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
퍽!
타이밍, 속도, 힘. 마지막으로 타격점까지.
지금의 한 방은 완벽하게 들어갔다. 한 가지 불행한 사실이 있다면 그 완벽한 한 방이 내 명치에 틀어박혔다는 거다.
“크헙!”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극통. 흐릿한 시야 너머로 주먹을 치켜드는 청풍이 보였다.
“자, 잠깐!”
“왜요?”
“며, 명치 맞았어요, 명치.”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한번 싸움을 시작하면 상대를 죽사발 내야 한대요.”
“이건 비무잖아!”
“그것 역시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비무도 실전처럼 해야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있대요.”
할 말이 없다. 동네 슈퍼 할아버지도 아니고 검성이 그렇게 가르쳤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해. 평소에도 실전처럼 하라는 게 틀린 말도 아니고.
모든 걸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시발. 쳐라.”
“네!”
빡!
띠링.
– 강력한 타격! [맷집]이 2 올랐습니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형이 뒤로 스르륵 넘어갔다.
‘뒤통수 깨지면 안 되는데.’
다행히도 우려했던 일은 없었다. 진작 기절해서 쓰러져 있던 혁무진의 엉덩이가 뒤통수를 받쳐 주었기 때문이다.
‘더럽다. 더러운데 푹신해. 더러운데 탱탱해.’
이 새끼 최소 애플 힙.
수문각 근무 짬짬이 필라테스 요가라도 했나 의심이 들 정도다.
나는 혁무진의 엉덩이를 베개 삼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실컷 얻어터지고 난 후에 봐서 그런지 하늘이 노랗다.
‘퀘스트 확인.’
띠링.
퀘스트
[검성 수련 간접 체험기-2]당신의 뛰어난 성과에 기분이 한껏 고양된 청풍이 두 번째 수련을 제시했습니다.
원단 전까지 그를 단 한 번이라도 쓰러트리십시오!
등급 : 절정
제한 : 선행 퀘스트를 완료한 자
임무 : 청풍과의 비무에서 승리 (미완료)
보상 : ???
[청풍]이 매우 기뻐합니다
실패 : ???
[청풍]이 매우 슬퍼합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이기겠지, 했던 마음은 시작과 동시에 사라졌다.
청풍과의 비무는 진무경보다 일방적이었고 그만큼 혹독했다.
‘뭐 이렇게 아는 무공이 많아.’
이틀 동안 본 무공만 십여 개가 넘는다.
태을미리장(太乙迷離掌)에 익숙해질 법하면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을, 낙화추영장이 눈에 익어 갈 때면 복호권(伏虎拳)이 튀어나왔다.
그 외에도 화산파를 지금의 구파일방으로 만들어 준 수많은 절기가 청풍의 전신에 스며들어 있었다.
‘무공의 뿌리는 화산파. 가르친 사람은 검성.’
이 정도면 밸런스 패치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허허, 으허허허.”
헛웃음만 흘리는 내게 청풍이 다가와 물었다.
“은인, 괜찮으세요?”
“그런 거 물어볼 거면 살살하시든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수련이 안 되는걸요. 어설픈 건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겠지.”
“헉,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예전에 연화봉에 살았던 적 있으세요?”
“……아뇨.”
경기도 토박이다. 이 자식아.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참 전에 기절한 혁무진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이놈한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에요?”
“그게, 나름 힘 조절을 한다고 하긴 했는데 좀 미숙했나 봐요.”
“힘 조절?”
“네. 지금까지 살면서 제 비무 상대는 한 사람뿐이었거든요.”
매일같이 검성이라는 초절정 고수와 밥 먹듯 비무를 해 온 청풍이다. 당연히 항상 전력을 다하는 법만 배워 왔을 것이다.
녀석이 슬픈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막상 나와 보니 생각 이상으로 어려운 것 같아요. 제가 괜히 서툴러서 종남파 선배님도 다치게 만들고, 이제는 혁 무사님까지…….”
자연인의 무림 적응기가 제법 힘든 모양이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종남파야, 맞아도 싼 인간이었고, 무진이도 수련이니까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을 겁니다.”
“정말요?”
“네.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청풍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웃었다.
“은인, 그거 아세요?”
“저야 모르죠.”
“저는 무림에서 만난 사람 중에 은인이 제일 좋아요!”
나는 공력을 끌어 올렸다.
“당장 물러서. 내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댔다가는 혀 깨물고 죽어 버릴 거야.”
“왜냐하면, 은인은 있는 힘껏 때려도 다시 일어나거든요!”
“아.”
“손맛도 제일 좋아요!”
말하는 본새 보소.
안도감과 빡침이 동시에 밀려온다. 어쩐지 너무 열심히 두들겨 패는 거 아닌가 싶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펀치력 측정 샌드백 노릇을 하고 있었구나.
‘어쩐지 맷집이 쭉쭉 오르더라.’
가장 늦게 생성된 맷집 스탯에는 별다른 투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포인트를 쏟아부은 전투 스탯들을 따라잡았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
고작 며칠간의 단기 수련이지만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긴 하다.
절벽을 타며 벽호공과 상당한 스탯 상승을 얻었고, 이제는 화산파 무공을 직접 몸으로 겪으며 맷집을 미친 듯이 올리는 중이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은인을 때리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아, 예.”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청풍의 뒤통수를 갈겨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저 녀석이 하는 말에는 별다른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거보다 더 강한 놈이라면 답도 없지.’
내게 있어 청풍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
만약 녀석이 나를 상대하면서까지 여태 힘을 아꼈다면 오히려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꺾고 싶은 상대의 배려는 배려로 다가오지 않는 법이니까.
나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만 부탁합시다.”
“은인의 부탁이라면 뭐든지요.”
“절 상대할 때는 최선을 다해 주세요.”
“최선이요?”
“네, 최선. 그거면 됩니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청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감사합…….”
스아아아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 청풍의 전신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자하신공의 열기가 싸늘한 겨울 공기를 태웠다.
어느새 엷은 자줏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저 정말 최선을 다할게요, 은인.”
“……어, 이게 최선이시구나?”
젠장, 저걸 깜빡했네.
내 허망한 시선에 청풍이 이마를 탁 쳤다.
“아, 맞다. 죄송해요. 제가 말귀가 좀 어두워서.”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알아들으셨으면 됐…….”
스르릉.
이번엔 청풍의 손에 들린 검에서 검기가 쭉 솟구쳤다.
“이제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됐어요.”
“아…….”
“은인,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어차피 있는 힘껏 상대해도 은인은 반드시 일어나실 테니까요!”
글쎄, 이번엔 못 일어날 것 같은데.
너울거리는 자하신공의 기운과 활활 타오르는 검기를 말없이 바라보던 내가 간신히 입을 뗐다.
“거, 검기는 치웁시다.”
나도 좀 살자, 이 새끼야.
* * *
쐐애애액!
창날이 공기를 찢었다. 빠르고 날카로운 일격. 어깨를 흔들어 피해 내자 이 차, 삼 차 공격이 폭풍처럼 이어졌다.
“핫!”
기합과 함께 창날이 쏟아졌다. 무공 자체는 단순하고 무겁다.
그러나 창을 쥔 자의 몸놀림은 가볍고 빨랐다. 효율적인 움직임 사이사이 변칙적인 한 수가 숨어 있었다.
쉭! 쉬쉬쉬쉭!
아슬아슬하게 창날을 피해 내는 청풍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와아, 재밌다. 은인이 이 정도였나?’
그는 방긋 웃으며 연신 압박해 오는 청년을 바라봤다.
진태경.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은인이다.
초면에 그가 빙당호로를 몽땅 줬을 때, 청풍은 눈물이 날 뻔했다.
‘좋은 사람이구나. 이 귀한 걸 내게 주다니.’
할아버지가 틀렸다. 무림엔 흉악하고 잔인무도한 무서운 사람들로 득실거린다더니, 다들 순하고 마음씨도 고왔다.
얼마 전 자신의 실수로 상처를 입혔던 종남파의 선배 역시 하나도 밉지 않았다.
‘나보다 선배니까 나쁜 사람일 리 없어.’
청풍이 알기로 선배, 후배는 보통 사이가 아니다. 피보다 진한 뭔가로 이어진 끈끈한 인연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늘 약자를 보호하라고.
종남파의 선배는 무공이 약했다. 그런 선배를 다치게 만들어 청풍은 마음 아팠다.
‘하지만…….’
진무경, 진태경 형제에게는 마음 아플 일이 없어서 좋다.
그들은 청풍이 화산을 나와 만난 이들 중 가장 강한 이들이었다. 진태경과 손속을 교환하는 지금 이 순간도 즐겁기 그지없었다.
쐐애애액!
어깨를 찔러 오는 창을 손쉽게 피해 낸 청풍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헤헤.”
“웃어?”
“좋아서요.”
“당신 진짜 말조심해. 그거 위험한 발언이야.”
쉬쉬쉬쉭!
여섯 개의 살초와 그 두 배는 되는 허초가 사방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청풍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희끄무레한 잔상을 꿰뚫은 진태경이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외쳤다.
“그게 뭐야!”
“암향표(暗香飄)요. 헤헤.”
“사기잖아!”
“가르쳐 드릴까요?”
“청풍 대협,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이 험난한 세상을 진무보법이라는 보잘것없는 무공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아, 맞다. 할아버지께서 아무한테도 가르쳐 주지 말랬어요.”
“아니, 이 새끼가?”
후우웅!
진태경은 방향을 틀어 하단을 찔렀다.
맹렬히 회전하는 창날이 발등을 꿰뚫기 직전, 눈부신 속도로 발을 들어 올린 청풍이 되려 창날을 지면으로 내리눌렀다.
카가각!
“와, 방금은 살짝 위험했어요.”
그러나 진태경은 청풍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외마디 기합과 함께 청풍이 밟고 있는 창대를 들어 올렸다.
“합!”
“은인, 소용없어요. 이건 천근추…….”
후우웅!
다음 순간, 청풍은 부유감을 느꼈다.
진태경의 엄청난 거력(巨力)에 의해 하늘로 휘둘러진 창대.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간 청풍의 두 발이 허공을 밟았다.
순간 중심을 잃은 그는 황급히 공력을 끌어 올렸다.
퍼퍼펑! 쉬쉬쉭!
낙화추영장(落花追影掌)의 장력이 허공을 때리며 그의 몸이 쭉 밀려났다. 찰나의 시간차를 두고 청풍이 머물던 허공을 진태경의 창이 찌르고 베었다.
‘우와.’
할아버지보다는 못하지만 진태경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니, 단순히 힘뿐만이 아니다.
수없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날 정도로 뛰어난 체력과 저 체격에서 나올 수 없는 민첩성. 그리고 어마어마한 맷집의 소유자.
‘무공을 펼치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청풍은 절정 고수다. 검성의 손에 길러졌고, 검성의 무공을 보며 자랐다.
상대가 펼치는 무공의 일초반식만으로도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진 소협은 예리했어.’
며칠 전 비무를 벌였던 진무경은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기세의 소유자였고, 펼치는 무공 또한 그랬다.
하지만 같은 피를 나눈 형제임에도 진태경의 성향과 무공은 형과 정반대였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거칠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그저 그런 무공임에도 묘한 긴장감을 주는 움직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기세…….
“후우, 안 와? 그럼 내가 간다?”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의 모습에서 청풍은 마침내 한 단어를 떠올렸다.
‘야성(野性).’
기어코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맹수.
진태경의 발톱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