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0
#9화
띠링.
– [진가보법]을 습득하셨습니다.
– 해당 무공을 대성할 시 여러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업적, [무공을 익히다]를 달성하셨습니다.
– 업적 달성 보상으로 칭호, [초보 수련자]를 획득합니다.
“어이고.”
시스템 알림이 뜬 순간 털썩 주저앉았다. 먼지가 풀풀 피어올랐지만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이미 거지꼴이다.
‘뭐가 이렇게 빡세냐.’
진태경의 서재에는 단 두 종류의 책이 존재했다.
야설. 그리고 야설이 아닌 것. 사백여 권에 달하는 책 중 야설을 제외하니 백여 권이 남았다.
‘대단한 놈.’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불법 성인 사이트 운영자,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징역을 살았을 놈이다. 어쨌든 그렇게 분류를 끝내 놓으니 무공 비급은 삼십여 권에 불과했다.
‘비급을 야설의 절반만 모았어도.’
나로서는 애석한 일이었지만 수확은 있었다. 당장 필요한 무공 비급을 발견했으니까.
진가창법과 진가보법. 너무 오랫동안 수련을 하지 않아 잊고 있었다는 태원진가의 가전 무공이다.
‘진가보법 확인.’
띠링.
스킬창
[진가보법]종류 : 보법
등급 : 일류
제한 : 태원진가의 직계
경지 : 일 성
설명 : 태원진가의 시조가 창안한 보법. 변화가 적고 단조로우나 실전적이다.
진가창법의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변화가 적고 단조롭긴 개뿔.’
시조인가 시조새인가 하는 양반이 만들었다는 가전 무공은 더럽게 복잡했다. 어젯밤 일만 생각하면 저절로 이가 갈릴 정도다.
– [진가보법]의 습득을 시작합니다.
– 구결을 암기 중입니다. 무공의 등급과 지력 수치에 따라 속도가 달라집니다.
그래, 딱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 [진가보법]의 투로를 표시합니다. (0 / 100)
시스템이 표시한 발자국을 따라 보법을 밟는데, 얼마나 꼬장꼬장하고 칼 같은지 표시한 발자국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실패. 다음 동작이 늦어도 실패다.
그렇게 전체 투로를 정확히 밟아야 1회 완수다.
‘미친 좆망겜.’
현실에서의 나와 지금의 캐릭터는 체격의 차이가 크다. 키는 반 뼘 가까이 줄어들었고 리치도 짧다. 세밀한 조정이 안 되니 실수가 연이어 터졌다.
‘성공한 게 기적이다.’
100회를 채우고 나니 손발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하나는 얻었어.’
오랜 헌터 생활로 전투, 특히 집단전이라면 이골이 났다. 생사를 오가는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가 운, 둘째가 발이다.
전진. 후퇴. 혹은 정지. 팔이 잘려도 다리만 움직이면 살 수 있다. 하지만 다리가 잘리면 그걸로 끝이다.
발이 나가야 팔이 나간다. 내가 겪은 전투들은 그랬고, 그것이 보법을 먼저 익힌 이유였다.
‘하지만…….’
너무 느리다. 시스템의 힘을 빌렸음에도 반나절이 훌쩍 흘렀는데 창술까지 익히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오늘로 5일째.’
가상현실 게임은 현실에 비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 배율을 감안하더라도 5일은 긴 시간이다.
“후우.”
나는 한숨과 함께 잡념을 애써 털어 버렸다.
구조? 로그아웃? 지금은 가능성에 매달리기보다 혼자서라도 계속 나아가야 할 때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나는 무공 비급들을 챙겨 일어났다.
그리고 2층 침실에 도착했을 때, 비급들 사이에 이색적인 책 한 권이 끼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왕 대물남]“크흠.”
아이고, 이런 실수를.
* * *
“벌써 기침하셨습니까?”
하인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손에는 아침 식사가 놓인 쟁반이 들려 있었다.
“잠이 잘 안 와서…….”
내 대답은 사실이다. 그 원인은 운기조식에 있었다.
‘이거 효과 죽이네.’
운기조식은 정신과 오감을 맑게 하는 것 외에도 피로를 해소하는 효능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운기조식을 하게 된 이후로 피곤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통증도 거의 사라졌고.’
“상처가 덧날 수도 있으니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하인의 말에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이 거지 같은 게임에도 한 줄기 빛 같은 NPC가 있구나. 드디어 정상인을 만났어.
‘이게 뭐라고 울컥하냐.’
나는 먹먹해진 얼굴로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하나같이 짜거나 싱거운 반찬들이었지만 허기를 반찬 삼아 해치우고 탕약 그릇을 한 번에 들이켰다.
“크으.”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맛이다. 이윽고 상을 모두 치운 하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럼 소인은 이만.”
“아, 잠깐만요.”
“말씀 낮추십시오. 어찌 제게 말을 높이십니까?”
생각해 보니 그러네.
처음에는 그래픽과 인공지능이 너무 현실적이라 만나는 NPC마다 존대를 썼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
비로소 유저의 존엄성을 되찾을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준엄하게 대답했다.
“당분간은 저 편한 대로 할게요.”
시바, 차마 말을 못 놓겠다. 딱 봐도 마흔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한테 이놈 저놈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망할 게임, 쓸데없이 그래픽만 좋아서 반말도 못 하겠다.
‘이러다가 NPC랑 친구도 먹겠네.’
내가 머리를 다쳤다는 사실을 어필하자 하인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요. 한데 시키실 일이?”
“비는 방 없나 해서요.”
하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구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혹 용도가 어찌 되시는지.”
“무공 수련을 하려고요.”
“예?”
“여기 있는 방들은 죄다 더럽거나 답답해서……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세요?”
* * *
전각을 나온 하인이 곧장 달려간 곳은 가주 집무실이었다.
하인의 보고가 끝나자 서류 탑 너머로 진위경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렸다.
“수고했네.”
하인이 떠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난 진위경이 서류를 허공에 흩뿌렸다.
“경사다! 오늘 일 안 해!”
“누구 맘대로요?”
흩날리는 서류를 남김없이 잡아챈 위팽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시는 거 다른 사람들이 알면 또 말 나옵니다.”
“지금 셋째가 본격적으로 무공을 익히겠다는데 뭐가 더 중요한가!”
“그것보다는 장로원에서 벼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장로원. 그 단어에 진위경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망할 노친네들.”
“조만간 가로회의가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들 입장에서는 틈이 보이니 물어뜯는 것이 당연하지요.”
회의 안건은 보나 마나 뻔하다. 진태경의 평소 행실로 시작해서 소문주인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끝날 것이다.
“그 작자들도 참 끈질겨.”
“하루 이틀 일입니까? 오래된 기둥에는 벌레가 끓는 법입니다.”
“방법이 없을까?”
“결국 또 삼공자의 방패 역할을 자처하시는군요.”
위팽이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 속하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거절하겠네.”
“그럼 저도 거절하겠습니다. 문파 공금 횡령만 다섯 번쨉니다. 다른 것들은 셀 수도 없어요. 본가의 문규대로 집행했으면 삼공자는 살아 있는 게 기적입니다.”
“어허. 이 사람.”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긴데, 본가 식솔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십쇼. 주군 입장에서야 사랑하는 동생이지, 다른 사람들은…… 어휴, 말도 못 합니다.”
“자네 우리 막내한테 무슨 불만 있나? 말투가 왜 그래?”
“답답해서 그럽니다. 답답해서. 삼공자가 사고 치면 주군이 수습하고, 그거 막아 주느라 장로원 요구 들어주고. 이렇게 야금야금 주도권을 뺏기고 있잖습니까. 요즘 어떤 소문까지 도는 줄 아십니까?”
“어떤 소문?”
“삼공자가 장로파라는 말도 있습니다. 장로원 쪽에서 용돈 받아서 쓰고 일부러 사고 치는 거라고요.”
진위경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런 천인공노할!”
“저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장로원 쪽에서 은전이라도 찔러 주면 공금 횡령은 안 할 테니까요.”
“자네…….”
“할 말 다 했습니다. 자를 거면 자르십쇼.”
끙. 진위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슬슬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네.”
“생각 좋죠. 실행에 안 옮기시니 문제죠.”
“그래도 이번만큼은 최대한 힘써 봐야지.”
“아이고, 주군…….”
“이번이 마지막일세. 내 분명히 약속하지.”
진위경이 정색하고 말했다. 위팽이 의뭉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이십니까?”
“아직 기억도 온전치 않은 아이야. 게다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처럼 변했어. 자네도 느끼고 있잖은가.”
“그거야 그렇지만…….”
위팽이 말꼬리를 흐렸다.
확실히 삼공자는 변했다. 기억을 잃은 것이 거짓말이든, 사실이든 현재 보여 주는 모습은 확실히 희망적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진위경이 입을 뗐다.
“위팽.”
“예.”
“내 이름으로 명령서 하나 만들게.”
“어떤……?”
“적당한 죄목 몇 개 가져다 쓰고 처벌로 수련동에 강제 폐관 시켜.”
“아하.”
위팽은 이마를 탁 쳤다. 다분히 보여 주기식이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훌륭한 응급 처치다. 곧 있을 가로회의에서 받을 압박을 해소하면서 진태경에 대한 처벌 수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덧붙여…….
“삼공자의 부탁도 들어주게 됐군요. 수련할 곳을 찾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거야말로 일석삼조 아닌가. 위팽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 주군이십니다.”
“우리 집안사람들이 이래. 아, 내가 그거 말했나? 태경이도 어릴 때 참 영특했는데, 어느 하루는…….”
“……명령서 작성하러 가 보겠습니다.”
* * *
“하여, 열네 가지 법규를 어겨 문내 기강을 흐트러트린 삼공자 진태경에게 무기한의 수련동 폐관을 명한다.”
이름이…… 위팽이라고 했던가? 밥맛없게 생긴 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저, 질문 있는데요.”
“하십시오.”
“무기한의 뜻이 뭡니까?”
위팽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정해진 기한이 없다는 겁니다.”
“아.”
난 또 게임 언어 시스템이 오류 난 줄 알았지. 다행히 내가 아는 뜻이랑 같다. 하하.
“하하하.”
“허허허.”
원래 웃음은 전염되기 마련이다. 위팽과 같이 온 무사들도 나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훈훈해진 분위기에서 위팽이 마지막 줄을 읊었다.
“죄인 진태경은 오라를 받들라.”
“싫어.”
“……?”
“……?”
“싫다고. 시바.”
포승줄을 들고 다가오던 두 놈이 이게 아닌데, 하는 눈으로 위팽을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말을 했다.
“내가 수련하게 방 하나만 구해 달랬지 감옥에 넣어 달랬냐?”
완전히 정신병자 새끼들 아냐, 이거?
“자, 삼공자.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 보시오.”
“듣기는 시벌, 수련동에는 수련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 복지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딴 말이나 할 거 아냐.”
표정을 보니 제대로 짚었다. 나는 쐐기를 박아 넣었다.
“군인 월급 오르니까 행복하게 군대 다녀오라고 할 놈들이네, 이거. 몰라, 나 안 들어가. 그냥 방이나 마당에서 나 혼자 수련할래.”
솔직히 수련동이라는 곳, 단편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무기한이라는 말이 가시처럼 걸린다. 당장 무공 익히고 레벨 업이 시급한데 수련동에서 백날 천날 목 빼고 꺼내 주기만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나는 그대로 벌렁 누워 버렸다.
“배 째!”
“삼공자. 적당히 하고 일어나시지요.”
위팽이 인상을 쓰고 노려보았다.
“다 공자를 위해 소가주께서 결정하신 겁니다.”
“진위경, 아니 형님이?”
그 동생 바보가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그때 위팽의 입술이 달싹였다. 동시에 귓가로 어떤 음성이 들려왔다. 육성과는 다른 기묘한 느낌이었다.
– 전음입니다.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전음. 무협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 고수들만 사용한다는 일종의 텔레파시.
– 기억을 잃어서 잘 모르시겠지만, 삼공자는 요주의 인물입니다. 조만간 더 큰 처벌이 내려질 수 있어 그전에 소가주께서 미리 조치하시는 겁니다.
27년 한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가중 처벌이 웬 말이냐.
슬퍼하는 내 귓가로 위팽의 전음이 이어졌다.
– 말이 무기한이지, 소가주께서 공자를 평생 수련동에 처박아 놓으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양반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수련동에 단둘이 처박히기를 원한다면 모를까.
– 길어도 칠주야(七晝夜) 안에 꺼내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위팽의 눈에서 강렬한 의지가 엿보였다. 이것까지 거절하면 두들겨 패서라도 데려갈 것 같다.
‘시벌, 여기 NPC들은 죄다 깡패야, 뭐야.’
야, 이 새끼야.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나는 [기감]을 끌어올려 위팽의 레벨을 확인했다.
[Lv.???]“…….”
깡패 맞네. 레벨 깡패. 저놈도 진위경 못지않은 인간 백정일 것이다. 위팽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 어쩌시렵니까?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 ……사흘 안에 빼 달라고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냐. 그런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위팽이 이내 한숨과 함께 말했다.
“뫼셔라.”
#수련동 #폐관 #협상 #성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