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90
#289화
“네?”
최 팀장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크고 격렬한 동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나마 침착해 보이는 김 집사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분함와 얼떨떨함. 그리고 내 말에 대한 의문.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나.’
내가 앞뒤 가리지 않고 앞서나갈 때, 언제나 침착하게 두 걸음 물러서서 사태를 수습하던 두 사람이었다.
이제야 그나마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나는 묘한 감흥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답은 간단해요. 적들이 강하다면 우리도 강해지면 됩니다.”
“진태경 씨.”
최 팀장의 목소리는 조용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처음의 감정을 수습한 그는 다시 침착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건 답을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수학 문제가 아닙니다. 정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해요.”
“그럼 괜찮네요. 내가 과외 선생 역할로 붙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풀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아, 대신 과목은 바꿉시다. 수학은 젬병이라서.”
“잊으셨습니까? 상대는 아레스 길드예요. 진태경 씨는 모르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
“안타깝지만 도련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최 팀장과 김 집사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은 아레스 길드장 천태민의 외손자, 다른 한 사람은 그 천태민을 오랫동안 모신 핵심 인물이다.
그들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직접 보고, 겪은 일들이 많을 것이다. 끓어오르는 가슴과는 달리 냉철한 두뇌는 이미 답을 계산해 냈다. 하지만…….
“최 팀장님.”
이미 마침표가 찍혀 있는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명동 길드로 가기 전 나한테 했던 말, 기억납니까?”
“물론입니다.”
“그때 뭐라고 했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최 팀장이 입술을 뗐다.
“진태경 씨는 언뜻 보면 무모해 보이지만…….”
“항상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늘 최선의 결과를 갖고 온다.”
“최 팀장님 본인보다 날 더 믿는다면서요? 그거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였습니까?”
“그건 절대 아닙니다.”
“내가 공부는 못했어도, 가능성 제로인 게임에 목숨 걸고 덤벼들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닙니다. 이거, 할 만해요.”
“할 만하다…….”
“최 팀장님 본인을 못 믿겠으면 저를 믿으세요.”
내 말에 실린 진심을 느낀 최 팀장의 눈동자에 빛이 스며든다. 비록 희미했지만, 그 빛의 정체는 희망이었다.
희망은 불씨와 같다. 타오르는 것도, 사그라드는 것도 모두 한순간이다. 불씨가 꺼지기 전에 풀무질을 해 줘야 한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내가 여기서 길드 나가면 최 팀장님도 포기할 겁니까? 뭐, 길드 접고 은퇴해서 김 집사님이랑 농사짓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그렇게 되면 이정룡이 비료도 지원해 주겠네.”
“진태경 헌터님!”
나를 가로막으려는 김 집사를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세계 최고의 길드를 만들고 싶다면서요. 나 내보내고, 꺽정 아저씨랑 송이도 보내고. 새로 받아들인 신입들까지 떠나면 두 분께서 아레스 길드와 싸울 생각입니까?”
“…….”
“최 팀장님.”
묵묵부답.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눈동자에 스며든 불씨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내 그의 입술 사이로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레스 길드는 하나의 제국입니다. 국내 10대 길드가 힘을 합쳐도 당해 내지 못할 만큼 강력한 제국 말입니다.”
“어이구, 그놈들 따라잡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네.”
“아레스 길드의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동시에 가능성이 더 올라갔네요. 적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거니까.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맞죠?”
“몇 번이나 생각해 봤지만 제 계산의 답은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럼 다시 계산해 보세요.”
“정말…… 가능합니까?”
“네.”
“어디에서 제 계산이 틀린 겁니까? 도대체 어떤 것이 진태경 씨의 답에 확신을 갖게 한 겁니까?”
이해하지 못했기에 묻는 것이 아니다. 최 팀장은 누구보다 자신의 답이 틀렸기를 바란다. 이정룡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원한다.
나는 그의 바람에 기꺼이 대답해 주었다.
“지금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
“……!”
“팀장님의 계산 과정은 정확했습니다. 한 가지만 빼면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내 가슴을 가리켰다.
“바로 접니다.”
그 순간, 최 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안에 스며 있던 불씨가 사그라드는 것이 느껴졌다.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희망이 아닌 실망감이었다.
“제 계산에는 진태경 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랬겠죠. 내가 아는 팀장님이라면.”
최 팀장은 명석한 사람이다. 타고난 리더십에 뛰어난 안목과 추진력도 갖췄다.
냉정한 마음으로 평화 길드와 아레스 길드를 한 저울추에 올려놨고, 평화 길드가 가진 무게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진태경 씨가 보여 준 모습은 항상 놀라웠습니다. 아니, 경이로울 정도였어요.”
나는 그의 흐려지는 목소리 뒤에 어떤 말이 따라올지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부족하다?”
최 팀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스 길드에는 S급 헌터인 이정룡을 제외하고도 백 명이 넘는 A급 헌터가 정식으로 소속되어 있습니다. 중, 하급 헌터는 수도 없이 많죠.”
최 팀장이 ‘정식으로’라는 단어에 유난히 힘을 주는 것은 알려지지 않은 전력이 더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A급 헌터만 백 명이 넘는다니.’
이미 예전부터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최 팀장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아레스 길드가 가진 전력이 실감이 갔다.
내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결국 하나의 손에 지나지 않으니 최 팀장의 판단은 냉철했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계산 다시 하셔야겠는데요?”
“네?”
“공식은 맞는데 숫자가 틀렸네. 팀장님께서 나한테 매긴 값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몇 배는 더 잡아야 할 텐데.”
최 팀장은 물론이고 김 집사와 임꺽정, 송송이까지 눈을 부릅떴다.
지금까지 내가 해낸 일들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단신으로 네임드 몬스터를 사냥하고, 서른에 달하는 블랙 헌터를 갈아 버렸으며 명동 길드라는 대형 길드와 정면으로 맞섰다.
나는 석상처럼 굳어 버린 사람들을 뒤로하고 최 팀장을 응시했다.
“누누이 얘기했던 것 같은데요. 나는 팀장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비밀이 많은 놈이라고.”
무림은 무림, 현대는 현대.
내 머릿속에는 두 세계를 구분하는 뚜렷한 경계선이 있었다. 하지만 이정룡이, 아레스 길드가 그 선을 지워 버렸다.
아마 이번 같은 일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 비밀을 평생 홀로 간직했을 것이다.
‘조용히 살고 싶었던 건 너무 큰 욕심이었나?’
어쩌면 이건 내게 주어진 힘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언제까지나 피해 다닐 수는 없다.
적들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
“자,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최 팀장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태경 씨는 항상 저를 놀라게 만드는군요.”
“아껴 둬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더 많을 테니까.”
“위험한 길이 될 겁니다.”
“내가 또 가시밭길 전문이라.”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요.”
“비교가 안 되긴 무슨. 팀장님이 몰라서 그렇지 이쪽은 이미 지옥이야…….”
내 말을 농담으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나는 마침내 피식 웃음을 터트린 최 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팀장님.”
“네?”
“가끔은 솔직해져도 괜찮습니다.”
최 팀장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사라졌다. 눈빛은 가라앉고 입을 꽉 다물린다.
나는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지금부터 해야 하는 말은 최 팀장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 한다.
다행히 기다림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외람된 부탁이지만 계속 평화 길드와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이거지.
나는 씩 웃으며 최 팀장의 어깨를 툭 쳤다. 겉보기에는 똑똑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아직 속이 여리다.
내심 함께하고 싶으면서도 우리가 다칠 것을 우려해 내보내려 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잘해 봅시다.”
“……고맙습니다.”
언뜻 미소를 지어 보인 최 팀장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충복이자 한 핏줄이나 다름없는 사이인 김 집사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제 대답은 이미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집사님.”
다음 차례는 송송이였다. 최 팀장으로부터 나와 같은 질문을 받은 그녀는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아레스 길드라니. 아, 이건 좀 수지타산이 안 맞는데.”
사실 이게 가장 정상적인 반응이다. 아레스 길드랑 대놓고 척을 지겠다는데 환영하는 놈이 있으면 이상하지.
“수지타산에 맞게 연봉 두 배로 책정해 주세요. 생명 수당도.”
“…….”
송송이 얘도 정상은 아니구나.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 뭐?”
“아니, 그냥. 지금 같은 경우에는 보통은 그냥 나가지 않나?”
“나갔으면 좋겠어?”
“어허, 그건 절대 아니지.”
“내가 왜 아레스 길드에서 평화 길드로 옮겼는지 알아? 그것도 사방에서 견제받는 최 팀장님을 따라서.”
“나야 모르지.”
“연봉 두 배로 챙겨 주신댔거든.”
“…….”
“내 목표가 나이 서른에 은퇴하는 거야. 남은 2년 동안 바짝 벌면 평생 풍족하게 살 수 있겠지.”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자신도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빙빙 돌린 것에 불과하다. 알뜰살뜰한 송송이가 이미 한 재산 모아 놨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뭐, 너한테도 계획이 있는 것 같으니까 일단 믿어 보려고. 최 팀장님처럼 능력 좋고 잘생긴 상관 만나기도 힘들고.”
어쨌든 이렇게 송송이의 잔류도 확정되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시선이 마지막 한 명을 향해 움직였다.
“꺽정 아저씨.”
내 부름에도 대답이 없던 그는 한참 만에 입술을 뗐다.
“태경아, 내가 도움이 될까?”
“충분히요.”
“고작 D급 헌터인데도?”
“원래 D에 관련된 사람들이 진짜 주인공입니다. 이참에 이름도 개명하시죠. 임 D. 꺽정 어때요.”
소리 내어 웃던 임꺽정이 최 팀장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다친 거, 최 팀장 잘못 아니야.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아닙니다. 모두 제 잘못이니 우선 회복과 재활에 힘쓰시면서 천천히 생각하십시오. 임 헌터님은 가정이 있지 않습니까.”
“최 팀장.”
“네?”
“처음 팔이 잘렸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렸는지 알아?”
“가족입니까?”
한 여인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다.
하지만 임꺽정은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이제 헌터 일은 못 하겠구나. 그 생각이 들더라고.”
“…….”
“난 이 일이 좋아. 20년 동안이나 게이트를 오간 건 생계 때문이 아니라 헌터로서의 사명감 때문이지. 하지만…….”
임꺽정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시선은 붕대에 감긴 자신의 두 팔에 고정되어 있었다.
“회복,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임꺽정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럼 나도 함께 간다. 고작 이 정도로 헌터가 해야 할 일을 저버릴 수는 없지.”
그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울렁거렸다.
사람들은 그를 허울뿐인 하급 헌터라 취급하지만, 임꺽정야말로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진짜 헌터다.
‘여기에서 멈추기에는 다들 너무 아까운 사람들이야.’
좋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결심을 끝낸 나는 실로 오랜만에 스킬 창을 열었다.
그리고 빼곡하게 적힌 홀로그램 창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킬 : [비급제작]
그래. 이제 시작이다.
나는 굳은 다짐과 함께 홀로그램 창을 터치했다.
삐빅!
– 비급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최소 A4 용지 300매가 필요합니다!
“…….”
뭐여, 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