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35
#234화
띠링.
– [점혈]이 풀렸습니다!
– 잠에서 깨어납니다!
시스템 알림과 함께 눈을 떴다.
저 아래 밤바람을 타고 출렁이는 나뭇가지의 물결. 검게 물든 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고 등으로부터 차갑고 딱딱한 바위의 감촉이 느껴졌다.
‘밖이구나.’
예상은 했다. 적천강이 나를 푹신한 오리털 침대에 눕혀 놓지 않았을 거라는 건 미취학 아동도 짐작할 수 있으니까.
뭐, 어디에 눕혀도 멀쩡한 몸이기도 하고.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이 무겁지.’
요즘 몸을 너무 험하게 굴려서 그런가?
시스템이니 뭐니 해도 나도 결국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보름간의 강행군 때문인지, 철구라도 매달고 있는 것처럼 몸이 무겁…….
철그럭.
“어?”
철그럭?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양손과 발목에 단단하게 차여진 수갑과 사슬로 연결된 철구가 눈에 들어왔다.
“……진짜 철구네.”
뭐여, 이게.
몇 초 동안 사고가 정지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그리고 왜 이딴 물건이 내 사지에 채워져 있는가.
정답은 금방 나왔다. 그건 일 더하기 일처럼 보다 쉬운 문제였다.
“화왕!”
벼락 같은 외침을 내뱉은 그 순간이었다.
빡!
“악!”
“이런 싸가지 밥 말아 먹은 놈을 봤나.”
내 뒤통수에 돌멩이를 명중시킨 적천강이 느긋한 팔자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별호를 함부로 불러? 노부가 네 친구냐?”
고통에 바위 위를 데굴데굴 구르던 내가 벌떡 일어났다.
철그럭.
“이거 뭡니까!”
“그거? 철구.”
“제가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니잖아요.”
“그럼 다 아는 놈이 왜 물어봐?”
“……!”
“앞으로 네 수족이 될 물건이다. 열화문 대대로 내려오는 수련 도구이니 자식 대하듯이 다루거라.”
아니,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을 못 해 본 숫총각인데 자식은 뭔 놈의 자식.
나는 어이가 없어 넋이 나간 얼굴로 철구가 연결된 사슬을 잡아당겼다.
차르르륵.
쇠 긁히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어지간한 일류 무인조차 가만히 서 있지도 못할 만큼의 무게였다.
“이게 문파 대대로 내려오는 수련 도구라고요?”
“노부가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데요?”
“얼마 안 나간다. 한 이백 근 정도?”
“…….”
“아, 물론 합쳐서가 아니라 각각 이백 근이다.”
이백 근이면 현대 기준으로 따져도 120kg에 달하는 무게다.
그런 흉악한 물건이 양 팔다리에 채워져 있으니 그 무게가…….
‘약 500kg. 0.5t이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노망이라도 나셨습니까?”
“……이놈, 못 하는 말이 없구나.”
한 대 맞을 걸 각오하고 뱉은 말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적천강의 반응은 딱 거기까지였다.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말을 이었다.
“여하간 앞으로는 그 철구를 차고 생활하게 될 거다. 수련 중에는 물론이고 잘 때,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음.”
“이게 다 수련의 일환이니라.”
“진짜죠?”
“못 믿겠으면 접든가. 멀리 안 나간다.”
망설임 없이 돌아서는 적천강을 황급히 불러세웠다.
“자, 잠깐만요!”
“왜? 하기 싫다며?”
“아니,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그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대답은?”
“그건…….”
젠장, 이거 내적 갈등이 엄청난데.
그러나 처음 철구를 보고 느꼈던 황당함이 사라지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못 할 것도 없지.’
지금껏 죽을 위기를 수십 번도 더 넘기며 여기까지 왔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보상이 주어진다. 무림에도, 현대에도.
나뿐만이 아닌 모두가 끊임없는 퀘스트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정도로 돌아갈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훗날 수확할 과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헐값이다.
생각을 끝마친 나는 적천강과 시선을 맞췄다.
“까짓거, 하죠.”
“잘 안 들린다.”
“한다고요!”
“으하하! 좋다!”
적천강의 주름진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음흉한 노인네 같으니. 싫으면 말고 식으로 굴었지만, 그도 내심 나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럼 이제 뭐부터 합니까?”
“바로 시작하고 싶으냐?”
“소뿔도 단김에 빼라는데, 기왕 할 거면 바로 가는 게 낫죠.”
“제법 호탕한 면모가 있군. 하지만 그전에 식사가 먼저다.”
“예? 갑자기요?”
“쫄쫄 굶으면서 해야 수련이더냐? 뭐든지 속이 든든해야 큰일을 하는 법이니라.”
적천강이 품에서 꺼내 던진 물체를 받아들었다.
희미한 달빛 아래, 축축한 한지를 벗겨 내자 붉은 기가 감도는 벽곡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라리 육포를 주시지.”
“불평하지 말고 처먹어라. 평범한 벽곡단이 아니라 열화문 비전의 수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무슨 효과가 있는데요?”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이거 먹으면 속 진짜 더부룩한데. 이제는 보기만 해도 입맛 떨어져요.”
“특히 정력에 좋다.”
“와, 보기만 해도 입 안에 침 고이네.”
“…….”
“잘 먹겠습니다!”
정력에 좋으면 먹어야지. 당장 쓸 곳이 없어도 무조건 먹어야지.
나는 미래를 생각하며 벽곡단을 꼭꼭 씹어 삼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적천강이 물었다.
“다 먹었냐?”
“예, 노야.”
“뭐, 느껴지는 것은 없고?”
“글쎄요, 정자 수가 좀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
내 대답에 적천강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만든 지 너무 오래돼서 약효가 떨어진 건가?”
“예?”
도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엉겁결에 되물은 그 순간이었다.
띠링.
– [화왕 특제 금제단]을 복용하셨습니다.
– 포만감이 차오릅니다!
– [민첩]이 100 하락합니다!
– [근력]이 100 하락합니다!
– [체력]이 100 하락합니다!
– [공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효과가 일주일 동안 지속됩니다!
“……어?”
그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시스템 알림이 뜨기 무섭게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고 호흡이 짧아졌다.
마지막으로 전신 세맥을 도도히 흐르던 공력이 단전으로 내려가더니, 이내 뭔가에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으헉!”
쿠웅!
일시에 힘이 빠져나가니 그럭저럭 철구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던 몸이 축 늘어진다.
순간적으로 전신을 짓누르는 0.5t의 무게감에 무릎이 꺾였다.
“뭐, 뭐야 이거!”
“후후. 드디어 약효가 도는군.”
나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는 적천강을 보며 입을 딱 벌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미친 노인네야!”
“뭐라? 미친 노인네?”
“헉. 아니 그게 아니고요.”
“어디 보자…… 첫 수련은 역시 그게 좋겠군.”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름진 손바닥이 나를 향해 펼쳐졌다.
동시에 느껴지는 막대한 기의 흐름, 세차게 불어오던 바람이 방향을 바꿔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그리고 한 줄기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이 아래는 낭떠러진데?’
황급히 뒤를 살폈다. 바위 아래로 보이는 전경이 아찔하다.
만약 이런 무지막지한 철구를 달고 여기서 떨어진다면…….
“자, 잠깐만요!”
“잠깐은 무슨. 소뿔도 단김에 빼는 게 낫다며?”
“그건……!”
“늦었다.”
파아아앙!
적천강의 손바닥에서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왔다. 바위와 나무조차 뿌리 뽑힐 만큼 강력한 권풍(拳風)이 거인의 주먹으로 변해 나를 후려쳤다.
그 강력한 바람 앞에서는 수백 킬로그램의 철구도 소용없었다.
퍼벙!
‘아, 시바.’
다음 순간, 발밑이 허전해지는 감각과 함께 나는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뒤집힌 시야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드는 적천강이 들어왔다.
“다시 올라오는데 한 시진. 일각이라도 늦으면 실패다.”
띠링.
– 퀘스트, [화왕의 불지옥 수련-1]이 생성되었습니다!
– 당신은 퀘스트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이런 엿 같……!”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중력이 전신을 짓눌렀다.
빛살 같은 속도로 추락하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악!”
공포에 찬 비명이 어둠에 잠긴 구화산을 뒤흔들었다.
* * *
풍덩-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물소리에 적천강이 피식 웃었다.
문득 젊은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부님! 살려 주십쇼!’
‘셋 센다. 놓거라. 셋.’
‘제발! 여기서 떨어지면 제자는 죽습니다!’
‘둘.’
‘헉! 사부니임!’
‘하나.’
그의 사부는 가차 없었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런 혹독한 가르침이 없었다면 지금의 열화문도, 화왕 적천강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받았던 그대로…… 아니, 조금 더 강하게 굴려 주마.’
진태경은 모르겠지만 적천강은 알고 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차근차근 하나씩 가르치면 늦는다.
굉도가 예견했던 천기(天氣)가 그러했고 적천강의 현재 상태가 그랬다.
‘그때까지 버티거라. 노부도 최선을 다하마.’
한동안 심유한 눈빛으로 산 밑을 응시하던 적천강이 문득 중얼거렸다.
“……철구는 채우지 말 걸 그랬나.”
사문의 죄인을 금제(禁制)하기 위한 물건을 이럴 때 쓰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적천강이었다.
* * *
“흐읍. 흐으으읍!”
그그긍. 그으으윽.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제 막 녹기 시작한 땅이 푹푹 들어가고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도랑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미 익숙한 일이다. 나는 구슬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후욱, 후욱.”
띠링.
– 극한의 수련! 끝없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 [근력], [체력], [민첩]이 1씩 상승했습니다!
– [근골], [근맥]이 2씩 상승했습니다!
가랑비에 몸 젖는다고, 지금 같은 능력치 상승은 비록 소량이라고 해도 적잖은 도움이 됐다.
‘이 개 같은 철구만 없었어도, 엿 같은 금제단만 아니었어도!’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진작 퀘스트를 완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공력은 금제당했고, 신체 능력치가 100씩이나 하락한 데다 엄청난 무게까지 더해지니 견딜 재간이 없다.
화룡점정으로 제한 시간은 고작 한 시진.
‘시벌, 구화산이 무슨 동네 뒷산도 아니고.’
오죽 힘들었으면 도중에 철구에 연결된 사슬을 끊어 버릴까 생각도 해 봤다.
그 사슬이 만년 한철이라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진.
‘이걸 사슬 따위에 쓰다니, 미친놈들인가.’
결국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그리고 마침내 열흘이 지난 오늘.
띠링.
– 퀘스트, [화왕의 지옥불 수련-1]을 완료했습니다!
– 상당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레벨 업!
– 보너스 포인트 30을 획득했습니다!
제한 시간까지 약 일각을 남긴 시점에서 드디어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쿠웅-!
“이야아아아!”
무거운 철구를 땅에 내던지며 폐부 깊숙이 솟구친 함성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바위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던 적천강이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무, 무슨 일이냐!”
망할 노인네. 무인은 잠자는 시간도 아끼고 어쩌고 하던 인간이 내가 죽을 고생하는 동안 꿀잠을 자?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그에게 다가갔다.
“보면 모르시겠어요? 한 시진 안에 구화산 등반. 성공했습니다!”
“으응? 구화산을 왜 올라?”
“예?”
눈을 껌뻑거리던 적천강이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다. 제법이로구나.”
“그리고요?”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될듯싶다. 준비는 해 두었으니 알아서 해라.”
그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바위에 기대어진 그것은 조끼였다. 엄청나게 크고 두꺼운, 무쇠 조끼.
나도 모르게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거,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겁니까?”
“뭘 생각했는데?”
“이거 입고 지금처럼 해 왔던 행동 똑같이 반복하는 거요.”
“원 녀석, 농담도.”
“그렇죠? 와, 진짜 식겁했네.”
“허허. 네 녀석이 귀여운 상상을 했구나.”
동네 할아버지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린 적천강이 말을 이었다.
“하나를 해냈으면 다음은 둘 이상을 해내야지. 지금 생각해 보니 한 시진은 너무 넉넉했어.”
“예?”
“반 시진 준다. 얼른 주워 입고 다녀오너라.”
“……!”
띠링.
– 퀘스트 정보가 변경됩니다!
– 반복 퀘스트, [화왕의 불지옥 수련-1]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