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20
#219화
인류는 대격변 초기부터 지금까지, 숱한 죽음과 파괴의 경험을 바탕으로 몬스터를 분류하고 서열을 정립해 왔다.
그에 따라 서식하는 몬스터의 등급에 따라 해당 게이트의 등급도 정해졌다.
그러나…….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변이 게이트가 바로 그랬다. 인간이 정한 테두리를 벗어난 그것은 말 그대로 변이(變異), 그 자체였다.
인류에게 있어 여전히 불가사의로 취급받는 게이트라는 공간에, 또 다른 변수가 끼어든 것이다.
‘최악이지.’
F급 게이트에서 D급 몬스터가, D급 게이트에서 B급 몬스터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끔찍한 악몽인데 더 큰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레어 몬스터(Rare Monster).’
생각지도 못한 상위 몬스터와 마주친 것도 지랄 같은데, 그렇게 출현한 놈들은 하나같이 동급의 몬스터를 뛰어넘는 힘을 지녔다.
레어 몬스터라는 단어는 그때 처음 탄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럼 A급 변이 게이트에서 나타나는 레어 몬스터들은? 같은 급으로 치기에는 너무 강하지 않나?’
헌터들에게 A급이란 한 번의 각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점의 영역.
그중에서도 강자로 인정받은 자들에게는 랭커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부여되었다.
이는 몬스터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였다. 관련 학계의 수많은 갑론을박 끝에 새로운 명칭이 생겨났다.
‘네임드 몬스터(Named Monster).’
A급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진정한 괴수들.
홀로 살아 돌아온 1팀장은 바로 그 네임드 몬스터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공간, 와이번의 둥지에.
“개소리!”
거칠게 소리친 원명훈이 1팀장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네임드 몬스터라니, 그딴 게 여기 있을 리가 없어.”
“저, 정말입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요.”
1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평범한 와이번보다 몇 배는 거대했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닥쳐!”
그러나 1팀장이 네임드 몬스터에게 받은 공포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A급 헌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그는 일곱 살 어린아이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그놈은 지금까지 상대한 와이번과는 격이 다릅니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해요.”
“김종훈, 너 이 새끼…….”
뿌드득.
원명훈은 이를 갈았지만 그뿐이었다.
비록 모든 면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그 역시 한때 랭커까지 올랐던 A급 헌터. 이미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원명훈이 1팀장을 윽박지르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려는 방어기제일 뿐이다.
‘이미 변이 게이트의 조짐은 있었을 텐데.’
이미 3년 전 직접 겪어 본 일이기에 잘 알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적은 몬스터의 출현. 그리고 처치한 몬스터에 비해 후할 정도로 많은 마정석의 양.
나는 후자에 관한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부산물 처리는 스타 길드의 소관이고, 제아무리 협동 레이드라고 해도 모든 걸 결정하는 지휘관은 원명훈이다.
‘그런데 그 지휘관이 똥을 싸 버렸네.’
이건 사소한 판단 미스 수준이 아니다.
저 황무지 어딘가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놈은 평범한 와이번이 아니라 네임드 몬스터니까.
“이런 씨발…….”
거친 욕설을 내뱉는 원명훈에게 최 팀장이 말했다.
“진정하시죠. 현 상황에서는 당장 철수하는 게 우선입니다.”
“진정? 이 상황에 진정하게 생겼어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씀을 드린 겁니다.”
최 팀장의 침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행히 늦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왔던 길을 돌아가면 한 시간 안에 밀림으로 진입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황무지에서 놈과 맞닥트렸다가는…….”
“그걸 누가 모르나? 간섭도 적당히 하세요.”
웃음 많고 예의 바른 젠틀맨은 이제 없다. 원명훈의 신경질적인 모습에 최 팀장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유감이네요. 그렇게 받아들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유감? 협동, 협동 하니까 진짜 동급으로 보이나 본데…… 시발, 말해 봤자 입만 아프지. 어쨌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생각은 집어치워요.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우니까.”
위기에 처하면 그 사람의 본모습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원명훈이라는 사람은 딱 이 정도였다. 이런 사람을 우상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이 씁쓸할 뿐이다.
원명훈이 초조한 얼굴로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마정석만 챙겨. 최대한 빨리 게이트 입구로 돌아간다.”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문은 두 개다. 진입하는 입구와 보스 몬스터를 죽이면 열리는 출구.
현재로서는 당연히 전자를 택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넵.”
준비는 신속하게 끝났다. 다만 여전히 창백하게 질려 있는 1팀장이 문제였다.
“저 양반 왜 저래?”
내 중얼거림에 시종일관 한 걸음 뒤에서 말을 아끼고 있던 김 집사가 대답했다.
“몬스터의 피어(Fear)에 노출됐군요.”
“A급 헌터가요?”
“상대는 네임드 몬스터니까요.”
“아.”
“그리고 등급은 힘의 잣대일 뿐입니다. 정신력이 굳건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A급 헌터가 피어에 걸리다니.
둘 중 하나다. 1팀장이 평소에 심약한 정신력의 소유자거나, 네임드 몬스터가 그만큼 강한 놈이거나.
‘개인적으로는 전자였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1팀장을 향해 다가갔다. 몸이라도 일으켜 세워 주기 위해서였는데, 그는 뭔가에 데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괜찮아요. 해치려는 거 아닙니다. 저 알죠?”
“지, 진태경.”
“아직 멀쩡하시네. 그럼 이제 정신 차리고 일어납시다. 아니면 계속 앉아 계시다가 먹잇감 되시든지.”
“으헉!”
간혹 어떨 때는 용기보다 공포를 부추기는 것이 낫다.
먹잇감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난 1팀장이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노, 놈은?”
“여기 없어요. 그나저나 어떻게 살아온 겁니까?”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이다. 네임드 몬스터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순간부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지만.
내 물음에 1팀장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랬군요.”
도망쳤구나. 팀원들을 버리고.
하지만 나는 비난하지 않았다. 그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욕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야.’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1팀장은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았다.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는데, 놈이 우릴 봤어. 그리고 날개를, 검은 날개를 활짝 펴고…….”
“검은 날개?”
“그, 그래.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통 흑색이었어.”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동굴 안을 가득 메우던 비명과 거대한 날개를.
그때 만났던 그 와이번도 몸 전체가 흑색이었다.
“블랙 와이번.”
“아니야, 달라. 지금까지 봤던 블랙 와이번보다 몇 배는 크고 강했어. 놈은…… 진짜 괴물이야.”
그렇다면 3년 전 마주쳤던 그놈은 아닐 것이다.
상동역 변이 게이트 사건 이후 나는 숱한 조사를 받았다. 사건 진상을 파견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조사팀은 그놈이 일반적인 블랙 와이번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그놈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게이트 안의 몬스터는 일정 시간마다 리젠 된다. 때문에 조사반이 도착했을 때, 놈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간혹 술을 마실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놈은 지금쯤 어디 있을까, 혹시 다른 헌터의 손에 죽은 것은 아닐까. 만약 살아 있다면 복수할 기회는 있을까.
‘이제는 가능해.’
양쪽 모두가 살아 있는 한,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놈에게, 놈은 나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기억을 안겨 주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그 날이 아닌 모양이다.
“진태경 씨.”
“태경아!”
어느새 준비를 끝마친 길드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걸음을 뗀 그 순간이었다.
“외눈.”
1팀장의 입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한 단어에 몸이 덜컥 굳는다.
천천히 돌아서자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는 1팀장이 보였다.
“지금, 뭐라고.”
“맞아. 한쪽 눈이 망가져 있었어. 꼭 뭔가에 찔린 것처럼…….”
“……!”
순간 전류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고 주먹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3년 전,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모든 힘을 끌어모아 일섬, 아니 ‘힘껏 찌르기’를 날렸고 창날은 정확히 놈의 눈동자에 꽂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었고, 녀석에게 남긴 유일한 흔적이 되었다.
‘놈이다.’
평범한 블랙 와이번이 어떻게 네임드 몬스터가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솜털까지 바짝 곤두선 피부가 증인이고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이 검사인 동시에 판사다.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입을 모아 외치고 있었다.
1팀장이 말한 정체불명의 네임드 몬스터가, 3년 전 내게 씻을 수 없는 악몽을 안겨 준 바로 그놈이라고.
‘드디어 만났다.’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려움? 기쁨?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전신이 부르르 떨렸다.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하게 날 선 감각에 짙은 혈향(血香)이 섞여든 그때였다.
– 캬우우우우우!
멀리서 들려오는 포효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석양이 지고 있는 황무지의 지평선에서, 온통 흑빛으로 물든 날개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 * *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원명훈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욕설이 반복 재생 되고 있었다.
이미 계획은 끝장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목숨마저 걱정해야 할 판국이다.
‘네임드 몬스터라니.’
8년 전만큼,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길드원들을 닦달해서 빠르게 준비를 끝마친 원명훈이 막 출발 지시를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옵니다.”
귓가를 파고드는 나직한 목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진태경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전투 준비하세요. 아니면 죽을힘을 다해 뛰시든가.”
“그러니까 뭐냐고!”
“뭐겠어요?”
진태경의 가라앉은 눈동자가 낯설다.
지금 원명훈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광팬도, 바보처럼 헤헤거리던 20대 애송이도 아니었다.
‘이 느낌은 뭐지?’
원명훈이 움찔함과 동시에 진태경의 입술 사이로 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데리고 가세요. 목걸이는 아직 내가 갖고 있으니까.”
“……뭐?”
이 자식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순간 혼란에 빠진 원명훈을 향해 진태경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제가 모를 줄 아셨어요?”
“너, 너 이 새끼.”
“명훈이 형. 아니, 원명훈 씨.”
원명훈의 몸이 덜컥 멈췄다. 모멸감 때문이 아니라 중압감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중압감이 진태경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이 뭘 했든, 하려고 했든. 지금까지의 일들은 모두 눈감아 준다. 단.”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컴컴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빛났다.
“다시는 이빨 드러내지 마.”
“……!”
“말 다 끝났다. 꺼져.”
원명훈은 입을 달싹였지만 아무런 말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형용할 수 없는 눈빛으로 진태경을 바라보던 그는 거칠게 몸을 돌렸다.
이제야 뭔가 있었음을 알아차린 평화 길드원들의 시선이 뒤통수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병신 같은 새끼들. 감히 누구한테…….’
하지만 괜찮다.
진태경도, 저 오합지졸 길드원 놈들도 곧 죽을 테니까.
잠시 후, 온 힘을 다해 뛰어가던 원명훈과 스타 길드원들은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포효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