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08
#207화
쉬이이이익.
정체불명의 검은 구체가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낙하한다.
차체 위로 드리워진 그늘에 택시 기사 박 씨는 죽음을 직감했다.
‘이렇게 가는구나.’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딸과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퇴근 후에 설렁탕을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그게 복선일 줄이야.
‘오늘은 운수도 안 좋았는데.’
도대체 저게 뭘까, 라는 의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걸 알아 봤자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저 석상처럼 굳은 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원통할 따름이다.
후우웅!
이제는 저승으로 떠나야 할 때.
운전석을 완전히 뒤덮은 구체의 그늘에 눈을 질끈 감은 박 씨가 결국 비명을 토해 냈다.
“으아아아아악!”
쿠궁! 우지지직!
철판이 종잇장처럼 우그러지고 박살 난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우, 귀청 떨어지겠네. 기운도 좋으셔.”
“으아아악…… 어?”
귓가를 파고드는 한줄기 목소리. 비명을 멈춘 박 씨가 눈을 깜빡였다.
“어어, 어어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분명히 1초, 아니 0.5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운전석에 앉아 있었는데 지금은 5미터가량 떨어진 갓길에 주저앉았으니까.
“이, 이게 도대체.”
납작하게 짜부라진 자신의 택시를 멍하니 바라보던 박 씨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 준 구원자가 그곳에 있었다.
“소, 손님?”
단단한 체격의 청년, 진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저 앞의 어딘가를 노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아저씨.”
박 씨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미 그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헌터 손님의 말을 따라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왔던 길로 뛰세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쭉.”
“예, 예!”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 주는 것도 잊지 마시고.”
“뭐, 뭘 알려 주라는 말입니까?”
진태경의 손가락이 전방을 가리켰다.
쨍쨍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과는 달리 그의 손가락이 향한 곳에서는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
경악으로 입을 딱 벌린 박 씨를 향해 침착한 말이 이어졌다.
“게이트가 열렸다고.”
동시에 저 먼 도로의 끝, 모골이 송연해질 만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 그워어어어!
* * *
몬스터의 포효는 확성기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상황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차를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게이트! 게이트 발생이다!”
“도망쳐!”
“석준아! 여보!”
정체되어 있던 도로는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
찢어지는 비명과 다급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죽을힘을 다해 뒤돌아 뛰는 사람들을 피해 차 지붕을 밟으며 나아가는 내 귓가로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띠링.
– 돌발 퀘스트, [게이트 진압]이 생성되었습니다.
– 당신은 퀘스트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 퀘스트가 강제 수락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예 선택권도 안 주네.’
그래도 물어보기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나는 내심 혀를 차며 퀘스트창을 열었다.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이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퀘스트
[게이트 진압]아무도 예상치 못한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지구에 발을 디딘 몬스터들은 피에 굶주렸고 주위에는 맛있는 먹잇감들이 즐비합니다.
최대한 인명 피해를 줄이고 몬스터들을 제거하여 게이트를 진압하십시오.
등급 : 절정
제한 : 없음
임무 : 몬스터 제거 (미완료)
보상 : ???
실패 : ???
빌어먹을 일이다.
바다도, 산도 아니고 하필이면 출근길로 정체된 도로에서 게이트가 발생하다니.
더 큰 문제는 그 몬스터가 고블린, 오크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 그워어어어어!
쾅! 콰광!
화물차보다 거대한 덩치에 공업용 톱날보다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 손에 들린 거무튀튀한 쇠몽둥이가 휘둘러질 때마다 콘크리트와 자동차가 박살난다.
힘으로 보나, 외관으로 보나 그야말로 괴물.
몬스터 백과사전에서만 보던 놈들을 출근길에 만날 줄이야.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오우거…….”
분류상으로는 B급 몬스터지만 놈들이 지닌 힘과 파괴본능만큼은 그 이상이다.
일례로 대격변 초기 당시, 몬스터 군단의 선봉을 맡아 숱한 도시를 파괴한 것도 바로 오우거들이었다.
‘그러니까 B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로 꼽히는 거겠지.’
그런 놈들이 바로 이 자리에 나타난 거다.
아직 게이트가 완전히 열리지 않아 숫자는 대여섯에 불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협이다.
‘인명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800여 미터 앞, 사방으로 무기를 휘둘러 대는 오우거들을 향해 쇄도하는 이십여 명의 인형이 보였다.
“막아-!”
차차차창!
번쩍거리는 갑옷과 방패, 온갖 무기로 무장한 그들의 정체는 헌터였다.
* * *
B급 헌터 황철수는 식은땀이 흘렀다.
‘게, 게이트 발생?’
게이트 발생 확률이 어떻게 되더라? 잘은 몰라도 어지간한 자연재해보다 낮다고 들었다.
마왕 아스모데우스의 죽음으로 대격변이 종결되자 하루에도 수십 개씩 세계 곳곳에서 생성되던 게이트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석학들은 앞다투어 이 상황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인류의 승리, 게이트의 종말.] [마왕 아스모데우스와 게이트의 연관성.] [10년 안에 다가올 완전한 평화.]하지만 그들은 모두 틀렸다. 1, 2년에 한두 개씩 생성되던 게이트가 올해 국내에서만 벌써 네 번째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그 네 번째 게이트가 황철수가 담당하는 톨게이트에서 열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B급 게이트라니.’
그것만으로도 끔찍한데,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놈들은 B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로 분류되는 오우거였다.
쾅! 퍼버벅!
“크허헉!”
“힐러!”
“궁수들 계속 쏴! 탱커 시선 끌어!”
퍼버벅!
B급 헌터 둘, C급 헌터 열다섯으로 이루어진 톨게이트 팀은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오우거가 휘두른 쇠몽둥이 두어 방에 타워 실드가 박살 나고 탱커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진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황철수의 나이 고작 서른.
이렇다 할 전투 센스도, 지휘 능력도 없는 그는 그저 높은 등급을 받은 덕분에 편안한 직장과 고액 연금을 약속받은 공무원 헌터일 뿐이었다.
‘어떻게, 이걸 어떻게 해야…….’
석고상처럼 굳은 황철수에게 부팀장이 외쳤다.
“팀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원 올 때까지 버텨야 합니다!”
“그, 그래. 그렇지. 5분만 더 버티면 돼.”
“특공연대 애들이랑 인근 헌터들 지원 오면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퍽! 쾅!
황철수는 멍하니 냉동탑차에 처박힌 부팀장을 바라봤다. 어디선가 날아온 커다란 콘크리트 조각이 그를 덮친 것이다.
“힐러어!”
황철수는 외침과 동시에 깨달았다.
팀에 힐러는 두 명뿐이었으며 부팀장이 남아 있던 마지막 힐러였다는 사실을.
자신을 포함한 열일곱 명의 팀원 중 제 발로 서 있는 인원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 이게 도대체.”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 1분.
그러나 이미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B급 최상위 몬스터와 톨게이트에서 폰 게임이나 하며 평화에 젖어 있던 헌터의 격차는 극심했다.
그러나 시련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팀장님!”
“게이트, 게이트요!”
그그그그극-
팀원들의 외침과 함께 허공의 균열이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칠흑 같은 어둠, 마력(魔力)이 꿀렁거리며 거대한 동체들을 토해 냈다.
– 구워어어어!
– 카우우우!
쿵! 쿵! 쿵!
흉포한 울음소리를 흘리며 지면에 착지하는 오우거들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런 시발…….”
“아, 아아.”
세 배에 달하는 인원으로도 압도적인 열세를 겪어야 했던 그들이다.
열 마리까지 불어난 오우거의 숫자에 헌터들 사이로 절망감이 짙게 내리깔렸다.
“티, 팀장님.”
“이, 이제 어떻게 합니까?”
“…….”
황철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고 승패는 더 이상 고민거리도 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것은 그뿐만 아니라 이 자리의 모두가 품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휘관의 입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나,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철수의 발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과거, 인류의 방패가 되어 몬스터의 위협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키겠다고 서약했지만 지금 같은 개죽음은 사양이다.
‘지원군이 와도 저놈들은 못 죽여.’
그렇다면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지,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전략적 후퇴를…….”
황철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뗀 그 순간.
쐐애애애애액! 펑!
한 줄기 섬광이 쏘아졌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헌터들의 머리 위를 통과한 그것은 목표를 정확히 관통했고, 동시에 터트렸다.
촤아아.
허공에서 점점이 떨어지는 것은 비가 아니라 피다. 이어 썩은 냄새를 풍기는 살점이 우박처럼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어?”
쿠궁.
누군가의 얼빠진 목소리와 함께 오우거의 거대한 몸뚱어리가 썩은 고목처럼 허물어졌다.
– 그워?
“이게 무슨…….”
인간과 몬스터가 함께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때였다.
“와, 파괴력 무엇?”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황급히 뒤를 돌아본 황철수는 소름이 쭉 돋았다.
“헉.”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눈으로 보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관광버스의 지붕에 우뚝 서 있는 존재는 유령도, 몬스터도 아니었다. 대충 헝클어트린 흑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었다.
“안녕하세요.”
“누, 누구신지?”
“그냥 출근 중인 사람인데요.”
“예, 예?”
“그,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거야말로 바라는 바였다. 짧은 혼란에서 빠져나온 오우거들이 어느새 쇠몽둥이로 바닥을 긁으며 다가오는 중이었으니까.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헌터들의 모습에 청년, 진태경이 빙긋 웃었다.
“다들 안 싸울 거면 다들 구석에 찌그러져 계십쇼.”
“……!”
“아, 참고로 경험치 스틸 하다가 걸리면 뒤집니다.”
경험치? 스틸?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진태경의 손에 들려 있던 창이 빛이 되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 * *
쉬리리릭! 퍼걱!
창날이 두꺼운 턱을 꿰뚫는다. 가죽, 속살, 혓바닥과 입천장을 차례대로 뚫고 정수리로 삐져나왔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좌우에서 쇠몽둥이가 쇄도해 왔다.
쉬이이익!
무시무시한 파공음. 하지만 나는 이미 그곳에 없다.
미끄러지듯 한 놈의 품 안에 파고들어 인벤토리에서 꺼낸 단검으로 정확히 회음혈(會陰穴)을 찌르고 있었으니까.
푹!
– 구워어어어어어어어!
“임맥 개통 축하한다.”
타통과 개통의 차이는 크다. 영혼을 담은 울부짖음과 함께 놈이 무릎을 꿇는다.
더 이상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단검으로 목젖을 갈랐다.
푸슉!
몬스터의 피와 비명. 그 사이로 계속해서 울리는 달콤한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띠링. 띠링. 띠링.
– [Lv.84 오우거]를 처치하셨습니다!
– 상당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Lv.83 오우거]를 처치하셨습니다!
– 상당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꺼어어어억.’
아이, 배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