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163
#162화
그런 순간이 있다. 시끌벅적하고 빈틈없이 맞물린 소음이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이. 지금이 바로 그랬다.
끼이이이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란스럽던 객잔 안이 조용해졌다.
산서성을 발칵 뒤집어 놓을 계획을 세우고 축배를 들던 네 명의 우두머리와 이백여 명에 이르는 마적, 유목민들의 시선이 모두 입구를 향해 쏠렸다.
저벅. 저벅. 저벅.
‘저건…….’
천천히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불청객을 확인한 흑사(黑蛇)의 눈이 가늘어졌다.
‘웬 노인네야?’
불청객의 정체는 노인(老人). 말 그대로 늙은 사람이다.
그러나 흑사는 지금 다가오는 저 노인보다 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거의 시체 수준이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쭈글쭈글한 피부는 꽁꽁 얼어 있었고 내뱉는 숨은 가늘기만 했다.
가만히 노인을 지켜보던 테무르와 칭겐, 인도가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 정도로 늙은 사람은 처음 보는군. 우리 부족의 주술사보다 더 늙었어.”
“그런데 웬 늙은이지? 행색은 또 왜 저렇고?”
“마적이라도 만났나 보지.”
말마따나 노인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어디서 낭패라도 당했는지 걸치고 있는 옷은 너덜너덜했고, 살가죽만 남은 몸뚱어리가 훤히 보였다.
“재수도 없는 늙은이군. 기껏 살아남아 온 곳이 마적 소굴이니.”
인도가 혀를 찼다.
“저런 늙은이는 죽이고 싶은 마음도 안 든다. 치워라.”
“옛.”
인도의 수하가 나서려던 그때였다.
“잠깐.”
손을 들어 제지한 사람은 흑사였다. 노인을 응시하는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뭔가 이상하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이 객잔은 마적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때문에 주인, 숙수, 점소이도 모두 마적이거나 마적 출신이다.
북부 고원 유일의 중립지이기 때문에 오늘 같은 화합이나 화해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제 발로 기어와? 그것도 저런 늙은이가?’
북부 고원에 발을 디딘 자라면 객잔의 존재 또한 당연히 안다.
평범한 양민이 출입했다가는 죽은 목숨이라는 사실도.
“왜 그러시오?”
“쉿, 잠시 기다리게. 어째 심상치 않아.”
흑사의 반응에 다른 이들도 문득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떻게 왔지?”
“외지인 같은데…….”
“외지인은 아니다. 저런 늙은이가 몸 성히 여기까지 왔을 리 없어.”
북부 고원에는 수백 개의 마적단과 유목 부족이 흩어져 있다. 어지간히 간덩이가 붓지 않고서야 혈혈단신의 몸으로 고원을 가로지를 생각은 하지 못한다.
흑사를 포함한 네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혹시……?’
‘무림인이라면 가능하지.’
‘무림인? 저 노인네가?’
‘신경 쓰인다. 죽여야겠어.’
특히나 인도에게 살인이란 숨 쉬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거침없이 검갑에 손을 가져가는 그를 흑사가 노려봤다.
이어 인도의 귓가를 파고드는 한 줄기 전음.
– 기다리라고 했네. 좀 더 지켜본 후에 움직여도 늦지 않아. 무림에서는 여자와 아이, 노인을 조심하라는 말도 못 들어 봤나?
– 걱정도 유분수군. 저런 비루먹은 늙은이가?
– 경거망동하지 말게. 무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툭 치면 죽을 것 같은 늙은이다. 그러나 흑사의 경고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인도가 짜증 섞인 한숨과 함께 검갑을 내려놨다.
– 잘 생각했네.
그사이 정체불명의 노인은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네 사람의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흐릿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 노인이 입을 열었다.
“무, 물 좀…….”
물을 찾는 바짝 마른 목소리에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흑사만큼은 달랐다.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성격인 그는 마지막까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노인장께서 목이 타시는 모양이다. 시원한 물을 가져다드려라.”
“존명.”
마적에게서 잔을 건네받은 노인이 허겁지겁 물을 들이켰다. 어찌나 급하게 마시는지 저러다가 쓰러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노인은 연거푸 대여섯 잔을 들이켜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후우.”
“이제 좀 괜찮으시오?”
노인의 쭈글쭈글한 얼굴 위로 함박웃음이 번졌다.
“네!”
“……?”
“감사합니다, 아저씨!”
아저씨라니? 당황한 흑사가 벌떡 일어나 노인의 손목을 잡아챘다.
아무런 저항도, 힘도 없다. 앙상한 뼈는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았다.
“이보시오, 노인장?”
“네? 왜요?”
어린아이 같은 웃음과 말투.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흑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정신 나간 노인네로군.”
맥이 탁 풀렸다. 분명히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데…… 전부 기분 탓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큰일을 앞두고 있다 보니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흑사를 인도가 비웃었다.
“무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더니. 그 말이 꼭 맞았군. 노환(老患)에 시달리는 노인이라니. 크하하!”
“그 주둥이 닥치게.”
퉁명스럽게 대꾸한 흑사가 노인의 손목을 놓으려던 그때였다.
“여긴 또 어디여?”
아까와는 전혀 다른 카랑카랑한 목소리. 어느새 또렷해진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본 노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염병할. 늙으면 죽어야지.”
척 보아하니 이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모양. 노인의 푸념에 곳곳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완전히 여유를 되찾은 흑사도 피식 웃으며 물었다.
“노인장, 이제 정신이 드시오?”
노인이 대답했다.
“어린노무 새끼가 어디서 하오체야? 하오문 출신이냐?”
“……어?”
“손목은 또 왜 잡고 있어? 나랑 정분나고 싶어?”
“이, 이보시오.”
“놔, 안 놔? 셋 센다. 하나, 둘, 셋.”
휙. 엉겁결에 손목을 놔 버린 흑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늙은이, 도대체 뭐지?’
걸쭉한 욕설, 다다다 쏘아붙이는 말에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분명 무공 한 줄 모르는 정신 나간 노인에 불과한데……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크하하하! 아주 제대로 당했군!”
인도가 광소를 터트렸다. 안 그래도 무공으로 치자면 한 수 아래인 흑사가 대장 노릇을 하던 것이 마음에 안 들던 차였다.
그런 상황에서 흑사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늙은이에게 망신당하는 걸 보니 속이 다 후련했다.
“늙은이가 입담이 아주 제법이군. 덕분에 크게 웃었으니 살려 줘야겠어.”
하지만 인도의 입가에 걸린 흡족한 미소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런 호래자식이…… 넌 애미 애비도 없냐?”
“……!”
순간 객잔 안이 싸늘한 침묵에 잠겼다.
흑사와 인도가 누구인가. 북부 고원을 주름잡는 거물들이다. 세력도 세력이지만 스스로도 어지간한 마적단 하나를 우습게 박살 내는 절정 고수들.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는 두 사람을 노인은 말 몇 마디로 난도질해 버렸다.
“한 놈은 하오문 출신 남색가고, 한 놈은 부모도 없이 자라서 혓바닥이 반 토막 난 놈. 그리고 나머지 두 놈은……”
변발을 한 테무르와 칭겐을 슬쩍 바라본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놈들이 벌써부터 이마가 다 까졌군. 불쌍한지고.”
이제는 더 이상 놀랄 기력도 없다.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분위기 속, 쯧쯧 혀를 찬 노인이 네 사람 앞에 놓인 음식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아따, 한 상 우라지게 차려 놨네. 배고팠는데 잘됐다.”
누가 말릴 새도 없었다.
잘 구워진 오리 한 마리를 집어 든 노인이 다리를 잡고 북 뜯었다.
“햐, 살코기 야들야들한 것 보소. 아주 혀에서 살살 녹는다, 녹아.”
우걱우걱.
다리 두 쪽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운 노인이 분노와 충격으로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인도에게 대뜸 살점을 쓱 내밀었다.
“아직 젊은 놈이 왜 이렇게 몸을 떨어 대? 몸이 허해서 골골거리지 말고 이거나 먹어. 나는 퍽퍽한 가슴살은 싫, 아니 못 먹어. 이가 안 좋아서.”
뚜둑.
객잔에 있던 모든 사람이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건 인도의 마지막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였고, 한 사람의 죽음을 예고하는 단말마였다.
“이 개 같은 늙은이가!”
다음 순간, 눈이 뒤집힌 인도의 신형이 번개처럼 솟구쳤다.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참마검(斬馬劍)에서 줄기줄기 쏟아진 핏빛 검기가 전방을 휩쓸었다.
“이런 미친!”
“피해!”
콰과광!
테무르와 칭겐이 몸을 빼기 무섭게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수백, 수천 개의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고 먼지 구름이 휘몰아쳤다.
“죽어! 죽어! 죽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지금 인도에게서 느껴지는 광기를 보건대, 노인은 육편(肉片)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게 뻔했다.
“정신 나간 늙은이가 감히! 크아아악!”
콰과과광!
쉼 없이 쏟아지는 검기의 향연. 마침내 인도가 참마검을 거둬들인 것은 일다경이 지난 후였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몰아쉬던 인도가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압에 의해 먼지구름이 흩어지며 반쯤 가루가 된 폐허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의 짐작처럼 노인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본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어.”
“노인장, 잘 가시오.”
“그러니까 어쩌자고 인도를 건드려서…….”
“역시 한족 놈들, 엄청나게 포악하군.”
이백여 명의 마적과 유목민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던 그때였다.
우적우적. 꿀꺽. 크허!
“……?”
“……?”
“……?”
처음에 느낀 것은 황당함이었다. 이 분위기 속에서 어떤 눈치 없는 놈이 음식과 술을 먹는단 말인가.
그러나 물음표가 느낌표로, 황당함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까지는 촌각이면 충분했다.
“느, 늙은이! 늙은이가 살아 있다!”
“뭣이! 어디?”
“뒤다! 뒤에서 들렸어!”
누군가의 외침. 그리고 모두가 귀를 의심케 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요즘 놈들은 참 싸가지가 없어서 문제야. 내 이름이 늙은이냐? 네 친구야?”
“어어, 어어어!”
“안 되겠다. 오늘 네놈들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 주마.”
퍼버버벅! 부웅!
객잔을 가득 메우고 있던 마적과 유목민들이 휙휙 날아올랐다.
하나같이 사지가 으스러지고 안면이 박살 난 상태로 튕겨 나가는 광경에 우두머리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이, 이게 무슨.’
‘도대체 어떻게 저기에 있는 거지?’
‘움직이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고수.
그것도 절정 고수인 자신들의 눈을 속일 정도의 고수다.
흑사, 테무르, 칭겐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 그때,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노인을 향해 돌진했다.
“이 개 같은 늙은이가!”
이미 눈이 뒤집힌 인도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거칠게 쇄도하는 그를 확인한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그래, 나다! 이번에는 반드시 죽여 주마!”
“부모 없는 놈이로구나.”
“크아아악!”
쐐애애애액!
태산압정. 핏빛 검기가 활활 타오르는 참마도가 노인의 정수리를 쪼개려던 그 순간. 노인이 뭔가를 휘둘렀다.
서걱! 쿵!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침묵 속, 모두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반 토막이 난 참마검, 그리고 노인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무언가.
“이, 이건…….”
인도의 눈빛이 처음으로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두려움과 경악 어린 시선으로 노인을 바라봤다.
“……닭 뼈?”
“닭은 버릴 곳이 없지. 맛도 좋고, 뼈는 푹 고아 먹고. 가끔은 검기도 쓰고.”
닭 뼈로 검기를 쓰다니. 이런 괴이한 광경은 어디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인도는 직감했다.
‘고수. 초절정 고수다. 결코 대적할 수 없는.’
노인은 충격에 빠진 인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흉악한 놈이로고. 온몸에서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한마디, 한마디에 소름이 돋는다. 일평생을 포식자로 살았건만, 지금은 호랑이 앞의 쥐새끼나 다름없다.
“이런 놈은 가만히 놔두면 안 되는데…….”
인도는 문득 오한을 느꼈다. 노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의 기운에 이빨이 딱딱 부딪쳤다.
“제, 제발.”
“응?”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발…….”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바지는 축축하게 젖었고 힘이 풀린 손아귀에서 참마검이 미끄러졌다.
평생 남의 목숨을 빼앗아 왔던 인간 백정의 애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이 입을 뗐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됐다, 살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인도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때였다.
턱.
뼈마디가 튀어나와 있는 손. 거칠고 주름진 노인의 손이 그의 가슴을 짚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
미약한 의문과 함께 세상이 뒤집혔다. 쓰러진 그의 칠공(七空)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적셨다.
‘살려 준다면서, 왜?’
흐릿해지는 시야, 멀어지는 소음 너머로 노인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두려워하지 마라. 고통 없이 보내 줄 테니.”
노인의 말이 맞았다. 고통은 없었다.
* * *
인도.
중원까지 흉명을 떨친 절정 고수가 고작 일수(一手)에 명을 달리했다.
“자, 그래서…….”
얼어붙은 사람들을 향해 노인이 입을 뗐다.
“여기가 어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