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124
로그인 무림-1124화(1124/1141)
삐빅.
제한 시간 : 5분 00초
이 광활한 전장에서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락된 시계의 초침이 움직인 그 순간.
팟.
공간이 갈라졌다.
지워지고, 부서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력을 다하여 서로를 향해 쏘아지는 네 개의 신형이 있었다.
정확히는, 한 마리의 괴물과 그에 맞서는 세 명의 인간이.
바로 그, 진태경이.
솨악!
소름 끼치도록 낮은 파공성이 귓가를 파고든다.
소리마저 앞지른, 태산을 쪼개지는 듯한 일격.
비스듬히 내리그어진 적도(赤刀)는 그만큼 쾌속하면서도 강맹했다.
진태경 자신이 평소와 같은 상태였더라도 저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설령 보았다 하더라도, 도신을 휘감은 거대한 강기를 맞받아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정도로.
하지만 죽음의 끝자락에서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벼려진 감각은, 아직 식지 않은 진태경의 육신을 생로(生路)로 이끌고 있었다.
스륵.
바람이 멎는다, 시간이 느려진다.
먹구름이 낀 하늘처럼 흐릿한 진태경의 동공에, 아슬아슬하게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핏빛 도신과 타오르는 강기가 비쳤다.
서걱!
한 뼘 차이로 빗나간 궤적을 따라, 마치 두부처럼 갈라지는 지면.
그와 함께 칼날처럼 휘몰아친 풍압(風壓)이 몸을 할퀴었으나, 이미 고통을 잊은 진태경은 홀린 듯이 창을 내뻗었다.
슈확!
공간을 정확히 관통하는 창날.
그와 동시에 적천강의 멸염신권(滅炎神拳)이, 청풍의 검이 바람을 갈랐다.
화륵, 쉬쉬쉬쉭!
두 줄기의 불꽃이 한 몸처럼 뒤섞여 나아가고, 노을을 닮은 자줏빛 강기가 꽃잎이 되어 흩날린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각의 명성만으로도 천하 무림을 떨어 울리는 세 초절정 고수의 완벽한 합공(合攻).
하지만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는,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괴물이었다.
화아악.
일순간 들끓어 오르는 거대한 기운.
그와 동시에 어느덧 칼자루에서 떨어져 나온 혈주(血主)의 양손이, 한 줄기의 벼락처럼 공간을 후려쳤다.
퍼어어엉!
소리마저 앞지른 쌍장(雙掌).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혈주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 핏빛 섬광이 사방을 휩쓸었다.
적과 아군조차 구분하지 않는, 압도적이면서도 파괴적인 힘으로.
구구구궁……!
깊은 울림이 초토화된 공간을 휘감으며 뻗어 나갔다.
삽시간에 무수한 육편(肉片)이 되어 흩어진 광신도들의 시체를 넘어, 비틀거리며 신형을 바로 세우는 세 사람에게까지.
“이걸 살아?”
혈주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만큼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으니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지닌 힘의 삼분지 일을 쏟아부었을 만큼.
반경 십여 장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지우고, 죽음만이 내려앉은 지옥도(地獄道)로 변모시킬 만큼.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심각한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다 해도, 결국 맹수는 맹수.
저들 중 가장 나약한 맹수조차, 화산신룡(華山神龍)이라 불린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아니, 오히려 잘 된 것일지도 모른다.
조금 전의 일격으로 모조리 죽여 버렸다면, 되려 그 자신이 허무해졌을지도 모를 테니까.
“안 되지. 이렇게 쉽게는.”
낮게 깔린 웃음소리와 함께, 혈주가 걸음을 뗀 그 순간이었다.
스륵.
불현듯 느껴지는 이질감.
동시에 손바닥을 들어 그 이질감의 정체를 확인한 혈주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피다.
상처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얕게 벌어진 살갗 틈새로 몽글몽글 솟아오른 핏방울이 손바닥 위로 흐르고 있었다.
조금 전 누군가의 공격을 정면에서 맞받아쳤던, 바로 그 손으로부터.
“이건…….”
문득 말꼬리를 흐린 혈주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로 뒤덮인 채, 가쁘게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한 사람을.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창백한 그의 얼굴과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불꽃이 담겨 있는 두 눈동자를.
‘진태경.’
혈주는 붉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어찌 된 일일까.
분명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들 중 그 누구의 공격도, 자신의 양손에 깃든 수강(手罡)을 깨트릴 수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래, 이래야지. 응당 이 정도는 해 주어야지.”
혈주는 혼잣말처럼 낮게 속삭였다.
가라앉았던 눈빛이 형형하게 살아나고, 흔들리던 입꼬리는 부드럽게 올라갔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방심?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두려움?
그런 것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저, 확신할 뿐이었다.
눈앞의 사냥감이 힘없는 토끼건, 혹은 이빨을 숨기고 있는 맹수건 반드시 사냥할 수 있다는 확신.
단 일합(一合)의 공방이었으나, 혈주는 새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깃든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동시에, 얼마나 무한한지.
철퍽.
나아가는 괴물의 발걸음을 따라, 작은 호수처럼 고인 피 웅덩이가 휘몰아치듯 빨려 들어갔다.
솨아아아악!
탐욕스럽게 핏물을 집어삼킨 혈주가, 재차 차오르는 힘에 도취 된 괴물이 섬광처럼 공간을 가로질렀다.
투둑.
뒤늦게 떨어진 한 방울의 피를 남긴 채.
* * *
혈주의 확신은 결코 오만이 아니었다.
재차 쏘아지는 그의 움직임은 전장의 그 누구보다 쾌속했고, 적도를 타고 터져 나오는 거대한 핏빛 강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미증유(未曾有)라는 세 글자를 떠올리기에 충분했으니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그는 이 광활한 전장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이자,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절대자였다.
삼성(三星)에 속한 두 거인마저 적들의 거센 반격에 발이 묶인 이상, 이미 저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세 명의 초절정 고수쯤은 단숨에 짓뭉개 버릴 수 있을 정도의.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진태경은 지금의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쐐애애액!
도대체 어째서.
콰드드득!
태산을 쪼개고도 남을 것만 같은 저 무시무시한 강기가.
슈확!
바람보다도, 소리와 빛마저도 앞지를 것 같은 혈주의 움직임이.
후우우웅!
매번, 매 순간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지.
닿지 않는지.
“네놈……!”
칼날처럼 휘몰아치는 바람 속,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는 괴물의 음성을 진태경은 듣고 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듣지 못했다.
쉴 새 없이 흐릿한 시야를 물들이는 섬광 속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움직임을 이어 나갈 뿐.
서걱!
나아가려던 발걸음을 제자리로 되돌리고,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핏빛 강기가 머리 위를 스친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회피.
저토록 빠르고 강맹한 일격을 어떻게 피할 수 있었는지, 또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진태경 자신조차 몰랐다.
그저, 그래야만 할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매일 아침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마치 미리 정교하게 합을 짜 맞춘 비무처럼.
그러나 그것은 오직 진태경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스륵, 쐐애애액!
진태경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그어지던 적도가 돌연 방향을 뒤튼 그 순간.
콰앙!
한 줄기의 굉음과 함께, 사각을 노리고 달려들던 청풍이 울컥 피를 토해 내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머리 위에서는 매화삼십육검(梅花三十六劍)의 검로를 단숨에 지워 내며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적도가, 만근의 무게로 검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쩌저적.
자줏빛 강기가 급격히 사그라듦과 동시에 거미줄처럼 번져 가는 실금.
핏물을 삼키며 온 힘을 끌어올리는 청풍을 향해, 혈주의 검붉은 혈광(血光)이 쏟아져 내렸다.
“감히 네깟놈이-!”
앞서 괴물이 느꼈던 즐거움은 어느덧 분노로 변해 있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이토록 강대한 무위를 갖추었음에도, 진태경은 분명 죽어 가고 있음에도 자신은 이 간단하고도 확실한 전투를 끝맺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미 승패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속에서도, 눈앞의 빌어먹을 애송이는 왜 끝까지 저항하는 것일까.
그에게 있어 낙인과도 같은 치욕을 안겨 주었던, 숭산(嵩山)에서의 그날처럼.
“그래, 네놈부터 죽여 주마.”
씹어뱉는 듯한 한 마디와 함께, 한층 크기를 부풀린 핏빛 강기가 검신을 파고든 그 순간이었다.
화아악.
불현듯 등 뒤에서 들이닥치는 뜨거운 열기에, 망설임 없이 칼자루를 놓은 혈주가 일권(一拳)을 내뻗었다.
콰아아앙!
허공에서 격돌한 두 개의 주먹.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달려드는 백색 광염과 핏빛 강기.
그러나 그 힘의 차이는 이미 명백했고, 혈주는 짙은 아지랑이 너머로 보이는 적천강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꺼져라, 늙은이.”
퍼엉!
피처럼 붉은 강기가 불꽃을 집어삼켰다. 폭발음과 함께 힘없이 튕겨 나간 적천강의 신형이 지면을 나뒹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누군가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뭐?’
깨달음은 찰나였다.
그리고 불현듯 혈주의 뇌리에 울려 퍼지는 적신호와 동시에, 한 줄기의 바람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스아아.
소름이 끼칠 만큼, 낮고 희미한 파공성.
어느덧 느려진 시간 속에서 돌아서는 혈주의 핏빛 동공에, 흐린 눈빛으로 창을 내뻗는 진태경의 모습이 틀어박혔다.
“……!”
혈주는 어떻게, 라는 세 글자조차 내뱉지 못했다.
압도적으로 강한 자신이, 어찌하여 시시각각 죽음의 늪으로 빠져가는 저 핏덩어리의 기척을 놓쳤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태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마치,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희뿌옇게 물든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줄어드는 시간과 함께 끔찍한 피로가, 그보다 더한 죽음의 기운이 육신에 스며들고 있음에도.
스악.
진태경은 부드럽게 창을 내질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적과 아군의 함성과 비명도, 서늘한 강철의 소음과 어느덧 성큼 가까워진 나팔 소리도.
그리고 혈주가 본능적으로 내뻗은 손바닥도.
아무것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그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처럼 일점(一點)을 향해 몸속 깊숙한 곳의 화염을 흘려보냈다.
푸욱.
미약한 열기가 실린 창날이, 강기에 휩싸인 손바닥을 관통하며 뻗어 나갔다.
어째서인지 아직까지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바로 그 손을 지나.
콰드드득!
터질 듯 부릅떠진 괴물의 두 눈동자를 경악으로 물들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