걸린 듯한 광경이 묘지 전체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수천은 가볍게 셀 수 있을 듯한 환영 같은 등불에서 미묘하게 흘러나오는 힘은…….
그르륵.
간수장이 그 등불을 쓰윽 둘러보는 듯이 고갯짓했다.
간수장의 보라색 눈빛과 닿은 등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투명한 사람의 형상을 그려 냈다. 마치 사람이 서 있다가 투명하게 변하고 그 몸의 중심에 등불이 일렁거리며 비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간수장의 눈짓은 순식간에 묘지 전체를 휩쓰는 듯했고, 등불을 중심핵으로 삼은 듯한 사람의 형상이 마구 생겨났다.
그 광경은 흡사 수천 명이 순식간에 묘지를 채우며 투란을 노려보는 듯했다.
―영파(靈波)가 이렇게 선명할 수도 있었나.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살짝 당황한 듯도 했고, 살짝 호기심이 가득하기도 한 그 속삭임에 투란이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유니콘홀드의 혼마력이야. 영핵을 장악하면서 영향을 끼쳤네.’
―혼마력의 여파라고? 과연…… 금단의 마력이라 부를 만하군.
‘금단?’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이건 이제 어찌 되는 거냐?
‘수습이 되었으니까, 뒷일을 감수해야지. 자, 보자.’
자신의 물음은 그냥 넘기는 드라고니아였지만, 투란은 대답과 함께 바로 두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온전한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온 두 손이 바닥을 짚었고, 간수장이 서 있던 포석이 흐물거리면서 일렁이는 기묘한 물웅덩이처럼 변했다.
퍼석.
요란한 소리는 공중에서 터졌다.
먼지가 퍼지다 사라지는 꼴이 마치 여태 알의 성채가 위에 잔재를 남기고 있다가 터져서 사라진 듯했다. 혹은 뭔가가 힘의 여파에 밀려 공중에 더 뜬 채로 버티다가 으스러진 듯도 했다.
투란은 그런 위를 쳐다보지도 않고 간수장이 밟고 있는 찰랑이는 늪에서 손을 떼고 일어서며 속삭인다.
“이쪽을 엿보고 대처해 줄 수 있지? 믿고 맡기겠어, 간수장.”
간수장이 그르륵 목젖 울림을 토해 내는가 싶더니 곧바로 검과 방패를 치켜올렸다. 마치 맡기라는 듯한 그 자세와 함께 간수장의 발이 작은 늪으로 잠겨 들어갔고, 곧바로 몸이 빠져들면서 머리까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어쩌자 빗물이 고인 듯, 이슬이 맺혀 갈 곳을 잃은 채로 고여 버린 듯한 조그마한 늪뿐이었다.
그 늪을 보며 투란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이차원 영역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겠냐?
조심스럽게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빙긋 웃음과 함께 투란이 소리 없이 대답했다.
‘유니콘홀드가 잘 다뤄. 대충 흉내 내면 되니까. 어쨌든…… 여긴 이제 심심하면 싸우는 일은 없을 거야. 한 가지 걸린다면…… 밤처럼 깜깜하게 하는 마법이 뭐가 있었지? 햇빛 영향을 차단하는…….’
나오던 말이 꼬이면서 물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혀를 차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해 준다.
―베일 오브 다크니스, 셰이드 블랙. 세란드가 묶어 준 주문 속에도 있었잖아.
‘그래, 그거! 빛에 약해지는 언데드를 보호할 수도 있는 거지?’
―뭐? 아니, 그건…… 좀 애매하다만, 햇살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인 활동 정도는 가능할걸? 아주 밝고 맑은 날에는 겨우 움직일 정도일 수도 있고, 흐린 날에는 밤처럼 억세질 수도 있고…… 언데드가 뭐냐에 따라 편차가 클 테니 간단히 가늠할 수 없다만?
‘해골, 이 묘지의 해골이라면 어때?’
―해 저물 때부터 돋아났으니, 적당히 흐린 날에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당히 어둠을 둘러 주면 밤처럼 움직일걸? 그런데…… 저거 어쩔 거야?
‘응? 아…….’
아직 수천의 투명한 형체들이 우두커니 선 채로 투란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투란은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렸고, 쥐었다 폈다.
가벼운 손짓에 따라 성벽의 무늬가 잠깐 오른손을 채우면서 스산한 마력의 파동을 퍼뜨렸다.
수천의 등불이 한순간에 꺼져 버렸다.
―없앤 거냐? 그냥 싹?
‘혼마력의 흐름을 거둔 것뿐이야. 이제는 밤 되었다고 튀어나오지 않을 거야. 간수장이 제어해 줄 테니까. 음, 상황에 따라 숫자도 적절히 맞춰 줄걸?’
고요해진 묘지, 언제 해골 수천과 바위 묘지기가 난동을 부렸냐고 시침 떼듯이 고요한 풍경을 보면서 투란은 대답했다.
그 말에서 드라고니아는 바로 투란이 이 상황에 어떤 조건을 부여했는가 알아차린 듯했다.
―영핵을 은폐시키고 이차원의 늪을 이용해 영파만 흘려 낼 수 있었어? 그게…… 그것도 유니콘홀드의 마도술식 중에 가능했던 거냐?
‘이론은 수정 속에 있었어. 성이 미완성인 것처럼 그 이론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늪으로 메꾼 거지.’
천천히 발을 옮기면서, 굴하람으로 가는 방향을 찾으면서 투란이 말했다.
고요한 풍경을 덮는 밤은 아직 깊어 가는 중이었고, 서서히 어두운 하늘을 메우는 별빛이 드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