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27
#226화
찰칵, 찰칵!
플래시 세례가 눈부시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역시 나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송충이인 모양이다.
“진태경 씨! 게이트를 클리어하신 겁니까?”
“아니라면 이렇게 빨리 나오신 이유가 뭡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게이트 보안 요원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내 입에 마이크를 쑤셔 박고도 남았을 기세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의 열광적인 분위기도 서서히 사그라들고 당황한 목소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진태경은 왜 저렇게 피투성이야?”
“인원도 안 맞아. 뒤에 있는 건 스타 길드원들이고.”
“심지어 묶여 있는데?”
“원명훈은? 원명훈도 안 보인다!”
지금 카메라가 담아내고 있을 우리 모습이 어떨지 대충 예상 간다.
몬스터와 원명훈의 피로 흠뻑 젖은 나와 줄줄이 묶여 있는 십여 명의 스타 길드원들, 그리고 개를 산책시키는 것처럼 밧줄을 손에 쥐고 있는 김 집사.
‘저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나를 대신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려는 김 집사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분명 그는 만류했고, 나는 거절했다. 내 선택으로 벌어진 일이니 수습도 내가 하는 것이 맞겠지.
“진태경 씨!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웅성거림도 잠시뿐. 특종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발광한다.
난리를 치는 취재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맨 앞의 젊은 기자를 향해 물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젊은 기자였다.
“어디 소속이시죠?”
뿔테 안경이 화들짝 놀랐다.
“예? 저, 저요?”
“네. 그쪽이요.”
“어, 그게 그러니까.”
가장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막상 이렇게 될 줄은 몰랐나 보다.
순간 패닉에 빠졌던 뿔테 안경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허, 헌터TV입니다.”
“아. 거기요.”
헌터 관련 이슈와 정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채널이다.
케이블이지만 공중파 이상으로 시청률을 뽑아내는 메이저 방송국이기도 했다.
마침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와도 연관되어 있으니 나도 뿔테 안경도 운이 좋다.
“질문받을게요.”
“예?”
“마이크가 너무 많아서요. 하나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독점?”
“뭐든 간에. 시작할까요?”
아직 풋내기 같은데, 역시 기자는 기자다.
얼떨떨한 기색은 사라지고 안경 렌즈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가 번쩍 빛을 발했다.
“생중계 어떠십니까?”
“생중계요?”
“네. 지난번 협회 때처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요.”
실시간 스트리밍이라.
나는 잠시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 * *
아이튜브는 점유율 1위의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다.
개인부터 단체까지, 수많은 채널이 등록되어 있었고 그중에서도 헌터TV는 국내에서만 수백만에 달하는 구독자 수를 보유한 거대 채널이었다.
각기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가던 헌터TV 구독자들의 핸드폰에 같은 순간, 같은 알림이 울렸다.
우우웅.
[헌터TV 님이 실시간 스트리밍을 시작하셨습니다.] [‘진태경 독점 생중계.’]10만이라는 숫자가 모이는 것은 금방이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인원이 몰린 탓에 아직 검게 물든 화면. 채팅창은 장작을 넣은 아궁이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뭐냐? 갑자기 뭔 진태경 독점 생중계?
모름. 시벌좌 게이트 들어간 지 하루도 안 된 것 같은데.
A급 게이트인데 벌써 나왔다고?
버퍼링 거지 같네.
버터링 먹고 싶다.
오, 화면 떴다.
모두 아닥하고 경건한 자세로 시벌좌를 영접해라.
팟.
짧지만 길었던 버퍼링이 끝나자 재생되기 시작한 화면.
거대한 게이트와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청년을 확인한 시청자들의 손이 바빠졌다.
시벌좌다!
오메, 시벌.
욕해 주세요!
엉덩이도 때려 주세요!
그만해 미친놈들아.
진태경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B급 게이트를 진압함으로써 수많은 인명을 구했고, A급 헌터 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과 공식 회견장에서 실수로 욕을 하는 기행까지 선보이며 연일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열광적인 분위기도 잠시, 이내 이상함을 알아차린 시청자들이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꼴이 왜 저러냐.
시벌좌 다쳤나. 온통 피범벅이네.
인원도 반 토막 났는데? 심지어 묶여 있음;;
뭐냐 이거. 일 터진 것 같은데.
헌터TV 뭐 하냐. 방송 켰으면 질문이라도 좀 해 봐라.
난리 난 채팅방을 의식한 듯, 마침내 헌터TV 소속의 기자가 말문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전후 사정을 모두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길고…… 요약해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러시죠.”
지이잉.
화면이 클로즈업되며 진태경의 얼굴을 고스란히 담았다.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차분하게 빛나는 눈동자. 이윽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네임드 몬스터가 있었습니다.”
“……!”
“변이 게이트였어요.”
순간 화면에서 들려오던 현장의 소음이 음소거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조용해졌다.
잠시 정지해 있던 채팅창의 스크롤도 미친 듯이 솟구쳤다.
??
???
아니 네임드 몬스터가 여기서 왜 나와;;;
다 죽었나 보네. 어쩐지 인원이 많이 비더라;;
원명훈도 죽은 거 아니냐?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미친…
대형 사건.
모두의 뇌리에 순간 스친 단어였다. 진태경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던 뿔테 안경도 자신의 본분을 잊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네임드 몬스터라니.’
그 파괴력은 익히 알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중남미에서 출현한 네임드 몬스터는 홀로 소도시를 파괴할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며칠간의 전투 끝에 쓰러트리기는 했지만, 그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수백 명의 헌터, 그리고 그 열 배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죽었으니까.
전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사건이었으니 취재진도, 시청자들도 모를 수 없었다.
진짜 네임드 몬스터면 살아남은 게 기적이다;
아니. 잠깐만.
그러면 게이트 안에 아직 네임드 몬스터가 있다는 거잖아;;;
그게 왜요? 게이트 안이라 괜찮지 않음?
저 새끼는 화성에서 살다가 왔나. 병신아, 게이트 마력 수치 수용량 초과하면 몬스터들 뛰쳐나오는 거 모르냐?
몇 년 전에 중남미 쪽에서 대참사 일어난 것도 마력 수치 초과해서 게이트 열린 거였잖아;
블랙 와이번의 둥지? 저기 위치 아시는 분?
ㅁㅊ;; 취재진부터 빨리 피해라.
홀린 것처럼 진태경과 채팅창을 번갈아 바라보던 수많은 취재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네임드 몬스터!”
“야, 당장 피해! 카메라 챙겨!”
그 어떤 특종이라 하더라도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죽음의 위기를 느낀 취재진이 혼란의 늪에 발을 담근 그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아, 레이드 몬스터는 잡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의 귓가를 파고드는 또렷한 목소리.
정신없이 도망치려던 취재진도, 마른침을 삼키며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던 시청자들도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뭐라고?”
????
방금 잘못 들은 것 같은데.
시벌좌가 지금 뭐라고 한 거?
네임드 몬스터 잡았다는데……?
누가?
시벌좌가.
뭐를?
네임드 몬스터를.
그게 되냐?
몰라…….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던 카메라가 다시 초점을 잡았다. 수십 개의 카메라가 태연한 얼굴의 청년을 비춘다.
뿔테 안경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진태경에게 물었다.
“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말씀드린 그대론데요.”
“그럼 정말 네임드 몬스터를…….”
“네, 잡았어요.”
잡았다고? 네임드 몬스터를?
진태경의 입에서 나온 그 믿을 수 없는 말에 모두가 입을 딱 벌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어느 기자가 불쑥 물었다.
“그, 그럼 다른 분들은 그 과정에서 돌아가신 겁니까?”
“일곱 명 사망. 나머지는 무사합…….”
말끝을 흐린 그는 잠시 골몰하더니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아, 사망자에 원명훈도 추가해야겠네요. 총 여덟입니다.”
“워, 원명훈 씨는 왜…….”
“어, 그게.”
잠시 멈칫한 진태경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잡았습니다.”
“……예?”
“아, 잡은 게 아니고. 죽였, 아니 이것도 어감이 이상한데. 잠시만요.”
네임드 몬스터라는 폭탄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터진 두 번째 폭탄.
현장에 있는 수십 명의 취재진과 화면을 바라보던 10만의 시청자들은 반쯤 넋이 나갔다.
‘저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지?’
모두가 같은 생각을 떠올린 찰나, 진태경은 마침내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을 떠올렸다.
“이게 제일 낫겠네요. 제가 ‘처리’했습니다.”
“…….”
“…….”
무거운 침묵의 끝, 얼어붙어 있던 채팅창에 한 줄이 추가되었다.
쟤 무슨 집에서 분리수거 하고 왔냐?
* * *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긴급 파견된 조사단은 신속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사건의 진위를 파헤쳤다.
수많은 이목이 쏠린 사건이었으니 하나라도 놓치면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똑바로 처리해. 하나라도 놓치면 모가지야, 모가지!”
“이거, 청와대까지 보고 올라갔다. 삐끗하면 다 같이 낭떠러지야.”
정부는 물론이고 헌터 협회의 수뇌부들도 바짝 긴장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친…… 이런 놈을 혼자 잡았다고?”
“이걸 잡네.”
거대한 네임드 몬스터가 처참하게 죽어 있는 것을 확인한 조사단은 혀를 내둘렀고, 그때쯤 레이드에 참여한 스타 길드원 전원은 취조실의 차가운 철제 의자에 묶여 있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보세요, 헌터님. 어차피 금방 뽀록 날 거 어렵게 갈 필요 있습니까?”
“정말입니다. 아는 게 없어요.”
“하, 이 새끼…… 정신계 마법 한 번이면 술술 털어놓을 거면서 짜증 나게 구네.”
“지금 욕했어, 당신? 검사라고 이렇게 막 해도 돼? 그리고 정신계 마법, 그거 불법인 거 몰라요?”
인생이 걸린 일이다. B급 헌터로서 지금까지 누려 왔던 호의호식을 두고 평생 감방에서 썩을 수는 없는 일.
딱 잡아떼는 스타 길드원들의 태도에 검찰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뜻밖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저, 전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타 길드의 1팀장, 김종훈은 심약해진 정신을 온전히 추스르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고백했다.
완벽한 증언. 거기에 더해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USB와 쪽지 한 통까지 추가되었다.
독일의 유서 깊은 장비 제작 가문, 합스부르폰 가는 희귀하고 실용성이 뛰어난 물건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어떤 탐지 마법에도 걸리지 않으며, 마력이 불안정한 게이트에서도 정상 작동되는 이 PSV-96K 카메라가 대표적인데…….
쪽지를 보던 담당 검사가 황당한 얼굴로 수사관에게 물었다.
“이게 뭔 소리예요?”
“레이드 과정을 다 찍었답니다. USB 열어 보시면 영상 있습니다. 원명훈 그 자식, 죽일 놈이더라고요.”
“촬영은 불법이잖아?”
“불법이죠.”
“평화 길드겠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
“그 정도는 넘어가시죠. 방귀 좀 뀐다, 싶은 길드에서는 다 합니다. 저쪽에서 민간인에게 유출한 것도 아니고, 우리야 덕분에 확실한 물증도 확보했으니 상부상조…….”
벌컥!
문을 박차고 들어온 직원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 이거 보셨어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당당히 걸려 있는 제목은 ‘원명훈 레이드 영상 유출’.
추억 속 옛 스타의 추악한 일면이 공개되자 인터넷은 숯불 위의 가마솥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미친 새끼네 이거.
진짜 뒤통수가 띵하다. 이거 진짜 맞냐. 주작 아님?
잘 죽었고, 잘 죽였다.
그래도 명백한 살인인데, 굳이 원명훈 죽인 건 좀…….
└ 명훈이냐?
└ 지옥에서 와이파이 터짐?
└ 염라대왕이 핫스팟 켜준 거 아니냐.
└ 이걸 살인 운운하네; 정당방위라는 단어 모르냐.
사건이 터진 지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후폭풍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거셌다.
은밀하게 묻혀 있던 원명훈에 관한 의혹들이 속속 밝혀질 때마다 사람들은 뜨겁게 끓어올랐다.
그렇게 식지 않는 분노의 열기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그들은 늘 같은 물음으로 끝을 맺고는 했다.
그런데 진태경은 뭐 하고 있냐?
└ 지금 시간이면 자고 있지 않을까.
└ 분리수거 하고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