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35
#134화
쫙!
찰진 소리와 함께 우진태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는 멍하니 자신의 뺨을 쓰다듬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어안이 벙벙하다. 따귀를 맞아? 내가 고작 이런 놈한테?
내일모레면 이립(而立)인 그는 일찍 혼사를 치른 덕분에 이미 가정도 있었다.
그런데 약관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놈한테 이런 치욕을 당하다니.
“꺄악! 우 소협!”
“혀, 형님, 괜찮으십니까?”
“저거, 저거 성운표국의 소국주 아녀?”
“맞네. 세상에, 어떤 간 큰 놈이…… 가만, 어디서 본 얼굴 같은데?”
뒤늦은 후기지수들의 반응과 객잔 손님들의 시선이 우진태의 수치심을 배로 키웠다.
그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눈앞의 애새끼를 노려봤다.
“네놈이 감히…….”
“그게 아니지.”
“뭐?”
“감히, 가 아니라 어떻게, 가 나와야 하는 거야. 네가 무인이라면.”
우진태가 순간 멈칫했다. 어릴 적부터 성운표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각종 영약과 일류 무공을 흡수한 그다.
그러니 뛰어난 무재를 타고나진 않았어도 여타 후기지수에 비해 일초반식은 앞선다고 자부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내가 이렇게 쉽게 당해?’
놈이 언제, 어떻게 다가왔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에 치욕감이 앞섰을 뿐이다.
우진태는 그제야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상대방을 훑었다.
“이 자식 눈깔 굴리는 것 보게. 왜, 쓰리 사이즈 알려 줘?”
“어느 문파의 누구냐?”
“도동파의 천진반이다, 이 새끼야.”
어린놈의 욕설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이성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무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 만약 상대가 대문파의 제자라면 깔끔하게 물러나야 한다.
‘도동파, 도동파의 천진반이라고?’
문파도, 놈의 이름도 생소하기 짝이 없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다른 후기지수들의 얼굴에도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하다.
우진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내가 알기로 산서성에 도동파라는 문파는 없다.’
이미 각 문파들이 확고히 자리를 잡은 산서성에서 개파(開派)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른 문파들의 견제는 둘째 치더라도 금세 소문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저 나이에 이만한 경지의 후기지수를 키워 냈다면 상당한 역량의 문파라는 건데……. 어디지? 섬서 쪽인가? 아니면 하남?’
우진태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눈만 뒤룩뒤룩 굴리던 그 순간이었다.
멀뚱멀뚱,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던 젊은 무인이 불쑥 물었다.
“도동파는 또 뭡니까? 진짜 있는 문파예요?”
“있겠냐? 원래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치면 실화가 되는 법이란다.”
“아하. 금과옥조 같은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짜식, 오랜만에 말 예쁘게 하네.”
거지처럼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도 한마디 보탰다.
“거짓말도 잘 치면 실화다…… 좋은 말씀입니다. 현기(玄機)가 느껴져요.”
“……아, 예. 일단 칭찬은 고맙네요.”
세 사람의 대화를 들은 우진태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놈! 정체를 밝혀라!”
“왜, 어디의 누구인지 들어 본 다음 만만하면 한판 붙고 급이 좀 높다 싶으면 꼬리 말고 사과하게?”
“…….”
적나라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다.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우진태를 보며 어린놈이 끌끌 혀를 찼다.
“인마, 넌 질문부터가 글러 먹었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내 대답을 듣고 싶었으면 먼저 사과부터 했어야지.”
우진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사과?
성운표국의 삼대독자로 태어나 평생을 떠받들어져 살아온 그다. 어디 출신인지도 모를 상대에게 머리를 숙일 만큼 유연한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마침내 결심한 우진태는 산서오문의 후기지수들을 향해 은밀히 눈짓했다.
‘저놈이 아무리 강해 봤자지.’
상대는 고작 셋. 반면 이쪽은 산서성에서 손꼽히는 후기지수들로 이루어진 일류 고수 다섯이다.
자신의 신호에 슬쩍 병장기를 움켜잡는 네 남녀를 보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내가, 아니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있나?”
“어쩌다 보니 이름 석 자 정도는. 그런데 그게 사과냐?”
“사과? 간도 크군.”
우진태가 비릿하게 웃었다.
“우리는 산서오문의 후계자들이다. 산서오문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안다고 해 줄게. 근데 진짜 사과 안 해? 이거 마지막 경고야.”
“나도 경고하지. 어디에서 온 놈인지는 몰라도 사람 잘못 건드렸…….”
쫙!
우진태의 눈앞이 번쩍했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그에게 번개 같은 싸대기가 연이어 작렬했다.
쫙! 쫙! 쫘좍!
한 걸음에 한 대씩. 도합 다섯 대를 맞은 우진태가 비틀거렸다.
집요할 정도로 한쪽만 때린 탓에 뺨은 퉁퉁 부어올랐고, 터져 나간 입 안엔 핏물이 고였다.
‘아버지에게도 맞아 본 적이 없는데.’
난생처음 겪는 수모. 그것도 만인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이런 개……!”
“말했지, 마지막 경고라고. 혹시 마지막이라는 뜻을 모르는 거냐, 아니면 경고의 뜻을 모르는 거냐? 아니면 둘 다?”
“감히 날 쳐?”
“널 함부로 대한 남자는 내가 처음이겠지만 제발 사랑하진 말아라. 난 송이 씨 한 명 사랑하는 것도 바빠.”
“죽인다!”
“때린다!”
쫙쫙쫙!
“커헉!”
우진태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공력이 실린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신묘한 보법을 밟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도 한쪽도 아니고 두 뺨을 향해 쏟아지는 따귀 세례를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이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그의 귓가에 광기 어린 외침이 파고들었다.
“왼손으로 때리고, 오른손으로 때리고!”
쫙쫙!
“한치 두치 세치 네치 뿌꾸 뺨! 뿌꾸 뺨!”
쫙쫙쫙!
끊임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외치면서 따귀를 날리는데, 그 모습이 꼭 따귀를 때리기 위해 태어난 미친놈 같았다.
바로 지금처럼.
“왼손 올리고 오른손 내려. 오른손 내리고 왼손 내려. 왼손 내리고 오른손 올리지 마.”
“허억!”
“옳지. 잘했어요. 선생님이 상으로 우리 우진태 어린이의 뺨을 호되게 때려 줄 거예요.”
쫙쫙쫙쫙!
불과 촌각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맞았을까. 삼십 대? 오십 대?
하도 정신없이 맞았더니 머리가 띵하고, 눈에는 눈물이 핑 돈다.
결국, 우진태가 할 수 있는 것은 구조 요청뿐이었다.
“나, 나 좀 도와주시오!”
* * *
성운표국. 재력으로만 따지면 산서 제일의 태원진가에도 비견할 만하다는 바로 그 성운표국의 소국주가 간절한 목소리로 외친다.
“제, 제발 도와주시오!”
자존심이고 뭐고 전부 내팽개친 절박한 음성에도 산서오문의 후기지수들은 쉽사리 병장기를 뽑지 못했다.
“저걸 어떻게 이겨…….”
누군가가 신음처럼 흘린 말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맞다. 직접 겪어 볼 필요도 없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다리가 풀릴 정도였다. 상대는 자신들과 나이만 엇비슷할 뿐, 상상을 뛰어넘는 고수임이 틀림없었다.
“저 나이에 이 정도 경지라니.”
“저건 완전 괴물이잖아.”
쫙쫙!
“사, 살려 주시오!”
한층 더 절박해진 목소리. 구조 요청도 미묘하게 변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난다면 차라리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도, 도와야겠죠?”
“최소한 말리기라도 해야…… 왕 공자가 어떻게 좀 해 봐요.”
“저요? 갑자기 저는 왜요?”
“왜긴요. 모일 때마다 가전무공 자랑했잖아요. 중원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검공(劍功)이라면서요?”
평소 틈만 나면 가전무공의 위대함을 자랑했던 왕가장의 후계자가 정색하고 대답했다.
“저는 도객이라 검공 안 익혔습니다.”
“네?”
“그리고 그걸 왜 나한테 떠넘깁니까? 정 말리고 싶으면 신 소저께서 나서시면 될 것 아닙니까?”
“어머. 별꼴이네, 진짜.”
산서오문의 후기지수들이 서로에게 차례를 미루던 그때,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혁무진이 불쑥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고민들 하시네. 나 같았으면 얼른 가서 한 손이라도 보탰소.”
“네놈, 아니 당신은 뭐요?”
워낙 무서운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으니 별것 아닌 무인 하나에게도 반존대를 써야 했다.
불과 일각 전 우진태에게 촉금을 선물로 받았던 황 소저도 재빨리 나섰다.
“미리 말해 두는데, 우리는 당신들한테 아무런 악감정이 없어요. 알죠?”
“그래요? 정 그렇다면 뭐, 그렇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에요.”
“그걸 나한테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혁무진이 실실 웃으며 우진태를 신명 나게 두들겨 패고 있는 진태경의 뒷모습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우리 조장님이 한 성깔 하시거든요. 저기 신명 나게 맞고 있는 분이 쓰러지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까…… 거기 공자님? 아니면 옆에 계신 소저?”
“…….”
“아,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저 양반은 남녀 구분 없이 다 때립니다.”
“나, 난 안 웃었소!”
“저도 마찬가지예요!”
“똑같은 말 두 번 해야 합니까? 나한테 말해도 소용없다니까요. 아,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네.”
“방법?”
후기지수들의 귀가 번쩍 뜨였다.
다들 그동안 무공을 아주 공으로 익힌 것은 아닌지라, 저 괴물 같은 청년을 상대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사, 사람 살려…….”
때마침 귓가로 흘러 들어온 우진태의 죽어 가는 목소리는 생존 본능에 더욱 불을 지폈다.
“그, 그 방법이란 게 도대체 뭐요?”
혁무진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쓸었다.
“글쎄, 이거 하나같이 방귀깨나 뀌는 집 자제분들이라 할 수 있으실지 모르겠는데.”
“하겠소!”
“할게요! 무조건 할게요!”
“음. 기본이 됐군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혁무진이 입을 헤 벌린 채 일방적인 구타를 구경하던 청풍을 가리켰다.
“우선 여기 계신 이분께 정중히 사과할 것.”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산서오문의 자제들이 허리를 접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소.”
“겉모습만 보고 섣부른 판단을 했던 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해요.”
청풍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전 괜찮으니 다들 일어나세요.”
앞서 많은 사람 앞에서 비웃음을 당한 것 치고는 너무 흔쾌히 용서해 주어 되레 혁무진이 당황했다.
심지어 불쾌함에 응당 붉어져 있어야 할 안색은 해맑기까지 했다.
“이렇게 쉽게 말입니까?”
“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건 아니지만…… 아까 화나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공공연한 장소에서 모욕을 당하셨는데.”
“화가 왜 나요? 그냥 좀 신기한데.”
“예? 그게 무슨.”
“아까처럼 많은 사람이 저를 주목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절 무시한 사람한테 사과받는 것도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밌던데요.”
“…….”
“아, 역시 하산하길 잘한 것 같아요.”
이놈도 살짝 맛이 갔구나.
해괴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청풍을 바라보던 혁무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후기지수들을 바라봤다.
“들으셨죠? 여기 계신 소협께서 사과를 받으셨으니 이 문제는 여기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오!”
“오오오, 살았다!”
그러나 혁무진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 그럼 마지막 두 번째가 남았습니다.”
“……두 번째라니?”
“더 있어요?”
“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이윽고,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네 남녀를 향해 엄숙하게 선언했다.
“다들 대가리 박으십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