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295
#294화
일주일 전, 최 팀장은 이정룡 측과 며칠간의 끈질긴 협의 끝에 원하는 것을 모두 받아 냈다.
이십여 개에 달하는 게이트 독점권과 부동산, 막대한 현금까지. 정확한 금액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치는 분명 천문학적이었다.
열 명에 달하는 블랙 헌터. 그리고 명동 길드장 박태섭이 파견한 측근들이 우리의 수중에 없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값진 전리품이다.
‘이곳도 마찬가지고.’
나는 힘차게 구령을 붙이며 가장 먼저 마력장을 통과했다.
쏴아아악. 끈적하면서도 불쾌한, 그러나 익숙한 마력 특유의 느낌과 함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뀌었다.
띠링.
– A급 게이트, [흑마법사의 검은 숲]에 진입하셨습니다!
– 퀘스트, [게이트 공략]이 자동 생성되었습니다!
“왼발, 왼발! 하나, 둘, 셋, 넷! 제자리에 서!”
“하낫, 둘! 정렬!”
칼 같은 복명복창과 함께 인간 기차가 멈췄을 때는 이미 오십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게이트 안으로 진입한 후였다.
어둠이 내려앉은 숲과 야윈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희미한 달빛.
뒤늦게 사태를 알아차린 신참들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사방을 돌아봤다.
“헉!”
“마, 망했다.”
“잠깐만, 도대체 몇 급 게이트길래 크기가 왜 이렇게 넓어?”
반면 3주 차 도사견들의 반응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또 흑마법사의 검은 숲이야?”
“어우, 토 나와.”
“워 해머 챙겨 오길 잘했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간격를 두고 입사했지만, 그 차이는 컸다.
반면 도사견의 대화를 듣는 1일 차 댕댕이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흐, 흑마법사의 검은 숲?”
“A급 게이트다!”
A급 게이트, 흑마법사의 검은 숲.
이곳에 대해 몰랐던 사람들도 붙여진 이름만 봐도 대충 감을 잡는다. 스산한 분위기와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한 숲속 풍경.
이곳은 흑마법사, 네크로맨서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시벌좌님! 진태경 선배님!”
댕댕이 중 하나가 헐레벌떡 달려와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제발 저 좀 내보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왜요.”
“제가 귀신을 많이 무서워합니다. 그냥 일반적인 몬스터는 괜찮은데 구울, 스켈레톤 이런 놈들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트라우마?”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그냥 무섭습니다.”
“잘됐네. 이참에 한번 4D 느낌으로 체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어차피 걔들도 몬스터예요.”
“아니, 그게…….”
“그리고 우리 길드 지원서에는 그런 문제 없다고 써놨을 텐데?”
“그건 우선 붙으려고…… 제발요. 저 여자 친구랑 공포 영화도 못 본단 말입니다.”
“아, 여자 친구요. 알겠습니다. 여기!”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쪽을 바라보며 실실 웃는 도사견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응.”
그는 도사견 중에서도 은연중에 우두머리 역할을 맡고 있는 김진수였다.
나름 리더십도 있고, 전투 능력도 뛰어나서 함께 레이드를 할 때마다 내 손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 물론 말은 진작에 놨다.
“다름이 아니라 따로 지시할 게 있어서. 여기 계신 이분 말인데.”
“예.”
“선두에 배치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댕댕이가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지, 지금 선두라고 하셨습니까?”
“왜요. 문제 있습니까? 타워 실드 들고 있는 거 보니까 포지션도 딱 탱커구만.”
“하지만…….”
“빠지고 싶으면 빠지세요. 단, 해고당하는 건 감수하시고.”
“해, 해고요?”
“귀신이 무서워서 레이드 거부하겠는데 고용할 이유가 없죠. 그리고 게이트에 귀신이 있습니까? 죄다 몬스터지. 진수야, 내 말이 틀렸냐?”
김진수가 냉큼 대답했다.
“백번 천번 지당하십니다.”
“여기 있는 놈들이 죄다 귀신이면 내가 왜 헌터를 데려와. 엑소시스트를 데려오지. 안 그래?”
“천번 만번 지당하십니다.”
“역시 진수, 말 참 예쁘게 해.”
“감사합니다.”
“그래서 거기 계신 분은 계속 평화 길드 헌터 하실래요, 아니면 해고당하고 엑소시스트로 이직하실래요?”
댕댕이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허, 헌터를 하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전투 상황에서 도망치면 내 손으로 천국 보냅니다. 오케이?”
“오, 오케이.”
“오케이. 선두! 오케이! 천국!”
손을 내젓자 김진수의 팔에 붙들려 어딘가로 질질 끌려간다.
나름 치밀한 선별 과정을 거쳐 뽑아 놨는데, 어딜 가나 저런 놈이 꼭 하나씩 끼어 있어서 문제다.
‘뭐? 여자 친구랑 공포 영화도 못 볼 정도로 귀신이 무서워?’
팍 씨. 개소리를 아주 그냥.
여자 친구가 있다는 부분에서 화가 난 게 아니다. 진짜다.
“…….”
휘이이잉.
숲속을 맴도는 스산한 바람에 옆구리가 시렸다.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떤 나는 숲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등 뒤로 서서히 멀어지는 대화 소리를 들으며.
“저, 저기요. 아저씨.”
겁에 질린 어느 댕댕이의 목소리. 그리고 도사견의 퉁명스러운 말대꾸가 교차한다.
“왜요.”
“진태경 헌터님,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몰이 사냥이요.”
“네?”
“저 사람 별명이 피리 부는 사나이거든요.”
도사견이 기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나만 개고생할 수 없지. 같이 잘해 봅시다.”
“…….”
* * *
들으라는 듯 큰 소리를 내며 숲을 돌아다녔더니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퍼석! 구구궁.
– 구어어어!
– 끄으, 끄으으으…….
딱, 따닥, 따다다닥!
그로테스크한 울음소리와 함께 땅에서, 무덤에서 잠자고 있던 시체들이 깨어난다.
썩은 살을 뚝뚝 떨어트리는 구울, 살점 하나 남지 않은 채 앙상하고 새하얀 뼈를 드러낸 스켈레톤.
언데드 몬스터(Undead Monster)라 불리는, 저주받은 망자들이 숲과 언덕을 뒤덮는 건 순식간이었다.
“야, 야! 천천히 갈 테니까 잘 쫓아와라! 알았냐?”
– 구어어어어!
다다다다다!
몸을 축 늘어트린 채 절뚝절뚝 걸어 다니는 좀비는 이제 낡아빠진 이미지다.
가끔 이 자식들이 뛰는 걸 보면 태릉 선수촌 출신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나를 쫓아오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오늘은 신입들도 새로 들어왔으니까 좀 적게 가야겠네.’
몸을 날리며 중간중간 힐끗 돌아보며 숫자를 확인했다.
얼추 백오십여 마리 정도쯤 되나?
아군의 세 배에 달하는 숫자지만 이것조차도 평소보다는 적다.
애당초 구울이나 스켈레톤은 그다지 강력한 몬스터가 아닐뿐더러, 이쪽도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와 배짱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히 도사견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지.’
기본이 세 배, 가끔 많게는 열 배 이상 되는 몬스터들을 끌고 와서 지옥 문턱을 몇 번 보여 줬더니 애들 눈에 독기가 철철 흐르더라.
물론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구경을 하다가도 한 번씩 나섰고 덕분에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걸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하다 보니, 공공의 적인 동시에 신뢰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이건 속성 과외다. 나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잡초를 하루라도 빨리 평화 길드의 마당에 심어야 한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미 몇 명은 포기를 선언하고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굳이 그들을 붙잡지 않았고, 섭섭한 마음도 없다.
‘결정은 본인의 몫이니까.’
모두 자신들만의 삶이 있다. 나는 그들의 삶에 잠깐 끼어든 것뿐이다.
선택지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선택을 강요할 자격은 내게 없다.
쐐애애애액!
[흑마법사의 검은 숲]은 A급 게이트답게 광활한 크기를 자랑했다.그러나 내가 탐사한 부분은 그중 극히 일부. 속도를 조절해 가며 달리자 금방 게이트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온다!”
“진태경 개새끼…….”
“그래도 처음이라 그런지 좀 적네.”
“헉, 스켈레톤!”
우렁차게 몬스터의 출현을 알리는 사람부터, 날 욕하거나 담담하게 적들의 숫자를 파악하는 사람까지.
아직 초짜인 데다 이렇다 할 전투 경험도 없는 이들은 잔뜩 움츠러드는 것이 보인다.
물론 내게 매운맛으로 교육받은 인간 도사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시발, 거기 뭐 해요! 라인 밀리잖아!”
“뒷걸음치지 마. 방패 꽉 잡아. 뭐? 오줌이 마려워? 그럼 그대로 싸!”
“새로 오신 분들, 정신 똑바로 차려요. 진태경 저 인간, 절대 안 도와줘요. 기부 재단 만든 것도 여기서 사람 죽을까 봐 미리 만든 거라니까?”
“…….”
이거 사람을 아주 쓰레기로 몰아가는데.
어이가 없었지만 참았다. 그래, 애들 멘탈 잡으려면 저 정도는 해 줘야 바짝 정신을 차리지.
‘없는 곳에서는 나라님도 욕하는데 뭘.’
물론 얼굴은 다 기억해 뒀다.
이미 대형을 형성하고 있는 헌터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나는 냉큼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외쳤다.
“방패 밀집!”
쿠구구궁!
일사불란한 움직임. 닭 쫓던 개가 되어 까마득한 나무 위를 올려다보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흉측한 얼굴들을 돌린다.
게이트 입구가 자리한 언덕 위, 진형을 펼친 오십여 명의 헌터들을 발견한 스켈레톤 중 하나가 골검(骨劍)을 번쩍 치켜들며 괴성을 내질렀다.
– 그어어어어!
평범한 스켈레톤이 아니다.
훤히 드러나 있어야 할 뼈는 낡은 갑옷에 휘감겨 있었고, 달을 찌를 듯이 치켜든 골검은 밤하늘보다 어둡고 불길한 흑색 오라에 휩싸여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스켈레톤 나이트(Skeleton Knight)?”
같은 해골 뼈다귀라고 해서 같은 급이 아니다.
스켈레톤 솔져, 메이지, 워리어…….
개체마다 지닌 능력과 그 힘이 천차만별이며, 스켈레톤 나이트는 명실상부한 A급으로 인정받는 강력한 몬스터다.
‘검은 숲에서 자주 마주치긴 했는데…… 저 녀석은 뭔가 달라.’
A급 게이트에서 A급 몬스터인 스켈레톤 나이트를 만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놈들은 하위 개체인 워리어와 메이지를 휘하에 두고 검은 숲 곳곳에 포진해 있었으니까.
눈을 가늘게 뜬 채 놈을 살피던 그때였다.
– 그아아!
– 그우우우!
츠츠츠츠!
뒤이어 울려 퍼지는 괴성과 솟구치는 두 줄기의 오라.
나는 놀라움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 무리에 스켈레톤 나이트가 셋이나?”
이런 건 또 처음 보는데.
스켈레톤 무리는 하나의 군대고 나이트는 그 군대를 이끄는 장군. 독립된 군대에 장군은 하나뿐이었다.
‘세 개의 무리가 연합이라도 한 건가?’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로 나타난 두 마리의 나이트는 뼈를 달그락거리며 처음 등장했던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다가가더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골검을 땅에 꽂았다.
명백한 복종을 뜻하는 행동. 눈에 있어야 할 텅 빈 구멍에서 보랏빛 안광이 번쩍였다.
화아아악!
무저갱처럼 컴컴한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온 빛은 강렬했다.
이내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는 그것과 눈이 마주친 찰나였다.
– 그어어어어!
카드드드득!
포효와 함께 놈의 신체가 변화했다. 모든 뼈는 굵고 길어졌으며, 표면에는 알 수 없는 검은 광택이 흘렀다.
변화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촤르르륵!
군데군데 녹슬고 깨져 있던 갑옷이 마치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복구되었다. 끊어진 사슬이 붙고, 가슴에 그려져 있던 흐려진 해골 문양이 선명한 색을 띠었다.
마지막으로 바람을 받아 휘날리는 암녹색 망토까지.
마침내 모든 변화를 끝마친 놈이 자신의 손바닥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새하얀 뼈 대신, 단단한 건틀릿을 착용한 손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나쁘지. 않. 군.
“……!”
숲을 둘러싼 공기가 파르르 떨렸다.
나를 비롯한 모두는 할 말을 잃은 채 놈을 응시했다.
스켈레톤 나이트. 타락한 언데드가 되어 버린 위대한 기사.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Lv.105 스켈레톤 워로드]– 내려. 와라. 인. 간.
타오르는 보랏빛 안광이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