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12
#311화
“퀘스트 수락.”
띠링.
– 돌발 퀘스트, [용봉표국의 위기]를 수락하셨습니다!
다 컸다, 진태경. 이제 스스로 퀘스트도 만들 줄 알고.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오른손을 뻗었다. 화염신장(火焰神掌)의 열기로 붉게 달아오른 손바닥이 가공할 속도로 도끼의 옆면을 후려쳤다.
꽈앙!
굉음과 함께 천력부의 거대한 덩치가 주르륵 밀려났다. 삼 장의 거리를 휘청이며 뒷걸음질 친 놈의 얼굴은 당황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뭐긴. 잘못 걸린 거지.”
나는 씩 웃으며 천력부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주 오래전에 만났던 레벨 10짜리 가짜 천력부가 아닌, 무려 90레벨씩이나 되시는 진짜 천력부다.
‘이야, 확실히 진짜가 다르긴 달라.’
덩치도 훨씬 크고, 얼굴도 산적이 아니면 억울할 정도로 흉악하게 생겨 먹은 데다 무공은 비할 바가 안 된다.
그런 천력부를 보고 있자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 이놈 잡았다고 헛소문이 퍼진 덕분에 명성치 꽤 올랐었는데.’
태원진가 내에서 내 이름이 재평가되던 시기였다.
그 과정에서 가짜 천력부를 진짜로 오해한 사람들이 소문을 퍼트리며 가문의 수치라는 허물을 조금씩 벗을 수 있었다.
‘크으, 엊그제 같네.’
감회에 젖어 있는 나를 천력부가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넌…… 도대체 누구지?”
“나? 널 두 번 죽일 사람.”
“뭐, 뭐라고?”
“그런 게 있어.”
“날 두 번 죽이다니, 그게 뭔 개소리…… 잠깐. 설마?”
이어지려던 천력부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놈의 입에서 벼락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산서잠룡!”
“어? 아네?”
“일 년 전쯤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 아니 그게 아니라.”
천력부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느새 호칭도 자연스럽게 바뀐 상태였다.
“저, 정말 태원진가의 진태경 소협이 맞소?”
“소협은 아니고. 진태경은 맞지.”
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헉, 하고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곳곳에서 새어 나왔다.
산적이고 표사고 할 것 없이 경악이 서린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특히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따가울 정도였다.
[Lv.88 주화란]이내 그녀의 매끈한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이…… 산서잠룡?”
“음.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긴 하죠.”
큼지막하게 떠진 검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가 돌연 포권지례를 취했다.
“용봉표국의 소국주 주화란이 진 소협을 뵙습니다.”
“아, 예. 반가워요.”
나, 생각보다 유명한가 본데?
산서성에서 수천 리 떨어진 오밤중의 산길에서 날 아는 사람 수백 명을 마주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지난 28년 인생을 통틀어 본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먼저 알은체를 할 줄은 더더욱.
‘그나저나 사람이 이렇게 생길 수도 있구나.’
단순히 예쁘다,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주화란의 미모를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가진 빈약한 어휘력을 탓하며 그녀를 바라보던 그때였다.
“크흠. 새, 생각해 보니 오늘 산채 보수 작업을 해야 하지 않나?”
“채, 채주 말씀이 맞습니다. 그걸 깜빡했네요.”
어색한 헛기침 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물러나는 수백의 인기척.
고개를 돌리자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천력부와 흑석채의 녹림도들이 보인다.
나는 천력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력부야.”
천력부의 신형이 덜컥 굳었다.
“……력부?”
“응. 우리 력부. 지금 어디 가.”
표정이 아주 볼만하다. 일그러졌다가, 펴졌다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인내심이 뒤섞여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된 천력부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잠시 산채에 볼일이 있어서 가 봐야 할 것 같소.”
“그러니까. 왜 허락도 안 받고 가냐고.”
“……!”
싸늘한 침묵이 공터에 내리깔렸다. 도끼를 쥔 천력부의 손이 새하얗게 물들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단 한 번의 충돌.
그러나 천력부는, 아니 이 자리의 모두는 깨달았을 것이다. 내가 놈보다 윗줄의 고수라는 사실을.
물론 천력부를 망설이게 만든 두려움의 근원지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 화왕께서는 어디 계시오?”
어디 계시긴. 내가 맨 지게에서 쿨쿨 자고 계시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모피를 잔뜩 덮어 뒀더니, 누구도 그 무시무시한 화왕이 의식불명 상태로 지게에 실려 있을 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노야가 쓰러진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돼.’
암천을 비롯해서 온갖 벌레들이 꼬일 게 분명하다.
나는 속마음을 감춘 채 피식 웃었다.
“사부님은 왜?”
“하, 한번 뵙고 싶어서 물어본 것뿐이오.”
“왜, 우리 사부님이랑 친해?”
“그게, 평소 존경하던 분이라…….”
“만에 하나라도 뵙게 되면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너 같은 산적 새끼가 친한 척하면 기분 나빠 하실걸. 그때는 갈빗대 서너 대 나가고 시작하는 거야.”
“……농이 과하시군.”
“농담 같냐?”
입술을 질끈 깨문 천력부가 눈동자를 굴렸다. 나와 주화란을 포함한 용봉표국의 인원들. 마지막으로 느릿느릿 언덕을 내려오는 버뮤다 삼각지대의 얼굴을 빠르게 훑은 놈의 시선이 다시 내게 닿았다.
“그럼 이 자리에 안 계신 거요?”
“그렇다면?”
“만약 그렇다면…….”
스륵. 턱.
천력부가 도끼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지.”
“지금 네 말투처럼?”
“어린놈 비위 맞춰 주느라 힘들었다.”
“이상하네, 사부님이 있건 말건 달라지는 부분은 없어 보이는데.”
“그건 네놈이 세상 물정 모르는 풋내기라 그런 거고.”
“어느 점에서?”
“네 무공이 생각 이상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네 사부와 동급으로 보면 곤란하지.”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천력부가 손을 들었다. 동시에 오백여 명의 녹림도들이 병장기를 치켜세운 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화왕이 이 자리에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감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화왕 적천강은 분명 인외(人外)의 고수. 허나 고작 네놈 혼자서 이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까?”
“음.”
나는 주위를 쭉 돌아봤다. 용봉표국의 인원은 칠십여 명 남짓.
심지어 절반은 무공이라곤 일 초 반식도 모르는 쟁자수였고, 싸워야 할 표사들조차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천력부가 거느린 녹림도의 숫자는 오백여 명에 육박한다.
열 배가 넘는 병력이니 확실히 천력부로서는 자신감 있게 들이댈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기회에 한 번 뒤집어 보지, 뭐.”
“크하하! 어디 한 번 해보아라.”
“그럴 생각이야.”
다음 순간, 천력부의 입가에 맺혀 있던 웃음이 사라졌다.
그것은 어느새 오 장의 거리를 단 한 걸음으로 지워 버린 내가 주먹을 뻗은 후였다.
‘멸염신권(滅炎神拳).’
우우우웅.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간다. 바람이 갈라지고 극양의 열기가 뻗어 나왔다.
숭산의 이름 모를 절벽을 무너트린 일격이 개미 떼처럼 운집한 오백의 녹림도를 향해 쏘아진다.
그 선두에, 천력부가 있었다.
꽈아아아앙!
하늘이 쪼개지는 굉음과 함께 자욱한 먼지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띠링. 띠링. 띠링.
쉬지 않고 귓가를 파고드는 시스템 알림. 처치하더라도 경험치조차 얻을 수 없는 레벨의 산적들이다. 나는 창을 쓸 필요도, 이유도 찾지 못했다.
혼잡한 안개 너머의 적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무공을 쏟아낼 뿐이었다.
콰아아아앙!
닥치는 대로 찢고, 때리고, 부쉈다.
폭격이라도 맞은 듯 뒤집히는 땅거죽 사이로 핏물과 비명이 넘쳐 흘렀다.
“크아아아악!”
“죽여!”
“저기 있다!”
쐐애애액! 퍼벅!
뒤늦게 날아온 수십여 개의 날붙이가 애꿎은 지면에 꽂혔다.
하나같이 흐느적거리는 움직임. 놈들의 병장기가 어떤 궤적으로 움직일지,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다.
‘쉽다. 신기할 정도로.’
콰직!
반면 내 움직임은 정확하면서도 엄청난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움직임을 이어 갈 때마다 서너 개의 비명이 넘쳐 흘렀다.
공황 상태에 빠진 산적들은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손에 쥔 무기를 휘두를 뿐이었다.
쉬쉬쉭! 서걱!
“끄아악! 이런 미친 새끼!”
“와, 왕팔?”
“그래, 나다! 나라고 이 빌어먹을 놈아!”
“미안하다. 그놈인 줄 알고…….”
나는 쩔쩔매는 산적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번엔 나 맞아.”
“……!”
우두둑!
딱 필요한 만큼의 힘과 속도로 목을 잡아 비틀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신형.
그의 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나는 또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염화일로(炎火一路).’
열화문의 독문 심법.
땅을 박차고 쇄도하자 불의 꼬리가 안개를 관통했다. 일순간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며 팔 척 장신의 거한이 보였다.
허공에서 두 개의 시선이 부딪쳤다.
“거기 있었네.”
“진태경, 너 이 새끼…….”
빠드득. 이를 가는 천력부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공력을 가득 담아 펼친 화염신장.
천력부가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리찍은 거대한 도끼에서 붉은 기가 줄기줄기 쏟아진다.
놈의 입에서 사자후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죽어!!”
쐐애애액! 꽈앙!
격돌과 함께 막대한 기파가 휘몰아쳤다.
숨소리가 뺨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부릅뜬 천력부의 눈동자에 차갑게 굳은 내 얼굴이 비쳤다.
부서진 도끼와 놈의 앞가슴을 뚫고 등 뒤로 튀어나온 내 손도.
푸화아악!
“크……헉.”
핏물이 폭포수처럼 쏟아 내리는 일은 없었다. 손에 담긴 화염신장의 열기는 이미 액체를 증발시켜 버렸다.
가뭄이 든 밭처럼 쩍쩍 갈라진 천력부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너, 넌 도대체…….”
“왜, 뒤집어 보라면서.”
촤아악.
한마디와 함께 놈의 가슴에 박힌 손을 빼냈다. 처음 쏘아진 멸염신권의 일 초를 막지 못해 화상으로 문드러진 전신.
까맣게 숯덩이로 변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던 천력부가 뚝뚝 끊기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말도…….”
미처 이어지지 못한 그 말이 천력부의 유언이 되었다.
쿵. 팔 척의 거체가 허물어짐과 동시에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띠링.
– [Lv.93 방열]을 처치했습니다!
– [천력부 처치]를 완료했습니다!
– 상당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휘오오오.
때마침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흑석산을 휘감으며 공터에 내려앉았다.
희뿌연 안개가 흩어지며 드러난 광경에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럴 수가!”
녹림맹 서열 이십 위. 대륙에 산재한 수많은 녹림도들 중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절정 고수인 천력부 방열의 최후.
그리고 난전 중에 죽어 간 백여 명의 산적들의 시신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남은 사백 명의 산적들은 두려움에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아니, 이 광경을 지켜본 모두가 부르짖고 있었다.
“화왕……!”
화왕 적천강.
지금으로부터 오십 년 전, 이름 모를 광야에서 천 명의 마교도를 전멸시킨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무인.
열화문의 전설은 화왕의 신화로 증명되었고, 그 불씨는 지금 이 순간 내게로 이어졌다.
“선택해라. 이 자리에서 죽든지, 아니면…….”
뜨겁게 달아오른 전신. 극양의 열기가 잇새 사이로 흘러나와 새하얀 수증기를 뿜어냈다.
나는 화염이 서린 눈동자로 적들을 응시했다.
“전부 꿇어.”
챙그랑.
누군가가 힘없이 떨어트린 한 자루 검을 시작으로, 사백여 개의 병장기가 지면을 뒹굴었다.
띠링.
– [흑석채 제압]을 완료했습니다!
– 퀘스트, [용봉표국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 상당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레벨 업!
경쾌한 종소리가 전투의 종결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