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129
로그인 무림-1129화(1129/1141)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조숙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이번 받아쓰기 시험에서 백 점을 맞으면 가기로 했었던 놀이공원이 왜 TV 화면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놀았던 옆자리 친구의 책상 위에는 어째서 저런 하얀 꽃다발이 놓여 있는지.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죽음, 파괴, 슬픔과 분노.
헌터와 몬스터, 세상 곳곳에 남아 있는 게이트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그저, 그런 시대였을 뿐이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도 끔찍한 진실이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혼돈의 시대.
나는 금세 이해하게 되었다.
굳은 얼굴로 TV 채널을 돌리던 부모님의 모습과 친구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새하얀 꽃다발에 담긴 의미를.
하지만 친구의 부재를 ‘먼 여행’이라고 표현했던 유치원 선생님의 한마디는 내게 더욱 큰 의문을 남겼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어른 나름의 배려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머릿속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람은 왜 죽는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정말 여행을 떠난 것이라면, 죽음 너머의 세상은 정말 존재하는가.
그로부터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이와 같은 의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떠난 자는 말이 없으니.
그렇기에 나는 죽었으되, 죽지 않은 누군가에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야, 골골아.’
‘하찮은 인간 주제에 이 몸을 그따위 천박한 이름으로 부르다니. 네놈은 이 찬란한 왕관이 보이지 않는 것이냐?’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만들어 줄까?’
‘……왜 불렀느냐. 용건이나 말해라.’
나는 내심 믿고 있었다.
골골이, 아니 스켈레톤 킹이라면 내 오랜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믿음은 종종 배신당하기 마련이었다.
‘사후세계(死後世界)라, 그걸 왜 내게 묻는지 모르겠네.’
‘그렇다는 건.’
‘그래, 아무것도 몰라. 죽음 이전의 삶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죽은 이후라고 다를까. 그저 어둠 속에서 눈을 떠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을 뿐이야.’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미 죽음을 딛고 새롭게 부활한 언데드(Undead)조차 죽음 너머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니.
결국 나는 답을 찾기를 포기했다.
정확히는, 미뤄 두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까.
설령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죽음이라는 놈은 그림자 속에 숨어 끈질기게 때를 기다리다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테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사아아아.
흐려지고, 멀어진다.
이제야 서서히 개어 가던 하늘이, 나를 내려다보던 얼굴들이.
그들이 토해 내는 울음소리도, 꺼지지 않은 전장의 함성도.
힘겹게 헤쳐 지나온 과거, 덧없이 흘려보낸 찰나의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아.’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는 목소리와 함께, 나는 힘없이 가라앉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내 영혼을 힘주어 끌어당기는 죽음의 늪으로.
동시에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의 틈새 속에서, 환청처럼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 눈을 떠라.
그 순간.
화아악.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를 빛줄기가 어둠을 찢고 세상을 밝혔다.
어느덧 모든 것이 뒤바뀐, 새로운 세상을.
* * *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여긴 어디지?’
그곳은 실로 광활한, 아니 광활하다는 표현조차 무색할 만큼 끝없는 회백색 공간이었다.
저 멀리 그어진 지평선(地平線)은 흐릿했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허공에는 하늘보다 높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천장이 있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상자에 갇힌 듯한 기분.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이 무한(無限)의 공간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래.
내 오랜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비록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긴 했지만.
“음. 그럴 수 있지.”
“……!”
인기척도 없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며 물러난 나는 몇 걸음 밖에 우뚝 서 있는 불청객을 주시했다.
“……당신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는 새로운 사실에 놀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저 생각지도 못한 불청객, 아니 노인의 등장은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나와는 달리, 노인은 담담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알겠나?”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저승사자?”
“…….”
“어, 아닙니까?”
잠깐 침묵하던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좋을 대로 생각하게.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 저한테는 많이 중요한데요.”
“왜, 지옥에라도 끌려갈까 봐 걱정되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죄를 많이 지었나 보군.”
“……글쎄요.”
누구인지도 모를 노인을 향해, 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종종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껏 내가 쓰러트린 수많은 적 모두가, 정말 그렇게 죽어도 되는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
이 두 손으로 직접 쌓아 올린 시체의 산과 피의 강이, 나로 인해 살아남은 이들의 생명으로 갈음될 수 있나 싶은 의문.
‘어쩌면, 나야말로 그 누구보다 지옥에 떨어져야 할 놈인지도 모르지.’
내가 마음속으로 뇌까린 그때였다.
“괜한 걱정을 하는군. 지옥은 그리 쉽게 가는 곳이 아니야.”
깊게 가라앉은 노인의 시선이 나를 응시했다.
마치, 속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물론, 자네가 그리워하는 이들도 그곳에 없을 테고.”
“……!”
“사실 그것이 가장 걱정되지 않나? 죽어서도 그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 말일세.”
순간 말문이 막힌 나는 석상처럼 굳은 채 노인을 바라보다,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잠깐만요. 이거 혹시.”
“아,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그만.”
사실상 내 짐작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대답.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나를 향해 노인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그렇게 됐네.”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었는데, 진짜였네요.”
“제법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지. 설마가 사실이 되는. 단순히 그런 경우라고 생각하면 편해.”
도저히 단순해지지도 편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눈을 뜨기 직전, 나를 깨웠던 그 환청 같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말귀가 밝아서 좋군.”
이제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생각을 읽는 노인을, 나는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먼지 한 톨 묻어있지 않은 장삼과 바닥에 닿을 만큼 길게 자란 수염.
그리고 왠지 모를 친숙함까지.
“혹시…… 우리가 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까?”
조심스럽게 꺼낸 물음에,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노인이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예?”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일세.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거든. 이미 충분히 무리해서 도와주기도 했고.”
“도와줬다니, 뭘 말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스스로 찾게. 생각보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넉넉지는 않으니…… 우선 시작해 보자고.”
나는 노인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뭘 시작하자는 것인지.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흐릿해진 노인의 신형은, 내 머릿속에 복잡하게 뒤엉켜 있던 모든 생각을 단숨에 지워 내기에 충분했다.
팟.
보지도, 심지어는 느끼지도 못했다.
잔상(殘像)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
내가 신형을 돌렸을 때는, 고작 몇 걸음에 불과하던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어 등 뒤를 점한 노인의 일권(一拳)이 시야를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퍽!
눈앞이 아찔해짐과 동시에 힘이 풀리는 다리.
처음이었다.
이렇게 빠르고 정확한 공격은.
하지만 이제 더는 싸워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굽혀지던 다리를 억지로 막아 세운 나는 본능에 따라 손을 뻗었다.
화륵, 퍼어엉!
회백색 공간을, 군청색의 화염이 뒤덮었다.
그리고 내게 공력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 그 이글거리는 열기 너머로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염신장(火焰神掌)이라, 훌륭한 무공이지.”
“……그걸 어떻게.”
“말하지 않았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라고.”
화아악.
대답과 동시에 갈라지는 화염.
수강(手罡)조차 맺혀 있지 않은 손짓으로, 마치 촛불을 끄듯 화염신장의 열기를 날려 버린 노인이 나를 향해 눈짓했다.
“자, 마음껏 발악해 보게. 멸염신권(滅炎神拳)도 좋고, 열화신창(烈火神槍)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
“아, 다만 일섬(一殲)은 제외하도록 하게. 내가 아니라 자네를 위해서.”
귀신에게 홀리게 되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귀신을, 아니 노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노인은 그 찰나의 순간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서걱!
도대체 언제, 어떻게 움직인 것일까.
사그라지는 화염 속에 우뚝 서 있던 노인의 신형은 어느새 내 사각을 파고들었고, 부드럽게 내리그어진 손날에 실린 무형(無形)의 기는 가슴을 가로질렀다.
두부처럼 베어져 나간 살갗이, 한 박자 늦게 비명을 토해 낼 만큼 예리하게.
푸화악!
피 분수가 솟구쳤다. 동시에 더는 느끼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던 아득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공포도 함께.
‘이대로면…… 죽는다.’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이미 한번 죽었음에도, 또 다시 죽음을 떠올리고 있다니.
하지만 지금의 내게 그런 의문 따위는 사치였다.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마저 소멸시켜 버릴 듯한 저 압도적인 힘 앞에서, 온 힘을 다해 발악해야 했으니까.
“그래, 그게 맞지. 이제야 겨우 상황 파악이 되는 모양이군.”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 미친 늙은이 새끼가.”
“극찬 고맙네.”
“너…… 도대체 뭐야?”
“글쎄, 아마 자네의 조부일 수도 있지.”
처음으로 흐릿하게 웃은 노인이, 순간 생각지도 못한 패드립으로 말문이 막힌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밀었다.
불현듯 허공에서 나타난 한 자루의 창을.
“받게. 죽을 때 죽더라도, 제대로 된 발악 한 번쯤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으득.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온 창대를 붙잡으며, 씹어 내뱉듯이 입을 열었다.
“넌 죽었어.”
노인이 대답했다.
“부디 극락왕생하게.”
그 순간.
스아악!
휘황한 섬광이, 광활한 회백색 공간을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