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87
#286화
그날 새벽, 헌터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기 포럼 사이트에 짤막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형들 나 이상한 꿈 꿨는데 해몽 좀;
정확한 건 밝힐 수 없는데 나름 방귀 좀 뀌는 대형 길드 보안팀 소속임. 암튼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평소처럼 근무하던 중에 깜빡 졸았거든? 근데 꿈에 시벌좌가 나온 거야.
이상한 놈이 자꾸 얼쩡거린다길래 사수(매국노 새끼임. 내 생각에 얘 본명 야마모토 같은데 숨기고 있음.)랑 같이 잡으러 갔는데, 그게 바로 시벌좌였던 거.
그런데 딱 여기까지만 또렷하게 기억나. 그 후에는 사수가 유도리 하고, 내가 이랏샤이마세 하는 걸로 끝남.
(Best 댓글) 해몽 전에 이 글 해석해 줄 사람 있냐. 이 새1끼 도대체 뭔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네.
└ 222
└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유도리하고 이랏샤이마세는 뭐냐; 맥락을 파악할 수가 없다.
└ 사수는 왜 매국노임? 유키늘로에서 히트텍 삼?
└ (작성자) 킹시국에 자꾸 일본어 쓰니까 그렇지. 평소에도 유도리, 겐세이. 뭐 그런 단어 많이 씀.
└ 넌 이랏샤이마세 했다며.
└ (작성자) 응.
└ 미친놈이네. 응 ㅇㅈㄹㅋㅋㅋ
└ 고문관 냄새 진동한다. 사수 개불쌍.
└ (작성자) 근데 사수한테 이 꿈 내용 말했더니 자기도 비슷한 꿈 꿨다더라고. 시벌좌가 우리 길드원들 백 명 뚜까패고 아레스 부길마랑 맞짱 떴대.
└ 작성자 새끼 뚜까패고 싶네.
└ (작성자) 진짜라니까;;; 그러더니 자기 폰 없어졌다고 나한테 지랄함;; 최신형 어른폰이라 없어져서 빡친 듯.
안녕하세요. 현직 무당입니다. 글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서 그러는데,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작성자) 헉, 정말 무당이신가요?
└ 아뇨. 구란데요.
└ (작성자) 헉. 미친 새끼신가요?
게시글은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삭제되었다.
해당 글을 본 사람들은 관심 병자 하나가 사라진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아레스 길드가 개입했음을 의심하는 사람 또한 없었다.
아, 물론 나는 제외다.
‘정신계 마법으로 기억을 조작했겠지.’
명백한 범법 행위지만, 블랙 헌터도 양성하는 놈들이 그걸 따지는 게 더 우습다.
댓글 내용 중에 어른폰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보면 꼼꼼하게 핸드폰까지 일일이 확인한 모양이었다.
‘결정적인 증거였는데.’
내 전용 카메라맨은 박태섭과 박지훈이 등장하기 무섭게 밖으로 튀었고, 그대로 아레스 길드의 수중에 떨어졌다.
뭐,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어차피 빌딩을 나오면서 몸수색을 받았기 때문이다. 놈들은 내 공유 클라우드 폴더까지 확인한 후 돌려주었다.
거기에 한 마디 경고를 덧붙이는 섬세함도 잊지 않았다.
‘혹시나 숨기고 있는 게 있으면 지금이라도 삭제하십시오. 감추고 있다가 걸리면 재미없을 겁니다.’
안 그래도 핸드폰에 넣어 둔 야동이 걸리는 바람에 마음이 영 언짢았는데, 말하는 놈의 말투가 보통 띠꺼운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 같은 상황만 아니었어도 한 방 먹여 줬을 것이다.
‘면상 똑똑히 기억해 뒀다. 이 깍두기같이 생긴 새끼야.’
각진 얼굴에 스포츠머리를 한 놈이었다. 일의 뒤처리를 맡은 데다 다른 놈들이 팀장님, 팀장님 하는 것을 보니 이정룡의 오른팔쯤 되는 놈인 모양이다.
[기감]으로 확인한 이름은 석고준. 사실 이름까지 알아낸 이유에는 놈의 실력도 한몫했다.‘그 자식도 무공 비스무리한 걸 익힌 것 같던데.’
한 번 눈에 의심이 깃들자, 전보다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었다.
이정룡이 남기고 간 아레스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혼자서도 평범한 A급 헌터 두 명은 찜 쪄 먹는 실력자들.
그중에서도 석고준에게서 받은 느낌은…… 솔직히 말해서 내심 놀랄 정도였다.
놈의 띠꺼운 말투는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어떻게 이런 놈들을 길러 냈지?’
혹시 진짜 무공? 아니면 아레스 길드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해 낸 무술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였다.
“이 선생님. 임혁준 환자 의식 돌아왔습니다!”
문밖, 복도에서 들려온 간호사의 외침에 벌떡 일어났다.
임혁준. 거의 불리지 않는 임꺽정의 본명이다. 그가 장장 사흘 만에 의식을 회복한 것이다.
* * *
“여보! 준이 아빠!”
“아빠아!”
당장이라도 병실 문을 열어젖히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지금은 가족들의 시간이다.
사흘 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던 남편, 아버지를 만난 아내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병실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바탕 통곡의 파도가 휩쓸고 한참 후에야 우리 차례가 왔다.
“어, 다들 왔어?”
젠장. 첫마디부터 목이 꽉 막힌다.
임꺽정은 환한 웃음과 함께 두 팔을 벌리다가 코를 찡그렸다.
“윽.”
“팔, 팔 조심하세요. 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움직일 때 조금 쑤시네.”
“떨어진 팔을 도로 붙였는데 바로 괜찮아지면 그게 사람이에요? 변신 로봇이지.”
송송이가 핀잔을 주며 치료 주문을 외웠다. 통증이 훨씬 가라앉았는지 임꺽정의 안색이 한결 편안해진다.
“고마워, 송 양.”
“고마우면 제발 조심하세요. 치료사 말 못 들었어요? 최소 2주 정도는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고요.”
“그런 말도 고맙고.”
“아저씨!”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산적처럼 껄껄 웃는 저 모습이 이렇게도 반가울 줄이야.
전처럼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 임꺽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김 형, 아니 길드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 쓰러져 있는 동안 많이 신경 써 주셨다고 애들 엄마한테 들었어요.”
김 집사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하실 필요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길드 식구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발 벗고 나서야죠.”
“듣자 하니 비용도 많이 쓰셨다고…….”
임꺽정의 치료에는 유명한 힐러가 초빙되었고 한 병에 억대는 우습게 호가하는 상급 포션이 아낌없이 쏟아 부어졌다.
예전에도 그랬다지만, 사람 목숨도 값을 매기는 세상이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경력밖에 없는 D급 헌터에게 누가 이렇게 해 주겠는가.
축축하게 젖은 임꺽정의 목소리에 김 집사가 낮게 웃었다.
“굳이 감사 인사를 하셔야겠다면 전주(錢主)에게 하시죠. 얼굴마담인 저는 빠지겠습니다.”
그 말에 임꺽정의 시선이 전주를 향해 스르륵 움직였다.
“최 팀장.”
열양지기라도 담겼는지 목소리가 후끈후끈하다. 최 팀장은 그가 뭐라고 말을 잇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 버렸다.
“임꺽정 씨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길드가 얕보여서 당한 겁니다. 이런 불상사를 막지 못한 제 잘못이고 불찰이니 오히려 죄송해야 할 사람은 바로 접니다.”
“최 팀자아앙!”
단지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흉악범을 모범수로 둔갑시키는 임꺽정의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가 팔을 뻗어 껴안으려 하자 최 팀장이 흠칫 놀라며 물러났다.
“파, 팔 조심하셔야죠.”
“이 정도는 괜찮아. 한 번만 안아 보고 싶어서 그래.”
“……그런 영광스러운 기회는 마지막 한 사람한테 넘기고 싶네요.”
그다지 영광스러운 기회는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결국 내 차례가 돌아왔다.
“…….”
“…….”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임꺽정이 깨어난다면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막상 깨어난 그를 마주하자 조개처럼 입이 꾹 다물어진다.
먼저 침묵을 깨트린 것은 임꺽정이었다.
“어때?”
“네?”
“우리 와이프랑 애들. 예쁘지?”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온 가족 자랑에 나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네. 그러네요.”
“너희 형수가 좀 미인이어야지.”
“인정합니다. 혹시 감금이나 협박했어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명심해. 나는 마흔일곱 번째에 성공했어.”
“방금은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면서요.”
임꺽정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있긴 있더라고. 열 번으로는 택도 없는 나무가.”
“불구속 입건 되지 않은 게 용하네요.”
“자식아, 그때 포기했으면 저런 미인을 얻었겠냐?”
얼굴이 퉁퉁 부은 임꺽정의 아내가 얼굴을 가리며 손사래 친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 둘은 언제 울었냐는 듯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아빠. 누구예요?”
“누구야? 누구야!”
임꺽정이 엉겨 붙는 아이들을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삼촌이야. 태경이 삼촌.”
“태경이 삼촌?”
“응, 아빠가 말한 적 있었지? 잘생기고 힘센 삼촌 있다고.”
가족들에게 내 이야기를 했었구나.
가슴 한구석으로부터 따뜻한 온기가 번져 나간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한층 더 빛났다.
원래 어린애들이야 예쁘고 귀엽다지만 이 자매는 아역 배우를 해도 되겠다. 이게 바로 모계 유전자의 승리구나.
“와아! 아저씨가 태경이 삼촌이에요?”
“만나서 방갑슴미다!”
절로 흐뭇한 웃음이 지어진다.
나는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임꺽정에게 말했다.
“애들이 귀엽네요. 천진난만하고.”
“그걸 말이라고. 너도 결혼하고 딸 낳아 봐라. 왜 딸바보, 딸바보 하는지 알게 될 테니까.”
나도 고등학생 때 별명이 딸바보였다. 물론 딸은 없었지만.
어쨌건 이 화목한 네 가족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뭉클해진다.
임꺽정이 아직 뻣뻣한 움직임으로 팔을 들어 나를 껴안았다.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약해진 힘이 실린 손바닥이 내 등을 두드린다.
툭. 툭.
“고맙다. 항상 고마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줄곧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한 가지 결심을 굳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돼.’
마음속으로 뇌까리며 힘주어 임꺽정을 안았다.
오늘은 한 남자가 가족과 친구들의 곁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 * *
한 시간 후, 병실에는 나와 임꺽정을 포함한 평화 길드원 다섯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임꺽정의 아내는 남편이 안정을 취하길 바랐지만, 임꺽정의 의지는 확고했다.
“사랑하는 와이프랑 애들을 두고 갈 뻔했어. 지금 당장 들어야겠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늘 물렁하고 웃음 많은 호인이었던 임꺽정에게 굳은 의지와 단단한 심지가 생겼다.
마침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임꺽정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레스 길드였다고?”
“예.”
“네가 말한 이정룡이 정말 그 이정룡이 맞고?”
“확실해요.”
“……허.”
신음 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블랙 헌터라는 꼬리를 밟으니 명동 길드가 나왔고, 명동 길드라는 몸통을 밟으니 아레스 길드라는 머리가 나왔다.
문제는 그 머리가 보통 머리가 아니라는 거다.
“뱀 꼬리를 따라갔더니 용 대가리가 나왔네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최 팀장과 김 집사를 바라봤다. 둘 다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차분한 표정.
그러나 나는 분명히 목격했다.
임꺽정이 의식을 회복하기 전, 처음 아레스 길드의 이름을 꺼냈을 때 저 두 사람의 눈동자에서 격랑이 일었던 것을.
‘분명히 뭔가 있는데…….’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이상함을 느낀 나와 송송이가 집요하게 캐물었지만, 임꺽정이 깨어난 후에 말해 준다는 짤막한 대답 후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할 때가 됐지.’
나와 송송이의 눈빛을 느낀 걸까. 최 팀장이 입을 열려던 그 순간이었다.
뚜벅. 뚜벅.
병원 복도에서 뒤섞이는 온갖 소음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은 달랐다. 유난히 무겁고, 울림이 깊었다.
그리고 기(氣)가 있었다.
“옵니다.”
내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발걸음은 우리가 있는 병실 앞에서 멈췄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불과 한나절 전에 봤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석고준?’
잠깐. 저놈이 여기 왔다는 건 설마…….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석고준의 얼굴이 사라지고 한 사람이 병실 안으로 성큼 발을 내디뎠다.
칠순이 되어가는 나이임에도 40대로 보일 만큼 젊은 외모. 지도자의 카리스마와 자연스러운 위압감.
‘이정룡.’
우리를 스쳐 지나간 그의 시선이 이내 한 사람에게서 우뚝 멈춘다. 입꼬리가 슬쩍, 위로 솟구쳤다.
“많이 컸구나.”
이정룡을 바라보는 최 팀장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