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00
#299화
“이제 시작해도 되겠군.”
서울 중앙 협회장의 입에서 오케이 신호가 떨어진 것은, 최민우를 필두로 한 평화 길드가 항의를 시작하고도 10여 분이 지난 후였다.
게이트는 한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치열한 전장. 그런 곳에서 수백의 스켈레톤 부대를 거느린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로 홀로 남겨진 진태경의 생존을 예상하는 사람은 전무했다.
“살았을까?”
“정확히 한 시간 하고도 팔 분이나 지났어. 시신이라도 수습하면 다행이다.”
“니기미. 구조 작전이 아니라 시체 수습 작전이구만.”
“이거 이래도 되는 거야? 일분일초가 급한 마당에 시간이나 질질 끌고.”
“어쩌겠어. 일반 A급 게이트도 아니고 네임드 몬스터가 출현했다는데. 따지고 보면 협회 입장도 이해가 가지. 섣부르게 진입했다가 대형 사고라도 터지는 날에는 끝장이잖아.”
진입을 준비하는 헌터, 모든 상황을 촬영하던 기자들도 무리를 지어 떠들었다.
지연된 구조 작전에 분노하는 이도, 협회의 결정을 변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진태경의 생존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당연한 사실에는 사족을 달지 않는 법이니까.
“그나저나 평화 길드만 제대로 피 봤네.”
“그렇지. 진태경은 이미 뭐, 안타깝지만 그렇게 됐고. 카메라 앞에서 서울 협회장한테 대놓고 지랄했으니 후폭풍 장난 아닐걸.”
“내 말이. 안 그래도 저 인간, 낙하산이라 언론 무지하게 신경 쓰던데.”
주위에서 수군거리는 대화를 듣는 최민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후일 평화 길드가 받게 될 불이익?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죽긴 누가 죽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다. 헛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의 멱살을 잡고 앞을 가로막는 협회 헌터들을 쓰러트리고 싶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기다린 것은 십여 분 전, 김 집사가 만류하며 건넨 한마디 때문이었다.
‘도련님이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도련님 자신보다 진태경 씨를 믿으신다고요.’
그 말에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맞다. 그는 늘 기적을 보여 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오늘은 그 연장선일 뿐이다.
그렇게 믿었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태경 씨.’
최민우는 크게 심호흡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뒤를 오십여 명의 평화 길드원들이 결의에 찬 얼굴로 따랐다.
“우리 평화 길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서울 협회장이 곱지 않은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건 이번 작전의 명령권자인 내 소관이야. 그런데 지금 자네의 언행은 통보처럼 들리는군.”
“맞습니다.”
“뭐?”
“다시 말씀드릴까요? 통보가 맞다고 했습니다.”
협회장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최민우의 서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더 이상 지체하고 싶은 생각도, 말 섞을 이유도 없습니다. 선두는 평화 길드입니다.”
“이런 건방진……!”
협회장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그 순간이었다.
“그렇게 하시죠.”
등 뒤에서 들려온 고저 없는 목소리에 협회장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이정룡의 오른팔이자 경호팀장인 석고준이 무표정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석 팀장?”
“함께 동고동락하던 동료를 잃은 평화 길드원들의 심정을 헤아려 주시지요. 언론에서도 좋게 볼 겁니다.”
“하, 하지만 게이트 내부에는 네임드 몬스터가 있소.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헌터들을 선두에 세웠다가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말을 이으려던 협회장은 석고준의 건조한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순간 잊고 있었다. 상대는 아레스 길드의 일개 팀장이 아니라, 이정룡의 경호팀장이자 오른팔이라는 것을.
또한 그가 원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걱정하는 ‘불상사’라는 사실을.
협회장의 고민은 짧았다.
“평화 길드가 선두에 서게. 그리고 3분 뒤에 본 협회와 아레스 길드가…….”
하지만 최민우는 이미 몸을 돌려 게이트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협회장과 석고준,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끈적하게 따라붙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갑시다. 진태경 씨를 구하러.”
최민우의 나직한 목소리에, 순간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함성이 장내를 울렸다.
김 집사와 임꺽정, 송송이. 그리고 오십여 명의 평화 길드원들이 최민우의 뒤를 따라 수백의 헌터를 물살처럼 가르며 게이트를 향해 나아갔다.
김 집사의 입에서 웅혼한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평화 길드 전원, 공격 대형 갖춰!”
차차차착!
움직이는 갑옷과 날붙이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순식간에 쐐기 진형으로 탈바꿈한 오십여 명의 평화 길드원들은 하나의 화살처럼 쏘아졌다.
그 선두에 우렁찬 외침과 함께 마력장을 향해 뛰어드는 최민우가 있었다.
“진입!”
쏴아아악!
게이트의 마력이 오늘따라 불쾌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던가.
최민우는 가슴 한구석에서 꿈틀거리는 불길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건…….’
초토화(焦土化).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게이트 입구가 위치한 언덕에서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오솔길은 온통 화마(火魔)에 휩싸여 있었다.
‘진태경 씨.’
게이트를 통과할 때 느꼈던 불길함이 서서히 실체를 갖추는 기분이다.
그의 등 뒤에서 임꺽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최 팀장. 혹시 태경이가…….”
“그만. 지금은 작전 수행 중입니다. 개인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최 팀장의 말도 힘을 심어 주지 못했다.
그만큼 눈앞의 상황은 가망이 없어 보였고, 임꺽정뿐만 아니라 평화 길드원 전원이 동요하고 있었다.
‘아니다. 그럴 리 없어.’
마음을 다잡듯 입술을 질끈 깨문 최민우는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 접근합니다. 경계 늦추지 말고 전진하세요.”
그들은 혹시 모를 몬스터의 출몰을 대비하며 신중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오솔길에 가까워질수록 평화 길드원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짙어졌다.
“이럴 수가.”
부서진 뼈와 무기의 산. 검게 그을린 대지를 뒤덮은 잿가루.
죽음과 파괴만이 흘러넘치는 그곳 어디에서도 생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그토록 찾기를 바라던 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죽었다고? 그 사람이?’
모두의 머릿속을 스친 한 가지 의문.
진태경을 오래 알았던 사람일수록 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들려온 김 집사의 한마디는 의사의 최종 선고와 마찬가지였다.
“탐지 마법을 사용한 결과…… 반경 300미터 안에선 어떤 움직임이나 생명체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최민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 말씀은…….”
“죄송합니다.”
참담한 얼굴로 대답한 김 집사가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향한 방향에서 뭔가가 두둥실 떠올라 천천히 날아왔다.
“그건…….”
“상당한 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네임드 몬스터의 흔적 같습니다.”
김 집사의 손에 들린 그것은 손바닥만 한 금속 파편이었다.
재를 뒤집어썼음에도 빛을 잃지 않은 검은 광택. 보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해골 문양이 드러나자 몇몇이 헛숨을 들이켰다.
“해골 문양! 네, 네임드 몬스터가 입고 있던 갑옷입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똑똑히 봤어요.”
이어 주위를 살피던 누군가가 비명처럼 외쳤다.
“여기 단검도 있습니다! 스켈레톤이 쓰는 장비가 아니에요!”
“진태경 선배님 물건입니다. 자주 쓰시던 제품이 맞아요.”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 속, 김 집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산화(酸化)한 것 같습니다. 네임드 몬스터를 포함한 모든 적과 함께…….”
“……!”
오솔길을 둘러싼 공기가 찌르르 울렸다.
이제는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진태경은 죽었다. 스스로의 목숨까지 던져 적을 저승길 동무 삼아 그들의 곁을 떠나 버린 것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침묵을 깨트린 것은 임꺽정의 울음소리였다.
“끅. 끄흐흑!”
손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떨림은 팔, 어깨, 등으로 올라갔고 이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임꺽정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태경이가, 태경이가……크흐흑!”
거구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그를 비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느끼는 슬픔의 크기는 다를지언정, 이 자리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진태경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 함께 싸워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
평화 길드원들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고, 김 집사와 송송이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않는 것은 단 한 사람, 최민우뿐이었다.
‘죽었다. 진태경이.’
그는 컴컴한 눈동자로 아직도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솔길을 둘러보았다.
마치 지금이라도 그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깜짝 상자처럼 튀어나올 것 같다.
‘당신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줄 알았는데.’
문득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슬픔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팽해진 그때였다.
“허어, 처참하군.”
“진태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군요. 결국 죽은 모양입니다.”
천천히 돌아선 최민우의 시야에 막 오솔길로 들어선 수백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협회, 그리고 구조 작전에 참여한 헌터들의 선두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구조는 그른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협회장님?”
“그러게 말이오. 죄다 잿더미가 되어 버려서 이거 원, 시체나 찾을 수 있을는지. 그건 둘째 치고 네임드 몬스터는 어디 있는 거요?”
“자세히 수색을 해 봐야겠지만, 탐지 마법 결과에 따르면 협회장님께서 걱정하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싶습니다.”
석고준의 말에 잔뜩 찌푸려져 있던 협회장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또 사상자가 발생하나 싶었는데.”
“협회장님의 판단 덕분에 희생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이게 다 아레스 길드가 나서 준 덕분이지. 일이 잘 마무리되면 꼭, 반드시 감사패를 수여하겠소. 허허. 내 임기 첫 성과이니 행사를 크게 열 생각인데…… 그때는 이정룡 길드장님도 오시겠지요?”
“길드장이 아니라 부길드장님이십니다.”
“아, 그렇지. 이것 참,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내가 요즘 깜빡깜빡해요.”
석고준의 입가에 메마른 웃음이 떠올랐다.
“그럴 수 있지요. 그리고 감사패가 수여되면 부길드장님도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실 겁니다.”
“오랜만에 뵐 수 있겠군. 석 팀장이 잘 좀 말해 주시오.”
“제가 보고 들은 것만 그대로 전해 드려도 크게 기꺼워하실 겁니다.”
“하하.”
석고준과 협회장의 대화는 날카로운 바늘이었다. 풍선처럼 팽창한 최민우의 감정을 터트릴 수 있는 바늘.
“그 주둥이 닥쳐.”
“……!”
모든 소음이 뚝 멎었다.
뒤늦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깨달은 협회장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그러나 석고준이 그보다 한발 빨랐다.
“입조심하시는 게 좋을 텐데.”
“주둥이 닥치라고 했다.”
“젊은 친구가 예의를 모르는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평화 길드 최민우 팀장님.”
뼈 있는 말이었다.
석고준에게 있어 최민우는 끈 떨어진 연이었다. 그의 조부가 세운 아레스 길드는 이미 이정룡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고, 요주의 인물이던 진태경마저 죽었으니 굳이 이빨을 감출 필요는 없었다.
“길드원의 사망에 감정이 격해진 건 이해하지만, 진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최민우가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네놈들이 시간만 안 끌었어도 살 수 있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협회장님의 판단도 맞았고요. 그리고…….”
석고준이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들도 책임이 있지. 안 그런가?”
“……!”
“진태경이 죽을 때 어디에서 뭘 했지? 태평하게 사무실에서 신문을 읽었나? 아니면 낮부터 술집?”
최민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석고준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진태경을 믿었기에 모든 일을 놓고 수련에 몰두했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만큼은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바늘이 날아들었다.
“진태경은 당신이 죽인 거야. 약해 빠진 주제에 본분을 망각한 당신네들 전부가 죽인 거라고.”
“……!”
석고준이 피식 웃었다.
“후회해 봤자 늦었어. 죽은 사람은 안 돌아오거든.”
최민우가 주먹을 터질 듯이 움켜쥔 그 순간이었다.
“뭐라는 거야. 이 개썅노무새끼가.”
나직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모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 목소리를 모르는 이들은 난데없이 들려온 욕설에 어리둥절했고, 익숙함을 느낀 이들은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설마…….’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최민우의 눈에, 저 멀리 오솔길을 터벅터벅 걸어오는 한 사람이 눈에 들었다.
“오줌 싸고 온 사이에 49재까지 끝내 버리네, 시벌놈이.”
진태경이 가래를 탁 뱉었다.
“딱 대.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