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6
#15화
위팽은 생각했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삼공자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그 삼공자가 이소군을 상대로 팽팽하게 맞서다니.
‘환각인가?’
이소군이 누군가.
항산검문주의 무공을 이은 혈육이자 일류 검객이다.
처음 삼공자가 이소군의 비무를 받아들였을 때, 위팽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삼류를 면한 놈이 무슨 배짱으로.
그리고 뭐? 나오라고? 한판 뜨자고?
‘미친놈, 지랄한다.’
근래 들어 뭔가 바뀐 것 같긴 했다. 갑자기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질 않나, 밤늦게까지 무공을 익히지 않나.
아, 기억을 잃었다는 개소리도 있었지.
그때는 저놈이 미쳤나, 싶었는데 오늘 항산검문의 장중보옥을 건드렸다는 얘길 듣고 깨달음이 왔다. 하마터면 그대로 우화등선할 뻔했다.
‘그럼 그렇지. 인간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지.’
태원진가에 몸담은 세월이 십 년이 넘는다. 위팽의 눈에 비친 진태경은 싹수가 노란 정도를 넘어 황금빛에 가깝다.
하지만 별수 있나. 그는 주군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막냇동생이고 태원진가의 직계다. 이소군에게 반병신이 되기 전에 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퍽, 퍽, 퍽!
이제는 사정없이 두드려 팬다. 진태경이 이소군을.
위팽도 익히 알고 있는 무공이었다. 진가보법과 진가창법.
두 무공을 연계하는 솜씨도 제법인데, 뒷골목에서 십 년쯤 굴러먹다 온 낭인의 노련미까지 엿보였다.
‘이게 도대체…….’
무공은 하루 이틀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위팽이 믿는 순리였고, 그는 이 순리를 무시하는 존재를 딱 한 명 알고 있었다.
‘이공자.’
태원진가의 이공자, 진무경. 약관 전에 이미 절정의 경지에 오른 그야말로 순리를 거스르는 천재였다.
‘혹시 삼공자가…….’
위팽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주변에서 소란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이 비무는 무효요!”
“당장 비무를 멈춰라!”
“태원진가에서 더러운 술수를 부렸다!”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공자님이 저런 쓰레기에게……”
방금까지만 해도 낄낄거리던 항산검문의 무사들이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저런 미친놈들을 봤나.’
근래에 항산검문의 위세가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런 아랫것들까지 행패를 부리다니.
도저히 참지 못한 위팽이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쉬익- 빡!
바람이 불었고, 십여 개의 이빨이 하늘을 날았다.
입가로 피를 철철 흘리는 항산검문의 무사가 멍한 얼굴로 자신에게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를 올려봤다.
“뭔 레기?”
어버. 어버버.
발음도 제대로 못 하는 무사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진위경이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무사의 아구창을 갈겼다.
쫙! 후두둑.
따귀 한 대에 남은 이빨들을 모두 뱉어 낸 무사가 정신을 잃고 고꾸라졌다.
얼어붙은 항산검문 측을 뒤로하고, 진위경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비무 직관을 시작했다.
위팽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
“위팽.”
“예?”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진위경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의 막냇동생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야.”
* * *
무공을 실전에서 사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무공을 익힌 후에는 누군가와 싸울 일도 없었고, 싸우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항상 생각했다. 만약 적과 마주친다면, 실전에서 무공을 써야 할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대응할지.
그런 부분에서 수련동에서의 시간은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퍽!
“크헉!”
창대에 복부를 직격당한 이소군의 허리가 새우처럼 꺾였다.
놈이 들고 있던 대검은 떨어트린 지 오래다. 나는 계속 전진하며 창대를 휘둘렀고, 그때마다 이소군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퍽, 퍽, 퍽!
“끄아아악!”
사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내 발차기가 먹혀? 30레벨인 이소군이 14레벨에 불과한 나한테?
그러나 오십 합을 넘게 겨루면서 깨달았다.
‘내가 더 강하다.’
이소군은 분명 강하다. 현실로 치자면 최소 C급 헌터에 버금갈 정도로.
하지만 내가 더 강하다. 미세한 차이지만 분명히 그랬다. 근력, 체력, 민첩.
‘그리고 경험.’
“크아아아!”
이소군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빨랐다. 그리고 파괴적이었다. 보보마다 연무장 바닥이 움푹 패고 갈라진다.
‘하지만 요령이 없어.’
이소군은 어리다. 어리다 보니 경험이 적다. 하수를 상대한다면 힘으로 경험을 커버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달랐다.
더 강하고, 경험도 풍부하다.
‘내가 이긴다. 분명히.’
다짐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게 미련 없이 창을 버린 이유였다. 둘 다 무기가 없는 맨몸 간의 격돌. 창을 버리는 내 모습에 이소군의 눈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나를 얕봤단 말이냐! 감히, 감히!”
분노는 몸을 경직시키고 동작을 단순하게 만든다. 나는 황소처럼 달려드는 이소군의 다리를 걸어 넘어트렸다. 그리고 일어나려는 녀석의 가슴에 올라탔다.
“이게 무슨……!”
당황한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풀 마운트(Full Mount)라고 들어 봤냐?”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이소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휘저었지만 소용없었다.
퍼퍼퍼퍽!
턱, 뺨, 이마, 코…… 안면의 모든 부위를 가리지 않고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끝없이 몸을 뒤틀고 악을 지르던 이소군도 어느 순간 축 늘어졌다.
‘이 정도면 됐겠지.’
애초에 비무에 임한 목적은 항산검문과의 전쟁 회피다.
이소군이 중상을 입으면 곤란하다. 적당 선에서 멈춰야 했다.
나는 약간의 걱정을 담아 이소군의 어깨를 흔들었다.
“야, 너 괜찮…….”
팍-!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약간의 어지러움. 쓰라린 턱에서는 선홍빛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소군의 주먹이 스친 결과였다.
‘아, 방심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젖히지 않았더라면 큰 낭패를 봤을 것이다. 공력이 실려 있던 일격이었다.
“그걸 피했다고?”
그 틈을 타 잽싸게 마운트를 풀고 빠져나온 이소군은 극도로 당황한 얼굴이었다. 하긴. 나 같은, 아니. 진태경 같은 놈한테 이런 수모를 당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더군다나 회심의 일격까지 무효로 돌아갔으니.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홀린 듯이 중얼거리는 이소군에게 친절하게 대답했다.
“원래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지.”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이냐. 나는 이소군이다. 항산검문의 이소군이란 말이다!”
이소군은 핏발 선 눈으로 외쳤다.
“십 년을 갈고 닦았다. 한데 왜! 너 같은 놈이. 너처럼 방탕하고 게으른 쓰레기 따위에게 내가!”
비록 게임 속 캐릭터라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소군의 심정에 공감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배신당하는 기분. 그 허무와 공허.
‘나도 그랬지.’
7년 동안 느꼈다. 그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질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 박탈감이었다. 나는 결국 받아들였었다.
잔인한 현실이다. 이소군을 향해 말했다.
“이제 그만 항복해라. 넌 나보다 약해.”
그 말을 들은 이소군의 눈이 뒤집혔다.
“그 입 닥쳐!”
다음 순간 주변의 공기가 짜르르 울렸다.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은 이소군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난 분명히 말했다. 선택은 네가 한 거야.”
“개소리하지 마!”
후웅.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안면을 스쳤다. 단지 그것뿐인데 살이 베이고 핏물이 흘렀다.
지금껏 봤던 어떤 공격보다도 빠르고 강하다.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오른발에 공력을 실어 이소군의 발등을 내려찍었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소군의 발이 연무장 바닥에 박혀 든다.
“크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는 놈의 얼굴에 정권을 꽂아 넣었다. 코가 부러지고 이빨이 비산한다. 다리가 종아리까지 파묻힌 탓에 몸을 빼지도 못한다.
한 대 더. 더. 더.
퍽. 퍽. 퍽.
가슴. 옆구리. 배. 그리고 마지막.
‘명치.’
뻑!
제대로 들어갔다. 그것도 그냥 주먹이 아니라 공력을 잔뜩 집중시킨 한 방이다. 이소군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크헙.”
놈의 동공이 초점을 잃는다. 힘이 풀린 허리가 뒤로 꺾이고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이 슬로 모션처럼 눈에 들어왔다.
내 오른발이 녀석의 복부를 향해 내질러지는 모습까지도.
펑!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소군의 신형이 훨훨 날았다.
모두가 그 장면을 지켜봤다. 진위경, 위팽. 태원진가의 사람들과 항산검문의 무사들. 그리고 나도.
쿠웅.
십여 미터를 날아간 이소군은 혼절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이소군에게서 내게로 옮겨진 수십 명의 시선을 받으며 우뚝 서 있었다.
“후우, 후우.”
띠링.
– [비무]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 퀘스트 보상이 지급됩니다!
– 칭호, [승부사]를 얻었습니다!
– 경험치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 압도적인 성과로 인한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 [진가심법]의 경지가 4성으로 올랐습니다!
– [기감]의 경지가 3성으로 오릅니다. 50레벨까지의 대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 레벨 업!
– 레벨 업!
– 레벨 업!
시스템 알림이 축포처럼 들렸다.
* * *
항산검문이 떠났다. 모두 말을 타고 왔던 탓에 태원진가에서 부상자들을 옮길 마차까지 빌려야 했다.
그런데 이소군은 그렇다 치고, 다른 한 놈은 뭐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빨이 몽땅 날아가고 입에 물린 헝겊은 피로 흥건하다. 세상에, 도대체 어떤 놈이…….
그때 진위경이 근엄한 얼굴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잘했다. 기대 이상으로 잘해 줬어.”
“아, 예. 감사합…….”
“왜 그러느냐?”
그거야 당신 볼에 튄 핏자국 때문이지.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그 잠깐 사이에 사람 하나를 병신으로 만들어 놨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폐관을 끝내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비록 네 평소 행실이 불량했던 것은 사실이나, 오늘 괄목할 만한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본가의 큰 홍복이다.”
진위경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중진들은 떨떠름한 기색이었지만 딱히 반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앞서 회의장에서의 시선과 비교하자면 호의적이라고 느낄 정도다.
‘무림인들이라 그런가?’
소설에서 보면 무림은 정의도 정의지만 힘이 우선시되는 곳이던데, 아마 내가 이소군을 꺾은 것이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대답을 하셔야지요. 하하하.”
……아니면 진위경 때문일 수도 있고.
입은 웃는데, 눈은 안 웃는다. 볼에 묻은 핏방울까지 더해지니 호러 무비가 따로 없다.
“저는 적극 동의 합니다.”
거기에 위팽의 여론 조작까지 더해지자 하나둘 찬성 의사를 표했다. 무력 시위에 의한 부정 투표를 지켜본 진위경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젠장. 젠장. 젠장!’
이소군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진태경. 그 빌어먹을 놈의 얼굴이 눈앞을 떠나지 않았다.
‘졌다고? 내가 그런 쓰레기한테?’
이번 태원진가 건은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이 일로 항산검문이 이득을 얻는다면 그걸로 좋고, 거절 시 본격적인 전면전으로 들어갔어도 성공이었다.
진태경. 그놈을 반병신으로 만든다면 산서성 전역에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태원진가가 항산검문에게 치욕을 당했다고.
그런데 실패했다.
‘이게 도대체.’
어린 시절부터 검을 잡았다. 천재는 아니었지만 범재도 아니었다.
항산검문의 차남. 전도유망한 후기지수. 일류 검객. 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자신인데…….
‘빌어먹을!’
오늘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이 박살 났다. 무자비한 진태경의 폭력 앞에서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마차 안이었다. 이 마차조차도 태원진가의 것이다. 이소군의 눈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죽인다. 너는 꼭 내 손으로 죽인다. 진태경!’
차오르는 분을 참지 못해 벽면을 후려치자 마차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소군은 거칠게 소리쳤다.
“뭣 하느냐! 꾸물거리지 않고 다시 출발해!”
그 순간, 미간이 따끔했다.
– 출발? 해야지. 하지만 항산검문으로 가는 건 좀 곤란한데.
‘전음?’
누구냐! 이소군은 외쳤지만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타는 듯 아프다.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렇게 하자. 우선은 북망산 먼저. 항산검문은 다음에 가는 걸로 하자고.
‘그게 무슨.’
눈 몇 번 깜빡일 만한 시간이었다. 사지가 마비되고 통증은 거세게 타올랐다. 이소군은 덜덜 떨리는 고개를 돌렸다.
복면을 쓴 누군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륵, 그르륵.”
웬 놈이냐. 목소리 대신 시커멓게 변색된 핏물만이 흘러넘쳤다. 시야가 흐려지고 소리가 멀어졌다.
‘사, 살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다음 순간 그는 암흑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잘 가게, 이 소협.”
복면인은 싱긋 웃으며 망자의 미간에 꽂힌 검푸른 대침을 회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