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042
#1041화
마법은 매우 변화무쌍하고 강력한 힘이다.
아군을 강하게, 적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광범위 타격과 방어막 형성을 포함한 수많은 종류의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헌터(Hunter)라는 정신 나간 직업이 완전히 뿌리를 내린 현대에서도 마법사가 특히 우대받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 내게 마법사가 동급의 헌터 중 가장 강력한 존재냐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아니라고.
때에 따라서 전장의 그 누구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첫 번째 조건은, 마법사를 보호해 주는 동시에 다가오는 적을 견제해 줄 수 있는 아군의 존재라고.
서걱!
베었다.
살과 뼈를 가르는 감촉도,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핏물도 없었으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기(氣)라 부르는 무형 무취의 무언가를, 나는 단숨에 갈랐고 시스템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띠링.
– [중력 마법]을 성공적으로 파훼했습니다!
– [기감]의 경지가 미약하게 상승합니다!
– 기의 수발이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불현듯 귓가에 울려 퍼지는 시스템 알림과 함께 허공에 떠오른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
그러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몸뚱어리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모든 기운을 끌어올려, 계속해서 나아갈 뿐이었다.
쐐애애액!
빠르게 좁혀지는 수십여 장의 거리. 그 가공할 속도에 맞춰 언덕을 뒤덮은 거대한 기운 또한 가파르게 출렁였다.
“화, 화귀(火鬼)여, 부름에 응하라!”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주인의 적을 막아설지니!”
다급하게 터져 나오는 주문 영창.
그와 동시에 수십여 개의 커다란 불덩이가 허공을 메우고, 전방의 땅거죽이 뒤집히며 바위의 벽이 높게 솟구쳤다.
화륵, 드드득!
만약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아니 숱한 경륜을 쌓은 노강호라 할지라도 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이라며 넋을 놓고 말았을 광경.
그러나 이 광활한 천하에서, 오직 나만큼은 예외였다.
‘파이어 볼(Fire Ball). 거기에 더해 스톤 월(Storn Wall)까지?’
새롭게 발현된 마법의 정체를 깨달은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이번만큼은 나조차도 쉽게 파훼할 수 없는 마법이라서?
틀렸다.
마법들의 크기와 범위, 그리고 위력을 짐작해 보았을 때 저건 B급, 혹은 C급 상위의 마법사들도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 있다면, 그건 바로 조금 전 내가 떠올렸던 가설이 틀렸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종류에 한계가 있던 것이 아니라, 쓰지 않았던 거야.’
마법이 고평가받는 이유는, 비단 그 위력뿐만이 아니라 그 종류의 다양성과 변수 창출에 있다.
하지만 그럴 능력과 상황이 갖추어졌음에도 놈들이 지금껏 선보인 마법은 신체 강화 마법과 중력 마법이 고작이었다.
‘도대체 왜?’
뇌리를 가득 채운 하나의 의문.
그러나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보다, 마법이 내게 도달하는 시간이 훨씬 더 빨랐다.
콰아아아!
멀리서 처음 쏘아졌을 때는 자그마한 공이었다가, 이제는 천근거석처럼 거대해진 수십여 개의 불덩이가 바위의 벽을 넘어 나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였다면 순간 숨이 멎고 말았을 정도로 엄청난 열기.
하지만 그 불덩이들을 향해 내리그어지는 백염의 창날에 깃든 열기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맹렬했다.
서걱, 꽈아아아앙!
절반은 피하고, 절반은 베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폭발한 불의 덩어리가 화려하게 사방을 수놓은 순간, 이미 매캐한 연기를 뚫고 뛰쳐나온 나는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석벽을 향해 일권을 내지르고 있었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는, 아니 불사르며 나아가는 주먹.
다른 명문대파가 자랑하는 신공절학처럼 변화무쌍한 초식도, 깊은 묘리도 없으나 그 폭발력과 파괴력만큼은 천하 일절이라.
그렇기에 아득한 과거, 창을 사랑했던 스승과는 달리 권각술에 미쳐 있던 열화문의 삼대 문주는 자신이 창안한 무공을 이렇게 칭했다.
‘멸염신권(滅炎神拳).’
우직, 콰드드득!
그 이름에 담긴 위력 그대로 수백, 수천 개의 조각으로 흩어진 기암괴석의 벽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아니, 녹아내리는 동시에 터져 나갔다.
드드드득!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지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바위덩어리들을 지나친 나는 재차 언덕을 향해 신형을 내쏘았다.
띠링. 띠링. 띠링.
– [파이어 볼]을 성공적으로 파훼했습니다!
– [스톤 월]을 성공적으로 파훼했습니다!
– [기감]의 경지가 미약하게 상승합니다!
– 기의 수발이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놈이, 놈이 옵니다!”
“광휘(光輝)의 화살이여, 부름에 응하라!”
이제는 비명에 가까워진 외침들을 들으며, 나는 언덕 위를 똑바로 응시했다.
스무 명의 백의인들.
그중에는 마법을 파훼당한 후유증으로 피를 토하는 이도 있었고, 또 다른 마법을 발현시키는 이도 있었으며, 자신이 걸친 옷처럼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떨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예외였기에 더욱 눈에 띄는 한 사람 또한 있었다.
‘그래, 너구나.’
대마도사.
진리의 끝자락에 도달한 위대한 마법사이자, 반드시 쓰러트려야 할 적인 그는 여인이었다.
풍성한 옷자락으로 완전히 숨길 수 없는 가냘픈 체형과 은백색의 면사 아래로 드러난 붉은 입술.
그녀야말로, 혈검마군의 존재감에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강적이었다.
또한 그 사실과 더불어, 내 의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일지도 몰랐다.
쉬쉬쉬쉬슁!
매직 애로우.
휘황한 빛을 뿌리며 쏘아지는 그 무수한 섬광을 향해 나는 창날을 쳐올렸다.
화아악!
들불처럼 일어난 검푸른 강기가 빛을 집어삼킨다.
아니, 그랬다고 느낀 순간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 불타 버린 그 자리에 새로운 마법들이 불어닥친다.
퍼퍼펑! 쐐애애액!
허공이, 그 아래의 지면이 여러 가지 색을 지닌 빛으로 뒤덮였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 불꽃의 비, 번개과 바람의 칼날.
그 모든 것이 오직 단 한 사람을 향해,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합쳐지고 이어지는 그 무수한 섬광 하나하나의 위력이 경지에 오른 절정 고수의 검기(劍氣)와도 같았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기에, 결코 나를 상처입힐 수 없었다.
서걱.
창으로 창을,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을 베었다.
쉬쉬쉭! 콰아아앙!
이형환위(移形換位)와 같은 쾌속한 움직임으로 사방을 뒤덮는 불꽃의 비를 피하고.
퍼어엉!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던 번개와 바람의 칼날을 화염신장의 열기로 집어삼켰다.
띠링. 띠링. 띠링.
연달아 귓가에 울려 퍼지는, 마법의 파훼를 알리는 맑은 종소리.
등봉조극(登峰造極).
내가 지금껏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며 쌓아 올린, 그 드높고 울창한 봉우리를 놈들은 조금도 위협하지 못한다.
피로 뒤덮인 전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이 언덕에서, 지금의 나를 막아설 수 있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도, 마법도.
“이 땅에 잠든 초목(草木)이여, 분연히 일어나 주인의 적을 속박하라!”
촤르르륵!
주문 영창이 끝나기도 전에 느꼈다. 동시에 알았다.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파동을. 이 마법의 정체를.
그러나 구태여 피할 이유도, 베어낼 필요도 없었다.
지면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오른 굵은 뿌리가 전신을 옥죄고 속박했지만, 나는 그저 말없이 걸음을 내디뎠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으득, 으드득.
마법의 힘으로 강철처럼 단단해진 줄기가 부르르 떨렸다.
사지는 물론 허리 전체와 목을 칭칭 휘감은 그것으로부터 전해지는 압박감에, 나는 손을 뻗어 그대로 잡아 뜯었다.
콰드득!
원래대로라면 손을 뻗지도 못했어야 정상이다.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건 너희 생각이고.’
그건 지금 이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눈을 부릅뜨고 있는 저들의 생각일 뿐이다.
내게는 이것이 당연했다.
목숨을 건 모험을 거듭한 끝에 얻어낸 보상.
단순한 속박 마법 따위로는 막을 수 없는 순순한 신체 능력.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한 그 힘이, 아직도 하단전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수 갑자의 공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투두둑, 퍼엉!
일순간, 전신을 옥죄던 줄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간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생물처럼 끈질기게 다가오는 그것을, 나는 자근자근 짓밟고 뿌리째 뽑아 올렸다.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도록. 그리고 이런 마법을 부린 누군가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도록.
띠링.
속박 마법을 파훼했음을 알리는 또 한 번의 종소리가 들린 그 순간.
“우읍, 쿠에에에엑!”
또 한 명의 백의인이 검붉은 핏물을 쏟아내며 무릎을 꿇었다.
더불어 그는 스무 명의 마법사 중에서도 가장 늙어 보이는 자이자, 열아홉 번째로 쓰러진 마법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단 한 사람.
휘하의 마법사들이 기운의 역류로 연달아 쓰러지는 와중에도,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는 대마도사만이 이 언덕에 홀로 우뚝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온 나와 단둘이.
“지금껏 말로만 들었는데…… 기뻐요. 이렇게 직접 보니.”
촘촘하게 짜인 은백색의 면사 아래로 달싹이는 붉은 입술.
그 사이로 흘러나온 음성은 차분했고, 얼핏 들뜬 듯한 감정마저 담겨 있었다.
“미친년.”
내가 진심을 담아 내뱉은 그 말에, 낮은 웃음소리와 함께 흘러나온 바람이 면사를 흔들었다.
“예의 없는 남자네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인한테 대뜸 욕지거리라니.”
맞다.
나는 이 여자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심지어 내게 주어진 시스템의 이능(異能)으로도 그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작 일 장도 되지 않는 이 거리에서 나를 마주하고도 감히 지금처럼 입을 열지는 못했을 테니까.
우우우우웅.
보이지 않으나 느껴진다.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하고도 깊은 기운이.
비록 한 공간에 있지만, 각각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를 분리한 그것은 극도로 단단한 방어막이었다.
“언덕 위에 죽치고 앉아서 무슨 짓거리를 꾸미고 있나 했더니, 겨우 이 정도였나?”
“아, 역시. 당신이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인 대마도사가 덧붙였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쉽사리 뭔가를 시도하지 못하리라는 것도요.”
“……!”
“아, 제가 정곡을 찔렀나요?”
나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단 한 번의 시도.
그 일격으로 방어막을 부수고 목숨을 취하지 못한다면, 대마도사는 간신히 좁힌 이 거리를 다시 벗어나 버릴 테니까.
바로 그 부분이,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도 섣불리 손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음 순간 귓가를 파고든 나지막한 음성은, 앞서 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나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살짝 섭섭하네요. 고작 이 정도만 준비한 건 아니었는데.”
“……뭐?”
“보여 줄까요? 그렇지 않아도 좀 심심했던 차라.”
바로 그 순간.
고오오옹.
웃음기 어린 맑은 목소리와는 달리,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기운이 가냘픈 몸뚱어리를 중심으로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