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25
#224화
몇 시간 전, 전력을 다해 게이트 입구로 돌아가던 십여 명의 스타 길드원들을 멈춰 세운 것은 원명훈의 외침이었다.
“잠깐, 모두 정지!”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쏠렸다.
당장 뒤에서 무시무시한 네임드 몬스터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속, 홀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원명훈의 입술이 열렸다.
“정찰.”
“예. 길드장님.”
정찰 임무를 맡은 길드원이 즉각 대답했다.
발이 빠르고 활을 잘 다루는 그는 제비뽑기라는 행운 덕분에 다른 동료들과 달리 간신히 죽음을 피했다.
“현 위치 읊어 봐.”
“좌표상 175. 37. 990입니다.”
“좌표는 지랄, 게이트 입구까지 얼마 남았냐고.”
“지금까지 속도를 봤을 때 약 7분 정도가 소요될 것 같습니다.”
“얼마 안 남았네? 게이트 입구로 가는 길은 이곳뿐이지?”
“……예. 그렇긴 합니다만.”
정찰대원이 찝찝한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뭔가 이상한 흐름을 느낀 다른 길드원들도 눈빛을 주고받던 그때, 불안감을 현실로 만드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
“여기서 포위망 펼친다.”
“예?”
“포위망이라니. 이 상황에서 말입니까?”
“길드장님, 그건!”
평소였다면 군말 없이 따랐을 길드원들의 반발에 원명훈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다들 닥치고 명령 따라. 내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상대는 네임드 몬스터, 컥!”
가장 크게 목소리를 높이던 길드원의 목을 잡아챈 원명훈이 으르렁거렸다.
“게이트에서, 그것도 길드장 명령에 항명해? 이 새끼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 자리의 모두는 원명훈의 말이 비단 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난 수년 동안 지켜본 바로는 능히 행동으로 옮길만한 위인이라는 것도.
“죄, 죄송합니다.”
“마지막 기회다. 두 번은 없어.”
털썩.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저앉은 길드원을 뒤로하고 돌아선 원명훈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훑었다.
“병신 같은 놈들.”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폭언에도 십여 쌍의 고개는 땅만 응시했다.
이미 지난 수년 동안 원명훈이라는 인간을 충분히 겪어 본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게이트에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는 A급 헌터, 이 자리의 모두가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는 강자다.
“대가리가 그렇게 안 굴러가나? 내가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할 만큼 멍청한 놈으로 보여?”
푹 수그리고 있던 고개들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그럼…….”
“그 떨거지들을 처리한다.”
“떨거지들이라면, 평화 길드 말입니까?”
“지금쯤이면 전멸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요.”
그들은 정신없이 도망치는 와중에 괴수의 포효를 들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건 말 그대로 공포 그 자체였다.
비록 어떻게 생긴 놈인지 확인은 못 했지만 그렇기에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다.
‘그런 놈을 겨우 다섯이서 어떻게 상대해. 이미 다 죽었지.’
이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원명훈만큼은 달랐다.
“만약 한 놈이라도 살아남아 도망친다면?”
“그, 그건…….”
“설마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다.
평소였다면 달랐을 텐데, 네임드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과 생존 욕구가 불러온 사고의 마비였다.
우물쭈물하는 길드원들을 향해 원명훈이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만에 하나 그 떨거지 중에 단 한 놈이라도 살아서 게이트를 빠져나가면, 우리 전부 인생 종 치는 거다.”
“…….”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듬뿍 받고 있던 A급 헌터가 죽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평화 길드원 중 하나가 우리 이야기를 꺼낸다? 그 후는 굳이 말 안 해도 대충 알겠지.”
언론, 아니 전 국민의 관심이 그들을 향해 쏠린다.
수사기관이 움직이고, 언론과 대중 미디어는 이 문제를 매우 비중 있게 다루며 연일 새로운 보도를 쏟아 낼 것이다.
설령 생존자가 명확한 증언과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들이 받을 멸시와 비난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부모님 성묘를 위해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 처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가끔은 사실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하지. 너희도 8년 전에 이미 겪어 봤잖아?”
“길드장님!”
“그건!”
격렬한 동요가 스타 길드원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암묵적인 금기어였다. 그런데 다름 아닌 원명훈이 직접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심지어 그는 모든 일을 계획하고 자신들을 포섭했던 사람 아닌가?
길드원들의 사나워진 눈빛에 원명훈이 피식 웃었다.
“눈 깔아. 이 개새끼들아. 죄다 뽑아 버리기 전에.”
“……!”
“너희가 원해서 가담한 거잖아. 여기에 내 돈 안 받아먹은 새끼 있어? 그 돈으로 집 사고, 차 사고, 술이며 여자며 실컷 즐기다가 결혼해서 애 낳고. 좋은 아빠인 척, 성실한 남편인 척하면서 잘 살고 있잖아?”
원명훈이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의 번뜩이는 눈빛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의 몸이 떨렸다.
부정하고 싶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들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그들을 배에 실어 강 너머로 옮긴 건 원명훈이었다.
뱃사공은 이미 배를 숨겼다. 그의 허락이 없다면 다시 강 저편으로 돌아갈 수 없다.
숨이 끊기기 전까지는.
“더 이상 길게 말 안 한다. 숨어서 포위망 펼쳐. 내 신호가 떨어지면 누구든 죽여 버릴 수 있게.”
원명훈의 살기 어린 목소리는 대법원의 판결문이나 다름없었다.
항소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병신 같은 새끼들. 벌써 8년이나 지난 일을.”
씹어뱉듯이 중얼거리던 원명훈에게 한 길드원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저, 길드장님.”
“왜.”
“1팀장님, 아니 1팀장은 어떻게 할까요?”
“김종훈이? 그 새끼 지금 어디 있어?”
“우선은 저기에 옮겨 놨습니다.”
길드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 원명훈이 헛웃음을 흘렸다.
불과 몇 미터 앞, 창백하게 질린 채 이빨을 부딪치는 그는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한심한 새끼. 저딴 걸 A급 헌터라고 데리고 있던 내가 등신이지.”
작게 혀를 찬 원명훈이 손을 내저었다.
“소리 안 나게 알아서 처리해.”
떠나려는 그에게 길드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예에? 저, 전 못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 살인은 안 하겠다는 말입니다.”
“뭐? 이 또라이 새끼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아니, 잠깐만.”
기가 찬 표정으로 길드원을 쥐어박으려던 원명훈이 멈칫했다.
본래 지시하려고 했던 것은 침묵 마법이든, 뭐든 조용히 있게 만들라는 지시였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1팀장, 저놈만큼 내 비밀에 대해 잘 아는 놈도 없는데.’
자그마치 10년을 수족으로 부렸던 녀석이다. 나름 잔대가리도 있었고, 헌터로서의 실력도 뛰어났다.
8년 전 그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유일하게 한 사람, 1팀장만큼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입을 열었다가는 저놈도 무사하지 못했을 테니까.’
신뢰가 아니라 이해득실의 문제다. 비록 욕심의 크기는 다를지라도, 두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동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쓸모없어졌지.’
원명훈은 지금껏 상위 몬스터의 피어(Fear)에 노출된 놈들을 여럿 봐 왔다. 제각각 증상의 차이는 있었지만 딱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폐품.’
공포가 영혼에 각인된 자들은 두 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쳐서 특수병동에 갇힌 사람도 있고, 간신히 회복하더라도 헌터로서의 인생은 끝장났다고 봐야 한다.
‘내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고, 예티의 목걸이를 직접 구해 온 것도 저놈이지.’
거기에 더해 A급 헌터라는 명함도 종잇장이 되어 버렸다.
원명훈이 고민한 시간은 짧았고, 결심은 더욱 빨랐다.
“묶어 둬. 쓸 곳이 있으니까.”
“예?”
“네임드 몬스터. 그 괴물이 오면 던져 줄 먹잇감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냐?”
“……!”
“여러모로 나쁘지 않아. 진태경이 죽었으니 우리 쪽도 A급 하나 정도는 끼워 줘야 그림이 살지.”
얼어붙은 길드원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 원명훈은 근처 수풀에 몸을 숨겼다.
‘자, 누구든 와라.’
기다림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수십 미터 앞, 수풀을 헤치며 나타난 두 사람을 본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길드장 노인네에 진태경이라. 나머지는 다 죽었나?’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진태경과 등에 업힌 늙은 마법사. 어떻게 보더라도 부상자에 패잔병의 몰골이다.
‘일이 쉬워지겠군.’
특히 진태경, 저 자식은 직접 죽이고 싶었다.
원명훈이 길드원들에게 신호를 보낼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 그때였다.
“나와, 이 시발 새끼들아.”
정확히 자신이 숨은 수풀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이는 진태경의 모습에, 원명훈의 입가에 맺혀 있던 미소가 자취를 감췄다.
* * *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를 봤나.”
일그러진 원명훈의 얼굴을 보니 절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뭐랄까, 한 인간의 밑바닥을 제대로 본 것 같아서.
“웃어?”
그런 내 모습이 화를 돋운 모양이다. 마른 입술을 핥은 그가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너 이 새끼…… 지금 상황 파악 안 되냐?”
“아주 잘 되는데.”
“그런 놈이 실실 쪼개?”
“단어 선택 잘해라. 그런 말 들으면 네 대가리를 쪼개 버리고 싶어지잖아.”
“……뭐?”
“원명훈 씨, 라고 불러 줬을 때 멈췄어야지. 원명훈 씨발 새끼야.”
하이에나들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한참이나 꾹 닫혀 있던 원명훈의 입술이 가까스로 열렸다.
“미쳤냐?”
“나야 늘 멀쩡하지. 안 그래요, 김 집사님?”
내 등에 업힌 채 사태를 관전하던 김 집사가 대답했다.
“매우 정상입니다. 무슨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 헌터가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죠.”
“저 새끼는요?”
“대격변 때였다면 시체도 못 찾았을 겁니다. 그때는 좀, 험한 세상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하시네.”
쾅!
일순간 후려친 주먹에 아름드리나무가 박살 났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원명훈이 나와 김 집사를 노려봤다.
“이런 개새끼들이!”
“저 싸가지 없는 새끼. 어른한테 못 하는 말이 없네. 그렇죠?”
김 집사가 평온하게 대답했다.
“젊은 친구가 조금 예의가 없긴 하군요. 하지만 뭐, 좋은 세상 아니겠습니까. 기회를 줘야죠.”
“그런가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는 이미 마음을 굳히신 것 같습니다만.”
“귀신이시네요.”
“개인적으로 그 단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나이가 좀 있어서.”
“죄송합니다. 본의는 아니었어요.”
“우선 내리겠습니다. 하나, 둘, 셋.”
우두둑.
내 등에서 폴짝 뛰어내린 김 집사의 무릎에서 뼈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고, 괜찮으세요?”
“무릎이 좀 안 좋아서요. 힐(Heal).”
빛무리가 사라진 뒤, 무릎을 톡톡 두드린 그가 빙긋 웃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이야.”
마법이라는 거, 확실히 굉장히 편리하긴 하다.
감탄사를 토해 낸 나는 사방에서 찔러 들어오는 칼 같은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원명훈을 포함한 십여 명의 스타 길드원들이 우리를 찢어 죽일 듯이 쳐다보는 중이었다.
“이 씨발……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뭐긴. 내려 드린 거지. 싸우는데 많이 흔들리실 것 같아서.”
“싸워?”
“왜, 너희 나랑 싸우려고 온 거 아니냐?”
“당연히 아니지.”
원명훈이 광포한 웃음과 함께 덧붙였다.
“싹 다 죽이려고 온 거다.”
“오…… 꼭 웹소설에 등장하는 악역처럼 말하는데.”
상당히 감명받았다.
한편으로는 마지막까지 망설이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래, 하면 되는 거지.
“고맙다, 그렇게 말해 줘서. 덕분에 두통이 싹 가셨네. 혹시 개새끼가 아니라 개보린인가.”
“이 새끼가!”
“아니면 말고. 그럼 간다?”
“……뭐?”
쉭!
나는 문득 지금 원명훈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표정이 어떻든, 이제부터 놈이 지을 표정은 정해져 있으니까.
“아파도 참자. 울음 뚝.”
우뚜뚝!
황급히 돌아서며 휘둘러지는 놈의 팔을 잡아 꺾었다. 단숨에 뼈가 부러지고 힘이 풀린 손아귀에서 창이 미끄러진다.
주름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가 악귀처럼 일그러지며 비명이 튀어 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악!”
“내가 말하지 않았냐?”
나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시는 이빨 드러내지 말라고.”
동시에 불끈 쥔 주먹을, 놈의 아가리에 박아넣었다.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