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92
#291화
“주먹만 한 눈덩이를 언덕에서 굴리면 어떻게 될까요? 아시는 분?”
내 질문에 송송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유치원생도 맞추겠다.”
“그럼 맞춰 봐.”
“그야 당연히 내려가면서 점점 커지지 않겠어?”
“왜?”
“왜긴. 언덕에 쌓인 눈이 더해지니까 그렇지.”
“응, 마치 널 향한 나의 마음처럼.”
“우웩, 우웨에에엑!”
이거 중독성 있네.
다시 시작된 송송이의 헛구역질 소리를 BGM 삼아 말을 이었다.
“지금 송이가 한 말도 맞습니다. 그런데 전제가 달라요. 여긴 눈 덮인 언덕이 아니라, 눈이 녹은 언덕이거든요. 저 아래까지 힘껏 굴려 봤자 눈덩이의 크기는 별로 커지지 않습니다.”
“말씀하신 눈덩이는 마나(Mana)군요.”
“최 팀장님 이해가 빠르시네. 예, 마나 연공법이라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본바탕이 티끌이면 아무리 굴려도 티끌입니다.”
“등급이 낮을수록 한계가 있다. 제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정확합니다.”
한 번 F급은 영원한 F급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한 번 정해진 등급에서 벗어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하지만 매우 희박한 확률로 그 별을 따는 사람들이 있다.
2차 각성자. 그게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고 현재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가면이기도 하다.
“C급 헌터로 2차 각성 후 효과가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그제야 풀밖에 없던 언덕에 눈이 좀 쌓인 거죠.”
“그러고 보니 당시 결과가…….”
“마나 보유량은 C급. 하지만 그때도 컨트롤 능력은 A급이었습니다. 이유는 아시죠?”
“진가심법.”
최 팀장이 신음했다.
“협회 측 실수가 아니었군요.”
내가 유명해지고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그 부분은 측정 오류로 결론이 났다.
덕분에 당시 재측정을 진행했던 부천 협회는 욕을 푸지게 먹었는데, 그들로서는 상당히 억울했을 것이다.
“팀장님과 집사님이 마나 연공법이라고 부르는 진가심법에는 두 가지 효능이 있습니다. 첫 번째, 마나량의 증가. 그리고 두 번째는…….”
김 집사가 말을 받았다.
“궤를 달리하는 마나 컨트롤.”
“정답.”
마나, 공력이라고 불리는 기(氣)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다.
진가심법은 절정 무공. 기를 축적하는 속도는 느리지만, 안정성으로는 초절정 무공 못지않다.
“익히는 것만으로도 비약적인 성취가 있을 겁니다. 신입들은 우선 지켜보도록 하고…… 여기 계신 분들만 당분간 진가심법을 익히는 것에 집중해 주세요. 아, 물론 극비에 진행되어야 합니다.”
“…….”
“…….”
뭐야, 반응들이 왜 이래?
순간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은 병실. 네 사람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마나 연공법을 알려 주신다고 하신 겁니까?”
“마나 연공법이 아니라 진가심법이요.”
“예, 예. 진가심법 말입니다.”
최 팀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걸 저희한테?”
“당연히 그러려고 가져온 거죠. 제가 뭐, 자랑하려고 들고 왔겠습니까?”
나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지금 수준으로는 얼마 못 버팁니다. 최근 사건으로 인해 이정룡도 당장은 우리를 건드리지 않겠지만,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하지만…… 진가심법이 있다면 어떨까?”
입을 딱 벌리고 있던 임꺽정이 소리쳤다.
“진! 가! 심! 법!”
“아, 리액션 좋습니다. 어쨌든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니 당분간은 제 말에 군말 없이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아셨죠?”
여기 있는 네 사람이 첫 번째 타자고, 다음은 새로 입사한 신입 헌터들이다.
철저한 심사를 통해 선발할 것이고, 나는 그들을 헌터인 동시에 무림인으로 만들 생각이다.
동급의 헌터 두셋 정도는 거뜬히 감당할 수 있는 정예로.
“자, 그럼…….”
여전히 반쯤 넋이 나간 사람들을 차례대로 훑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최 팀장님부터 시작해 보죠.”
그 순간, 충격이 사라지지 않은 그의 얼굴 위로 홀로그램 창이 생성되었다.
띠링.
– 퀘스트, [등짝, 등짝을 보자!]가 생성되었습니다!
“…….”
왠지 하기 싫어지는 제목이다.
* * *
퀘스트
[등짝, 등짝을 보자!]무림과는 달리 평온하던 현대 생활.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이 같은 현실에 위기감을 느낀 당신은 믿을 만한 친구들에게 무공을 전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선택이 과연 독이 될지 득이 될지…… 그것은 당신의 선택과 능력에 달렸습니다.
무운(武運)을 빕니다!
등급 : 절정
제한 : 진태경
임무 : [진가심법]의 습득을 지도 (미완료)
보상 : 상당량의 경험치
반복 퀘스트
???
실패 : 최악의 경우 [주화입마]에 빠짐
“…….”
이거 퀘스트 제목 어떤 새끼가 지었냐?
일단 등허리에 존재하는 명문혈(命門穴)에 공력을 흘려보내어 운기하는 법을 알려 주어야 하니 등짝을 보긴 봐야 하는데…… 제목을 보고 나니 갑자기 더럽게 하기 싫어진다.
“후우, 최 팀장님.”
“예.”
“등짝을.”
“예?”
“아,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가 알려 주는 자세를 취하세요. 김 집사님과 다른 분들은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병실 지켜 주시고요. 특히 그 누구도 저희 몸에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죠?”
“물론입니다.”
굳게 고개를 끄덕인 김 집사가 마법을 펼쳤다. 주문과 함께 스태프가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막이 펼쳐져 병실을 감싼다.
그사이 상의를 탈의한 최 팀장은 어색하게 가부좌를 틀고 내게 등짝을 내밀었다.
“지금부터 저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말씀 참 이상하게 하시네.”
주화입마를 그냥. 팍 씨.
나는 최 팀장의 명문혈에 손을 올렸다.
지금부터는 정말 주의해야 한다. 제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무림 고수도 운기조식을 취할 때에는 무방비나 다름없다.
“지금부터 눈을 감고, 몸 안의 마나에 집중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합니다. 혹시 지금 불편한 곳 있어요? 있으면 지금 말해요.”
“오른쪽 날갯죽지 쪽이 조금…….”
“아파요?”
“간지럽습니다만.”
“……하, 미치겠네. 여기요?”
북북.
손을 뻗어 긁어 주자 최 팀장의 목소리가 한결 편안해졌다.
“네, 거깁니다. 정말 시원하네요.”
“제 별명이 효자손이었습니다.”
“그리고 팬티 쪽이 조금 꽉 껴서 그러는데…….”
“미쳤어요? 그 부분은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 내가 수갑이라도 채워 놨습니까?”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지금 긴장이 많이 돼서.”
“후우, 괜찮습니다. 괜히 흥분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태경 씨 잘못이 아닙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티팬티를 입고 올 걸 그랬어요.”
팬티 좀 입을 줄 아는 놈인가…….
긴장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최 팀장에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지금부터 입 열면 골로 갑니다. 딱 하나, 마나가 어디에서 어떻게 흐르는지에만 집중하세요.”
“알겠습니다.”
“날갯죽지 가려워도 참고, 팬티에 뭐가 끼어도 참아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우리가 지금 하려는 게 정확히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진기도인(眞氣導引)으로 팀장님의 마나를 움직일 겁니다. 그 후 진가심법의 구결을 따라 소주천(小周天)을 한 뒤, 운기조식(運氣調息)을 끝맺을 생각입니다.”
“…….”
“대충 알아들었습니까? 솔직하게.”
“솔직하게요?”
“네.”
잠깐 침묵하던 최 팀장이 대답했다.
“진기도인부터 모르겠습니다.”
“그럼 그냥 눈 감고 입 다무세요. 팬티에 뭐가 끼었다, 뭐 이딴 말 하면서 엉덩이 들썩거리면 내가 죽기 전에 당신부터 죽이고 갑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결의에 찬 대답.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최 팀장의 몸이 부드럽게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무공이라는 생소한 세계에 이제 막 한 걸음을 떼려는 초보자다.
최 팀장이 지금까지 얼만큼의 사회 경험을 쌓았고, 몇 개 국어에 능통하며 어떤 지식을 갖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럼,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달린 상황.
나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단전에서 끌어 올린 공력을 손바닥을 통해 최 팀장의 명문혈을 통해 흘려보냈다.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스으윽.
극양(極陽)의 기운을 띤 열양지기가 그의 내부로 침입한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시스템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띠링.
– [진기도인]을 시작합니다.
* * *
일전에 엄마와 하연이의 신체 내부에 쌓인 노폐물들을 제거해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난이도 면에서는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다.
진기도인은 상대의 몸 안에 있는 기운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
최 팀장이 품고 있는 기운은 일반인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풍부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깨끗하고.’
아니, 정정한다. 생각보다 깨끗한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한 수준이다.
튼튼한 근골과 근맥, 새벽 고속도로처럼 뻥 뚫린 혈도에는 별다른 노폐물이 없었다.
‘뭐지? 마나 연공법을 익히지 않았다고 했었는데.’
최 팀장이 보유하고 있는 헌터 자격증은 B급. 평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도 딱 그 정도다.
평범한 B급 헌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똑똑한 머리를 이용한 전투 센스와 명품 장비의 힘 정도?
‘사실 천태민의 유일한 핏줄치고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
뛰어난 리더십. 명석한 두뇌와 결단력의 소유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과소평가다.
전 인류를 구원한 영웅, 천태민의 이름 앞에서는 그 누구도 색이 바래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정도면…… 약간의 도움으로도 금방 경지에 오를 수 있다.’
A급 헌터? 아니다. 나는 최 팀장을 절정 고수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대로 썩혀 놓기에는 기본 하드웨어가 아까울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최 팀장의 절반 정도만 되어도 일이 훨씬 쉽게 풀릴 텐데.’
그런 속 편한 생각을 하며 열양지기를 흘려보냈다. 어느새 일 갑자를 웃도는 공력이 그의 내부를 휘감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손바닥에 닿은 몸이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쯤 그는 난생처음 겪어 보는 열기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 곳곳에 흩어져 있는 그의 기운을 끌어모아 수십 개의 혈도를 돌파했다.
최 팀장은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 수천, 수만 번을 스스로 나아가야 하는 길이니까.
‘몸으로 기억하면 그 다음은 쉽지.’
속도는 놀랍도록 빨랐다.
어느새 내가 이끄는 그의 기운은 반 갑자에 달했고, 그나마 남아 있던 노폐물들은 열양지기의 열기에 깨끗하게 소멸되었다.
‘이제 마지막.’
흐트러진 기운을 정리했으니 단전으로 수납해야 할 시간이다. 그럼 비로소 일주천(一周天)이 완성되고, 무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게 뭐야.’
최 팀장의 단전에 도달한 나는 그 상태로 우뚝 멈췄다.
단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기의 덩어리. 그리고 시스템 알림.
띠링.
돌발 퀘스트, [난 소화한 공력의 반만 가져가.]가 생성되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 /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