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46
#245화
와아아아아!
엄청난 환호성에 귀가 먹먹하다. 자그마치 수만 명의 무림인들.
풍운의 꿈을 안고 성라대연에 참석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그들은 끝없는 함성을 토해 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소음은 법왕 굉도가 손을 듬과 동시에 잦아들었다.
그의 손에는 천년 소림의 상징, 녹옥불장이 들려 있었다.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 그 막강한 권위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내 심후한 공력이 담긴 노승의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빈승은 종종 하늘을 올려다보곤 하오.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별을 보고, 읽고, 또 지켜봤소.”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법왕 굉도가 소림방장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고강한 무공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닌 학식과 현기(賢氣) 때문이라는 말을.
“성라대연. 이 연회에서 가장 밝은 별이 되고 싶다면, 밝게 생각하고 밝게 행하시오.”
잠깐의 침묵 후 짤막한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그것이 어둠 속에서도 살아남는 법이오.”
축사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뭔가 오묘한 듯 현기가 스며들어 있다면 더 좋고, 그 말을 한 사람이 소림사의 방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다시 한번 환호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그 광경에 문득 궁금해졌다. 이 자리에 운집한 수만 명의 사람 중에 과연 몇 명이나 방금 저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을지.
아마 십분 지 일, 아니 백 분지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굉도의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암천.’
열화동에서의 수련은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것을 합친 것 이상으로 혹독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재촉하는 적천강의 모습은 조급하다 못해 초조해 보일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노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적천강이 고심 끝에 꺼낸 이야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제야 그의 조바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암천, 아직 실체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강대한 적.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늘 수련하고 대비하여라. 그것만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나는 굉도의 오른편에 서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확연히 차이나는 작은 체구였으나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던 노인, 적천강이 용케 나를 발견하고 씩 웃는다.
그의 모습은 일 년 전보다 확연히 늙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리던 그때였다.
– 우승 못 하면 죽는 줄 알아라.
“…….”
– 특히 팽 씨 성을 쓰는 놈을 만나면 무조건 족쳐. 부러트리고 찢어!
울렁거리던 가슴에 싸늘한 바람이 스쳤다.
화왕의 멀미약 전음 한 방에 완쾌한 나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막상 직접 어마어마한 숫자의 무인들을 확인하자 우승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대답하지 말자. 괜히 확답했다가 지면 더 갈굼 받는다.’
어쨌건 일종의 개회사가 끝났으니 예선이 진행될 터.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꽉꽉 들어찬 무인들을 헤치며 뒤로 가던 나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어?”
저 녀석 이름이 뭐더라?
아, 그래. 운남의 종리추라고 했다. 상승검이라는 자작 별호까지 가진 놈.
웬 깡촌에서 여기까지 왔나 했더니, 역시 성라대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저 정도 실력이면 꽤 올라가겠지.’
알은척할까 하다가 귀찮아질 것 같아 접었다.
대신 멀뚱멀뚱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녀석에게 들리지 않는 인사를 건넸다.
‘그래, 너도 힘내라.’
가급적이면 날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 * *
“나는 비무가 좋아.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 무승부가 없거든. 이 얼마나 명쾌하냐 이 말이야.”
중년인은 느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코에는 서역에서 들여온 안경이라는 물건이 걸쳐져 있었는데, 사물을 몇 배나 크게 보여 주는 신묘한 기능답게 가격도 매우 비쌌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도나도 돈을 거는 거지. 결과가 확실하니까.”
성라대연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도박이다.
수만 명의 지원자 중 수준 이하를 걸러내는 예선부터 시작해서 결승까지 치러지는 수백 회 이상의 비무.
때문에 성라대연은 천하 무림인의 연회인 동시에, 천하 도박계의 최고 대목이기도 했다.
“그래서, 누구한테 얼마 거시렵니까?”
중년인의 앞에 있던 대머리 사내가 물었다. 척 봐도 암흑가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으나 태도는 정중했다.
“성질 급한 건 여전하군.”
“밀린 손님이 많아서 말입니다.”
“알겠네. 그럼 어디 보자…….”
잠시 뜸을 들이던 중년인이 품에서 전낭 하나를 꺼내어 툭 던졌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전낭 입구가 열리자 탁자 위로 번쩍이는 은원보가 와르르 쏟아졌다.
“장강수로맹의 철수신룡(鐵水神龍)에게 은자 천 냥.”
“……!”
실로 엄청난 거액이다.
더군다나 아직 예선도 시작하지 않은 시점.
과연, 눈앞의 중년인은 배포부터가 달랐다.
은원보를 바라보는 대머리 사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철수신룡의 우승에 거시는 겁니까?”
“천만에. 철수신룡이 십봉룡 중 하나이긴 하지만 아직 그 정도 깜냥은 못 돼. 그 사부인 해상왕(海上王)이라면 모를까.”
“하면……?”
“이번 예선을 수석으로 통과한다는 것에 걸겠네.”
“으음.”
대머리 사내는 침음성을 흘렸다.
성라대연의 예선은 소위 ‘거름망’이라 불린다. 지원자가 워낙 많아 수준 이하를 골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지원자를 심사하는 만큼, 당연히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단계다.
물론 그만큼 배당률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앞서 하신 말씀과는 다르군요.”
“뭐가 말인가?”
“비무가 좋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승자와 패자뿐이니 결과가 명쾌하다고요.”
“역시 자네는 도박하면 안 되겠군.”
껄껄 웃은 중년인이 말을 이었다.
“그런 건 삼류 도박꾼들이나 하는 짓이야. 모 아니면 도. 어차피 둘 중 하나가 승리하는 판이니 벌 수 있는 재물도 정해져 있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도곤(賭昆)이시죠.”
“그래서 내가 비무를 좋아하는 걸세. 사람들은 쉬운 길로 가려고 하지, 어려운 길로 가고 싶어 하진 않거든.”
“아.”
도박꾼 중의 도박꾼. 절정의 경지에 이른 도박꾼을 바로 도곤이라고 부른다.
눈앞의 중년인은 이미 치밀한 조사와 계산 끝에 도출한 결과를 갖고 왔다.
대머리 사내는 존경을 담아 허리를 숙였다.
“많이 배웠습니다. 곽 대협.”
“배웠으면 수업료를 내야지.”
“뭘 원하십니까?”
“입만 다물고 있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물론입니다.”
“그럼 됐어. 보자…… 슬슬 예선이 시작됐겠군. 술 한잔하고 돈 받으러 오겠네.”
당연히 자신의 예측대로 들어맞을 것이라는 저 자신감.
과연 도곤이다.
안경을 추켜올린 중년인이 자리를 떠났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칼잡이 하나가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로 슬쩍 물었다.
“두목. 저 사람 누굽니까?”
“저 양반? 도곤.”
“헉, 도곤!”
“그것도 천하에서 손꼽히는 도곤이지.”
“그, 그 정돕니까?”
“전설적인 도곤이 딱 셋 있다.”
대머리 사내가 손가락 세 개를 쫙 폈다.
“사천에 아귀. 광동에 짝귀. 그리고 마지막.”
마지막 손가락 하나가 접혔다.
“대륙적으로다가 저 양반. 곽철융이다.”
“곽철융……!”
“그러니까 가서 철수신룡이나 지켜봐. 생각해 보니까 신참 새끼가 건방지게.”
빡!
대머리 사내가 칼잡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잠시 후, 그는 다음 손님을 맞이했다. 코까지 복면을 올려 쓴 다소 괴상한 손님이었다.
“어디에 거시겠소?”
“이거, 비밀 보장되는 거요?”
복면을 쓴 사내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꼭 틈만 나면 맞고 다니는 사람처럼 움찔거리는 것이, 척 봐도 삼류 무사 티가 줄줄 났다.
‘어디서 처맞았는지 눈가가 푸르뎅뎅하군. 뭐, 나야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대머리 사내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호구를 보면 저절로 나오는 그만의 영업용 미소였다.
“물론이오. 말씀하시구려.”
복면 사내가 눈치를 살피며 전낭을 꺼냈다.
“산서잠룡 진태경이 예선을 수석 통과한다는 것에 은자 백 냥.”
* * *
“거기부터 여기까지. 나를 따라오시오.”
성라대연의 예선은 참가자 수가 워낙 많으니 감독관만 수백 명에 시험장도 나뉘어 있다.
백여 명의 지원자들은 담당 감독관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진짜 많네.’
많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기까지 했다.
홀쭉이, 뚱뚱이, 솜털 보송한 애송이와 산전수전 다 겪어본 듯한 낭인. 눈길을 잡아끄는 여인도 있고 매끈한 미남도 있었다.
그야말로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중에서도 딱 봐도 상남자로 보이는 거한이 유독 눈에 띄었다. 얼추 눈높이를 보니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큰 것 같다.
‘시바, 여기가 대륙이냐 노르웨이냐.’
2m가 넘는 키, 근육으로 터질 것같이 부풀어 오른 팔뚝에는 작살에 꿰뚫린 연어 한 마리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생김새도 묘하게 서구적인 것이 진짜 노르웨이 사람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힐끔 곁눈질하다가 그만 시선이 딱 마주쳤다.
“…….”
“…….”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
이게 아닌데. 뭐였더라?
초등학교 시절, 시뻘건 펜 학습지를 마지막으로 영어에서 손 뗐으니 떨려서 말도 잘 안 나온다.
“아! 웨어 아 유 프롬?”
노르웨이가 대답했다.
“시발놈아. 뭐 하냐?”
“아, 미안합니다.”
“너 이 새끼, 지금 나한테 시비 건 거지?”
호쾌한 쌍욕과 사람들의 시선이 우수수 날아와 꽂힌다.
뭐라 대답하려던 찰나, 감독관이 엄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문제 일으키면 강제 탈락이오!”
연어처럼 입을 벙긋거리던 노르웨이가 나를 노려봤다.
작살의 날처럼 거친 기세와 살기가 실린 한 줄기 전음은 덤이다.
–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살벌한 것 보소. 바이킹족의 후예답다.
‘근데 뭐. 내가 잘못한 건 맞으니까.’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세찬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꽤 강하네.’
나이도 이십 대로 보이던데, 처음부터 상당한 강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콩닥거렸다.
‘역시 세상은 넓구나.’
예선부터 이 정도라면 본선에는 진짜 괴물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적천강의 경고를 생각하며 결의를 다졌다.
* * *
“처음 심사할 것은 권각(拳脚)이오.”
감독관을 따라 이동한 곳은 어느 이름 모를 절벽이었다.
여기서 어떤 방식으로 심사를 치르게 될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먼저 심사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뻑! 우두둑!
“크악!”
팔목이 꺾인 얼뜨기 무인 하나가 땅을 뒹굴었다. 감독관이 한숨을 내쉬며 대나무 표 하나를 부러트렸다.
“호접문의 장유, 탈락. 다음!”
그러자 다음 차례의 무인이 나와서 절벽에 일 권을 날렸다.
쿵!
그나마 이번 무인은 일류 정도의 실력이다. 그래도 공력을 실어 때릴 줄은 알았다.
암석과 흙이 절반쯤 뒤섞여 단단히 뭉쳐져 있는 절벽에 뚜렷한 자국이 새겨졌다.
그 깊이와 폭을 잰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당문의 고불, 합격. 다음!”
합격한 자는 옆으로 빠지고, 권흔이 약하거나 주먹질 한 번에 아파하는 삼류 무인들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대충 봤으니 아시겠지만 이런 방식입니다. 그럼 우리도 시작합시다. 자, 그럼 어디 보자…….”
감독관이 대나무 표 하나를 쑥 뽑아 들었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이름.
“태원진가의 진태경.”
나를 향해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과 함께 시스템 알림이 울려 퍼졌다.
띠링.
– 퀘스트, [성라대연]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