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29
#228화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슈와 더 큰 이슈가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졌고, 새로운 진실과 의혹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렇게 일주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을 때, 새로운 기사 하나가 포털 사이트를 점령했다.
[고조선TV] 비밀리에 이루어진 크리스티 경매. 승리자는 카타르의 왕자 천수르. 최종 낙찰 금액 약 5천억 원!짤막한 기사에 첨부된 사진 한 장, 그러나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채 활짝 웃고 있는 중동 왕자의 뒤로 보이는 거대한 동체 때문이었다.
(Best댓글) 저거 그거 아니냐? 이번에 시벌좌가 잡은 네임드 몬스터?
└ 맞네;;; 하도 봐서 이제는 가죽 무늬만 봐도 알겠다. 근데 저걸 5천억에 사는 미친놈이 있네.
└ 중동 왕자 클라스에 지리고, 한 방에 5천억 벌어들인 시벌좌의 위엄에 쌌다.
└ 아들, 뭘 쌌어? 혹시 이상한 거 보고 그런 거 아니지? 엄마는 우리 아들 믿어. 사랑해~
부럽다, 대단하다는 반응이 상당수였지만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도 존재했다.
(Best댓글) 근데 진태경은 온갖 평지풍파 다 일으켜 놓고 인터뷰 한 번 안 하더니 뒷구멍으로는 몬스터 팔아먹었네. 이거 나만 불편하냐?
└ 개인적으로 진짜 별로던데. 원명훈 멋대로 죽인 것도 어떻게 보면 과잉 대응이었는데 검찰에서는 참고인 조사만 하고 유야무야; 유명인이라 봐주는 느낌.
└ 2222. 추천이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친구, 혈육도 그 정도인데 미디어로만 접하던 유명인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기사가 등록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혈전이 벌어졌다.
(Best댓글) 위에 댓글 단 새끼들은 세 얼간이냐?
└ 저딴 댓글이 추천 수가 1000이 넘는 것에 충격받음 ㅋㅋㅋ남 잘되는 거 못 보는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냐.
└ 그니까. 평지풍파는 개뿔; 도동파 맞아서 뇌에 구멍 뚫렸나. 지금까지 시벌좌 덕분에 살아난 사람이 몇 명인데;
└ 진태경 . 요런 호로~ 색휘를 봤나,, 공인으로써 ,, 사리사욕만 채우는 고약한 넘,,~~! 전국민이 지켜보고 잇음을 ,, 잊지 말어라@~!
└ 윗 댓글 사리사욕ㅋㅋㅋ 너희 부모님 몸에 쌓인 게 사리고,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쌍욕임.
└ 뭔 공인 같은 소리 하고 있어; 한 달 전까지 츄리닝 입고 방구석에서 라면 끓여 먹던 형님인데. 그리고 말투 극혐.
└ 어린노무 쉐끼덜~ 혀바닥이,, 매섭구나~!!!
└ 틀니 한 달 압수.
└ 보청기 두 달 압수.
└ 노인정 출입 석 달 금지.
곳곳에서 틀니와 보청기, 노인정 출입을 금지당한 사람들이 속출했음에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거센 반발에도 진태경을 비난하는 이들은 꿋꿋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 나갔다.
애색기덜이,,ㅎㅎ 손구락에 칼을 달앗구나,,, 못 배워먹은 써글넘들~~!! 무시하는 것이,, 답이다!@!~~
└ 지팡이 압수.
지팡이 안 쓴다,,이 쉐끼야~~
└ 휠체어 압수.
이름도 못 밝히는 잡놈쉐리덜이,,, 어디서 빨겡이 가턴 지꺼리를 하고 있는게냐,,!!!!!
└ 박형석. 이름 밝혔으니까 됐지?
형석군은 엄마한테 가서 젖을 더먹고 공부 더하고 오너라~~`!!
└ 니나 더 먹어.
└ 호로 쌍놈의 새끼로구나.
그야말로 피 튀기는 혈전.
해당 인터넷 기사는 불과 하루 만에 조회수 100만 뷰를 달성했고 수만 개의 댓글이 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게 서로가 날 선 댓글을 주고받으며 으르렁거리던 중,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헌터TV독점] 진태경, 게이트 희생자들을 위해 수천억 기부& 후원재단 설립헌터 진태경이 평화 길드의 이름으로 게이트 희생자들을 위해 수천억 대를 기부하고 후원재단을 설립해 이목을 끌고 있다.
크리스티 경매가 시작되기 전부터 진행 절차를 밟기 시작하여…….
(Best댓글) 지금까지 공인이네, 사리사욕이네 하던 새끼들 집합. 대가리 박아.
└ 에잉..,쯧!! 아직 . 제대로 발켜진 것두 없는데,,, 더럽개 깝죽거리는구나~~!!!,, 진실을 바로 보아라 .!
└ ㅋㅋ야, 우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몇천억을 쏴 버리는 건 진짜 뭐냐; 솔직히 지금까지 악랄하게 물타기 하던 놈들 퇴치했다는 사이다보다 저게 더 신기하네.
└ 인정. 시벌좌 진짜 뭐냐? 어차피 본인 정도면 돈 버는 건 쉬운 일이라 통 큰 결정 내린 건가?
└ 그게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가 돈 욕심이 딱히 없는 것 같은데. 어쨌든 진심으로 감탄했음.
└ 키, 외모, 인성, 돈. 다 가졌네. 이거 반칙 아니냐?
└ 제꼬삼, 제꼬삼…….
└ 제꼬삼이 무슨 뜻이에요?
└ 제발 꼬추 삼 센티.
└ 아.
싸움은 악플러들의 패배로 종결되었고 여론은 다시 한번 진태경에게 감탄했다.
대참사를 이미 두 번이나 막은 데다 홀로 네임드 몬스터를 쓰러트린 힘. 거기에 수천억을 기부하는 통 큰 배포까지.
소탈한 영웅이자 대인배라는 이미지가 확고하게 굳혀지는 순간이었다.
* * *
– 재단 설립 관련해서 진행 상황을 알려 드리…….
“최 팀장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최 팀장의 말을,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가로막았다.
“거기까지. 그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
– ……돈이 그렇게 아까우시면 재단 설립 취소할까요?
“아뇨. 절대!”
– 그럼 왜 그러시는 겁니까?
“아까워서요.”
– 예?
“아깝지만 필요한 일이잖아요. 계속 진행해 주세요.”
– 그림의 떡, 뭐 그런 겁니까?
“손 안의 떡이죠. 저는 배고파 죽겠는데 간신히 참는 거고.”
세계 각국의 부호들이 참석한 크리스티 비밀 경매가 얼마 전 끝났다.
그리고 정확히 24시간 후, 내 통장에는 끝없는 0이 찍혀 있었다.
‘5천억.’
정확히는 수수료 전부 떼고 5300억 원가량이 되시겠다.
단위가 백도, 천도 아니다. 억이다, 억.
그야말로 억 소리 나는 금액이었고, 실제로 그런 소리가 나올 뻔했다.
‘이게 도대체 얼마냐.’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아니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
하지만 나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할지. 어떻게 하면 가장 올바르고 값지게 사용할 수 있을지.
“그러니 계속 진행해 주세요. 저는 최 팀장님만 믿고 맡기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지난번에 전달받은 명단에 올라와 계신 분들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하죠.
“꼭 좀 부탁드립니다.”
3년 전 그날을 마지막으로 시간이 멈춰 버린 팀원들의 유가족들이 재단의 첫 후원을 받게 될 것이다.
비록 그 돈이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 줄 수는 없겠지만…… 아무런 부족함 없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겠지.
– 그다음은 대격변 참전 용사분들과 한 부모 가정. 맞습니까?
“네.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방을 나오니 부엌 식탁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는 엄마와 하연이가 보였다.
다가가기가 무섭게 사과가 꽂힌 포크 하나가 불쑥 내밀어졌다.
“아들, 사과 좀 먹어. 달다.”
“어, 응.”
아삭.
달콤한 과육이 입안에서 부서졌다. 나는 얌전히 과일을 먹으며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공부, 이웃에 사는 누구, 드라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가끔은 고개를 끄덕여 맞장구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불쑥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은 거지?”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들?”
“뭐가?”
“음. 그냥, 이번 일 관련해서 뭐든지.”
하연이가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지금 혹시 돈 얘기하려는 거?”
“…….”
“내 이럴 줄 알았다. 엄마, 내가 어제 말했지? 이 인간 분명히 이럴 것 같다고.”
엄마가 나뭇가지처럼 얇은 하연이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얘는! 여덟 살이나 차이나는 오빠한테 이 인간이 뭐야!”
“아, 아파! 그만 때려.”
퉁명스럽게 대꾸한 하연이가 팔짱을 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저기요.”
“……저기요?”
“그럼 뭐, 호적 메이트라고 불러 줘?”
여덟 살이나 어린, 하나뿐인 여동생이다. 평소 같았으면 장난삼아 딱밤이라도 먹였겠지만 어쩐지 오늘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나를 바라보던 하연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빠.”
“어?”
“엄마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뭐지?”
글쎄. 뭐였더라.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집에 올 때마다, 혹은 통화로 며칠에 한 번씩은 꼭 듣는 말이니까.
“몸조심해?”
“그래, 잘 아네.”
사과를 쿡 찌른 녀석이 포크를 내밀었다.
“먹어. 먹고 몸조심해.”
“…….”
“수천억? 그거 우리한테 있어 봤자 뭐 해? 다 못 쓰는 건 둘째치고 제대로 쓰지도 못할 거 뻔한데.”
나는 기계적으로 입안에 들어온 사과를 씹었다. 달고, 매웠다.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컸지?’
이번 일은 내게 있어 어려운 선택이었다.
사실 나는 그리 선한 놈도, 정의로운 놈도 아니다.
하나뿐인 동생이 해 달라는 건 다 해 주고 싶은 평범한 오빠이자, 오랫동안 홀로 고생한 엄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은 평범한 아들이다.
그리고 수천억은 지금까지 상상했던 모든 것들을 현실로 가져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이 돈이면…….’
많은 고민이 있었다. 결정을 내린 후에도 그랬다.
하지만 전부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대중들은 나를 영웅인 동시에 대인배라 치켜세우지만, 틀렸다.
정작 나보다 속이 넓은 건 여덟 살이나 어린 동생이었다.
녀석은 엄마의 좋은 점만을 쏙 물려받았다. 웃을 때 반달이 되는 저 눈마저 그랬다.
“아들, 늘 말하는 거지만…….”
“자식놈이 피 흘려서 번 돈을 쓸 수 있는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네, 알아요.”
“그래, 잘 아네.”
“하지만 이제는 좀 쓰셔야 할걸요. 앞으로 많이 벌 예정이라.”
“그럼 안마의자 하나 사 줘.”
“안마의자요?”
“응. 우리 아들이 성공해서 선물을 준다고 하면 뭐부터 받을까, 고민해 봤는데 그것밖에 없더라.”
나는 엄마를 따라 웃었다.
마음이 후련해졌다.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그럼 내일 같이 구경 가요. 가구도 볼 겸.”
“가구?”
“하긴, 우리 집 가구도 너무 낡았지. 엄마, 이런 건 원래 줄 때 받는 거야.”
곧 이사할 집에 들여놓을 가구라는 걸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궁금하다.
그 집이 우리 세 식구가 네 식구였던 시절 살았던 그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더더욱.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가고 싶지만…….’
내일을, 아니 다음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기고 싶다.
마침내 때가 됐음을 깨달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아들, 과일 많이 남았는데.”
아쉬워하는 두 사람을 향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낮잠이나 좀 자려고요.”
이번에는 아주 긴 잠을 잘 것이다.
* * *
휘이이잉.
어느덧 계절의 끝에 다다른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사방은 어둠에 잠긴 지 오래였고 불 밝힌 전각 안은 환했다.
휘청이는 불꽃을 바라보던 노인이 문득 입을 열었다.
“누구냐.”
곧이어 맑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접니다.”
“……네 녀석이더냐?”
처음에는 쉽사리 구분하지 못했다.
불과 한두 시진 사이에 녀석의 발걸음은 목소리만큼이나 가벼워져 있었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인가?’
오십 보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인기척이었는데, 삼십 보 안까지 들어와서야 알아차렸다.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괴이하다고 해야 할지.
입가에 맺힌 웃음과는 달리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노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날이 밝으면 찾아오라 하지 않았더냐.”
“기다리기 힘들어서요. 대답은 정해져 있는데 뭣 하러 시간을 낭비하겠습니까?”
“쯧쯔. 무인이라는 놈이 이리 인내심이 없어서야.”
“노야께서 말씀하셨잖아요. 무인에게 잠은 사치다. 그 시간에 수련을 해라. 제 말이 틀립니까?”
“허헛, 그놈 참.”
맞다. 그게 무인이고 스승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제자의 태도다.
노인은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깡마른 손을 내젓자 부드러운 열풍이 전각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 앞에, 시원시원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진태경이 있었다.
“노야. 무공을 가르쳐 주십시오.”
노인, 화왕 적천강은 기껍게 웃었다.
“오냐. 내 모든 것을 알려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