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11
#210화
종종 무심코 튕겨 낸 불똥이 거대한 화염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법이다.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작은 불똥은 산불로 번졌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한국일보] F급 헌터의 비상. “교본대로만 수련했어요.” [고려일보] 새로운 영웅의 탄생. “S급 헌터 게 섯거라!” [행복한 생각] 대참사를 막은 20대 청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시사 핫 토픽] 하루 만에 게이트 발생 2건…… 사상 초유의 사태, 국방 안보를 사이에 둔 여야의 첨예한 대립 [국회 말말말] 자유 애국당 총재 망언 화제 “진태경의 팔뚝은 굵으니 보수 성향이 분명. 보수가 나라를 구했다.”일간지, 주간지, 시사와 생활 잡지 등등.
탁자에 수북이 쌓인 잡지와 신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내 얼굴과 이름이 떡하니 박혀 있다는 것이다. 보면서도 그 양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뭐가 이렇게 많아.’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인터뷰를 몇 개나 했더라?
특종에 굶주려 있던 각종 언론 매체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 냈다.
기자들은 길드 하우스와 집 앞에 진을 쳤고 인터넷에는 내 신상과 과거 행적, 사진이 떠돌아다녔다.
‘어우, 미친놈들.’
무림에서 제법 유명세를 누리며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터넷 강국이었고 점잖고 나이 지긋한 50대 장년층의 과거는 사실 키보드워리어다.
대형 커뮤니티 몇 곳만 돌면 전 국민을 다 만난다는 말이 결코 근거 없는 헛소리가 아닌 것이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남 일에 관심이 많은 거야.”
내 중얼거림에 양푼 비빔밥을 먹고 있던 진호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좋잖아. 선행으로 이름이 알려진 거니까.”
“글쎄. 좋은 건 모르겠다. 별 미친놈들도 다 있어서.”
“아아, 그 너희 가족…….”
내 표정을 본 진호 형이 슬그머니 입을 닫았다. 거울은 못 봤지만 상당히 험악한 표정일 것이 분명하다.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가족을 건드려?’
과연 세상은 넓고 미친놈들은 많았다.
KPS 아홉 시 뉴스에 출연한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신선한 특종을 원하는 기자들은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이 잡듯 뒤졌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신상까지 노출됐다는 점이었다.
“며칠 전에 하연이한테 전화 온 거 알지? 나가면 자꾸 기자들이 따라붙어서 배달 음식 시켰는데 배달원으로 위장한 기자였던 거.”
“아, 그놈 진짜 기레기였지. 나도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저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패밀리어 마법사 고용한 놈들도 있더라.”
이런 게 기레기고 파파라치가 아닌가 싶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눈이 뒤집혔지만, 내가 직접 해당 기자와 언론사를 족치기도 전에 네티즌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누적 회원이 백만이 넘는다는 초대형 커뮤니티들은 지금도 기레기를 장작 삼아 활활 타는 중이다.
(Best댓글) ㅋㅋ미친 기레기 새끼들이 또 선 넘네. 태경좌 덕분에 몇 명이 살아남았는데 저 지랄; 내가 다 부끄럽다.
└ 지들 가족이 거기 있었어도 저랬을 듯. 미친놈들임 그냥.
└ 어디 회사냐? 기사 링크 좀.
└ 헤일리 뉴스. ㅂㅎㅇ기자임. 지금은 원문 삭제됐는데 이미 늦었지 ㅋㅋㅋㅋ
└ 헬 뉴스로 만들어 주자.
└ 이미 헬 뉴스 됨. 사이트 폐쇄.
(Best댓글) 도청 마법에 패밀리어 법사까지 고용한 언론사도 있던데, 거긴 어떻게 됐냐.
└ 관련된 놈들 유치장 정모 중. 인생 끝장난 듯?
└ 윗 댓글 헬조선 잘 모르네, 정작 지시 내린 놈들은 끽 해 봐야 집행유예임ㅋㅋ
└ 아님. 그거 관련해서 국민청원 올라왔는데 어제 300만 뚫고 청와대 쪽에서 관련 법안 준비한다고 함. 이참에 싹 갈아 엎을 것 같던데.
└ 결과 나와 봐야 알겠지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 이 참에 교통정리 한 번 할 듯. 특종 욕심에 눈이 멀어 건드려선 안 될 존재를 건드렸다.
└ 나. 20대 청년인데. 동년배들 다. 진태경이 좋아한다.
이런 사람들의 반응에 오히려 내가 얼떨떨해질 정도였다.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들었다.
‘진짜로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그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다.
뉴스에서는 대참사를 막은 영웅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더라면, 그랬더라면 한 명이라도 사상자를 더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고는 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응?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놈이 밥을 그렇게 깨작깨작 먹어?”
“세 그릇이나 먹었는데.”
“넌 기본이 다섯 그릇이잖아.”
“……그렇긴 하지.”
“야, 태경아. 내가 너한테 충고할 만한 자격은 안 되지만 한마디만 할게.”
오랜만에 듣는 진지한 목소리다. 고추장이 묻은 수저를 내려놓은 진호 형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마라.”
“…….”
“네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모두를 구할 수 있겠냐. 심지어 신도 그렇게는 못 해.”
맞는 말이다. 신의 존재와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납득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격변 당시 죽어 간 수억 명의 인류와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가난하고 치열했던 우리 가족의 인생만이 분명한 사실이다.
“네 꿈이 뭐였지?”
“가족들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하는 거. 소중한 사람들 지키는 거.”
“한 단어로 요약해 봐.”
순간 피식, 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허구한 날 앵무새처럼 쫑알거리던 건물주라는 말 대신 뜻밖의 단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천하, 아니 고금제일인?’
잠깐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의아해하는 진호 형의 모습에 서둘러 대답했다.
“음. 강한 헌터 건물주?”
“그래, 그 정도면 된 거야. 이미 꿈은 거의 다 이룬 거나 마찬가진데 괜한 욕심과 죄책감으로 너를 몰아세우지 말라고.”
“괜한 욕심…….”
“하나만 묻자. 태경이 너, 이런 걸 노리고 몬스터랑 싸운 거냐?”
“절대 아니지.”
“그럼 됐네.”
진호 형이 씩 웃으며 다시 수저를 들었다.
“그냥 즐겨. 네가 했던 고생과 선행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 않겠냐?”
보상이라. 이미 시스템을 통해 많은 보상을 받아 온 나지만, 진호 형이 말한 보상은 전혀 다른 의미다.
어떤 물질이나 힘이 아닌 정신적인 보상. 즉 만족과 여유를 찾으라는 뜻으로 들렸다.
‘만족과 여유.’
마음속으로 읊조리는 단어들이 낯설다.
나는 F급 헌터 시절에는 돈을 위해 몬스터와 싸웠고, 지금은 더욱더 강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라는 놈은 참 욕심이 많은 놈이었구나 싶다.
“형.”
“응? 왜?”
“그냥, 고맙다고.”
양푼 비빔밥을 한 수저 가득 퍼서 입에 가져가던 진호 형이 멈칫했다.
“진짜?”
“진심이야.”
“그럼 나 십만 원만 빌려 주라.”
“괜히 어색하니까 돈 타령은.”
“나도 진심인데.”
“…….”
이 인간 진짜 뭐지?
내가 어이없어하던 그때, 탁자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이 드드득 진동하더니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 최 팀장님
최 팀장님
도착했습니다. 바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세요.
* * *
문자 내용 그대로, 최 팀장은 지하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마이갓 뉴스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해 한 마디만…….”
“진태경 씨, 주부 일간지 홍 기잡니다. 이번 주 40대 기혼여성이 뽑은 이상형 1위에 뽑히셨는데…….”
“생생 시사 토크입니다! 이번 국회에서 나온 팔뚝 굵기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금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식사 뭐 드셨어요?”
스무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데,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한숨을 푹 내쉬는 나와는 달리 최 팀장은 침착하게 적군들을 물리쳐 갔다.
“비켜 주십시오.”
“잠깐. 진짜 잠깐이면 되는데.”
“진태경 씨는 평화 길드 소속입니다. 인터뷰는 길드 공식 홈페이지 통해서 문의 남겨 주세요.”
공식 홈페이지는 언제 또 만들었대.
얼마 전에는 대대적으로 길드원 모집 공고까지 올리더니, 이참에 아주 제대로 노를 저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최 팀장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악착같이 달라붙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인터뷰 한 번을 못 한 것이 한에 맺힌 모양이었다.
“평화 길드 팀장님이죠? 그쪽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좀 비키세요!”
“맞아! 비켜! 홈페이지도 거지같이 만들어 놨더구만, 어느 세월에 문의하고 인터뷰 따?”
“거, 한마디면 되는데 왜 이렇게 비싸게 굴어요? 예?”
“코딱지만 한 중소 언론이라고 무시하냐!”
“진태경 씨는 제 팀원이고 저는 현재 길드 대변인이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정상적으로 잘 작동되고 있고, 비싸게 군 적이 없으며 그쪽을 무시한 건 절차를 거치지 않아섭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친 최 팀장이 부드럽게 기자와 카메라맨들을 밀어 냈다.
겉보기에는 늘씬한 체구지만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근력이 숨어 있다. 단지 한쪽 팔만 사용할 뿐인데 앞을 가로막은 사람들이 주르륵 밀려났다.
“헉!”
“어어, 이제 힘을 쓰네?”
“헌터, 헌터가 사람 팬다!”
아주 지랄을 해라…….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켰다. 지금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눈앞의 기자들은 질이 좋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길드 대변인 신분으로 수십 번의 인터뷰를 진행시킨 최 팀장이 거르는 것만 봐도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다.
‘애초에 질문 수준도 왜 저따위냐.’
답해 줄 가치가 없는 질문들. 괜히 대답해 봤자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나갈 것이 뻔했다.
“지나가겠습니다.”
최 팀장이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뚫던 그때였다.
“어이쿠!”
빠각!
누군가의 손에서 미끄러진 카메라가 주차장 바닥에 부딪혀 박살 났다.
문제는 그 일련의 상황에서 고의성이 다분히 느껴진다는 거다.
“내 카메라! 아이고!”
목소리는 절절한데, 눈빛은 잘 걸렸다는 듯이 번뜩이고 있다.
발연기를 하는 카메라맨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최 팀장이 허리를 굽혀 박살 난 기기를 주워 주기 위해 뻗은 팔을, 그가 신경질적으로 쳐 냈다.
“건드리지 마! 당신이 한 짓, 싹 다 찍혔으니까 각오…….”
탁! 쩌적.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최 팀장의 손목에서 떨어진 손목시계가 주차장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열 개가 넘는 시곗바늘과 촘촘히 박힌 보석. 그리고 거미줄처럼 금이 간 표면까지.
“…….”
“…….”
꿀꺽.
카메라맨의 침 삼키는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진다.
이어 최 팀장의 조용한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스위스 최고의 시계장인, 피터 필립이 말년에 손수 제작한 최후의 걸작 유니버스-302. 대격변에서도 파괴되지 않은 이 아름다운 오토매틱 기계식의 정점이 이렇게 허무하게 파손되다니.”
“…….”
슬픈 눈으로 유니버스인지 스쿨버스인지 하는 시계를 주워 든 최 팀장이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고소하겠습니다.”
최 모세의 기적에 사람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 * *
부우웅.
고급 세단이 매끄럽게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진다. 흘끗 백미러를 바라본 최 팀장이 입을 열었다.
“이제 안 따라오는군요.”
“……저 같아도 안 따라오겠는데요. 그 시계, 얼마짜립니까?”
“상상하시는 것 이상입니다. 물론 정품일 경우에요.”
“아, 모조품? 어쩐지. 그런 귀한 명품을 너무 쉽게 버리신다 했어요.”
“눈치채셨습니까?”
“손목시계가 겨우 그 정도로 갑자기 풀어지면 그게 더 이상하죠.”
“겁만 조금 줬습니다. 혹시 이런 상황이 있을까 싶어 차고 왔는데 좋은 선택이었네요.”
이 정도면 제갈량인데?
최 팀장의 잔머리에 감탄하던 그때, 이제 막 오피스텔촌 입구를 빠져나가려는 세단 앞에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최 팀장님!”
끼이이익.
내 외침보다 반 박자 빨리 브레이크를 밟은 최 팀장이 창유리 너머로 보이는 한 사람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자는 아닌 것 같은데요.”
내 생각도 그와 같다. 일반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저런 여유로운 웃음을 보일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기감을 일으키지 않아도 느껴진다. 우리를 향해 빙긋 웃는 저 남자의 몸에 웅크린 상당한 기운이.
‘헌터. 그것도 꽤 높은 수준의 헌터다.’
30대 초반에 정장을 걸친 불청객은 창문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얘기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