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2
#31화
“어쭈. 이 자식은 팔자도 좋네.”
슬며시 눈을 뜨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소풍 왔냐? 게이트에서 잠을 자?”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나는 뻔뻔한 얼굴로 대꾸했다.
“안 잤어요. 자긴 누가 잤다고 그래.”
“입가에 침 자국이나 닦고 구라를 쳐라.”
“씁.”
“어이고, 이걸 확.”
주먹을 흔들어 보였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맺혀 있다. 나는 뻐근한 목을 주물렀다.
“어우, 피곤해.”
“어제 여자라도 만났냐. 왜 레이드 뛰면서까지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아?”
“제가 여자 만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사정 뻔히 아시면서.”
“그렇긴 하지.”
첫 전투 때부터 지금까지, 5년이나 동고동락한 처지다. 내가 그를 잘 아는 것처럼 그도 나를 잘 알았다.
“그럼 왜 그러는데?”
“왜 그러겠습니까. 돈 때문이지.”
“돈? 설마 너 투잡 뛰냐?”
한껏 낮아진 목소리다. 나는 그의 등 너머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이 자식 이거. 짬밥 좀 먹었다고 뒷주머니를 차네. 그것도 부팀장이라는 놈이.”
“요즘 레이드도 줄었고, 급해서 그래요. 급해서. 형님도 다 해 봤으면서 그러시네.”
프로 라이센스를 가진 헌터는 투잡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D급만 되어도 이렇게 살지는 않을 텐데, 우리 같은 F급들은 별수 없다. 그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길드에서 알아도 모른 척 넘어가는 거지.
“그렇긴 한데…… 조심해라. 관리청에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골치 아파져.”
“믿을 만한 곳이에요. 페이도 당일 현찰로 받아서 문제없고. 제가 괜히 하겠습니까.”
“그래?”
표정을 보아하니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형님도 돈 필요하세요?”
“애가 셋이다. 마당에 유전이라도 터져야 해.”
그는 슬픈 눈으로 말을 쏟아 냈다. 이미 수십 번 들었던 레퍼토리다. 육아의 괴로움과 분유값 상승, 장사치들의 파렴치함에 대해 울분을 토해 낸 뒤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넌 결혼하지 마라.”
“안 해요.”
정확히는 못 하는 거지만.
여자도 없고, 돈도 없다. 5년 내로 안전 구역의 집을 한 채 사는 게 인생의 목표인 나로서는 내심 그가 부러웠다.
사랑하는 배우자와 아이들. 행복한 가정. 그런 걸 언제쯤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혼은 늪이야.”
말은 저렇게 해도 소문난 애처가에 좋은 아빠다. 가끔 가족사진을 꺼내 보면서 흐뭇하게 웃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인생이 빨려 들어가. 정신 차려 보면 가슴까지 파묻혀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다니까.”
“…….”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너무 일만 하지 말고 쉬면서 해, 쉬면서. 연애, 취미 생활 이런 거 좋잖아.”
“글쎄요. 아직은 돈이 급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가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아까 보니까 식은땀까지 흘려 가면서 자던데. 그러다가 과로로 훅 간다.”
“제가요?”
그러고 보니 등허리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뭔가 안 좋은 꿈을 꾼 모양인데…….
‘기억이 안 나네.’
보나 마나 개꿈이겠지, 뭐.
* * *
게이트(Gate).
지금이야 나 같은 헌터들의 밥줄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실체는 마계 군단의 침공 루트다.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쓰러지면서 그의 강대한 군대도 패퇴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게이트만은 남아 있었다.
“수비 대형!”
그의 지휘에 따라 거대한 타워 실드를 짊어진 헌터 셋이 전방을 막았다. 길이 좁은 동굴에서는 이 정도만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해소할 수 있다.
캉. 카캉!
“끼이이익!”
이십여 마리의 고블린이 독침과 도끼, 창을 투척했지만 크고 아름다운 타워 실드에 모두 튕겨 나갔다.
“궁수!”
전방에서는 탱커가 모든 공격을 막아 내고, 후방에서는 궁수가 화살을 쏟아 낸다. 전진 압박을 가하며 절반가량을 쓰러트리자 고블린들이 당황한 울음을 토해 냈다.
“까아아악!”
“끼익!”
때에 맞춰 그가 명령했다.
“공격 대형!”
탱커들이 타워 실드를 떨어트리는 동시에 뛰쳐나간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더 빨랐다.
“핫!”
철창을 크게 휘두르자 초록색 피가 터지며 선두가 흐트러진다. 그 사이로 뛰어들며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자 대열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돌격!”
이어 딜러와 탱커들이 가세하자 고블린 무리는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누웠다.
“오늘 되게 쉬운데?”
“솔직히 부팀장이 반은 했지. 아주 날아다니던데, 언제 저렇게 실력이 좋아졌…… 쉿. 팀장님 열받았다.”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은 그가 나타난 순간 입을 다물었다.
“야, 진태경!”
깜짝이야.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왜요?”
“너 인마, 누가 단독 행동 하래? 네가 탱커야? 공격 순서 다 잊었어? 그러고도 네가 부팀장이야?”
“그게 아니라요…….”
“이따위로 할 거면 팀 옮겨. 다른 팀원들까지 위험해지니까.”
그의 험악한 얼굴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별것 아닌 것 같더라고요. 잠깐 미쳤나 봐요.”
기분이 묘했다. 고블린 무리를 보는 순간, 혼자서 저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건 확신이었다.
“너…….”
그가 말을 삼켰다. 서로 등을 맡기고 싸워 온 지 어언 5년, 지금 같은 돌발 행동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음부턴 이러지 마라. 힘든 일 있으면 말하고.”
어깨를 두드리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병원이라도 가 봐야 하나.’
하지만 통증 따위는 이내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 * *
“마정석 나왔습니다!”
“나왔어요!”
“또!”
“떴다. 떴다. 떴다!”
“엄마! 하연아!”
아, 마지막 외침은 내가 한 거다. 그도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중얼거린다.
“야, 이게 다 뭐냐…….”
바닥에는 크고 작은 스무 개의 마정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정석. 겉보기에는 붉은 돌멩이지만 게이트의 꽃이라 불리는 물건이다. 몬스터가 지닌 이 마력 덩어리는 고차원 에너지인 동시에 몬스터의 부산물 중 가장 값진 거다.
“이 정도면 개당 백만 원은 넘겠는데.”
E급 헌터로 이 바닥에서 10년을 버틴 팀장의 말이다. 그 황홀한 광경에 사람들의 눈동자가 스르르 풀어졌다.
“원래 이런 건가요?”
신입의 질문에 모두가 맹렬히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아니지.”
F급 게이트에서는 평균이 한두 개고 아무리 운이 좋아도 다섯 개를 못 채운다. 나는 돈 계산에 바빴다.
‘마정석만 최소 이천 잡고, 부산물에 장비까지 하면 오백. 거기에 각종 수당까지 더하면…….’
시발. 이게 다 얼마야. 헌터를 시작한 이래 최고의 대박이다.
심지어 아직 레이드가 끝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쯤 왔지?”
“거의 다 왔죠. 오른쪽 길로 꺾으면 바로 보스 존이에요.”
보스 존. 그 단어에 모두의 눈이 번쩍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보스 존에는 보스가 있다. 보스 몬스터는 해당 게이트에서 가장 강력한 몬스터. 그리고 가장 비싼 부산물과 장비, 마정석을 갖고 있는 몬스터다.
‘보스 몬스터까지 잡으면?’
말 그대로 잭팟이다. F급 헌터로 살아가면서 다시없을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모두가 그런 생각으로 환하게 웃고 있던 그때였다.
“잠깐. 생각 좀 해 보고.”
아니, 이 인간이 지금 뭐라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잖아. 마주치는 몬스터는 일반 고블린뿐인데. 마정석이 이렇게 많이? 아무래도 이상해.”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 붉은 얼굴에는 갈등이 떠올라 있었다.
“너희 기분 알아. 아는데…… 이미 엄청나게 챙겼다.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돌아가자.”
만족? 지금 여기서,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자고?
나는 다른 팀원들을 바라봤다. 그중에는 2, 3년간 손발을 맞춘 이들도 있고, 신입도 있다. 하지만 다들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는 반대…….”
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빌어먹을. 또 가슴 통증이다.
어떻게든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이명까지 들리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통증도, 이명도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숨을 헐떡였다.
‘누가 나 좀. 나 좀 도와줘.’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렸다. 바로 그다. 지난 5년간 형제처럼, 아버지처럼 나를 돌봐 준 그였다.
‘형. 제발 저 좀 살려 줘요.’
그가 덤덤한 시선으로 날 내려다봤다.
“내가? 모두를 두고 도망친 너를?”
뭐?
“나도 살고 싶었어.”
나는 통증도 잊고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옷과 피부가 녹아내리고 뼈가 드러났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해골이 되어 널브러졌다.
‘아. 그랬었지.’
모두 죽었다. 2년 전 그날. 내가 가자고 주장했던 그 보스 존에서 모두가 죽었다.
‘나 혼자 살아남았어.’
나는 기억에 파묻혀 허우적거렸다. 보스 존에 내려앉은 불길한 어둠. 불쾌한 냄새와 축축한 바닥을 떠올렸고 놈의 거대한 날개를 기억했다.
허공에서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시신. 공포에 질린 비명과 도망치는 사람들.
‘이런 개새끼가!’
하지만 내 모든 걸 쏟아부은 스킬로도 놈을 죽일 수 없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나를 그가 일으켜 세웠다.
‘태경아!’
‘형, 미안해요. 전부 제 잘못이에요.’
나만 아니었으면.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모두가 살 수 있었을 텐데.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내게 그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게 왜 네 책임이야? 자식이 이제는 팀장 흉내까지 내고 있어.’
거대한 동체가 동굴을 부유했다. 종유석이 쏟아지고 마지막 팀원이 단말마를 내질렀다. 어둠 속, 놈의 붉은 눈동자가 우리를 향했다.
‘저 건방진 새끼. 태경아. 먼저 가라.’
‘형. 천수 형!’
가슴이 아팠다.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의 고통이 밀려들어 왔다. 용암을 삼킨 것처럼, 내 안의 모든 것들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간간이 들리던 이명은 괴물의 포효로 바뀌었다.
캬우우우!
* * *
“형-!”
비명과 함께 눈을 떴다. 하지만 그곳은 게이트가 아니었고 몬스터도, 팀원들도 없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창가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주군에 관한 꿈을 꾸신 겁니까? 전해 드리면 좋아하시겠군요.”
차가움이 뚝뚝 묻어 나오는 얼굴. 진위경의 오른팔인 위팽이다. 그를 보자 아직 게임 속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괜찮으십니까?”
“아뇨. 악몽이었어요.”
“그럼 그 부분은 빼고 전하겠습니다.”
“마음대로.”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온몸에 칭칭 감긴 붕대 틈새로 피딱지가 돋은 살이 보인다.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죠?”
“닷새 동안 혼절해 계셨습니다. 상태가 워낙 위중해서 하루를 못 넘길 거라는 게 약왕당주의 결론이었고요.”
“그래요?”
“예. 그 얘기를 들은 주군께서 길길이 날뛰셨죠. 제가 안 말렸으면 약왕당주를 때려죽였을 겁니다.”
“아.”
며칠 전 회의 때 백호당주의 항문에 대침을 꽂아 넣겠다고 하던 늙은이가 생각났다. 아주 죽으라고 염불을 외웠구나.
“다른 일들은 없었나요?”
“많은 일이 있었죠. 그중에서도 좋은 소식과 더 좋은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들으시겠습니까?”
“좋은 소식부터.”
“우선 정찰조와 삭주 지부의 생존자들은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그중 두 명은 제법 큰 부상을 입긴 했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생존자. 그 세 글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칠 호.’
목과 미간에 비수가 박힌 채 마지막 숨을 토하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기껏해야 스물이나 되었을까. 목숨을 잃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죽은 이를 생각하십니까?”
“시신은, 시신은 수습했나요?”
“잘 수습하여 장사 지냈습니다. 천애 고아인지라 유족이 없더군요.”
“…….”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위팽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가 나를 향해 한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삼공자, 수하의 죽음을 개죽음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그게 무슨…….”
“무인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적과 싸워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들입니다. 비록 손쓸 수 없을 만큼 강한 적을 만나 죽었지만, 사망(死亡)이 아닌 전사(戰事)라는 말입니다.”
전장에서 죽었으니 영예로운 죽음이라는 말은 희대의 개소리다. 영예로운 죽음은 없다. 지금도 2년 전 죽은 동료들의 비명과 숨이 끊긴 칠 호의 부릅뜬 눈이 생생하다.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결코 변하지 않는 사실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
“후회됩니까?”
“당연히.”
“그럼 그의 몫까지 사십시오.”
위팽이 이제껏 들어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은 이들을 잊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슴에 묻고, 머리에 새기라는 뜻입니다. 그 후회를 발판 삼아 그들이 꿈꿨던 곳까지 비상하는 것이 공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이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울렁거리는 그 한마디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풀썩 웃어 버렸다.
“젠장. 가다가 다리 부러지겠네.”
“일평생이 걸리겠죠.”
“일평생을 바치면 도착할 수 있을까요?”
“모릅니다. 저도 제 길이 어디까지인지 모르는데 공자의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위 대협이 가는 길 끝에는 뭐가 있는데요?”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농담? 아니다. 지금의 위팽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단호했다.
“어렵네요.”
“꿈이니까요.”
맞다. 꿈이란 늘 이루기 어렵다. 떠나보낸 이들의 꿈까지 짊어진다면 더더욱.
“위 대협.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그 녀석, 이름이 뭐였습니까?”
“그의 이름은…….”
위팽의 입술이 열린 순간, 겨울 찬바람이 창문을 흔들었다.
휘이잉. 서늘한 바람 소리 너머로 칠 호의 이름이 들려온다.
“멋진 이름이네요.”
“본인이 직접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꿈도 컸죠.”
“뭔데요?”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
“…….”
“고생 좀 하실 겁니다.”
“그러게요. 어이가 없네.”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제야 무거웠던 마음이 홀가분해진 것이 느껴졌다. 모두 위팽 덕분이다.
“이제야 좀 원래대로 돌아왔군요.”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고개를 까딱인 위팽이 입을 열었다.
“이제 더 좋은 소식이 남았군요.”
아, 그랬지. 좋은 소식과 더 좋은 소식.
나는 한껏 기대하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