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사람마다 전문 분야가 다르기 마련이다.
게이트에서의 포메이션과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취해야 할 행동, 몬스터들의 약점 등을 달달 꿰고 있는 내가 법 관련 사항에서는 문외한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법무사님도요.”
각진 뿔테 안경을 쓴 이 남자는 내게 부동산 매매를 위임받은 법무사다. 맞은편에선 집주인과 공인중개사 아저씨가 인사를 나누며 막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계약 축하해요. 젊은 분이 성공하셨네.”
“아, 네. 감사합니다.”
집주인과 악수를 나누며 그제야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젠 내 집이구나.’
그리고 우리 가족의 집이다. 자그마치 11년 만에 되찾은.
* * *
좁은 방 안을 돌아봤다.
오래전 스프링이 나간 침대. 몇 벌 들어가지도 않는 작은 옷장과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책상 하나. 그 위에 놓인 소형 TV.
두고 가야 할 것을 제외하고 옷이며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주워 담으니 종이 박스 하나를 꽉 채웠다.
‘겨우 박스 하나.’
지난 7년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어쩐지 먹먹한 심정이 되어 하염없이 방을 둘러보고 있던 그때였다.
“가냐?”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7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니까.
“응.”
“집은?”
“구했으니까 나가지.”
“새끼, 빠르네. 가족들은 이미 새집으로 이사했고?”
“아니. 아직까지는 비밀이야. 내가 먼저 들어가서 살다가 동생 수능 끝나면 알려 주려고.”
“하긴, 한창 중요한 시기니까.”
“응. 그 전에 리모델링도 해야 하고.”
잠깐 침묵이 흘렀다. 우리 둘은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편안한 사이,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이지만 지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형.”
“야, 야. 됐어. 분위기 잡지 마.”
진호 형이 내 등을 세게 두드렸다.
“무슨 전학 가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너 이사 가면 내 얼굴 안 볼 거냐?”
“봐야지. 꼭 봐야지.”
“그럼 됐어. 어차피 나도 오늘 중으로 짐 뺀다.”
“형도?”
“지난번에 말했잖아. 기억 안 나냐?”
“아, 그랬었지.”
몇 년씩이나 동고동락한 진호 형만 고시원에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야 한결 편해진다.
“형은 어디로 이사 가는데?”
“그냥 뭐 아는 사람 집에 얹혀살게 됐어. 너 이번에 산 집이 어디 있다고 했지?”
“고양시. 여기서 30분 거리라 그렇게 멀진 않아.”
“고양시?”
진호 형이 눈을 크게 떴다.
“나도 그 근처야, 인마!”
“어? 진짜?”
뜻밖의 이야기에 내심 반가웠다. 이제는 하루라도 안 보면 섭섭한 얼굴이다. 사는 곳이 가까우면 앞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겠지.
“형, 그럼 정확한 주소가 어디…….”
막 주소를 물어보려던 찰나,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수화기 너머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 어, 진태경 씨 맞죠? 지금 고시원 앞이에요.
“아, 예. 기사님.”
미리 불러 둔 개인 이삿짐 기사다. 흘끗 창문 밖을 바라보니 고시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파란색 용달차 한 대가 보였다.
– 짐 많아요? 무거운 거면 제가 도와드리고.
“아닙니다. 제가 들고 갈게요.”
짐이라고 해 봤자 두 개뿐이다.
소소한 물건들을 챙겨 넣은 종이 박스, 그리고…….
‘캡슐.’
로그아웃 기능이 활성화된 지금은 굳이 캡슐을 사용하지 않아도 무림과 현대를 넘나들 수 있다.
이제는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됐지만 내게는 그 어떤 것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짐이 별로 없는데도 용달차를 부른 것 역시 다 이거 때문이다.
‘이 캡슐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천천히 캡슐 표면을 쓰다듬었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금속의 차가움과 거칠거칠한 촉감.
이 낡은 캡슐 하나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아, 맞다. 거기에 큰 역할을 해 준 사람도 있었지.
“진호 형.”
“응?”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실소가 절로 나온다.
그날, 진호 형이 술에 떡이 되지 않았더라면 내가 캡슐에 들어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냐, 아무것도.”
“싱겁기는. 그나저나 너 이제 가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밖에 트럭 서 있던데.”
“어. 그런 김에 거기 박스 좀 들어 주라. 난 캡슐 들어야 해서 손이 부족해.”
“으, 응?”
“뭐야, 그 반응은? 이사 가는 동생을 위해서 박스 하나 못 들어 줘?”
“그게 아니고…… 어우, 생각해 보니까 나도 짐 싸야 되네. 귀찮아도 그냥 한 번 왔다 갔다 해라. 그럼 수고!”
“…….”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것 보소. 나는 슬금슬금 멀어지는 진호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결국 박스를 집어 들었다.
기다림에 지친 이삿짐 아저씨의 클랙슨 소리가 귀를 때린다.
빵빵!
“예, 지금 내려가요!”
* * *
“헌터신가 봐요?”
계속 나를 흘끗거리던 이삿짐 아저씨가 말을 던졌다. 박스와 캡슐을 실은 용달차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새로운 집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야 보면 딱 알죠. 나도 예전에는 헌터였거든. F급.”
“어, 정말요?”
“아마 내가 손님보다 훈련소 기수로는 선배일걸? 아, 꼰대짓 하려는 건 아니에요. 딱 한 달 만에 때려치우고 자격증 반납한 놈이 그러는 것도 우습잖아.”
아저씨가 넋두리처럼 말을 이었다.
“헌터 훈련소 때는 할 만했어요. F급이지만 헌터가 된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그런데 수료 후에 길드 들어가자마자 사고가 터진 거지.”
게이트에서 사고가 터졌다는 말은 사망과 동의어다.
설령 팔다리가 날아가도 돈만 있다면 회복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헌터들끼리는 그 정도를 사고라고 말하진 않는다.
“같이 입사한 훈련소 동기 녀석이었는데…… 어어, 하는 사이에 끌려가더니 그렇게 죽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쫓아가서 구했어야 했는데 차마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 그 녀석 장례식 마치고 은퇴 신청했지. 나 같은 놈은 레이드 뛰면 안 되니까.”
그는 애써 덤덤한 척하려 했지만 잘게 떨리는 목소리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이거 헌터 손님 앞에서 너무 재수 없는 소리를 했네. 이게 뭐 좋은 얘기라고. 미안합니다.”
“별말씀을요.”
아저씨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다면, 옆에서 위로해 준 진호 형이 없었다면 2년 전 그때 은퇴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내 인생도 크게 달라졌겠지.’
헌터는 치열한 직업이다. 언론에서는 인류의 수호자요, 방패라며 치켜세워 주지만 늘 죽음을 옆에 끼고 살아간다.
– 5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에 아저씨가 멈칫하더니 중얼거렸다.
“어, 그러고 보니까 여기 안전 구역이네.”
“맞으니까 쭉 가 주세요.”
“아, 예.”
용달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푸른색 지붕의 2층짜리 단독주택. 너무 높지 않은 돌담과 잔디가 깔린 마당이 보인다. 이 집을 처음 봤던 며칠 전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우리 집이라 그런 거겠지.’
우리 집.
곱씹을수록 기분 좋은 말이다. 물론 집이 워낙 예뻐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야…… 집 좋네.”
운전석에서 내린 아저씨가 혀를 내둘렀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더 달콤하게 들리는 법. 참으려고 해도 자꾸 입꼬리가 올라간다.
“잘나가는 헌터인가 봐요. 내 꿈이 이런 집에서 사는 거였는데.”
“저도요.”
“소원 성취 하셨네. 좋으시겠어.”
당연히 좋아 죽지.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며 돌담도 만져 보고, 잔디밭도 바라보던 그가 물었다.
“잠깐 들어가서 구경해 봐도 될까요? 캡슐도 옮겨 드릴 겸.”
“네, 그러세요.”
의도치 않게 새집의 첫 손님이 된 이삿짐 아저씨가 짐칸으로 올라갔다. 캡슐을 옮기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거 무게가 꽤 나갈 텐데.”
“괜찮아요. 저도 많이 옮겨 봐서 알아요. 게임 캡슐 무게야 거기서 거긴데요 뭘.”
“아니, 진짜 무거울 건데.”
아까 직접 들어 봐서 안다. 근력 스탯이 세 자리가 넘어가는 나한테도 적당히 묵직한 정도였는데 저 아저씨라면 더더욱 얘기가 다르다.
“사장님, 그냥 제가 옮길게요.”
캡슐을 끌어안은 그가 씩 웃었다.
“에헤이. 너무 무시하신다. 내가 그래도 왕년에 헌터였는데 겨우 이 정도로…… 끄응!”
“오오.”
역시 전직 헌터. 한 번에 들긴 들었다.
약간 변한 게 있다면 아저씨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는 것 정도?
“먼저 가서 문 열어요. 빨리!”
긴박한 목소리에 후다닥 달려가 대문과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이게 뭐라고 나까지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제가 들…….”
“비켯!”
“아, 네.”
경보에 버금가는 속도로 거실에 들어간 그가 비명처럼 외쳤다.
“어느 방!”
“캡슐은 2층…….”
“뭣이?”
“……에 놓으려고 했는데 그냥 가까운 방에 놔 주세요.”
다행히 방문은 열려 있었다. 쿵, 소리와 함께 캡슐을 내려놓은 아저씨가 숨을 헐떡였다.
“이거, 왜, 이렇게, 허억. 무거워요?”
“…….”
내가 무겁다고 말해 주지 않았나?
* * *
이삿짐 아저씨가 떠나자마자 거실 소파에 털썩 걸터앉았다.
한 번에 잔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전 주인에게 양도받은 가구 중 하나다.
‘몇 달 동안은 혼자 살아야 하니까.’
가족들에게는 다시 부천으로 돌아간다고 말해 둔 상태.
하연이의 수능 전까지는 이곳에서 먹고 자며 출퇴근을 할 작정이다.
‘집 리모델링도 하고, 차도 사고. 아, 어차피 차는 길드에서 지원해 준다고 했으니 면허부터 따야겠구나.’
그밖에도 할 일이 태산이다. 그러나 지치기는커녕 힘이 솟았다. 전에는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일들이니까.
게이트와 고시원을 오가며 고생만 하던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참 많은 게 바뀌었다.
‘많이 컸다, 진태경.’
문득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늘 소년처럼 웃던 사람.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친구처럼 다가와 주었던 그가 떠오른다.
‘아버지, 나 집 샀어요. 예전에 우리가 살던 곳은 이미 없더라고.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한 거 맞죠?’
아이처럼 자랑하고 싶어도 칭찬해 줄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떠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마음속으로 닿지 않을 말을 되뇌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오후 여덟 시. 여름철의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휴가 마지막 날이 이렇게 끝나네.’
장장 일주일의 휴가. 상동 길드와 엮여 소란스럽기도 했지만 헌터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누리는 최고의 휴식이었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정확히 열두 시간 후에 말이지.’
앉아 있던 소파에 반듯이 누웠다. 캡슐에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지워 버렸다.
11년 만에 돌아온 집이다. 이번만큼은 후덥지근한 캡슐 안이 아니라 우리 집 거실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로그인(Login).’
내 부름에 시스템이 응답한다.
띠링.
[무림]에 접속하시겠습니까?Y / N
물론 내 대답은 예스다.
* * *
진태경이 의식을 잃은 지 한참 후, 현관문 옆 방 안에서는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치이이익.
마치 거대한 알처럼 보이는 금속 물체, 캡슐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두 발이었다.
종아리까지 덮는 긴 스포츠 양말에 프린팅된 붉은 글씨.
희망 고시원 조기축구회
이어 반쯤 말아 올린 추리닝 바지를 지나 희고 마른 양손까지 드러났다. 성서라도 되는 것처럼 꼭 붙잡고 있는 책 표지가 창밖으로 흘러들어온 노을빛을 받아 번쩍 빛난다.
행정고시 완전 정복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그의 얼굴.
장장 몇 시간의 고통을 인내한 그는 사도세자처럼 초췌했으나 알을 깨고 태어난 박혁거세처럼 후련해 보였다.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메마른 음성이 새어 나온다.
“이곳이 나의 새로운 보금자리인가…….”
넓은 방을 바라보는 성진호의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