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74
#273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조폭 두목이 된 기분이다. 걸을 때마다 구십 도로 허리를 굽히며 사방에서 인사를 하는 신입 길드원들 때문에.
상대는 이제 막 훈련소를 수료한 햇병아리들. 연차로 따지면 내가 한참 선배이긴 하다.
‘이 바닥이 선후배를 좀 엄격히 따지긴 하지.’
문제는 신입 길드원 중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늦깎이 헌터들도 있다는 거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서른 중반은 넘어 보이는 신입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허리를 숙였다.
눈빛보다 더 번쩍거리는 정수리를 보자 마음이 아려 온다.
“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메아리야, 뭐야.
그리고 너희들한테 말한 거 아니다. 이 풍성충들아.
내심 혀를 차며 신입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청년에 이르러서 시선이 멈췄다.
‘쟤는 좀 하겠는데?’
이번에 들어온 신입 중 가장 낫다. 느껴지는 기운도 그렇고, 동작 하나하나가 무인처럼 절제되어 있다.
내 시선을 느낀 청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확실히 다르다. 다른 신입들처럼 긴장하지도, 굽실거리지도 않는다.
내 경험상 이런 녀석들은 딱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그냥 쥐뿔도 없는데 자존심이 강하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은 후자다.
“거기 계신 분, 혹시 성함이?”
“김진수라고 합니다. 훈련소 B급 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했습니다. 이번 레이드에서 맨 처음 골렘의 핵을 파괴한 사람도 저고요.”
“그래요?”
“네. A급 게이트는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놈일세.
자기 얼굴에 금칠하면서도 거리낌이 없다. 어딜 가도 제 밥그릇 하나는 잘 챙길 스타일이다.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김진수가 넉살 좋게 웃었다.
“그리고 말씀 편히 하셔도 됩니다. 선배님.”
“초면이니까. 편해지면 말 놓을게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니 오늘처럼 크게 인사하는 건 생략했으면 좋겠네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
귓등으로도 안 듣는구나.
쩌렁쩌렁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복도 끝에 있는 사무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빳빳한 흰색 와이셔츠에 잘 다림질된 검은 슬랙스. 저런 복장으로 출근하는 헌터는 우리 길드에 딱 한 사람밖에 없다.
“아침부터 활기차네요.”
“너무 활기차서 문제죠.”
CF 속 한 장면처럼 커피잔을 든 최 팀장이 사무실 안을 턱짓했다.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가라앉힙시다. 들어오세요.”
* * *
사무실 안은 넓고 쾌적했다. 최 팀장의 취향에 맞게 꾸며진 탓인지 곳곳에 명품 가구가 즐비했고, 책상 위에는 은색 명패가 놓여 있었다.
‘명패까지 비싸 보이네.’
길드 하우스 이전과 신입 길드원 영입으로 돈이 엄청나게 들었을 텐데, 원명훈이 길드장으로 있던 스타 길드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의 합의금을 받아 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명패를 구경하는데, 블랙커피가 담긴 잔이 불쑥 내밀어졌다.
최 팀장이 내 시선이 향해 있는 곳을 보더니 물었다.
“하나 만들어 드려요? 명패.”
“괜찮습니다. 딱히 직책도 없는데요, 뭘.”
“직책이야 만들면 되죠. 총괄팀장. 본부장. 뭐든 말씀해 보세요.”
“뭐든지?”
“네.”
“그럼 소소하게 길드장으로.”
“…….”
“농담입니다. 제가 길드장 하면 길드 망해요.”
그리고 어차피 해 봤자 얼굴마담, 바지사장일 게 뻔한데 뭘.
나는 커피잔을 받아 들고 소파에 앉았다. 유리 테이블 위에는 20여 부가 넘는 신문들이 쌓여 있었다.
국내 주요 일간지부터 당최 알아볼 수 없는 글자로 가득한 해외 신문까지. 보기만 해도 눈알이 팽팽 돌아가는 기분이다.
“설마 이걸 다 보시는 겁니까?”
“해외 흐름도 파악하고 업계 정보도 수집할 겸 해서요. 별거 아닙니다. 5개 국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볼 수 있어요.”
“…….”
그 정도면 매우 별거인데. 5개 국어라니, 이 인간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나는 혀를 내두르며 펼쳐져 있는 신문 중 하나를 곁눈질했다.
30대로 보이는 남자의 선명한 컬러 사진과 함께 굵게 칠해진 폰트가 눈에 들어온다.
– 故정현우 헌터(사진 첨부)
– 계속되는 사고. A급 헌터도 피해 갈 수 없는 죽음의 공간, 게이트.
– 명동 길드, 뜻하지 않은 고인의 죽음에 유감…….
그새 또 사고가 일어난 모양이다.
‘명동 길드면 지훈이네 길드인데.’
좀 더 자세히 보려던 그때, 우아하게 커피잔을 기울인 최 팀장이 말을 이었다.
“평화 길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커질 겁니다. 이미 B급 헌터 스무 명에 C급 이하 서른 명을 충원했으니까요. 이 정도면 이미 고일 대로 고여 버린 국내 시장에서도 유례없는 성장세죠.”
그의 말마따나 평화 길드의 성장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길드 창설 후 고작 4개월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이 기세만 유지한다면 중견 길드라고 불러도 부족하지 않다.
‘물론 중견 길드에 비교하면 아직 소속 헌터 숫자가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건 아직 뽑지 않아서지, 못 뽑아서가 아니다.
당장 길드 홈페이지가 트래픽 초과로 다운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입사 관련 문의가 빗발친다고 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제가 큰 역할을 했고요. 일등 공신.”
“사실이죠.”
최 팀장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이긴 한데, 보너스는 안 드립니다.”
“……눈치 빠르시네.”
혹시 싶어서 살짝 찔러 봤는데 역시 씨알도 안 먹혔다.
말없이 입맛을 다시는 나를 보며 최 팀장이 빙긋 웃었다.
“하지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탁이 뭔데요?”
“신입 길드원들을 잠시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신입들이요?”
“예. 고르고 골라서 뽑긴 했는데, 다들 재능은 있지만 아무래도 아직 어설픈 면이 많아서 말입니다.”
“당연하죠. 초짜니까.”
아무리 훈련소를 거친다고 해도 실전의 분위기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막 수료식을 끝낸 상위 헌터보다 10년 짬밥 먹은 하위 헌터가 더 낫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걸 저한테…… 다른 분들도 계시잖아요.”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김 집사님과 송이 씨에게 말해 뒀습니다. 돌아가면서 가르치자고요.”
“뭐래요?”
“수락하시던데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아주 흔쾌히.”
“……꺽정 아저씨는요?”
“아직 말씀 못 드렸습니다.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 연락도 안 받으시네요.”
힐끗 시간을 확인한 최 팀장이 재차 말을 이었다.
“좋지 않겠습니까. 신입 길드원들도 진태경 씨가 지도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많은 선택지 중에 우리 길드에 지원한 이유도 대부분 진태경 씨 때문이고요.”
“그, 비행기 태워 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지금 무림에서는 암천이 마수를 드러냈고 적천강은 의식불명 상태다.
현대에서 30일을 보낸다 해도 무림에서 흐르는 시간은 고작 세 시간. 시간적인 여유는 있지만, A급 게이트를 돌아도 모자랄 판에 햇병아리들 가르치는 건 딱히 메리트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게 백 배는 낫지.
“저는 빼 주세요. 길드 입장에서도 제가 그 친구들 가르치는 것보다 A급 게이트 하나 더 깨는 게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효율적이라…….”
“네, 효율.”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최 팀장의 입가에 불길한 웃음이 맺혔다.
“우리 신입 길드원들, 잘 부탁드립니다.”
“예?”
“A급 게이트. 예약이 전부 다 꽉 찼습니다. 최소한 앞으로 1주일 동안은 어림도 없어요.”
“거짓말하지 마! 이 사기꾼!”
“정 못 믿으시겠으면 직접 보시든가요.”
나는 최 팀장이 내민 종이를 확 낚아챘다. 종이에는 전국의 A급 게이트 예약 현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빌어먹을, 진짜네.
“이번 달 성과급 200% 드리죠. 레이드도 뛰고, 후배들도 가르치고. 훈훈하네요.”
“…….”
“아니면 집에서 노시든가요.”
최 팀장의 입꼬리가 밉살맞게 올라간다.
‘안 해!’라고 외치려던 그 순간,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띠링.
– 퀘스트, [안 해! 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다.]가 생성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 / N
“어쩌시렵니까?”
“…….”
“승낙하신 것으로 알고 신입들 준비시키겠습니다. B급 게이트 몇 군데 잡아 놨거든요.”
띠링.
– 당신은 암묵적으로 동의했습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이런 시벌.
* * *
– 크르르르.
몬스터의 거친 숨결이 사방에서 조여 온다. 스무 쌍의 불안한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후욱, 후욱.
호흡이 가빠지고 방패며 무기를 움켜쥔 손은 하얗게 질렸다.
나는 까마득히 높이 솟은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그 광경을 지켜봤다.
표정은 없어도 머릿속은 심각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녁 뭐 먹지.’
갈비를 먹을까, 아니면 오랜만에 오리 백숙을 먹을까.
둘 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막아!”
“딜러 뭐 해. 딜러!”
찢어지는 비명에 문득 바라보니 난장판이다.
십여 마리의 라이칸스로프들이 달려들어 방패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탱커들이 주르륵 밀려 나간다.
‘몬스터를 힘으로 상대하려고 하니까 밀리지.’
물론 탱커만의 잘못은 아니다. 딜러들도 당황한 나머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적절할 때 견제 공격이 들어오면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레이드 시작 전 몇 번이나 주의하라고 했건만, 역시 똑같다.
‘저거 곧 뚫리겠는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비명과 함께 방패 벽이 허물어졌다.
순간 뚫려 버린 공간. 가장 날렵해 보이는 라이칸스로프 한 마리가 특유의 괴성과 함께 난입했다.
샛노란 맹수의 눈이 방패 벽 뒤에 숨어 있던 힐러들을 향한다.
– 크아아아앙!
– 아우우우우!
나한테는 개 짖는 소리로밖에 안 들리지만, 이제 막 두 번째 레이드를 시작한 초짜 헌터들은 잔뜩 겁에 질렸다.
“꺄아아악!”
“으아아악!”
마법사와 힐러가 내지른 비명이 어둠에 잠긴 숲을 뒤흔들었다.
안 그래도 시끄러운데 저 소리 듣고 스무 마리는 더 몰려오겠군. 나는 비명을 지른 두 사람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앞으로 저놈들 별명은 피리 부는 사나이다.
“선배님! 진태경 선배님!”
“도와주세요! 선배님!”
둥그런 얼굴 몇 개가 이쪽을 올려다보며 절박하게 외쳤다.
이미 일선은 무너졌고, 신입들의 등 뒤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 하나뿐이다.
라이칸스로프들이 득의양양한 기세로 포위망을 좁혀갔다.
‘어떻게 된 게 몬스터들이 더 진형을 잘 짜냐.’
나는 눈곱을 떼어 내며 대답했다.
“말했잖아요. 내가 도와주면 실력이 안 늘어요.”
“안 늘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그거 알아요? 도움받는 거 버릇되면 레이드 때 똥 싸는 것도 버릇 든다?”
“그래도 이대로 죽기 싫습니다!”
“그치만…… 사람은 누구나 죽기 싫어하는걸?”
“제발 도와주십쇼!”
“포기하지 말고 더 싸워 봐요. 화이팅!”
“살려 주십쇼!”
“그나저나 오늘 저녁 갈비랑 오리 백숙 중에 뭐 먹을까요?”
“야, 이 개새끼야!”
아침에 마주쳤던 탈모 신입이다. 정수리만큼이나 반짝거리던 선망에 찬 눈빛은 어디 가고, 그의 시선에는 빡침이 가득했다.
“내려와! 이 어린노무 새끼가……”
퍽!
어디선가 날아온 탱커와 함께 탈모 신입이 저 멀리 튕겨 나간다.
승기는 이미 몬스터 쪽으로 넘어온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슬슬 나서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였다.
서걱!
– 카우우우…….
섬광과 함께 라이칸스로프 하나가 신음을 흘렸다. 쩍 벌어진 목에서 피가 펑펑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풀썩 쓰러진다.
정확하고, 강력한 일격을 적중시킨 청년이 힘차게 외쳤다.
“삼 번 포메이션!”
커다란 외침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린다.
이윽고 대형을 갖춘 스무 명의 헌터들이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청년, 김진수가 있었다.
“더 밀어붙여! 궁수 스킬 준비!”
저 녀석은 쓸 만한데?
피식 웃은 나는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전투 소리를 듣고 몰려온 수십 마리의 라이칸스로프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쐐애애애액!
* * *
“잘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김진수가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등 뒤로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저 중에 두 명은 피리 부는 사나이들고, 나머지 하나는 탈모 신입이다.
탈모 신입은 특별히 엎드려 뻗쳐를 시켜 주었다.
그나마 있는 거라도 지켜 줘야지…….
“다음에도 지금처럼 해요. 금방 늘겠네.”
“예.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진수 씨도 쉬러 가 봐요. 어차피 두 시간 후에 레이드 한 번 더 있으니까.”
최 팀장, 아주 작정했다. 하루 레이드를 세 개나 잡아 버리다니.
내심 이를 갈고 있던 그때, 주머니에 넣어 뒀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명품충]뭐지, 텔레파시라도 통했나?
황당해하며 전화를 받자마자 최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 태경 씨. 지금 당장 일산 병원으로 오세요!
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