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138
로그인 무림 1138화(1138/1141)
진태경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이곳은 어디일까.
온통 어둡고, 희뿌옇다.
그의 자그마한 몸뚱어리는 활짝 펼쳐진 날개를 따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남의 것처럼 무딘 감각은 전신을 스치는 바람조차 선명히 느끼지 못했다.
그래.
지금의 그는 한 마리의 새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방을 휘감은 이 축축하고도 희뿌연 구름에서 벗어날 터였다.
아니, 바로 지금.
화악.
일순간, 힘찬 날갯짓과 함께 진태경의 주위를 창살처럼 메우고 있던 구름이 사라졌다.
동시에 차가워 보일 만큼 어두운 밤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광활한 허공 곳곳을 물들이는, 형형색색의 불꽃도.
퍼버버버벙!
예고도 없이 시작된, 동시다발적인 폭발이 밤하늘을 집어삼킨다.
그저 멀리서만 지켜보았다면 얼핏 아름답다 느껴졌을 광경.
하지만 날짐승의 타고난 안력(眼力)을 지닌 지금의 진태경은 그 화려한 불빛 너머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압축된 공기를 터트리며 허공을 누비는 수많은 전투기. 땅과 하늘에서 쉴 새 없이 쏘아지는 탄환과 빛줄기들.
그리고.
쐐애애액!
그 촘촘한 화망(火網)을 뚫고 날아드는 거대한 괴물들까지도.
– 키이이익!
소름 끼치는 포효와 함께, 눈으로는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괴물이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그렇게 각자의 살의가 뒤엉키고, 폭발과 함께 터져 나온 굉음의 끄트머리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이 이어진다.
콰과과광!
허공을 집어삼키는 아득한 섬광.
단지 한 마리의 날짐승에 불과한 진태경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뒤섞이는 강철과 마법 속, 흩어진 불씨처럼 힘없이 추락하는 인간과 괴물들을.
그리고 문득, 온 세상이 어두워진 듯한 감각에 사로잡혀 고개를 들었다.
스아아아.
처음에는 먹구름이라고 생각했다.
달빛마저 가릴 만큼, 커다란 먹구름.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의 정체는 날개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숨 쉬는 것조차 잊게 할 만큼 거대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어느 강력한 존재의 날개.
그 압도적인 존재를 마주함과 동시에, 진태경은 놀라우리만치 선명해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달빛마저 지운 채 모두를 오연히 굽어보던, 흑요석을 닮은 두 개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고 느낀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화아아아악!
일순간, 공간이 일그러진다.
한낱 날짐승으로는 버틸 수 없는 무시무시한 압력이 허공을 짓눌렀다.
아니, 그것은 비단 진태경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콰드드드득!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지는 수많은 전투기.
불길에 휩싸여 유성우처럼 추락하는 강철들 사이로, 진태경은 흐릿해지는 의식을 느꼈다.
그와는 반대로 더욱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드는, 의미 모를 소음도 함께.
째깍.
동시에, 저 멀리서 달려온 새하얀 빛줄기가 그를 덮쳤다.
* * *
인간의 두뇌란 무릇 쇠와 같다.
일정 이상의 열기가 가해져야만 무쇠의 형태를 바꿀 수 있듯이, 이제 막 깨어난 인간의 두뇌 역시 활동을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의식을 되찾은 그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감각 속에서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이 나를 이 깊은 잠에서 깨웠는지도.
띠링.
–
[수면]상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은은하게 귓가를 울리는 맑은 종소리.
솜털보다도 가벼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낯선 천장을 반쯤 가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찼다.
“저, 정신이 드느냐?”
격정으로 잘게 떨리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
그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본드의 잔재물처럼 끈적하게 남아 있던 조금 전의 악몽 따위는, 이미 흔적도 없이 씻겨 나간 채로.
“예, 스승님.”
“……!”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자연스러운 호칭에 잠시 멈칫하던 그, 적천강이 먹먹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니.
정확히는 대답하려고 했다.
다음 순간,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불청객들이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그래, 제…….”
콰드드득!
이어지려던 뒷말을 흔적도 없이 집어삼키는 굉음.
단숨에 문을 박살 내며 병실로 난입한 거한의 등 뒤로, 낯익은 얼굴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깼다!”
“깼어!”
“진짜 깼네!”
“와! 칠주야 만에 깨어난 사람 처음 봐요!”
딱, 일 초쯤 걸린 것 같다.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나를 덮치기까지 걸린 시간이.
“으아아아! 은인!”
“각주우!”
“조장니이이임!”
“…….”
음. 분명히 좋긴 한데.
조금 더 잘 걸 그랬나.
* * *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화룡각 대원들의 감정이 가라앉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저는 정말 아무런 걱정도 안 했어요. 진 공자…… 아니, 각주님이라면 분명히 깨어날 줄 알았으니까.”
말과는 달리 콧물을 훌쩍이며 말하는 주화란의 옆에서, 송일섬이 담담한 어조로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엄청나게 울더군. 이러다가 영영 못 깨어나는 거 아니냐면서.”
“내, 내가 언제요!”
“어제, 그제. 칠주야 내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주화란을 향해 무자비한 팩트 폭격을 날리던 송일섬은, 어느 순간 삽시간에 태도를 뒤집었다.
“아, 내가 사람을 착각했군.”
“들으셨죠? 저 하나도 안 울었어요.”
“…….”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하게 말하는 주화란의 모습에, 나는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그녀가 송일섬에게 슬쩍 건넨 묵직한 전낭의 존재를.
사실 이 귀여운 촌극이 아니더라도, 사방에서 온갖 말들이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무지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의식을 되찾아서 다행이군. 각주.”
거의 인공지능 수준으로 감정 표현이 미숙한 사마표는 어색한 한 마디를 끝으로 입을 다물었고, 그와는 반대로 짐승 수준으로 감정 표현이 활발한 태산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태산이, 각주 깨어나서 기쁘다. 너무 걱정돼서 칠주야 내내 하루 세끼씩밖에 못 먹었다.”
“그거 굉장하네.”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으로 감탄했다.
얼핏 들으면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린가 싶겠지만, 태산의 평소 식성을 생각하면 최소 단식 투쟁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니까.
이제는 지정석처럼 태산의 어깨를 차지한 남 노인이 탄식했다.
“원래 하루 세끼가 정상이다, 이 미친 새끼야…….”
“하도 울었더니 배고프다. 각주, 나는 밥 먹고 오겠다.”
“나는 내려놓고 가라, 이 웬수 같은 놈아.”
물론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태산은 바람처럼 사라졌고, 그저 살기 위해 녀석의 목덜미를 꽉 움켜쥔 남 노인의 비명은 금세 멀어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건, 미라처럼 붕대로 전신을 칭칭 감은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누군가였다.
“조장님…….”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
나는 뭉클한 눈빛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너…….”
“예. 접니다. 조장님의 오른팔, 조장님의 심장. 혁무진입니다.”
“그래, 살아 있었구나. 내 새끼발가락.”
“…….”
“꼬라지만 보면 반쯤 죽은 거 같기는 한데, 용케 숨은 붙어 있는 모양이구나.”
붕대 너머,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던 혁무진의 두 눈동자가 짜게 식었다.
“왜, 뭐.”
“……진짜 너무하신 거 알죠?”
섭섭한 기색이 역력한 녀석의 모습에, 나는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하긴 뭘 너무해.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려고 한 놈이 할 소리는 아니지.”
“예?”
“잊었어? 나랑 했던 약속. 전투 시작되기 전에.”
“아.”
분명히 말했었다.
죽을 거라면, 반드시 내 앞에서 죽으라고. 그럼 반드시 복수해 주겠다고.
하지만 혁무진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실로 무모했고, 미련하게 싸웠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그렇기에, 지금 내가 혁무진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고생했어.”
불쑥 튀어나온 말에 뭐라 대꾸하려던 혁무진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 그건 어쩌면 나도 모르게 가라앉은 얼굴과 음성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나는 애써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고맙다. 살아 있어 줘서.”
“……!”
“……!”
일순간, 병실 안의 공기가 찌르르 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란스럽게 떠들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문 채 나를 바라본다.
그들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 전의 짤막한 한 마디가, 혁무진 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이 서투른 감정 표현만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사실도.
“뭐, 그냥 그렇다고. 꼭 말해야 할 것 같아서.”
가슴 한구석이 일렁이는 기분이다.
나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을 감추기 위해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누군가는 나를 따라 웃고, 누군가는 조용히 울고, 그런 이들을 그저 말없이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이미 오래전에 겪은 사람들,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무뎌진 이들이 바로 그랬다.
“생각해 보니,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적천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한, 반 시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 말을 끝으로 적천강을 병실을 빠져나갔다.
어느샌가 문 앞에 선 채,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두 사람과 함께.
–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더군.
살성과 함께 돌아서려던 검성 매종학이, 불현 듯 입술을 달싹였다.
– 웃을 수 있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건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노인들이 겪어온 그 길을, 이제는 젊은이들이 걷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잠시나마 자리를 비켜 주려는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의 감정을 우리가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살아남아 다시 조우한 기쁨도, 떠나간 이들에 대한 슬픔도 모두 받아들여 남은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 쉬고 있게. 다시 오겠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그들과의 대화가 끝났을 때는, 온 세상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의식을 되찾기 전 꾸었던 악몽 속에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