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2
#11화
쉬익. 후웅-
허공에서 반짝이는 수십 개의 점을 창끝이 차례차례 관통한다.
한 번의 동작이 끝날 때마다 창날 아래 매달린 붉은 수실이 요동쳤다. 그저 멋으로 달아 놓은 것이 아니라,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용도다.
팡!
다시 한번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가창법]을 이루는 일곱 개의 초식. 그중 마지막인 천관일(天貫軼)이다.
그리고 이번 천관일은 앞서 성공시킨 아흔아홉 번의 천관일보다 정확하고, 강력했다.
‘이거지.’
손끝이 짜릿하다. 진가창법의 일곱 개 초식은 끊어서 펼쳐도 충분히 파괴적이지만, 이어졌을 때 진정한 효과가 드러난다.
자동차 경주에 비교하자면 일 초식은 시동. 마지막 천관일은 골인이라 할 수 있겠다.
“후.”
더운 숨을 내뱉으며 창을 바로 세운 순간이었다.
띠링.
– 남은 성공 횟수 (100 / 100)
– [진가창법]을 습득했습니다.
– 반복된 수련의 결과로 관련 스탯이 상승합니다!
– 근력, 체력, 민첩이 각각 1씩 올랐습니다.
“오. 스탯 상승.”
이런 방법으로 능력치를 올릴 수도 있구나. 나는 신기해하며 상태창을 띄웠다.
띠링.
상태창
[Lv.11 진태경]직업 : 이류 무인
명성 : 10
칭호 : 3개 (칭호 효과 적용 중)
– 명가의 자제 (모든 능력치 +5, 명성 +50)
– 가문의 수치 (모든 능력치 –5, 명성 –50)
– 초보 수련자 (수련 속도 +10%)
근력 : 41체력 : 51
민첩 : 51 지력 : 10
매력 : 10 공력 : 10년
잔여 포인트 : 0
이 정도면…….
“훌륭한 이류 나부랭이네.”
하지만 현실보다는 낫다. 더욱더 위로 올라갈 수 있으니까. F급으로 각성한 날부터 매일매일 느꼈던 한계와 사회가 덮어 놓은 유리천장이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럼 뭐 하냐. 마음대로 로그아웃도 못 하는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련했더니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어이고. 힘들다.”
띠링.
– 당신은 피로와 허기를 느낍니다. 음식물을 섭취하여 몸 상태를 회복시키십시오.
그래. 그럴 것 같더라.
“피로와 허기라.”
답은 휴식밖에 없다. 잘 먹고, 잘 자는 거다. 하지만 태평하게 배나 긁으면서 쉬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이럴 때 회복 아이템 같은 거라도 하나 있으면…….
“아, 맞다. 벽곡단.”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던 벽곡단을 꺼냈다. 희한한 냄새를 풍겼지만 찬밥 더운밥 가리면 프로 헌터가 아니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벽곡단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냥 뱉을까.’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혀가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위장이 출입 금지 팻말을 걸 정도의 맛이다.
하지만 인간은 때때로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하는 법.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벽곡단을 남김없이 씹어 삼켰다.
꿀꺽.
“으어어. 먹었어. 진짜 먹었어.”
다음 순간 시스템 알림이 울리지 않았다면 한참을 그렇게 뒹굴었을 것이다.
띠링.
– [뛰어난 벽곡단]을 섭취했습니다.
– 당신은 포만감을 느낍니다.
– 피로가 회복됩니다.
– 한 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2씩 상승합니다.
“뭐?”
황급히 상태창을 열어 보니 공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2씩 올라 있었다. 거기에 피로와 허기 회복까지. 나는 쌩쌩한 몸 상태와 포만감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완전 사긴데?”
더럽게 맛없는 곡물 덩어리에 이런 엄청난 효능이 있을 줄이야. 아니, 잠깐만.
“이거, 중복 효과 있나?”
고작 하나를 먹었는데 총합 10포인트가 올랐다. 두 개, 세 개, 아니 열 개를 먹는다면?
‘저게 고블린 똥이라도 먹어야지.’
왠지 고블린 똥이 더 맛있을 것 같긴 한데…… 확실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진태경.’
떨리는 손으로 두 번째 벽곡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 [뛰어난 벽곡단]을 섭취했습니다.
– 효과가 중복되지 않습니다.
– 당신은 과한 포만감을 느낍니다.
– [과식]의 영향으로 한 시간 동안 움직임이 둔화됩니다!
나는 시스템 알림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우웨에에엑!”
* * *
[과식]으로 빵빵해진 배가 겨우 꺼진 뒤에야 다시 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수련동에 머무는 시간은 사흘. 그동안 최대한 힘을 키워서 나가야 한다.“하!”
짧은 기합과 함께 창날이 묵직한 궤적을 그렸다.
‘자세는 낮게, 발은 무겁게, 창은 빠르게.’
진가창법은 공격적이다. 끊임없이 적을 압박하며 나아간다. 창의 궤적은 단순하지만 치명적이다.
‘군대에서 파생되었다고 했나?’
게임의 설정이 어떤지는 몰라도 일개 병졸이 익힐 만한 무공은 아닌 것 같다.
명색이 일류 무공인 데다 펼치려면 상당한 신체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예병, 혹은 지휘관들이 익혔던 무공이 아니었을까 싶다.
‘헌터 훈련소 시절 배웠던 거랑 비교하면 천지 차이지.’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체력의 고갈인지, 아니면 잡념 때문인지 발이 꼬였다. 발이 꼬이니 손도 흐트러진다. 잔뜩 힘을 머금은 창날이 기세를 잃고 바람을 갈랐다.
쉬익-
시스템이 울린 것도 동시다.
– [진가창법]의 숙련도가 1 오릅니다. (6 / 100)
“겨우 1?”
방금처럼 무공을 처음부터 끝까지 펼칠 때마다 숙련도가 오른다. 시스템의 판정에 따라 얻는 숙련도도 다른데, 이번에는 발이 자주 꼬여서 1이 오른 게 전부였다.
“어떻게 갈수록 못하지?”
습득 후 세 번째로 펼친 진가창법은 점점 형편없어지고 있었다. 처음에 얻은 숙련도는 3. 두 번째는 2. 세 번째인 지금은 1이다.
“삼, 이, 일. 카운트 세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게?”
네 번째는 아예 숙련도를 1도 안 줄 기세다. 나는 한숨과 함께 다시 창을 잡았다. 호흡이 점점 달리는 게 느껴졌지만 다시 진가창법을 펼쳐 냈다.
그리고 사 초식을 펼칠 무렵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띠링.
– [진가창법]의 숙련도를 얻지 못했습니다. (6 / 100)
“돌겠네.”
그대로 누워 종유석이 매달린 수련동 천장을 바라봤다.
자꾸 발이 꼬인다. 내가 익힌 그대로 했는데 도대체 왜? 습득할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뭐가 문제지?”
계속 턱, 하고 걸리는 부분이 있다. 그걸 알아내야 한다.
나는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진가창법을 펼쳤고, 이번에는 삼 초식 만에 넘어졌다.
– [진가창법]의 숙련도를 얻지 못했습니다. (6 / 100)
창이 아니라 발에 집중해서 펼치자 문제점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좋아, 한 번 더.
– [진가창법]의 숙련도를 얻지 못했습니다. (6 / 100)
이제 알겠다. 그런데…….
“여기서 진가보법이 왜 튀어나와?”
처음 익힐 때 고생하긴 했다. 한나절 내내 보법만 밟았으니까. 하지만 창법을 펼칠 때 나도 모르게 섞어 쓸 정도냐, 물어보면 그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7년 동안 익힌 동작 다 섞었지.’
나도 창술을 배우긴 했다. 헌터 훈련소에 입소하면 기본적으로 배우는 건데,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F급을 대상으로 보급된 거라 우리끼리는 좆밥 창술이라고 불렀다.
그거에 비하면 진가창법은 중급 헌터용은 된다.
“한번 해 볼까?”
머리 싸매고 생각해 봤자 원형 탈모만 생긴다. 기술은 일단 몸으로 부딪쳐 봐야 아는 법.
나는 천천히 진가창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체로는 진가보법을 펼쳤다.
‘동작이 부자연스러워.’
자꾸만 어긋난다. 하지만 다르다. 지금까지는 실이 뒤죽박죽 얽혀 있었다면 이번에는 톱니바퀴가 미세하게 비껴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몇 번을 시도했을까.
쉬익- 팡!
단순한 찌르기 동작.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지막 일곱 번째 초식까지 펼쳤나 생각했지만 오 초식의 한 동작이다.
“방금 뭐야?”
등줄기가 찌릿했다. 한순간, 보법과 창법이 완벽하게 맞물린 결과였다. 손에 쥔 창이 부르르 떨렸다.
– [진가창법]의 숙련도를 얻지 못했습니다. (6 / 100)
이제 시스템 알림은 저 구석으로 처박고, 다시 창을 단단히 말아 쥔다. 조금 전의 느낌을 떠올리며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다시 한번.
쉭- 쉬쉭-
이거다. 창을 뻗는 순간 느꼈다. 보법과 창법. 이 두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린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에 휩싸여 두 개의 톱니바퀴를 굴리고, 또 굴렸다. 내딛는 걸음이, 찌르고 베고 휘두르는 창날이 빠르고 정확했으며 강했다.
단전이 뜨겁다. 공력은 하나의 불덩어리가 되어 창에 스며들었다. 토해 내야 했다.
바로 지금!
“합!”
천관일. 하늘을 뚫는다는 진가창법의 마지막 일격이 뻗어 나갔다. 먹먹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먼지가 피어오르고 돌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수련동의 벽에 박힌 창이 몸을 떨었다. 깊숙이 박혀 보이지도 않는 창날을 중심으로 커다란 구멍이 생성되어 있었다.
구멍? 아니다. 이건 크레이터다. 숨 막히는 광경이다.
“헉, 헉…….”
쾌감에 등골이 오싹했다. 시발, 나야. 내가 해냈다고!
트롤도 한 방에 끝장낼 수 있는 저런 미친 일격을 내가……!
휘청.
‘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인증 사진도 찍어야 하는데. 쌀벌레라고 놀리던 진호 형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줘야 하는데.
‘아, 여기. 게임이었지.’
눈앞이 흐릿하다. 몸에 힘이 빠진다. 견딜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와 나를 덮쳤다.
‘졸려.’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본능에 몸을 맡겼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가 아스라이 멀어진다.
띠링. 띠링. 띠링.
.
.
.
– 공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 극도의 피로감을 느낍니다.
– 업적, [물아일체]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 무공의 연계를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보상으로 무공의 경지가 크게 상승합니다.
– [진가심법]의 경지가…….
– [진가보법]의 경지…….
– [진가창법]의…….
– 레벨 업!
– 레벨 업!
* * *
– 수면 모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눈을 떴다. 종유석이 매달린 동굴 천장이 보인다.
‘수련동.’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걸까. 반나절? 아니면 하루?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내가 아직 게임 속이고, 충분히 쉬었다는 사실이다.
‘컨디션도 최상이고.’
이상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다. 그러고 보니 기절하기 직전에 시스템 알림을 들었던 것도 같다.
“메시지창 오픈.”
다음 순간 확인 안 한 메시지들이 시야를 가렸다. 메시지를 다 읽고 생각을 정리했을 때는 십여 분이 훌쩍 흐른 뒤였다. 나는 짧게 소감을 중얼거렸다.
“대박 났네.”
진가보법, 창법은 삼 성으로 무려 두 단계나 뛰었고 진가심법은 이 성으로 올랐다. 거기에 더해…….
“2레벨이나 올랐다고?”
기쁘면서도 얼떨떨하다. 사실 수련동에서 레벨을 올릴 수 있으리란 기대는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통 퀘스트 깨거나 몬스터를 잡아야 오르는 거 아니었어?”
무공을 익히고 지금처럼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도 레벨 업이 된다니. 게임 장르가 무협이라 그런가? 확실히 종잡을 수가 없다.
“아, 어쩐지 몸이 가뿐하더라.”
레벨 업 효과로 몸이 회복된 모양이다. 레벨 업 전까지 남아 있던 타박상과 약간의 통증도 모두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상태창 오픈.”
상태창에도 변화가 있었다. 13레벨로 오르면서 스무 개의 잔여 포인트를 얻었고, 수련의 영향으로 근력, 체력, 민첩이 소량 오른 상태다.
“13레벨이라.”
퀘스트 완료 조건은 일류 경지와 레벨 30, 명성 500 달성.
빠르지는 않지만 수련만으로도 착실히 레벨을 올리고 있으니 순항하고 있는 셈이다.
‘수련동만 나가면 돛을 피고 쭉쭉 나아가는 거지.’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포인트를 분배했다.
이제 [물아일체]의 업적을 이루면서 받은 보상 확인만이 남았다.
“인벤토리 오픈.”
– 신규 아이템이 1개 존재합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어, 내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