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rim Login RAW novel - Chapter 330
#329화
송일섬의 정체가 밝혀지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태원 진가에 몸담기 전부터 무림을 동경하던 혁무진은 당연히 그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청풍마저 검성에게 들은 적이 있다며 아는 척을 했다.
“쩝쩝. 할아버지께서 표왕은 좋은 분이라고, 꿀꺽. 하셨어요.”
“……알았으니까 다 삼키고 말해. 제발.”
“네에! 쩝쩝.”
청풍도 알 정도니 다른 두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표왕의 손녀인 주화란은 떨리는 눈빛으로 옥비녀를 바라보는 중이었고, 궁기방은 입 안에 든 것들을 사방으로 튀겨 가며 흥분했다.
“과, 광동진가!”
투두두두둑!
궁기방이 뿜어낸 십여 개의 밥풀을 젓가락으로 쳐 낸 송일섬이 대꾸했다.
“말했듯이 광동진가의 명맥은 이미 끊겼다. 그나저나 그 아가리에서 튀는 것 좀 어떻게 할 수 없겠나.”
“내 사부님께서도 표왕의 만리표(萬里鏢)에 대해 말씀하셨소. 그런데 그 이야기 속 아이가 바로 당신이었다니!”
“말을 코로 들었나? 그 아이는 내 아버지다. 그리고 더러우니 그만 좀 뱉어라.”
쉬쉭, 투두두둑!
이야, 저걸 다 쳐 내네.
또다시 번개처럼 젓가락을 휘두른 송일섬이 내게 물었다.
“이 거지가 정말 개방의 후개냐?”
“저래 보여도 후개는 맞아. 왜?”
“주둥이에서 만천화우(滿天花雨)가 쏟아지길래. 혹시 사천당문의 제자인가 싶어서.”
“음, 아마 그건 아닐 거야.”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옥비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주화란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 들었어요. 조부님께서는 마지막까지 광동진가의 소식을 궁금해하셨다고. 하지만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그건 내 조모님께도 한으로 남았다. 서신 한 통 남기지 못하고 갓난아이였던 아버지와 함께 도망쳐야 했지.”
“갑자기 왜 사라지신 건가요?”
“위험했으니까. 광동진가의 무공은 가문이 불타며 모두 소실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래도 정파의 세력권 안에 있으면…….”
“탐욕은 정파와 사마외도를 가리지 않는다. 광동진가의 절정 무공을 노리는 자 중에는 표왕의 이름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어.”
난세(亂世).
이 두 글자를 떠올리자 당시 모자가 겪어야 했을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난세에는 사람들 간의 규칙이 무너지고, 각자의 본능에 충실해지며 도덕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어머니는 사람들의 탐욕으로부터 자식을 지키기 위해 도망쳤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모님은 삼류 칼잡이 하나도 당해 낼 수 없는 아녀자였지만, 절정 고수 열 명을 합친 것보다 현명하셨지.”
잠시 침묵하던 송일섬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사람의 생로병사(生老病死)마저 피해 갈 수는 없었지만.”
“그럼…….”
“내가 열 살 되던 해에 병으로 돌아가셨다. 이 옥비녀를 주시며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알려 주시더군. 나로서는 처음 듣는 놀라운 이야기였어.”
송일섬은 무뚝뚝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이야기를 푸는 것에 제법 재능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은 바로 그의 부모에 관한 것이었는데, 조모의 죽음 이후 저잣거리를 떠돌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어졌다.
안타깝게도 두 분 다 일찍 단명(短命)한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사라지자 또 다른 의문이 빈자리를 채웠다.
“그럼 넌 어떻게 그 정도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거지? 광동진가의 무공도 소실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송일섬의 대답은 간단했다.
“전장에서.”
“낭인으로 살았나?”
“구걸에 재능이 없었거든. 철전 하나 던져 주는 이보다 얼굴이 표정이 기분 나쁘다며 때리고 가는 놈들이 더 많았어.”
가만히 듣고 있던 궁기방이 매우 공감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구걸에도 왕도가 있는 법. 거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동정심을 유발하는 얼굴과 표정인데, 송 소협이나 나처럼 잘생기면 푼돈 벌기도 힘드오. 나도 그렇게 굶는 날이 허다했지.”
송일섬이 정색하며 말했다.
“후개, 지금 발언은 상당히 불쾌하군. 나를 모욕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왜 그러시오? 내 어렸을 적 얼굴 본 적 있소? 과장 하나 없이 송옥(宋玉)이 울고 갈 정도였다니까?”
“송옥이 울어?”
송일섬은 피카소의 걸작처럼 생긴 궁기방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얼굴이면 울만 하지. 혹시 밤에 나와 마주치거든 멀리 피해 가라. 갑자기 네 얼굴을 마주한다면 실수로 베어 버릴 수도 있다.”
그냥 확 지금 베어 버릴까, 하는 얼굴로 고민하던 송일섬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어쨌든 구걸은 젬병이요, 이렇다 할 일자리도 없었지. 사흘이 넘도록 쫄쫄 굶자 하늘이 노랗게 보이더군. 이대로 굶어 죽느니 차라리 검동(劍童)이 되는 것이 낫겠다 싶었지.”
“검동? 검 들어 주는 그거?”
“그래.”
“그거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이 고용하는 거 아냐? 검 들기 귀찮으니까 맡겨 놓는 거.”
“돈푼깨나 있는 자들이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르는 비렁뱅이 꼬마를 데려다 쓸 거라 생각하나?”
“그것도 그러네.”
“의외로 검동을 가장 많이 고용하는 건 낭인들이다. 평소에는 온갖 잡일을 맡기고 급할 때는 칼받이로도 쓰지.”
저 정도면 개꿀 알바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까고 보니 헬대륙 알바였네.
“그다지 편하고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송일섬은 덤덤하게 자신의 지난 과거를 나열했다.
평소에는 온갖 구박과 폭력 속에 수발을 들고, 빗발치는 화살 속에서 병장기를 수거했다.
낭인이 제 목숨 건사하기 바빠 그를 버리고 도망쳤던 날에는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나흘 동안 시체 더미 사이에 숨어 있었지. 간신히 살아나와 낭인을 찾아갔더니 자신이 맡겨 놓은 검부터 찾더군.”
“와, 미친놈이네.”
“다행히 내가 맡고 있던 두 자루는 무사했다. 도망치면서도 악착같이 놓지 않았거든.”
“……와, 진짜 미친놈이네.”
“그놈만큼은 아니었어. 자신이 원래 세 자루를 맡겼다면서 헛소리를 늘어놓더니, 개죽음당하기 싫으면 썩 꺼지라더군. 물론 지난 일 년간 일한 대가 한 푼 없이 말이야.”
송일섬이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열 받더라고.”
당연하겠지만, 그는 노동부에 민원을 넣는 대신 더 빠른 길을 선택했다.
“마침 검은 두 자루였어. 그중 하나를 들었지. 무겁더군.”
“이겼겠네.”
“죽였지.”
가볍게 내 말을 정정한 송일섬이 젓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 어렵지 않았어. 항상 봐 왔던 무공이었고, 뻔했지. 미리 짜 놓은 합처럼 열 번을 피하고 한 번을 찔렀더니 쓰러지더군.”
꿀꺽.
마른침을 삼킨 혁무진이 물었다.
“그게 몇 살 때였습니까?
“열둘? 열셋? 기억도 잘 안 나지만 분명 그쯤이었다.”
“그, 그럼 상대는…….”
“별 볼 일 없는 삼류 낭인이었지. 일류였다면 내가 미쳤다고 덤볐겠나.”
아니, 애초에 초등학교도 졸업 안 한 꼬맹이가 무림인한테 덤빈 것 자체가 미친 짓 같은데.
‘나는 그 나이에 뭘 했더라.’
모르겠다. 코딱지나 파면서 놀고 있었겠지, 뭐.
‘이놈도 재능충이네.’
천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무림 문파와 가문이 존재한다.
구파일방, 오대세가라는 이름이 1군이라면, 2군도 존재하기 마련.
적천강이 지나가듯 알려 준 바에 의하면 광동진가가 바로 그랬다.
‘무가의 피는 어디 안 간다는 건가?’
가문의 비전 무공도 없이 저 정도의 성취를 이루다니.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이라는 생각에 감탄하던 그때, 아까부터 말이 없던 궁기방이 화들짝 놀라며 송일섬을 응시했다.
“당신 설마, 추혼객(追魂客)이오?”
“십 년 전에는 그렇게 불렸지. 그나저나 주둥이가 화수분인가? 무슨 개같은 밥풀이 아직도 이렇게 끝도 없이…….”
“허, 그 유명한 추혼객이 내 또래의 젊은이였을 줄이야.”
추혼객. 그게 송일섬의 별호인 모양이다.
실력만큼이나 제법 유명인사였는지 주화란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번의 생사결(生死決)에서 승리했다는 그 추혼객이 당신이라고요?”
“정확히는 백 하고도 두 번. 전부 허명이니 난리 피울 것 없다. 여기 나보다 어리고 대단한 놈들이 둘이나 더 있잖아.”
어느새 대부분의 음식을 끝장낸 청풍이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래도 송 소협 정도면 대단한걸요.”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세긴 해. 나보다 약하지만.”
“……이것들이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청풍이 수정과처럼 보이는걸 후루룩 마시며 말했다.
“노리응어 아잉에오!”
“놀리는 거 아니래.”
친절한 통역에 송일섬의 시선이 나를 향해 움직였다.
“넌?”
“난 놀리는 거 맞아.”
“……술 없나? 오랜만에 한잔하고 싶군.”
* * *
초저녁부터 시작된 식사는 자정이 가까워진 후에야 끝났다.
좋은 술을 놔두고 굳이 독한 화주를 연달아 비운 송일섬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있었고, 홀짝거리며 마시던 주화란도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갈 시간이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궁기방은 공력으로 취기를 몰아냈고, 혁무진은 이미 꽐라가 되어 고롱고롱 코골이를 하는 청풍을 둘러업었다.
“실례 많았습니다, 주 소저.”
“벌써 가시나요?”
“더 머물다 가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번에는 안 될 것 같네요.”
“그런가요.”
취기에 젖은 눈동자가 반달처럼 휘어진다.
춤추는 듯 사뿐한 발걸음. 볼에 선명한 보조개. 아무래도 그녀의 주사는 웃음인 모양이다.
“잠깐, 걸으실래요?”
“예?”
“걷자구요. 화원에 막 꽃이 피었거든요.”
“어. 축하드립니다. 예쁘겠네요.”
푸핫. 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왜 웃냐고 묻기도 전에 주화란이 깔깔 웃으며 문밖으로 나섰다.
엉겁결에 그녀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멈칫하며 돌아섰다.
“안 나와?”
“……사람인가?”
“……거지보다 못한 놈, 거지 같은 놈. 거지보다 더한 놈.”
“뭐냐, 눈깔들을 왜 그렇게 떠.”
“제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다.”
“가자. 주 소저가 화원에 꽃 피었대. 같이 구경하고 바로 출발하면 시간이 딱 맞는…….”
이어지려던 말은 궁기방과 혁무진의 한숨에 가로막혔다.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은 두 놈이 차례대로 말했다.
“저 똥 마렵습니다, 측간 좀.”
“나도. 교대로 왔다 갔다 할 테니까 천천히 둘러보고 있어라.”
“……어, 그래.”
저놈들 왜 저래. 배가 많이 아파서 그런가, 오늘따라 표정들이 거의 악귀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눈빛에서 경멸과 분노를 읽은 건 착각이겠지.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주화란과 나란히 화원을 걷기 시작했다.
“진 대협은 뭐랄까, 참 재미있는 분이세요.”
“그래요?”
“네. 가끔은 답답할 때도 있긴 한데…… 뭐,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장점이니까.”
“……?”
뭐야, 이거. 지금 나 돌려서 까는 건가.
어리둥절한 내 표정에 주화란의 입가에 맺힌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소리 내서 웃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한 반년은 넘은 것 같은데.”
“음? 지난번에도 웃지 않았어요? 흑석산 지나갈 때.”
“어, 그러네요?”
“그냥 기억을 못 하시는 거 아닙니까? 벌써 사흘 사이에 두 번인데.”
“글쎄요. 정말 그런 건가?”
붕 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주화란이 문득 하늘을 가리켰다.
“진 대협, 저거 보이세요?”
“보이죠. 보름달인데.”
“오늘은 달이 되게 밝네요.”
“주 소저, 그거 알아요? 달이 밝은 이유가,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이 반사돼서 그렇대요.”
“네?”
“아니,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이미 유명한 연구 결과……가 아니라 학자에게 들은 거예요. 그 어디냐, 그래. 황궁 쪽.”
다시 한번 쿡, 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이거 진짠데…….”
“알았어요. 믿을게요. 그나저나 진 대협.”
“네?”
“이거.”
억울해하는 내게, 주화란이 뭔가를 쑥 내밀었다.
단단하고 길쭉한 목함이다. 이미 다루에서 한 번 본 적 있는.
“이거 혹시.”
“맞아요, 백년설삼.”
“…….”
“해 주신 것에 비해 약소하지만, 받아 주시겠어요? 제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도록.”
나는 말 없이 주화란과 목함을 번갈아 응시했다. 거절할까, 말까, 거절할까…….
수차례의 갈등 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잘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주화란이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하늘에 떠 있는 달보다도 밝다.
우리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각 정도를 걸었을까, 양옆으로 늘어선 꽃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옆에서 나란히 걷던 주화란의 걸음도 느려졌다.
“진 대협.”
“네. 주 소저.”
“나, 잘할 수 있을까요?”
불쑥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축축하고 황량했다.
어쩌면 이러기 위해서 술을 마셨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럴 때가 있다. 어떤 것으로도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날이. 애써 억눌렀던 감정이 출렁 흘러넘치는 순간이.
“정말, 잘할 수 있을까요?”
나는 문득 입을 열었다.
“못해도 괜찮아요.”
“…….”
괜찮니, 지금 그 마음 이해합니다. 힘내세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공허하게 들릴 때가 있다. 당연히 안 괜찮고,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타인은 당사자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힘내라는 말을 들어도 갑자기 힘이 솟구치지는 않는다.
오늘 주화란에게 어설픈 위로를 건네지 않는 건, 이미 그녀가 충분히 힘들기 때문이었다.
“주 소저도 사람이잖아요. 못해도 되고,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해 왔던 대로, 흐르는 대로 나아가면 되는 거다.
남의 발걸음이 아니라 내 발걸음에 맞춰서 한 걸음씩.
“그거면 되지 않을까요.”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눈동자가 날 올려다봤다. 이내 반달처럼 휘어진다.
* * *
탁!
땅을 박찼다. 풍경이 멀어지고 지면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주화란과 용봉표국 사람들의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더니 이내 뚝 끊겼다.
그제야 눈치를 살피고 있던 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 주 소저 눈이 부어 있던데…….”
“혹시 울었나? 에이, 아니야. 아니겠지.”
어두운데 용케도 주의 깊게 봤군.
내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자 혁무진이 불룩하게 솟은 가슴팍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그건 뭡니까?”
“아, 이거.”
인벤토리에 넣는 걸 깜빡했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누군가의 거짓말이 생각나서다.
“천년설삼.”
“예에?”
“어어?”